영등포의 밤 (옛 영등포의 추억담)
60년대 영등포는 공장 굴뚝들이 참 많았었다.
서울 시내 쪽에서 쫒겨난 공장들이 전입하면서 그 수는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완전 공업도시화 돼 가고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그에 따라 전국에서 수많은 노동인구가 유입되었고, 그 시절 소위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이 특히 많
이 기착한 곳이기도 한 곳이라.
때에 주택문제가 어려웠는데 셋방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빈 공터를 찾아 판자집을 짓고 살기도 했는데 그거 나중에 일부 기득권을 인정 받기도 한 모양
이다.
특히 영등포역에서 지금 신도림역까지의 철로변은 무허가 판자집이 빈틈없이 들어서고 있는 지역이었다.
거기서도 조그만 공간이라도 있으면 선점유자가 또 방을 들여 세를 놓아 먹기도 하는 것이었고.
기차 지나갈 때 보면 소음도 대단했지만 구들짱이 들썩거려 잠자기 겁났다. 헌데 거기 만성이 된 사람들
은 아주 천하태평이라니.
우리 시골서 먼저 올라와 거기 터 닦고 사는 친구네가 있어 내 그 사정 잘 알지.
헌데 당시 그 사람들 사는 모습은 생각보다는 아주 재미나게 사는 것 같았다. 어려운 사람들끼리 모여 사
는 동네라선가 인정과 의리가 두터워 보였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는 건 바로 그런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인지?
그 때 '왜간장'이란 걸 거기서 처음 먹어 봤는데 그거 밥 비벼 먹는 맛은 참, 천하일미라. 지금도 그런
게 있는지? 그거 정말 잊을 수 없는 맛이었는데. 아직도 있다면 다시 한 번 먹어 보고 싶어진다.
낮에도 보면 그 지역은 잠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거 다 야간 근무 마치고 나온 사람들로 해 지면 또
출근할 사람들이라.
그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사람 오는 건 또 아주 좋아해서 보면 그 찌그러진 울타리 안에 동네 말꾼들이
늘 드나드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거기서 일꺼리 정보를 서로 나누는 모습은 흔히 보는 일이었다.
친구 비번 날 4홉 들이 '삼학' 한 병 사 들고 찾아가면 그 친구야 항상 OK였지.
그 때 소주는 35도짜리로 독했어. 두어 잔 마시면 금방 취기가 올랐으니까. 그게 진짜 소주였지.
술잔 돌아가는 소리는 술꾼들에겐 정말 십리 밖에서도 들리는 건지? 어느 틈엔가 그 이웃 한 친구가 또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었는데, '만년 실업자' 칭호에 나이는 한두살 많아 보였다. 그는 먹다 남은 거라
도 으례 술병 하나 들고 오는 것이었다.
영등포가 저 수많은 공장과 그에 딸린 수많은 노동인구가 생활하는 곳이라면 시장 경기가 꽤 잘 돌아갈
것도 같으련만 보면 그렇지도 않아 보이는 것이었다. 그건 아마도 임금 생활자들 주머니 사정 때문이리
라. 임금 수준이 턱없이 낮고 소비성향 또한 낮아 시장경제에 별 큰 영향을 못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는
지? 저들 보면 월급 타서 시골 집에 송금하고 각종 생활경비 내고나면 별로 남는 돈이 없는 것이다. 어
디 나가서 '쇼핑'같은 걸 할 여유란 거의 없다. 부식같은 것도 다 시골서 올려다 먹는다. 저들이 어쩌다
다방에서 친구를 만나 커피를 사는 일은 사실 큰 부담이었는데, 친구는 그 속을 모른다.
그 시절 사업 수완 좀 있는 사람이라면 저임금 인력 조달이 용이하여 일하기 쉬었을 것이다. 특히 노동
집약 분야 사업이 한창일 때라 그 때 그들 아마 돈께나 벌었지 않았을까? 허나 노동자들 형편이야 늘
매일반이었지만.
저 노동자들이야말로 기업 돈 벌어 주고 이 나라 경제의 밑거름이었건만 누구 하나 그들을 진짜 알아 주
려는 사람 있었으랴?
잿빛 하늘 아래의 당시 영등포는 전 지역이 노동자, 미취업 노동자(산업예비군)들의 창살 없는 거대한
수용소와도 같은 침울한 도시였었다. 저 굴뚝들 헐리고 공해산업들 정리하고 80년대 새로운 도시환경으
로 거듭날 때까지는 말이지.
그 세월이 어언 반세기가 지나가고 있는데 당시 오기택의 '영등포의 밤'은 특히 저들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린 노래로 옛 영등포를 기억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언제까지고 추억의 애창곡으로 남아 있을 것이
다.
영등포의 밤(1963)
라희 작사 김부해 작곡 오기택 노래
궂은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
내 가슴에 안겨오던 사랑의 불길
고요한 적막 속에 빛나던 그대 눈동자
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가슴을 파고드는 추억 어린 영등포의 밤
영원 속에 스쳐오던 사랑의 불꽃
흐르는 불빛 속에 아련한 그대의 모습
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2015. 0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