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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집주(論語集註)
▣ 논어집주(論語集註)
『○ 논어 ; 학이(學而) 제일(第一)+1』
『○ 논어 ; 위정(爲政) 제이(第二)+18』
『○ 논어 ; 팔일(八佾) 제삼(第三)+43』
『○ 논어 ; 이인(里仁) 제사(第四)+70』
『○ 논어 ; 공야장(公冶長) 제오(第五)+97』
『○ 논어 ; 옹야(雍也) 제육(第六)+125』
『○ 논어 ; 술이(述而) 제칠(第七)+154』
『○ 논어 ; 태백(泰伯) 제팔(第八)+192』
『○ 논어 ; 자한(子罕) 제구(第九)+214』
『○ 논어 ; 향당(鄕黨) 제십(第十)+245』
『○ 논어 ; 선진(先進) 제십일(第十一)+263』
『○ 논어 ; 안연(顔淵) 제십이(第十二)+289』
『○ 논어 ; 자로(子路) 제십삼(第十三)+314』
『○ 논어 ; 헌문(憲問) 제십사(第十四)+345』
『○ 논어 ; 위령공(衛靈公) 제십오(第十五)+393』
『○ 논어 ; 계씨(季氏) 제십육(第十六)+435』
『○ 논어 ; 양화(陽貨) 제십칠(第十七)+450』
『○ 논어 ; 미자(微子) 제십팔(第十八)+477』
『○ 논어 ; 자장(子張) 제십구(第十九)+489』
『○ 논어 ; 요왈(堯曰) 제이십(第二十)+515』
*논어 ; 학이(學而) 제일(第一)
▣ 학이(學而) 제일(第一)
『此는 爲書之首篇이라 故로 所記多務本之意하니 乃入道之門이요 積德之基니 學者之先務也라 凡十六章이라』
『 이 편(篇)은 <《논어(論語)》> 책의 머리 편(篇)이 된다. 그러므로 기록한 내용이 근본(根本)을 힘쓰는 뜻이
많으니, 바로 도(道)에 들어가는 문(門)이요 덕(德)을 쌓는 터전이니, 배우는 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모두 16장(章)이다.』
『○ 논어 ; 학이 ; 제1장+1』
『○ 논어 ; 학이 ; 제2장+2』
『○ 논어 ; 학이 ; 제3장+3』
『○ 논어 ; 학이 ; 제4장+4』
『○ 논어 ; 학이 ; 제5장+5』
『○ 논어 ; 학이 ; 제6장+6』
『○ 논어 ; 학이 ; 제7장+7』
『○ 논어 ; 학이 ; 제8장+8』
『○ 논어 ; 학이 ; 제9장+9』
『○ 논어 ; 학이 ; 제10장+10』
『○ 논어 ; 학이 ; 제11장+11』
『○ 논어 ; 학이 ; 제12장+12』
『○ 논어 ; 학이 ; 제13장+13』
『○ 논어 ; 학이 ; 제14장+14』
『○ 논어 ; 학이 ; 제15장+15』
『○ 논어 ; 학이 ; 제16장+16』
*논어 ; 학이 ; 제1장
▣ 제1장(第一章)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열)』乎아』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學之爲言주:학지위언』은 效也라 人性皆善이나 而覺有先後하니 後覺者必效先覺之所爲라야 乃可以明善而復
其初也라 習은 鳥數『(삭)』飛也니 學之不已를 如鳥數飛也라 說은 喜意也니 旣學而又時時習之면 則所學者熟而中
心喜說하여 『其進주:기진』이 自不能已矣리라 程子曰 習은 重習也니 時復思繹하여 浹洽於中이면 則說也니라
又曰 學者는 將以行之也니 時習之면 則所學者在我라 故로 悅이니라 謝氏曰 時習者는 無時而不習이니 坐如尸는
坐時習也요 立如齊는 立時習也니라』
『 학(學)이란 말은 본받는다는 뜻이다.
사람의 본성(本性)은 모두 선(善)하나 이것을 앎에는 먼저 하고 뒤에 함이 있으니, 뒤에 깨닫는 자는 반드시 선각자
(先覺者)의 하는 바를 본받아야 선(善)을 밝게 알아서 그 본초(本初)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습(習)은 새가 자주
나는 것이니, 배우기를 그치지 않음을 마치 새 새끼가 자주 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열(說)은 기뻐하는 뜻이다.
이미 배우고 또 때때로 그것을 익힌다면 배운 것이 익숙해져서 중심(中心)에 희설(喜說)을 느껴 그 진전이 자연히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습(習)은 중습(重習)『[거듭함]』이나, 때로 다시 생각하고 연역(演繹)해서 가슴
속에 무젖게 하면 기뻐지는 것이다.”』
『 또 말씀하였다. “배우는 것은 장차 그것을 행하려고 해서이니, 때로 익힌다면 배운 것이 내 몸에 있다.
그러므로 기뻐지는 것이다.”』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시습(時習)이란 때마다 익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앉음에 시동(尸童)과 같이 함은
앉아 있을 때의 익힘이요, 섬에 제계(齊戒)함과 같이 함은 서 있을 때의 익힘이다.”』
『有朋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 동지(同志)가 먼 지방으로부터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朋은 同類也니 自遠方來면 則近者可知니라 程子曰 以善及人하여 而信從者衆이라 故로 可樂이니라 又曰 說은
在心하고 樂은 主發散이니 在外니라』
『 붕(朋)은 동류(同類)『[동지(同志)]』이니 먼 지방으로부터 온다면 가까이 있는 자들이 <찾아옴을> 알 수 있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선(善)을 남에게 미쳐서 믿고 따르는 자가 많다. 그러므로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 또 말씀하였다. “열(說)『[열(悅)]』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요, 낙(樂)이란 발산(發散)함을 주장하니 외면에 있는
것이다.”』
『人不知而不?이면 不亦君子乎아』
『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면 군자(君子)가 아니겠는가.”』
『?은 含怒意라 君子는 成德之名이니라 尹氏曰 學은 在己하고 知不知는 在人하니 何?之有리오 程子曰 雖樂於及人
이나 『不見是而無悶주:불견시이무민』이라야 乃所謂君子니라 愚謂 及人而樂者는 順而易하고 不知而不?者는 逆
而難이라 故로 惟成德者能之라 然이나 德之所以成은 亦由學之正, 習之熟, 說之深而不已焉耳니라』
『○ 程子曰 樂은 由說而後得이니 非樂이면 不足以語君子니라』
『 온(?)은 노여움을 품은 뜻이다. 군자(君子)는 덕(德)을 완성한 이의 명칭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학문(學問)은 자신에게 달려 있고,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음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어찌 서운해 할 것이 있겠는가.”』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비록 남에게 미치는 것을 즐거워하나 옳다함을 받지 못하더라도 서운함이 없어야
이것이 이른바 군자(君子)라는 것이다.”』
『 내가 생각건대, “남에게까지 미쳐서 즐거운 것은 순(順)이어서 쉽고, 알아주지 않는데도 서운해하지 않는 것은
역(逆)이어서 어렵다. 그러므로 오직 덕(德)을 이룬 군자(君子)만이 능한 것이다. 그러나 덕(德)이 이루어지는
소이(所以)는 또한 학문이 올 바라야 하고, 익히기를 익숙히 하고, 기뻐하기를 깊이 하여 그치지 않음에 말미암을
뿐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낙(樂)은 열(說)을 말미암은 뒤에야 얻어지는 것이니,
낙(樂)이 아니라면 군자(君子)라고 말할 수 없다.”』
*논어 ; 학이 ; 제2장
▣ 제2장(第二章)
『有子曰 其爲人也孝弟요 而好犯上者鮮矣니 不好犯上이요 而好作亂者未之有也니라』
『 유자(有子)가 말하였다. “그 사람됨이 효(孝)하고, 공경(恭敬)스럽고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무니,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고서 난(亂)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있지 않다.』
『有子는 孔子弟子니 名若이라 善事父母爲孝요 善事兄長爲弟라 犯上은 謂干犯在上之人이라 鮮은 少也라 作亂은
則爲悖逆爭鬪之事矣라 此는 言人能孝弟면 則其心和順하여 少好犯上이니 必不好作亂也라』
『 유자(有子)는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니, 이름은 약(若)이다. 부모(父母)를 잘 섬기는 것을 효(孝)라 하고,
형(兄)과 어른을 잘 섬기는 것을 제(弟)라 한다. 범상(犯上)이란 윗자리에 있는 사람을 범함을 이른다.
선(鮮)은 적음이다. 작란(作亂)이란 패역(悖逆)하고 다투고 싸우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부모(父母)에게 효(孝)하고 어른에게 공경(恭敬)하면 그 마음이 화순(和順)해서 윗사람을 범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가 적으니, 반드시 난(亂)을 일으키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君子는 務本이니 本立而道生하나니 孝弟也者는 其爲仁之本與인저』
『 군자(君子)는 근본(根本)을 힘쓰니, 근본(根本)이 확립되면 도(道)가 발생(發生)하는 것이다.
효(孝)와 제(弟)『[제(悌)]』라는 것은 그 인(仁)을 행하는 근본(根本)일 것이다.”』
『務는 專力也요 本은 猶根也라 仁者는 愛之理요 心之德也니 爲仁은 猶曰行仁이라 與者는 疑辭니 謙退不敢質言
也라 言君子凡事를 專用力於根本이니 根本旣立이면 則其道自生이라 若上文所謂孝弟는 乃是爲仁之本이니 學者
務此면 則仁道自此而生也라』
『○ 程子曰 孝弟는 順德也라 故로 不好犯上이니 豈復有逆理亂常之事리오 德有本이니 本立則其道充大라 孝弟行
於家而後에 仁愛及於物이니 所謂親親而仁民也라 故로 爲仁은 以孝弟爲本이요 論性則以仁爲孝弟之本이니라 或問
孝弟爲仁之本이라하니 此是由孝弟可以至仁否아 曰 非也라 謂行仁自孝弟始라 孝弟는 是仁之一事니 謂之行仁之本
則可커니와 謂是仁之本則不可하니 蓋仁은 是性也요 孝弟는 是用也라 性中에 只有箇仁義禮智四者而已니 曷嘗有
孝弟來리오 然이나 仁主於愛하고 愛莫大於愛親이라 故로 曰 孝弟也者는 其爲仁之本與인저』
『 무(務)는 전력(專力)하는 것이요, 본(本)은 근(根)과 같다. 인(仁)이란 사랑의 원리(原理)요, 마음의 덕(德)이니,
위인(爲仁)이란 행인(行仁)이란 말과 같다. 여(與)는 의문사이니, 겸손하여 감히 질정해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군자(君子)가 모든 일을 오로지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이미 확립되면 그 도(道)가 스스로 생겨난다.
위 글에서 말한 바 효제(孝弟)로 말하면 바로 이 인(仁)을 하는 근본이니, 배우는 자들이 이것을 힘쓰면 인(仁)의
도(道)가 이로부터 생겨남을 말한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효제(孝弟)는 순한 덕(德)이다. 그러므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이니, 어찌 다시 이치를 거스르고 상도(常道)를 어지럽히는 일이 있겠는가? 덕(德)은 근본(根本)이 있으니, 근본이
확립되면 그 도(道)가 충만하고 커진다. 효(孝)와 제(弟)를 집안에 행한 뒤에 인(仁)과 사랑이 남에게 미치는 것
이니, 이것이 이른바 친한 이『[친척]』를 친히 하고서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仁)을 하는데는 효제(孝弟)를 근본(根本)으로 삼으며, 본성(本性)을 논한다면 인(仁)이 효제(孝弟)의
근본(根本)이 되는 것이다.” 혹자가 묻기를 ‘효제(孝弟)가 인(仁)의 근본(根本)이 된다 하였으니,
이것은 효제(孝弟)로 말미암아 인(仁)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나는 대답하였다. “이것은 아니다.
인(仁)을 행하는 것이 효제(孝弟)로부터 시작됨을 말했을 뿐이다. 효제(孝弟)는 이 인(仁)의 한 가지 일이니,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이른다면 가(可)하거니와, 이것이 인(仁)의 근본(根本)이라고 한다면 불가(不可)한다.
인(仁)은 본성(本性)이요, 효제(孝弟)는 용(用)이다. 성(性) 가운데에는 다만 인(仁)•의(義)•예(禮)•지(智) 네
가지가 있을 뿐이니, 어찌 일찍이 효제(孝弟)가 있겠는가. 그러나 인(仁)은 사랑을 주장(主張)하고, 사랑은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그러므로 ‘효제(孝弟)란 그 인(仁)을 행하는 근본(根本)일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논어 ; 학이 ; 제3장
▣ 제3장(第三章)
『子曰 巧言令色이 鮮矣仁이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사람이 인(仁)한 이가 적다.”』
『巧는 好요 令은 善也라 好其言하고 善其色하여 致飾於外하여 務以悅人이면 則人欲肆而本心之德이 亡矣라
聖人이 辭不迫切하여 專言鮮이면 則絶無可知니 學者所當深戒也니라』
『○ 程子曰 知巧言令色之非仁이면 則知仁矣리라』
『 교(巧)는 아름다움이요, 영(令)은 선(善)『[잘함, 좋게 함]』이다. 그 말을 아름답게 하고 그 얼굴빛을 좋게
하여 외면에 꾸미기를 지극히 해서 남을 기쁘게 하기를 힘쓴다면, 인욕(人慾)이 함부로 부려져서 본심(本心)의
덕(德)이 없어질 것이다. 성인(聖人)은 말씀이 박절하지 않아서 오로지 적다고만 말씀하셨으니,
그렇다면 <인(仁)한 자가> 절대로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깊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 인(仁)이 아님을 안다면 인(仁)을 알 것이다.”』
*논어 ; 학이 ; 제4장
▣ 제4장(第四章)
『曾子曰 吾日三省吾身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아 與朋友交而不信乎아 傳不習乎이니라』
『 증자(曾子)가 말씀하였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피나니,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해 줌에 충성
스럽지 못한가? 붕우(朋友)와 더불어 사귐에 성실하지 못한가? 전수(傳受)받은 것을 복습하지 않는가? 이다.”』
『曾子는 孔子弟子니 名參이요 字子輿라 盡己之謂忠이요 以實之謂信이라 傳은 謂受之於師요 習은 謂熟之於己라
曾子以此三者로 日省其身하여 有則改之하고 無則加勉하여 其自治誠切이 如此하니 可謂得爲學之本矣요 而三者之
序는 則又以忠信爲傳習之本也니라』
『○ 尹氏曰 曾子守約이라 故로 動必求諸身하시니라 謝氏曰 諸子之學이 皆出於聖人이나 其後愈遠而愈失其眞
이어늘 獨曾子之學은 專用心於內라 故로 傳之無弊하니 觀於子思孟子면 可見矣라 惜乎라 其嘉言善行이 不盡傳於
世也여 其幸存而未泯者를 學者其可不盡心乎아』
『 증자(曾子)는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니, 이름은 삼(參)이요, 자(字)는 자여(子輿)이다.
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忠)이라 이르고, 성실(誠實)히 하는 것을 신(信)이라 이른다. 전(傳)은 스승에게 전수
(傳受)받은 것이요, 습(習)은 자기 몸에 익숙히 함을 말한다. 증자(曾子)는 이 세 가지로써 날마다 자신을 반성
하여 이런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힘써서 자신을 다스림에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이와 같았으니,
학문(學問)하는 근본을 얻었다고 이를 것이요, 세 가지의 순서는 또 충(忠)•신(信)을 전습(傳習)하는 근본(根本)
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증자(曾子)는 지킴이 요약(要約)하였다. 그러므로 행동함에 반드시 자신에게서
구하신 것이다.”』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여러 제자(弟子)들의 학문이 다 성인(聖人)에게서 나왔으나 그 뒤에 더욱 멀어질수록
더욱 그 참을 잃었는데, 유독 증자(曾子)의 학문은 오로지 내면(內面)에 마음을 썼다.
그러므로 전수(傳受)함에 폐단(弊端)이 없었으니, 자사(子思)와 맹자(孟子)에게서 관찰하면 이것을 볼 수 있다.
애석하다! 그 아름다운 말씀과 좋은 행실이 세상에 다 전해지지 못함이여. 그 다행히 남아있어 없어지지 않은 것을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논어 ; 학이 ; 제5장
▣ 제5장(第五章)
『子曰 道千乘之國하되 敬事而信하며 節用而愛人하며 使民以時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천승(千乘)의 나라를 다스리되 일을 공경하고 믿게 하며 쓰기를 절도 있게 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백성을 부리기를 때『[농한기]』에 하여야 한다.”』
『道는 治也라 千乘은 諸侯之國이니 其地可出兵車千乘者也라 敬者는 主一無適之謂니 敬事而信者는 敬其事而信
於民也라 時는 謂農隙之時라 言治國之要 在此五者하니 亦務本之意也라』
『○ 程子曰 此言至淺이나 然이나 當時諸侯果能此면 亦足以治其國矣라 聖人은 言雖至近이나 上下皆通하니 此三
言者를 若推其極이면 堯舜之治도 亦不過此라 若常人之言은 近則淺近而已矣니라 楊氏曰 上不敬則下慢이요 不信
則下疑니 下慢而疑면 事不立矣니 敬事而信은 以身先之也니라 易曰 節以制度하여 不傷財하고 不害民이라하니 蓋
侈用則傷財요 傷財면 必至於害民이라 故로 愛民이 必先於節用이라 然이나 使之不以其時면 則力本者不獲自盡
하여 雖有愛人之心이나 而人不被其澤矣리라 然이나 此는 特論其所存而已요 未及爲政也니 苟無是心이면 則雖有
政이나 不行焉이니라 胡氏曰 凡此數者는 又皆以敬爲主니라 愚謂 五者는 反復相因하여 各有次第하니 讀者宜細推
之니라』
『 도(道)는 다스림이다. 천승(千乘)은 제후(諸侯)의 나라이니, 그 땅에서 병거(兵車) 천승(千乘)이 나올 만한
곳이다. 경(敬)이란 일(一)을 주장하여 다른 데로 나감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일을 공경하고 믿게 한다는 것은 그
일을 공경하고 백성에게 믿게 하는 것이다. 시(時)는 농사짓는 틈의 때를 이른다.
나라를 다스리는 요점이 이 다섯 가지에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이것도 또한 근본을 힘쓰는 뜻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 말씀은 지극히 천근(淺近)하다. 그러나 당시 제후(諸候)들이 과연 이에 능
하였다면 또한 족히 그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을 것이다. 성인(聖人)은 말씀이 비록 지극히 천근(淺近)하나
상하(上下)에 다 통하니, 이 세 말씀을 만일 그 극(極)을 미룬다면 요순(堯舜)의 정치(政治)도 또한 여기에서
지나지 않는다. 상인(常人)의 말로 말하면 가까우면 천근(淺近)할 뿐인 것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웃사람이 공경하지 않으면 아랫사람들이 태만하고, 미덥게 하지 않으면 아랫사람
들이 의심하니, 아랫사람들이 태만하고 의심하면 일이 성립되지 못한다.
일을 공경하고 미덥게 한다는 것은 자신이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절약하여 법도를 따라서 재물을 상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쓰기를 사치하게 하면 재물을 손상하고, 재물을 손상하면 반드시 백성을 해침에 이른다.
그러므로 백성을 사랑함은 반드시 절용(節用)을 먼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성을 부리기를 농한기로써 하지 않는
다면 본업(本業)『[농업(農業)]』에 힘쓰는 자들이 스스로 다할 수가 없어서 윗사람이 비록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을 가지고 있으나,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그 마음속에 두어야 함을 논하였을 뿐이요, 정사(政事)를 하는 데는 미치지 못하니,
만일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비록 훌륭한 정치제도(政治制度)가 있더라도 시행되지 못할 것이다.”』
『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무릇 이 몇 가지는 또 모두 경(敬)을 주장으로 삼는다.”』
『 내가 생각건대, 이 다섯 가지는 반복하여 서로 원인이 되어 각기 차례가 있으니, 읽는 자들이 마땅히 세세히
미루어야 할 것이다.』
*논어 ; 학이 ; 제6장
▣ 제6장(第六章)
『子曰 弟子入則孝하고 出則弟하며 謹而信하며 汎愛衆하되 而親仁이니 行有餘力이어든 則以學文이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제자(弟子)가 들어가서는 효(孝)하고 나와서는 공손(恭遜)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인(仁)한 이를 친히 해야 하니,
이것을 행하고 여력(餘力)『[여가(餘暇)]』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
『謹者는 行之有常也요 信者는 言之有實也라 汎은 廣也요 衆은 謂衆人이라 親은 近也요 仁은 謂仁者라 餘力은
猶言暇日이라 以는 用也라 文은 謂詩書六藝之文이라』
『○ 程子曰 爲弟子之職하고 力有餘則學文이니 不修其職而先文은 非爲己之學也니라 尹氏曰 德行은 本也요 文藝
는 末也니 窮其本末하여 知所先後면 可以入德矣리라 洪氏曰 未有餘力而學文이면 則文滅其質이요 有餘力而不學
文이면 則質勝而野니라 愚謂 力行而不學文이면 則無以考聖賢之成法하고 識事理之當然하여 而所行이 或出於私
意요 非但失之於野而已니라』
『 근(謹)이란 행실에 떳떳함이 있는 것이요, 신(信)이란 말에 성실(誠實)함이 있는 것이다. 범(汎)은 넓음이요,
중(衆)은 중인(衆人)『[여러 사람]』을 이른다. 친(親)은 가까이 하는 것이다. 인(仁)은 인자(仁者)를 이른다.
여력(餘力)은 가일(暇日)이란 말과 같다. 이(以)는 씀이다. 문(文)은 시서(詩書)와 육예(六藝)의 문(文)을 이른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제자(弟子)의 직분(職分)을 하고 힘이 남음이 있으면 글을 배우는 것이니,
그 직분을 닦지 않고 문(文)을 먼저 함은 위기(爲己)의 학문(學問)이 아니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덕행(德行)은 근본(根本)이요 문예(文藝)는 지엽(枝葉)이니,
그 본말(本末)을 궁구(窮究)하여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덕(德)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홍씨(洪氏)가 말하였다. “여력(餘力)이 있지 못한데 문(文)을 배운다면 문(文)이 그 질(質)을 멸하게 될 것이요,
여력(餘力)이 있는데도 문(文)을 배우지 않는다면 질(質)이 치우쳐서 비루(鄙陋)해질 것이다.”』
『 내가 생각건대, 역행(力行)만 하고 문(文)을 배우지 않는다면, 성현(聖賢)이 만들어 놓은 법(法)을 상고하고
사리(事理)의 당연함을 알 수가 없어서, 행하는 바가 혹 사사로운 뜻에서 나오기도 할 것이요,
단지 비루 함에 잃을 뿐만이 아닐 것이다.』
*논어 ; 학이 ; 제7장
▣ 제7장(第七章)
『子夏曰 賢賢하되 易色하며 事父母하되 能竭其力하며 事君하되 能致其身하며 與朋友交하되 言而有信이면
雖曰未學이라도 吾必謂之學矣라하리라』
『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어진이를 어질게 여기되 색(色)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하며, 부모(父母)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하며, 인군(人君)을 섬기되 능히 그 몸을 바치며, 붕우(朋友)와 더불어 사귀되 말함에 성실함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이르겠다.”』
『子夏는 孔子弟子이니 姓卜이요 名商이라 賢人之賢而易其好色之心이면 好善有誠也라 致는 猶委也니 委致其身
은 謂不有其身也라 四者는 皆人倫之大者라 而行之必盡其誠이니 學求如是而已라 故로 子夏言有能如是之人이면
苟非生質之美인댄 必其務學之至니 雖或以爲未嘗爲學이라도 我必謂之已學也라』
『○ 游氏曰 三代之學이 皆所以明人倫也니 能是四者면 則於人倫厚矣니 學之爲道何以加此리오 子夏以文學名而
其言如此하니 則古人之所謂學者를 可知矣라 故로 學而一篇은 大抵皆在於務本이니라 吳氏曰 子夏之言이 其意善
矣라 然이나 詞氣之間에 抑揚大『(太)』過하여 其流之弊가 將或至於廢學이니 必若上章夫子之言然後에 爲無弊
也니라』
『 자하(子夏)는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니, 성(姓)은 복(卜)이요, 이름은 상(商)이다.
남의 어짐을 어질게 여기되 색(色)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꾸어 한다면 선(善)을 좋아함이 성실(誠實)함이 있는
것이다. 치(致)는 위(委)와 같으니, 그 몸을 위치(委致)『[바침]』한다는 것은 그 몸을 두지 않음을 이른다.
이 네 가지는 모두 인륜(人倫)의 큰 것인데, 이것을 행함에는 반드시 그 정성(精誠)을 다해야 할 것이니,
학문(學問)은 이와 같음을 구할 뿐이다. 그러므로 자하(子夏)는 “능히 이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만일 타고난 자질
(資質)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학문에 힘쓰기를 지극히 해서일 것이니, 비록 혹 일찍이 학문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이미 배웠다고 이르겠다.”고 한 것이다.』
『 ○ 유씨(游氏)가 말하였다. “삼대(三代)의 학문(學問)은 모두 인륜(人倫)을 밝힌 것이었으니,
이 네 가지에 능하다면 인륜(人倫)에 두터우니, 배우는 도(道)가 어찌 이보다 더할 것이 있겠는가.
자하(子夏)는 문학(文學)으로 이름이 났는데도 그 말이 이와 같았으니, 그렇다면 옛사람들의 이른바 학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학이(學而)〉한 편(篇)은 대저(大抵) 모두 근본(根本)을 힘씀에 있는 것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자하(子夏)의 말은 그 뜻이 좋다. 그러나 말하는 사이에 억양(抑揚)이 너무 지나쳐서
그 흐름의 폐단이 장차 혹 학문을 폐지하는 데에 이를 수 있으니, 반드시 위 장(章)의 부자(夫子)의 말씀
『[여력(餘力)이 있으면 글을 배우라는 것]』과 같이 한 뒤에야 폐단이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논어 ; 학이 ; 제8장
▣ 제8장(第八章)
『子曰 君子不重則不威니 學則不固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가 후중(厚重)하지 않으면 위엄(威嚴)이 없으니, 학문(學問)도 견고
하지 못하다.』
『重은 厚重이요 威는 威嚴이요 固는 堅固也라 輕乎外者는 必不能堅乎內라 故로 不厚重이면 則無威嚴하여 而所學
이 亦不堅固也라』
『 중(重)은 후중(厚重)함이요, 위(威)는 위엄(威嚴)이요, 고(固)는 견고(堅固)함이다. 외모에 가벼운 자는
반드시 내면에 견고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외면이 후중(厚重)하지 못하면 위엄(威嚴)이 없어서 배우는 것도 또한
견고(堅固)하지 못한 것이다.』
『主忠信하며』
『 충신(忠信)을 주장하며,』
『人不忠信이면 則事皆無實하여 爲惡則易하고 爲善則難이라 故로 學者必以是爲主焉이니라』
『○ 程子曰 人道惟在忠信이니 不誠則無物이요 且出入無時하여 莫知其鄕者는 人心也니 若無忠信이면 豈復
有物乎아』
『 사람이 충신(忠信)하지 못하면 일이 모두 실상(實相)이 없어서 악(惡)을 하기는 쉽고, 선(善)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이것을 주장으로 삼는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의 도(道)는 오직 충신(忠信)에 있는 것이니, 성실(誠實)하지 못하면 아무런
사물(事物)이 없다. 또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어서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만일 충신(忠信)이 없다면 어찌 다시 딴 사물이 있을 수 있겠는가?”』
『無友不如己者요』
『 자기만 못한 자를 벗삼으려 하지 말고,』
『無는 毋通이니 禁止辭也라 友는 所以輔仁이니 不如己면 則無益而有損이니라』
『 무(無)는 무(毋)와 통(通)하니 금지하는 말이다. 벗은 인(仁)을 돕는 것이니, 자기만 못하다면 유익함은 없고
손해만 있을 것이다.』
『過則勿憚改니라』
『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아야 한다.”』
『勿은 亦禁止之辭라 憚은 畏難也라 自治不勇이면 則惡日長이라 故로 有過則當速改요 不可畏難而苟安也니라
程子曰 學問之道는 無他也라 知其不善이면 則速改以從善而已니라』
『○ 程子曰 君子自修之道 當如是也니라 游氏曰 君子之道는 以威重爲質하여 而學以成之요 學之道는 必以忠信爲
主하고 而以勝己者輔之라 然이나 或吝於改過면 則終無以入德하여 而賢者未必樂告以善道라 故로 以過勿憚改로
終焉이니라』
『 물(勿)도 또한 금지하는 말이다. 탄(憚)은 두려워하고 어렵게 여기는 것이다. 자신을 다스림이 용감하지 못
하면 악(惡)이 날로 자라난다. 그러므로 허물이 있으면 마땅히 속히 고쳐야 할 것이요, 두려워하고 어렵게 여겨서
구차히 편안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학문(學問)의 도(道)는 다른 것이 없다. 그 불선(不善)을 알면 속히 고쳐서
선(善)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가 자신을 닦는 도리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 유씨(游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의 도(道)는 위엄(威嚴)과 후중(厚重)함을 바탕으로 삼고, 배워서 이루어
야 할 것이요, 배우는 도(道)는 반드시 충신(忠信)으로써 주장을 삼고 자기보다 나은 자로서 돕게 하여야 할 것
이다. 그러나 혹 허물을 고치는데 인색하면 끝내 덕(德)에 들어갈 수 없어서 현자(賢者)들이 반드시 선(善)한 도
(道)로써 말해주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말씀으로써 끝을 맺은
것이다.”』
*논어 ; 학이 ; 제9장
▣ 제9장(第九章)
『曾子曰 愼終追遠이면 民德이 歸厚矣리라』
『 증자(曾子)가 말씀하였다. “종(終)『[초상(初喪)]』을 삼가고 멀리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德)이
후(厚)한데로 돌아갈 것이다.”』
『愼終者는 喪盡其禮요 追遠者는 祭盡其誠이라 民德歸厚는 謂下民化之하여 其德亦歸於厚라 蓋終者는 人之所
易忽也어늘 而能謹之하고 遠者는 人之所易忘也어늘 而能追之면 厚之道也라 故로 以此自爲면 則己之德厚하고
下民化之면 則其德亦歸於厚也니라』
『 신종(愼終)이란 초상(初喪)에 그 예(禮)를 다하는 것이요, 추원(追遠)이란 제사(祭祀)에 그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백성의 덕(德)이 후(厚)한데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민(下民)들이 교화되어서 그 덕(德)이 또한 후(厚)한데로
돌아감을 말한다. 종(終)이란 사람들이 경홀(輕忽)히 하기 쉬운 것인데 이것을 삼가고, 멀리 돌아가신 분은 사람
들이 잊기 쉬운 것인데 능히 추모(追慕)한다면 후(厚)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자신이 하면 자신의
덕(德)이 후(厚)해지고, 아래 백성들이 교화되면 그 덕(德)이 또한 후(厚)한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논어 ; 학이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子禽이 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하사 必聞其政하시나니 求之與아 抑與之與아』
『 자금(子禽)이 자공(子貢)에게 물었다. “부자(夫子)께서 이 나라에 이르셔서는 반드시 그 정사(政事)를 들으실
것이니, 구해서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주어서 되는 것입니까?”』
『子禽은 姓陳이요 名亢이라 子貢은 姓端木이요 名賜니 皆孔子弟子라 或曰 亢은 子貢弟子라하니 未知孰是라 抑은
反語辭라』
『 자금(子禽)은 성(姓)은 진(陳)이요 이름이 항(亢)이며, 자공(子貢)은 성(姓)이 단목(端木)이요 이름이 사(賜)이니,
모두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진항(陳亢)은 자공(子貢)의 제자(弟子)라 하니, 누가 옳은지는
알지 못한다. 억(抑)은 반어사(反語辭)『[말을 뒤집는 말]』이다.』
『子貢曰 夫子는 溫良恭儉讓以得之시니 夫子之求之也는 其諸異乎人之求之與인저』
『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부자(夫子)는 온순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양하여 이것을 얻으시는 것이니,
부자(夫子)의 구하심은 이반인의 구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溫은 和厚也요 良은 易直也요 恭은 莊敬也요 儉은 節制也요 讓은 謙遜也라 五者는 夫子之盛德光輝接於人者也라
其諸는 語辭也라 人은 他人也라 言夫子未嘗求之나 但其德容如是라 故로 時君敬信하여 自以其政就而問之耳요 非
若他人必求之而後得也라 聖人過化存神之妙를 未易窺測이나 然이나 卽此而觀이면 則其德盛禮恭而不願乎外를 亦
可見矣니 學者所當潛心而勉學也니라』
『○ 謝氏曰 學者觀於聖人威儀之間이면 亦可以進德矣니 若子貢이면 亦可謂善觀聖人矣요 亦可謂善言德行矣라
今去聖人이 千五百年이로되 以此五者로 想見其形容이면 尙能使人興起온 而況於親炙之者乎아 張敬夫曰 夫子至是
邦하사 必聞其政이로되 而未有能委國而授之以政者는 蓋見聖人之儀刑而樂告之者는 秉츺好德之良心也나 而私欲
害之라 是以終不能用耳니라』
『 온(溫)은 화(和)하고 후(厚)함이요, 양(良)은 마음이 평탄하고 곧은 것이요, 공(恭)은 장경(莊敬)함이요,
검(儉)은 절제(節制)함이요, 양(讓)은 겸손(謙遜)함이다. 이 다섯 가지는 부자(夫子)의 훌륭한 덕(德)이 빛나서
사람들에게 접하는 것이다. 기제(其諸)는 어조사(語助辭)이다. 인(人)은 타인(他人)이다. 부자(夫子)는 일찍이
구하지 않았으나 다만 그 덕스러운 모양이 이와 같았다. 그러므로 당시의 인군(人君)의 공경하고 믿어서 스스로 그
정사(政事)를 가지고 찾아와 물었을 뿐이요, 타인(他人)이 반드시 구한 뒤에 얻는 것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성인(聖人)이 지나가면 교화(敎化)되고 마음에 보존함이 신묘(神妙)해지는 묘(妙)를 엿보아 측량하기가 쉽지
않으나, 이것을 가지고 관찰한다면 그 덕(德)이 성(盛)하고 예(禮)가 공손(恭遜)해서 외물(外物)을 원하지 않음을
또한 볼 수 있으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잠심(潛心)하여 힘써 배워야 할 것이다.』
『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배우는 자들이 성인(聖人)의 위의(威儀)의 사이에서 관찰하면 또한 덕(德)에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공(子貢)과 같다면 또한 성인(聖人)을 잘 관찰했다고 이를 수 있을 것이요, 또한 덕행(德行)을
잘 형용(形容)하여 말했다고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성인(聖人)과의 거리가 천 5백년인데, 이 다섯 가지를
가지고 그 형용(形容)을 상상해 보면 아직도 사람으로 하여금 흥기(興起)하게 하는데, 하물며 직접 친자(親炙)
『[수업(受業)]』한 자에 있어서랴!”』
『 장경부(張敬夫)가 말하였다. “부자(夫子)께서 이 나라에 이르시어 반드시 그 정사(政事)를 들으셨으되 나라를
맡겨서 정권(政權)을 맡겨준 자가 있지 않았던 것은, 성인(聖人)의 훌륭한 모습을 보고서 말씀드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병이(秉츺)의 덕(德)을 좋아하는 양심(良心)이나 그러나 사욕(私慾)이 이것을 해친다. 이러므로 끝내 쓰지
못하였던 것이다.”』
*논어 ; 학이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子曰 父在에 觀其志요 父沒에 觀其行이니 三年을 無改於父之道라야 可謂孝矣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그『[자식]』의 뜻을 관찰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그『[자식]』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니, 3년 동안 아버지의 도(道)『[행동]』를 고치지 말아야 효(孝)라
이를 수 있는 것이다.”』
『父在엔 子不得自專이나 而志則可知요 父沒然後其行可見이라 故로 觀此면 足以知其人之善惡이라 然이나 又必
能三年無改於父之道라야 乃見其孝니 不然則所行雖善이나 亦不得爲孝矣니라』
『○ 尹氏曰 如其道면 雖終身無改라도 可也어니와 如其非道면 何待三年이리오 然則三年無改者는 孝子之心에
有所不忍故也니라 游氏曰 三年無改는 亦謂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耳니라』
『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자식이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없으나 뜻은 알 수 있고, 아버지가 별세한 뒤에야 그
행동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관찰하면 족히 그 사람의 선(善)과 악(惡)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3년 동안 아버지의 도(道)를 고치지 말아야 효성스러움을 볼 수 있는 것이니, 그렇지 않다면
행한 것이 비록 선(善)하다 하더라도 또한 효(孝)라 할 수 없는 것이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아버지가 하신 것이 만일 그 도리(道理)라면 비록 종신(終身)토록 고치지 않더라도
가(可)하거니와, 만일 그 도리(道理)가 아니라면 어찌 3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3년 동안 고치지 말라는 것은 효자(孝子)의 마음에 차마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 유씨(游氏)가 말하였다. “3년 동안 고치지 말라는 것은 또한 마땅히 고쳐야 할 입장에 있으나 아직 고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논어 ; 학이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有子曰 禮之用이 和爲貴하니 先王之道 斯爲美라 小大由之니라』
『 유자(有子)가 말하였다. “예(禮)의 용(用)은 화(和)가 귀함이 되니, 선왕(先王)의 도(道)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리하여 작은 일과 큰 일에 모두 이것을 따른 것이다.』
『禮者는 天理之節文이요 人事之儀則也라 和者는 從容不迫之意라 蓋禮之爲體雖嚴이나 然이나 皆出於自然之
理라 故로 其爲用이 必從容而不迫이라야 乃爲可貴니 先王之道此其所以爲美而小事大事無不由之也니라』
『 예(禮)는 천리(天理)의 절문(節文)이요, 인사(人事)의 의칙(儀則)이다. 화(和)는 종용(從容)하여 급박(急迫)
하지 않은 뜻이다. 예(禮)의 체(體)됨은 비록 엄하나, 그러나 모두 자연(自然)의 이치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그 용(用)됨은 반드시 종용(從容)하여 급박하지 않아야 귀할 만한 것이 된다. 선왕(先王)의 도(道)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겨 작은 일과 큰 일에 이것을 말미암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有所不行하니 知和而和요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也니라』
『 행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화(和)를 알아서 화(和)만 하고, 예(禮)로써 절제(節制)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承上文而言 如此而復有所不行者하니 以其徒知和之爲貴하여 而一於和하고 不復『(부)』以禮節之면 則亦非復
禮之本然矣니 所以流蕩忘反하여 而亦不可行也라』
『○ 程子曰 禮勝則離라 故로 禮之用이 和爲貴하니 先王之道 以斯爲美하여 而小大由之니라 樂勝則流라 故로
有所不行者하니 知和而和요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이니라 范氏曰凡禮之體는 主於敬이요 而其用則以和爲貴하니
敬者는 禮之所以立也요 和者는 樂之所由生也라 若有子면 可謂達禮樂之本矣로다 愚謂 嚴而泰, 和而節은 此理之自
然이요 禮之全體也니 毫釐有差면 則失其中正而各倚於一偏이니 其不可行이 均矣니라』
『 위 글을 이어 말하기를 “이와 같은데도 다시 행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다만 화(和)가 귀하다는 것만 알아서
화(和)에 한결같이 하고, 다시 예(禮)로써 절제(節制)하지 않는다면 또한 다시 예(禮)의 본연(本然)이 아니게 된다.
이 때문에 방탕한 데로 흐르고 돌아올 것을 잊어서 또한 행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예(禮)가 치우치면 지리(支離)해진다. 그러므로 예(禮)의 용(用)은 화(和)가
귀함이 되니, 선왕(先王)의 도(道)가 이것을 아름답게 여겨서 작은 일과 큰 일에 모두 이것을 따른 것이다.
낙(樂)이 치우치면 방탕한 데로 흐른다. 그러므로 행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화(和)만 알아서 화(和)를 하고
예(禮)로써 절제(節制)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모든 예(禮)의 체(體)는 경(敬)을 주장하고, 그 용(用)은 화(和)를 귀히 여기니,
경(敬)은 예(禮)가 확립되는 것이요, 화(和)는 낙(樂)이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다.
유자(有子)로 말하면 예악(禮樂)의 근본(根本)을 통달했다고 이를 만하다.”』
『 내가 생각건대, 엄하면서도 태연하고, 화하면서도 절제하는 것은 이것은 이치(理致)의 자연(自然)함이요,
예(禮)의 전체(全體)이니, 여기에 터럭 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그 중정(中正)함을 잃어서 각각 한쪽 편벽
(偏僻)함에 치우칠 것이니, 그 행할 수 없음이 똑같은 것이다.』
*논어 ; 학이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有子曰 信近於義면 言可復『(복)』也며 恭近於禮면 遠恥辱也며 因不失其親이면 亦可宗也니라』
『 유자(有子)가 말하였다. “약속이 의리(義理)에 가깝게 하면 그 약속한 말을 실천할 수 있으며, 공손(恭遜)함이
예(禮)에 가깝게 하면 치욕(恥辱)을 멀리할 수 있으며, 주인(主人)을 정할 때에 그 친할 만한 사람을 잃지 않으면
또한 그 사람을 끝까지 종주(宗主)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信은 約信也라 義者는 事之宜也라 復은 踐言也라 恭은 致敬也요 禮는 節文也라 因은 猶依也요 宗은 猶主也라
言約信而合其宜면 則言必可踐矣요 致恭而中其節이면 則能遠恥辱矣요 所依者不失其可親之人이면 則亦可以宗而
主之矣라 此는 言人之言行交際를 皆當謹之於始而慮其所終이니 不然이면 則因仍苟且之間에 將有不勝其自失之
悔者矣라』
『 신(信)은 약신(約信)『[약속(約束)]』이다. 의(義)는 일의 마땅함이요, 복(復)은 말을 실천하는 것이다.
공(恭)은 공경을 지극히 하는 것이요, 예(禮)는 절문(節文)이다. 인(因)은 의지함과 같은 것이요, 종(宗)은 주(主)『[주인]』와 같다. 약속을 하면서 그 마땅함에 합하게 하면 그 약속한 말을 반드시 실천할 수 있을 것이요, 공손을 지극히
하면서 그 예절(禮節)에 맞게 한다면 치욕을 멀리 할 수 있을 것이요, 의지한 자가 그 친할 만한 사람을 잃지 않았
다면 또한 그를 종(宗)으로 삼아서 주인(主人)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언행(言行)과 교제(交際)를 모두 마땅히 처음에 삼가여 그 끝날 것을 생각하여야 하니,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인습하고 구차히 하는 사이에 장차 그 스스로 지조(志操)를 잃었다는 후회를 이기지 못함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논어 ; 학이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子曰 君子는 食無求飽하며 居無求安하며 敏於事而愼於言이요 就有道而正焉이면 可謂好學也已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거처할 때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을 민첩히 하고 말을 삼가며, 도(道)가 있는 이에게 찾아가서 질정(質正)한다면 학문(學問)을 좋아
한다고 이를 만하다.”』
『不求安飽者는 志有在而不暇及也라 敏於事者는 勉其所不足이요 謹於言者는 不敢盡其所有餘也라 然이나 猶不
敢自是하고 而必就有道之人하여 以正其是非면 則可謂好學矣라 凡言道者는 皆謂事物當然之理니 人之所共由者也라』
『○ 尹氏曰 君子之學이 能是四者면 可謂篤志力行者矣라 然이나 不取正於有道면 未免有差하니 如楊墨學仁義而
差者也나 其流至於無父無君하니 謂之好學이 可乎아』
『 편안함과 배부름을 구하지 않는 것은 뜻이 다른 데 있어서 미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일에 민첩히 한다는 것은 그 부족(不足)한 것『[덕행(德行)]』을 힘쓰는 것이요, 말을 삼간다는 것은 그 유여(有餘)
한 것『[말]』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스스로 옳다 여기지 않고, 반드시 도(道)가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그 옳고 그름을 질정(質正)한다면 학문(學問)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무릇 도(道)라고 말한 것은 모두
사물(事物)의 당연(當然)한 이치(理致)이니, 사람이 누구나 함께 행하여야 할 것을 말한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의 학문(學問)이 이 네 가지에 능하다면 뜻이 독실하고 행동을 힘쓰는
자라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도(道)가 있는 이에게 질정(質正)을 취하지 않는다면 차이가 있음을 면치 못하니,
예컨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은 인의(仁義)를 배우다가 잘못된 자이나, 그 흐름의 폐단이 무부(無父)와 무군
(無君)에 이르렀으니, 학문을 좋아했다고 말하는 것이 가(可)하겠는가?”』
*논어 ; 학이 ; 제15장
▣ 제15장(第十五章)
『子貢曰 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하면 何如하니잇고 子曰 可也나 未若貧而樂『(락)』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가난하되 아첨함이 없으며, 부(富)하되 교만함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괜찮으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하면서도 예(禮)를 좋아하는 자만은 못하다.” 하셨다.』
『諂은 卑屈也요 驕는 矜肆也라 常人은 溺於貧富之中하여 而不知所以自守라 故로 必有二者之病이라 無諂無驕면
則知自守矣나 而未能超乎貧富之外也라 凡曰可者는 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라 樂則心廣體쮐하여 而忘其貧이요 好
禮則安處善, 樂循理하여 亦不自知其富矣라 子貢貨殖하니 蓋先貧後富하여 而嘗用力於自守者라 故로 以此爲問에
而夫子答之如此하시니 蓋許其所已能하고 而勉其所未至也시니라』
『 첨(諂)은 자신을 낮추고 굽히는 것이요, 교(驕)는 자랑하고 방사(放肆)한 것이다.
상인(常人)은 빈부(貧富)의 가운데에 빠져서 스스로 지킬 줄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두 가지의 병통이 있는 것이다.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다면 스스로 지킬 줄을 안 것이나,
빈부(貧富)의 밖에 초월(超越)하지는 못한 것이다. 무릇 가(可)라고 말하는 것은 겨우 가(可)해서 미진한 바가
있다는 말이다. 즐거워한다면 마음이 넓고 몸이 펴져서 그 가난함을 잊을 것이요, 예(禮)를 좋아한다면 선(善)에
처함을 편안히 여기고 이치(理致)를 따르기를 즐거워해서 또한 스스로 그 부유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자공(子貢)은 재화를 증식하였으니, 먼저는 가난하고 뒤에는 부유해서 일찍이 스스로 지조(志操)를 지키는 데에
힘을 쓴 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지고 질문하자, 부자(夫子)께서 대답하시기를 이와 같이 하셨으니,
이는 그 이미 능한 것을 허여(許與)『[인정]』하고,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을 힘쓰게 하신 것이다.』
『子貢曰 詩云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라하니 其斯之謂與인저』
『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시경(詩經)》에 ‘절단(切斷)해 놓은 듯하며, 다시 그것을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며,
다시 그것을 간 듯하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함일 것입니다.”』
『詩는 衛風淇奧之篇이라 言治骨角者는 旣切之而復磋之하고 治玉石者는 旣琢之而復磨之하니 治之已精而益求其
精也라 子貢이 自以無諂無驕爲至矣러니 聞夫子之言하고 又知義理之無窮하여 雖有得焉이나 而未可遽自足也라
故로 引是詩以明之니라』
『 시(詩)는 《시경(詩經)》〈위풍(衛風) 기욱편(淇奧篇)〉의 내용이다. 뼈와 뿔을 다스리는 자는 이미 절단한
다음 다시 그것을 갈고, 옥(玉)과 보석(寶石)을 다스리는 자는 이미 쪼아놓은 다음 다시 그것을 가니, 다스림이
이미 정(精)한데 더욱 그 정(精)함을 구함을 말한다. 자공(子貢)은 스스로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음을 지극
하다고 여겼는데, 부자(夫子)의 말씀을 듣고는 또 의리(義理)가 무궁(無窮)하여 비록 얻음이 있으나 대번에
스스로 만족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 시(詩)를 인용하여 밝힌 것이다.』
『子曰 賜也는 始可與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온여』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賜)『[자공(子貢)]』는 비로소 더불어 시(詩)를 말할 만 하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주자 올 것『[말해주지 않은 것]』을 아는구나.”』
『往者는 其所已言者요 來者는 其所未言者라』
『○ 愚按 此章問答은 其淺深高下 固不待辯說而明矣라 然이나 不切則磋無所施요 不琢則磨無所措라 故로 學者雖
不可安於小成而不求造道之極致나 亦不可¨:於虛遠而不察切己之實病也니라』
『 왕(往)이란 이미 말해준 것이요, 내(來)란 아직 말해주지 않은 것이다.』
『 ○ 내가 생각건대, 이 장(章)의 문답(問答)은 그 얕고 깊음과 높고 낮음이 진실로 변설(辯說)을 기다리지 않고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절단하지 않으면 가는 것을 베풀 데가 없고, 쪼아놓지 않으면 가는 것을 둘 데가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비록 소성(小成)에 편안해서 도(道)에 나아가는 극치(極致)를 구하지 않아서는 안될 것이나,
또한 허원(虛遠)한 데에 달려서 자기 몸에 간절한 실제 병통을 살피지 않아서도 안될 것이다.』
*논어 ; 학이 ; 제16장
▣ 제16장(第十六章)
『子曰 不患人之不己知요 患不知人也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尹氏曰 君子는 求在我者라 故로 不患人之不己知요 不知人이면 則是非邪正을 或不能辨이라 故로 以爲患也니라』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자신에게 있는 것을 구한다. 그러므로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요, 내가 남을 알지 못하면 그의 옳고 그름과 간사하고 정직함을 혹 분변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걱정으로 삼는 것이다.”』
*논어 ; 위정(爲政) 제이(第二)
▣ 위정(爲政) 제이(第二)
『凡二十四章이라』
『 모두 24장(章)이다.』
『○ 논어 ; 위정 ; 제1장+1』
『○ 논어 ; 위정 ; 제2장+2』
『○ 논어 ; 위정 ; 제3장+3』
『○ 논어 ; 위정 ; 제4장+4』
『○ 논어 ; 위정 ; 제5장+5』
『○ 논어 ; 위정 ; 제6장+6』
『○ 논어 ; 위정 ; 제7장+7』
『○ 논어 ; 위정 ; 제8장+8』
『○ 논어 ; 위정 ; 제9장+9』
『○ 논어 ; 위정 ; 제10장+10』
『○ 논어 ; 위정 ; 제11장+11』
『○ 논어 ; 위정 ; 제12장+12』
『○ 논어 ; 위정 ; 제13장+13』
『○ 논어 ; 위정 ; 제14장+14』
『○ 논어 ; 위정 ; 제15장+15』
『○ 논어 ; 위정 ; 제16장+16』
『○ 논어 ; 위정 ; 제17장+17』
『○ 논어 ; 위정 ; 제18장+18』
『○ 논어 ; 위정 ; 제19장+19』
『○ 논어 ; 위정 ; 제20장+20』
『○ 논어 ; 위정 ; 제21장+21』
『○ 논어 ; 위정 ; 제22장+22』
『○ 논어 ; 위정 ; 제23장+23』
『○ 논어 ; 위정 ; 제24장+24』
*논어 ; 위정 ; 제1장
▣ 제1장(第一章)
『子曰 爲政以德이 譬如北辰居其所어든 而衆星共『(拱)』之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정사(政事)를 덕(德)으로 하는 것은 비유하면, 북극성(北極星)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여러 별들이 그에게로 향하는 것과 같다.”』
『政之爲言은 正也니 所以正人之不正也요 德之爲言은 得也니 行道而有得於心也라 北辰은 北極이니 天之樞也라
居其所는 不動也라 共은 向也니 言衆星四面旋繞而歸向之也라 爲政以德이면 則無爲而天下歸之리니 其象如此라』
『○ 程子曰 爲政以德然後에 無爲니라 范氏曰 爲政以德이면 則不動而化하고 不言而信하고 無爲而成하여 所守者
至簡而能御煩하고 所處者至靜而能制動하고 所務者至寡而能服衆이니라』
『 정사(政事)란 말은 바로잡다의 뜻이니, 사람의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덕(德)이란 말은 얻는다의
뜻이니, 도(道)를 행하여 마음에 얻음이 있는 것이다. 북신(北辰)은 북극성(北極星)이니, 하늘의 중추(中樞)이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居其所〕』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공(共)은 향하는 것이니, 여러 별들이
사면(四面)으로 둘러싸고 북극성(北極星)을 향함을 말한다. 정사(政事)를 덕(德)으로 하면, 하는 일이 없어도
천하(天下)가 돌아오니, 그 형상이 이와 같은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정사(政事)를 덕(德)으로 한 뒤에 무위(無爲)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정사(政事)를 덕(德)으로 하면 동(動)하지 않아도 교화되고, 말하지 않아도 믿고,
하는 일이 없어도 이루어지니, 지키는 것이 지극히 간략하면서도 번거로움을 제어할 수 있으며, 처(處)하는 것이
지극히 고요하면서도 움직이는 것을 제어할 수 있으며, 일삼는 것이 지극히 적으면서도 여러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는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2장
▣ 제2장(第二章)
『子曰 詩三百을 一言以蔽之하니 曰 思無邪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詩經)》 3백 편(篇)의 뜻을 한 마디의 말로 대표할 수 있으니,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말이다.”』
『詩는 三百十一篇이니 言三百者는 擧大數也라 蔽는 猶蓋也라 思無邪는 魯頌駉篇之辭라 凡詩之言이 善者는 可以
感發人之善心하고 惡者는 可以懲創人之逸志하니 其用은 歸於使人得其情性之正而已라 然이나 其言微婉하고 且
或各因一事而發하여 求其直指全體면 則未有若此之明且盡者라 故로 夫子言詩三百篇을 而惟此一言이 足以盡蓋其
義라하시니 其示人之意亦深切矣로다』
『○ 程子曰 思無邪者는 誠也니라 范氏曰 學者는 必務知要니 知要則能守約이요 守約則足以盡博矣라 經禮三百과
曲禮三千을 亦可以一言以蔽之하니 曰 毋不敬이니라』
『 《시경(詩經)》은 3백 11편(篇)인데, 3백 편(篇)이라고 말한 것은 큰 수(數)를 든 것이다.
폐(蔽)는 개(蓋)『[덮는다]』와 같다.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思無邪〕』는 말은 〈노송구편(魯頌駒篇)〉의 내용
이다. 모든 시(詩)에서 선(善)을 말한 것은 사람의 착한 마음을 감동(感動)시켜 분발(奮發)하게 할 수 있고,
악(惡)을 말한 것은 사람의 방탕한 마음을 징계(懲戒)할 수 있으니, 그 효용(效用)은 사람들이 바른 성정(性情)을
얻는 데에 돌아갈 뿐이다. 그러나 그 말이 은미(隱微)하고 완곡(婉曲)하며, 또 각각 한 가지 일로 인하여 말한 것이
어서, 그 전체(全體)를 곧바로 가리킨 것을 찾는다면, 이 말처럼 분명하고도 뜻을 다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시경(詩經)》 3백 편(篇)에 이 한 마디 말이 족히 그 뜻을 다 덮을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니, 사람에게 보여주신 뜻이 또한 깊고 간절하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것은 성(誠)이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배우는 자들은 요점(要點)을 아는데 힘써야 할 것이니, 요점을 알면 요약(要約)함을
지킬 수 있고, 요약(要約)함을 지키면 해박(該博)한 것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경례(經禮) 3백과 곡례(曲禮) 3천
조목(條目)도 한 마디 말로써 그 뜻을 다 덮을 수 있으니,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無不敬〕』.’는 말이다.”』
*논어 ; 위정 ; 제3장
▣ 제3장(第三章)
『子曰 道之以政하고 齊之以刑이면 民免而無恥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인도(引導)하기를 법(法)으로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형벌(刑罰)로 하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免)할 수는 있으나, 부끄러워함은 없을 것이다.』
『道는 猶引導니 謂先之也라 政은 謂法制禁令也라 齊는 所以一之也니 道之而不從者를 有刑以一之也라 免而無恥는
謂苟免刑罰而無所羞愧니 蓋雖不敢爲惡이나 而爲惡之心이 未嘗亡『(무)』也라』
『 도(道)는 인도(引導)와 같으니, 솔선수범(率先垂範)함을 말한다. 정(政)은 법제(法制)와 금령(禁令)을 말한다.
제(齊)는 통일(統一)시키는 것이니, 인도해도 따르지 않는 자를 형벌을 가하여 통일시키는 것이다.
면이무치(免而無恥)는 형벌은 면하나 부끄러워하는 바가 없음을 말하니, 비록 감히 악한 짓을 하지는 못하나 악한
짓을 하려는 마음이 일찍이 없지는 못한 것이다.』
『道之以德하고 齊之以禮면 有恥且格이니라』
『 인도(引導)하기를 덕(德)으로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예(禮)로써 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함이 있고,
또 선(善)에 이르게 될 것이다.”』
『禮는 謂制度品節也라 格은 至也니 言躬行以率之면 則民固有所觀感而興起矣요 而其淺深厚薄之不一者를 又有禮
以一之면 則民恥於不善而又有以至於善也라 一說에 格은 正也니 書曰格其非心이라하니라』
『○ 愚謂 政者는 爲治之具요 刑者는 輔治之法이요 德禮則所以出治之本이며 而德又禮之本也라 此其相爲終始하여
雖不可以偏廢나 然이나 政刑은 能使民遠罪而已요 德禮之效는 則有以使民日遷善而不自知라 故로 治民者는 不可徒
恃其末이요 又當深探其本也니라』
『 예(禮)는 제도(制度)와 품절(品節)이다. 격(格)은 이르는 것이다. 몸소 행하여 솔선수범하면 백성이 진실로
보고 감동하여 흥기 하는 바가 있을 것이요, 그 얕고 깊고 두텁고 얇아 균일하지 않은 것을 예(禮)로써 통일(統一)
시킨다면, 백성들이 선(善)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또 선(善)함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일설(一說)에
격(格)은 바로잡는 것이니, 《서경(書經)》에 ‘그 그른 마음을 바로잡는다.’라고 하였다.』
『 ○ 내가 생각건대, 법제(法制)『〔政〕』는 정치(政治)를 하는 도구이고, 형벌(刑罰)은 정치(政治)를 돕는
법이며, 덕(德)과 예(禮)는 정치(政治)를 내는 근본(根本)인데, 덕(德)은 또 예(禮)의 근본이다.
이것은 서로 종(終)과 시(始)가 되어, 비록 어느 한 쪽도 폐할 수 없으나, 법제(法制)와 형벌(刑罰)은 백성으로
하여금 죄를 멀리하게 할 수 있을 뿐이며, 덕(德)과 예(禮)의 효과인즉 백성으로 하여금 날로 개과천선(改過遷善)
하면서도 자신도 알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한갓 그 지엽적인 법제(法制)와
형벌(刑罰)만을 믿어서는 안되며, 마땅히 그 근본인 덕(德)과 예(禮)를 깊이 탐구해야 할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4장
▣ 제4장(第四章)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하고』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 다섯 살에 학문(學問)에 뜻을 두었고,』
『古者에 十五而入大學이라 心之所之를 謂之志라 此所謂學은 卽大學之道也니 志乎此면 則念念在此而爲之不厭矣
리라』
『 예전에는 15세에 대학(大學)에 입학하였다. 마음이 가는 것을 지(志)라고 한다. 여기에서 말한 학문(學問)은
곧 《대학(大學)》의 도(道)이다. 여기에 뜻을 둔다면 생각하고 생각함이 여기에 있어서 하기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三十而立하고』
『 서른 살에 자립(自立)하였고,』
『有以自立이면 則守之固而無所事志矣리라』
『 스스로 섬이 있으면 지킴이 굳어져서 뜻을 두는 것을 일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四十而不惑하고』
『 마흔 살에 사리(事理)에 의혹(疑惑)하지 않았고,』
『於事物之所當然에 皆無所疑면 則知之明而無所事守矣리라』
『 사물의 당연한 것『[도리]』에 대하여 의혹 하는 바가 없다면 아는 것이 분명하여 지킴을 일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五十而知天命하고』
『 쉰 살에 천명(天命)을 알았고,』
『天命은 卽天道之流行而賦於物者니 乃事物所以當然之故也라 知此則知極其精而不惑을 又不足言矣리라』
『 천명(天命)은 천도(天道)가 유행(流行)하여 사물에 부여한 것이니, 바로 사물에 당연한 도리(道理)의 소이연
(所以然)이다. 이것을 알면 아는 것이 지극히 정밀하여 의혹하지 않는 것은 굳이 말할 것이 못될 것이다.』
『六十而耳順하고』
『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聲入心通하여 無所違逆이니 知之之至하여 不思而得也라』
『 소리가 들어오면 마음에 깨달아져서 어긋나거나 걸림이 없는 것이니, 앎이 지극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깨달아
지는 것이다.』
『七十而從心所欲하되 不踰矩호라』
『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法度)에 넘지 않았다.”』
『從은 隨也라 矩는 法度之器니 所以爲方者也라 隨其心之所欲而自不過於法度니 安而行之하여 不勉而中也니라』
『○ 程子曰 孔子는 生而知者也로되 言亦由學而至는 所以勉進後人也라 立은 能自立於斯道也요 不惑은 則無所疑
矣요 知天命은 窮理盡性也요 耳順은 所聞皆通也요 從心所欲不踰矩는 則不勉而中矣니라 又曰 孔子自言其進德之
序如此者는 聖人未必然이요 但爲學者立法하여 使之盈科而後進하고 成章而後達耳니라 胡氏曰 聖人之敎亦多術
이라 然이나 其要는 使人不失其本心而已라 欲得此心者는 惟志乎聖人所示之學하여 循其序而進焉하여 至於一疵不
存하고 萬理明盡之後면 則其日用之間에 本心瑩然하여 隨所意欲호되 莫非至理니 蓋心卽體요 欲卽用이며 體卽道요
用卽義하여 聲爲律而身爲度矣리라 又曰 聖人言此하여 一以示學者當優游涵泳이요 不可쫕等而進이며 二以示學者
當日就月將이요 不可半途而廢也니라 愚謂 聖人은 生知安行하여 固無積累之漸이나 然이나 其心에 未嘗自謂已至
此也라 是其日用之間에 必有獨覺其進而人不及知者라 故로 因其近似以自名하여 欲學者以是爲則而自勉이요 非心
實自聖而姑爲是退託也라 後凡言謙辭之屬은 意皆放此니라』
『 종(從)은 따르는 것이다. 구(矩)는 법도(法度)의 기구이니, 모난 것을 만드는 것이다. 그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저절로 법도에 넘지 않는 것은 편안히 행하여 힘쓰지 않아도 저절로 도(道)에 맞는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공자(孔子)는 나면서부터 아신 분이다. 그런데도 학문(學問)으로 말미암아 이르
렀다고 말씀하신 것은 후인(後人)을 권면하여 나아가게 하신 것이다. 입(立)은 스스로 도(道)에 서는 것이요,
불혹(不惑)은 의심하는 바가 없는 것이요, 지천명(知天命)은 이(理)를 궁구(窮究)하고 성품을 다하는 것이요,
이순(耳順)은 듣는 것을 모두 깨닫는 것이요, 마음에 하고자 하는 것을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는다『〔從心所欲
不踰距〕』는 것은 힘쓰지 않아도 도(道)에 맞는 것이다.”』
『 또 말씀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덕(德)에 나아간 순서가 이와 같다고 스스로 말씀하신 것은, 성인(聖人)이
반드시 그러한 것이 아니요, 다만 배우는 자들을 위하여 법(法)을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구덩이를 채운 뒤에 나아
가고, 문장(文章)을 이룬 뒤에 달하게 하신 것일 뿐이다.”』
『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의 가르치심은 방법이 많으나, 그 요점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심(本心)을
잃지 않게 할뿐이다. 이 본심(本心)을 얻고자 하는 자는 오직 성인(聖人)이 제시하신 배움에 뜻을 두어 그 차례를
따라 나아가야 할 것이니, 한 가지 흠도 남아있지 않고 모든 이(理)를 밝게 깨달은 뒤에 이르게 되면, 일상생활하는
사이에 본심(本心)이 밝아져서, 뜻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지극히 당연한 도리(道理) 아님이 없을 것이다.
이는 마음은 곧 체(體)요, 욕(欲)은 곧 용(用)이며, 체(體)는 곧 도(道)요, 용(用)은 곧 의(義)가 되어, 소리를 내면
음률(音律)이 되고, 몸을 움직이면 법도(法度)가 되는 것이다.”』
『 또 말하였다. “성인(聖人)이 이것을 말씀하여 한편으로는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우유(優游)하고 오래도록
무젖어야 할 것이요, 등급을 뛰어 넘어 나아가서는 안됨을 보여주셨고, 또 한편으로는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나
날이 나아가고 다달이 진보하여야 할 것이요, 중도에 폐지해서는 안됨을 보여주신 것이다.”』
『 내가 생각건대, 성인(聖人)은 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행하여, 진실로 차츰차츰 쌓아나가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마음에 일찍이 스스로 이미 이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일상생활하는 사이에 반드시
홀로 그 진도를 깨달았으나, 다른 사람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근사한 것을 인하여
스스로 이름하여, 배우는 자들이 이것으로 법칙을 삼아 스스로 힘쓰게 하고자 하신 것이요, 마음속으로는 실제로
스스로 성인(聖人)이라고 생각하면서 짐짓 이렇게 겸사(謙辭)하신 것은 아니다. 뒤에 모든 겸사(謙辭)를 말씀한
등속(等屬)은 모두 이와 같다.』
*논어 ; 위정 ; 제5장
▣ 제5장(第五章)
『孟懿子問孝한대 子曰 無違니라』
『 맹의자(孟懿子)가 효(孝)를 묻자, 공자(孔子)께서 “어김이 없어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孟懿子는 魯大夫仲孫氏니 名何忌라 無違는 謂不背於理라』
『 맹의자(孟懿子)는 노(魯)나라 대부(大夫) 중손씨(仲孫氏)이니, 이름은 하기(何忌)이다. 무위(無違)란 도리(道理)
에 위배되지 않음을 말한다.』
『樊遲御러니 子告之曰 孟孫이 問孝於我어늘 我對曰 無韋라호라』
『 번지(樊遲)가 수레를 몰고 있었는데,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맹손씨(孟孫氏)가 나에게 효(孝)를 묻기에
나는 어김이 없으라고 대답하였다.”』
『樊遲는 孔子弟子니 名須라 御는 爲孔子御車也라 孟孫은 卽仲孫也라 夫子以懿子未達而不能問하니 恐其失指而以
從親之令爲孝라 故로 語樊遲以發之시니라』
『 번지(樊遲)는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니, 이름은 수(須)이다. 어(御)는 공자(孔子)를 위하여 수레를 모는
것이다. 부자(夫子)는 맹의자(孟懿子)가 이해하지 못하여 더 묻지 못하였으니, 그 본뜻을 잃고 부모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효(孝)로 여길까 염려하셨다. 그러므로 번지(樊遲)에게 말씀하여 그 뜻을 발명(發明)하신 것이다.』
『樊遲曰 何謂也니잇고 子曰 生事之以禮하며 死葬之以禮하며 祭之以禮니라』
『 번지(樊遲)가 “무엇을 이르신 것입니까?” 하고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살아 계시면 예(禮)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禮)로 장사지내고, 예(禮)로 제사지내는 것이다.”』
『生事葬祭는 事親之始終具矣라 禮는 卽理之節文也라 人之事親을 自始至終에 一於禮而不苟면 其尊親也至矣라
是時에 三家僭禮라 故로 夫子以是警之라 然이나 語意渾然하며 又若不專爲三家發者하니 所以爲聖人之言也라』
『○ 胡氏曰 人之欲孝其親은 心雖無窮이나 而分則有限이니 得爲而不爲와 與不得爲而爲之는 均於不孝라 所謂以
禮者는 爲其所得爲者而已矣니라』
『 살아 계실 적에 섬기고, 돌아가셨을 적에 장사지내고, 제사지내는 것은, 부모를 섬기는 처음과 끝이 갖추어진
것이다. 예(禮)는 곧 이(理)의 절문(節文)이다. 사람이 부모를 섬김에 처음부터 끝까지 예(禮)대로 한결같이 하고
구차히 하지 않는다면, 부모를 높임이 지극한 것이다. 이 당시 삼가(三家)들을 예(禮)를 참람하였으므로 부자(夫子)
께서 이것으로써 경계하신 것이다. 그러나 말씀한 뜻이 모가 나지 않고 원만하며, 또 오로지 삼가(三家)만을 위하여
말씀하시지 않은 것 같으니, 이 때문에 성인(聖人)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 ○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孝道)하고자 함은 마음은 비록 끝이 없으나 분수(分數)는
한계가 있으니, 분수에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과, 분수에 할 수 없는데도 하는 것은 똑같이 불효(不孝)이다.
이른바 예(禮)로써 한다는 것은 자기 분수에 할 수 있는 것을 할뿐인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6장
▣ 제6장(第六章)
『孟武伯問孝한대 子曰 父母는 唯其疾之憂시니라』
『 맹무백(孟武伯)이 효(孝)를 묻자,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하신다.”』
『武伯은 懿子之子니 名³.라 言父母愛子之心이 無所不至나 唯恐其有疾病하여 常以爲憂也라 人子體此而以父母之
心爲心이면 則凡所以守其身者 自不容於不謹矣니 豈不可以爲孝乎아 舊說에 人子能使父母로 不以其陷於不義爲憂
하고 而獨以其疾爲憂라야 乃可爲孝라하니 亦通이니라』
『 맹무백(孟武伯)은 맹의자(孟懿子)의 아들이니, 이름은 체(³.)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르지 않는
데가 없으나 오직 자식에게 질병이 있을까 염려하여 항상 근심함을 말한 것이다. 자식이 이것을 본받아『〔體〕』
부모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모든 그 몸을 지키는 것이 스스로 삼가지 않음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효(孝)가 되지 않겠는가. 옛 주석『〔舊說〕』에 ‘자식이 부모로 하여금 자식이 불의(不義)에 빠지는 것을 근심
하게 하지 않고, 오직 자식의 질병을 근심하게 하여야 효(孝)가 될 수 있다.’하였으니, 이 역시 통한다.』
*논어 ; 위정 ; 제7장
▣ 제7장(第七章)
『子游問孝한대 子曰 今之孝者는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하여도 皆能有養이니 不敬이면 何以別乎리오』
『 자유(子游)가 효(孝)를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의 효(孝)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봉양
한다고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견마(犬馬)에게도 모두 길러줌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子游는 孔子弟子니 姓言이요 名偃이라 養은 謂飮食供奉也라 犬馬는 待人而食하니 亦若養然이라 言人畜犬馬에도
皆能有以養之하니 若能養其親而敬不至면 則與養犬馬者何異리오 甚言不敬之罪니 所以深警之也시니라』
『○ 胡氏曰 世俗事親에 能養足矣라하여 狎恩恃愛하여 而不知其漸流於不敬이면 則非小失也라 子游는 聖門高弟니
未必至此로되 聖人直恐其愛踰於敬이라 故로 以是深警發之也시니라』
『 자유(子游)는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니, 성(姓)은 언(言)이요, 이름은 언(偃)이다.
양(養)은 음식으로 공양함을 말한다. 견마(犬馬)도 사람에게 의뢰하여 먹으니, 또한 봉양하는 것과 흡사하다.
“사람이 견마(犬馬)를 기를 적에도 모두 음식으로 길러줌이 있는 것이니, 만약 그 부모를 봉양만 하고 공경함이
지극하지 않으면, 견마(犬馬)를 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불경(不敬)의 죄를
심히 말씀하신 것이니, 깊이 경계하신 것이다.』
『 ○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세속에서 부모를 섬김에 있어 봉양만 잘하면 족하다고 여겨 은혜에 친압(親狎)하고
사랑을 믿어서, 점점 불경(不敬)으로 흐르면 작은 잘못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자유(子游)는 성문(聖門)의 고제
(高弟)이니, 반드시 이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나, 성인(聖人)은 다만 그 사랑이 공경보다 지나칠까 두려워하셨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깊이 경계하여 일깨우신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8장
▣ 제8장(第八章)
『子夏問孝한대 子曰 色難이니 有事어든 弟子服其勞하고 有酒食『(사)』어든 先生饌이 曾是以爲孝乎아』
『 자하(子夏)가 효(孝)를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우니,
부형(父兄)에게 일이 있으면 제자(弟子)가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부형(父兄)『[선생(先生)]』
을 잡숫게 하는 것을 일찍이 효(孝)라고 할 수 있겠는가?”』
『色難은 謂事親之際에 惟色爲難也라 食는 飯也라 先生은 父兄也라 饌은 飮食之也라 曾은 猶嘗也라 蓋孝子之有
深愛者는 必有和氣하고 有和氣者는 必有愉色하고 有愉色者는 必有婉容이라 故로 事親之際에 惟色爲難耳니 服勞
奉養은 未足爲孝也라 舊說에 承順父母之色이 爲難이라하니 亦通이니라』
『○ 程子曰 告懿子는 告衆人者也요 告武伯者는 以其人多可憂之事요 子游는 能養而或失於敬이요 子夏는 能直義
而或少溫潤之色이니 各因其材之高下와 與其所失而告之라 故로 不同也니라』
『 색난(色難)은 부모를 섬길 때에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움을 말한다. 사(食)는 밥이다.
선생(先生)은 부형(父兄)이다. 찬(饌)은 마시게 하고 먹게 하는 것이다. 증(曾)은 일찍이『〔嘗〕』와 같다.
효자(孝子)로서 깊은 사랑이 있는 자는 반드시 화기(和氣)가 있고, 화기가 있는 자는 반드시 유순(柔順)한 빛이
있고, 유순한 빛이 있는 자는 반드시 공순(恭順)한 용모(容貌)가 있다. 그러므로 부모를 섬길 때에 오직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움이 될 뿐이요, 수고로운 일을 대신하고 음식을 봉양하는 것은 효(孝)가 될 수 없는 것
이다. 옛 주석에 “부모의 얼굴빛을 받들어 순종(順從)하는 것이 어렵다.” 하였으니, 이 역시 통한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맹의자(孟懿子)에게 말씀한 것은 일반인들에게 말씀한 것이요, 맹무백(孟武伯)
에게 말씀한 것은 그 사람됨이 근심할 만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요, 자유(子游)는 봉양은 잘하나, 혹 공경에 잘못
할까 염려해서였고, 자하(子夏)는 강직하고 의로우나 온화한 빛이 혹 부족하였으니, 각각 그 재질의 높고 낮음과
그의 결함에 따라서 말씀해 주셨으므로 말씀이 똑같지 않은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9장
▣ 제9장(第九章)
『子曰 吾與回言終日에 不違如愚러니 退而省其私한대 亦足以發하나니 回也不愚로다』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회(回)와 더불어 온종일 이야기를 하였으나,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인 듯하더니, 물러간 뒤에 그 사생활(私生活)을 살펴봄에 충분히 발명(發明)하니, 회(回)는 어리석지 않구나!”』
『回는 孔子弟子니 姓顔이요 字子淵이라 不違者는 意不相背하여 有聽受而無問難也라 私는 謂燕居獨處요 非進見
請問之時라 發은 謂發明所言之理라 愚聞之師호니 曰 顔子深潛純粹하여 其於聖人에 體段已具하니 其聞夫子之言에
默識心融하여 觸處洞然하여 自有條理라 故로 終日言에 但見其不違如愚人而已러니 及退省其私하니 則見其日用動
靜語默之間에 皆足以發明夫子之道하여 坦然由之而無疑하니 然後知其不愚也시니라』
『 회(回)는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니, 성(姓)은 안(顔)이요, 자(字)는 자연(子淵)이다.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의견이 서로 어긋나지 않아 듣기만 하고 질문과 논란이 없는 것이다. 사(私)는 한가히 혼자 거처함을 이름이요,
나아가 뵙고 묻는 때가 아니다. 발(發)은 말한 바의 이치를 발명(發明)함을 이른다.』
『 내가 스승에게 들으니, 말씀하기를 “안자(顔子)는 자품이 침잠(沈潛)하고 순수(純粹)하여, 성인(聖人)
『[공자(孔子)]』에 대해서 체단(體段)을 이미 갖추었다. 부자(夫子)의 말씀을 들으면 묵묵히 이해되고 마음으로
깨달아 닿는 곳마다 막힘이 없어 환하여, 스스로 조리(條理)가 있었다. 그러므로 종일토록 말을 해도 다만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과 같음을 볼뿐이었는데, 물러간 뒤에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니, 일상생활하며 동정(動靜)하고
어묵(語默)하는 사이에 다 족히 부자(夫子)의 도(道)를 발명하여 평탄히 행해서 의심함이 없었다. 그런 뒤에야
그가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아신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子曰 視其所以하며』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 하는 것을 보며』
『以는 爲也라 爲善者爲君子요 爲惡者爲小人이라』
『 이(以)는 하는 것이니, 선(善)을 하는 자는 군자(君子)가 되고, 악(惡)을 하는 자는 소인(小人)이 된다.』
『觀其所由하며』
『 그 이유를 살피며,』
『觀은 比視爲詳矣라 由는 從也라 事雖爲善이나 而意之所從來者有未善焉이면 則亦不得爲君子矣라 或曰 由는
行也니 謂所以行其所爲者也라』
『 관(觀)은 시(視)에 비하여 더 자세한 것이다. 유(由)는 따르는 것이다. 일은 비록 선(善)한 짓을 한다 하더라도
마음의 소종래(所從來)『[소유래(所由來): 그 원인]』가 선(善)하지 못함이 있다면, 또한 군자(君子)가 될 수 없다.』
『 혹자가 말하였다. “유(由)는 행하는 것이니, 그 하는 바를 실행하는 것이다.”』
『察其所安이면』
『 그 편안히 여김을 살펴본다면,』
『察은 則又加詳矣라 安은 所樂也라 所由雖善이나 而心之所樂者不在於是면 則亦僞耳니 豈能久而不變哉리오』
『 찰(察)은 또 더 자세한 것이다. 안(安)은 즐거워하는 것이다. 소유래(所由來)가 비록 선(善)하나, 마음에 즐기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다면, 또한 거짓일 뿐이니, 어찌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人焉첦哉리오 人焉첦哉리오』
『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焉은 何也요 첦는 匿也니 重言以深明之라』
『○ 程子曰 在己者를 能知言窮理면 則能以此察人을 如聖人也니라』
『 언(焉)은 어찌이다. 수(첦)는 숨김이니, 거듭 말씀하여 깊이 밝히신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자신에게 있는 것『〔眞理〕』을 지언(知言)하고 궁리(窮理)한다면 이것으로
사람을 관찰하기를 성인(聖人)과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子曰 溫故而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옛 것을 잊지 않고, 새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溫은 尋繹也라 故者는 舊所聞이요 新者는 今所得이라 言學能時習舊聞而每有新得이면 則所學在我而其應不窮
이라 故로 可以爲人師라 若夫記問之學은 則無得於心而所知有限이라 故로 學記에 譏其不足以爲人師라하니 正與
此意로 互相發也니라』
『 온(溫)은 찾고 연역(演繹)하는 것이다. 고(故)는 예전에 들은 것이요, 신(新)은 지금에 새로 터득한 것이다.
배움에 있어 예전에 들은 것을 때때로 익히고, 항상 새로 터득함이 있으면, 배운 것이 나에게 있어서 그 응용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암기나 하고 묻기나 하는 학문이라면, 마음에 터득함이 없어서
아는 것이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학기(學記)〉에 ‘기문(記問)의 배움은 스승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하였으니,
바로 이 뜻과 서로 발명된다.』
*논어 ; 위정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子曰 君子는 不器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그릇처럼 국환 되지 않는다.”』
『器者는 各適其用而不能相通이라 成德之士는 體無不具라 故로 用無不周하니 非特爲一才一藝而已니라』
『 기(器)는 각각 그 용도에만 적합하여 서로 통용될 수 없는 것이다. 성덕(成德)한 선비는 체(體)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으므로, 용(用)이 두루 하지 않음이 없으니, 다만 한 재주, 한 기예(技藝)일 뿐만이 아니다.』
*논어 ; 위정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子貢問君子한대 子曰 先行其言이요 而後從之니라』
『 자공(子貢)이 군자(君子)에 대해서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그 말한 것을 실행하고,
그 뒤에 말이 <행동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周氏曰 先行其言者는 行之於未言之前이요 而後從之者는 言之於旣行之後라』
『○ 范氏曰 子貢之患은 非言之艱이요 而行之艱이라 故로 告之以此하시니라』
『 주씨(周氏)가 말하였다. “선행기언(先行其言)은 말하기 전에 실행하는 것이요, 이후종지(而後從之)는 이미
실행한 뒤에 말하는 것이다.”』
『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자공(子貢)의 병통은 말함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子曰 君子는 周而不比하고 小人은 比而不周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두루 사랑하고 편당(偏黨)하지 않으며, 소인(小人)은 편당(偏黨)
하고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
『周는 普킂也요 比는 偏黨也니 皆與人親厚之意로되 但周公而比私爾라』
『○ 君子小人所爲不同은 如陰陽晝夜하여 每每相反이라 然이나 究其所以分이면 則在公私之際毫釐之差耳라 故로
聖人이 於周比和同驕泰之屬에 常對擧而互言之하시니 欲學者察乎兩間而審其取舍之幾也시니라』
『 주(周)는 널리『〔普킂〕』하는 것이며, 비(比)는 편당(偏黨)하는 것이니, 모두 사람과 친하고 두터이 하는
뜻이나, 주(周)는 공(公)이고, 비(比)는 사(私)이다.』
『 ○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소행(所行)이 같지 않음은 음양(陰陽)과 주야(晝夜)와 같아 매양 상반(相反)된다.
그러나 그 나뉘어지는 까닭을 연구해 보면 공(公)과 사(私)의 사이로 터럭 끝 만한 차이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주(周)와 비(比), 화(和)와 동(同), 교(驕)와 태(泰)의 등속에 대해 항상 대(對)로 들어 서로
말씀하셨으니, 이는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이 두 가지 사이를 관찰하여 취사선택(取捨選擇)의 기미를 살피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15장
▣ 제15장(第十五章)
『子曰 學而不思則罔하고 思而不學則殆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不求諸心이라 故로 昏而無得이요 不習其事라 故로 危而不安이라』
『○ 程子曰 博學審問愼思明辨篤行五者에 廢其一이면 非學也니라』
『 마음에 구하지 않으므로 어두워서 얻음이 없고, 그 일을 익히지 않으므로 위태로워 불안한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박학(博學)•심문(審問)•신사(愼思)•명변(明辨)•독행(篤行), 이 다섯 가지 중에
하나만 폐지하여도 학문(學問)이 아니다.”』
*논어 ; 위정 ; 제16장
▣ 제16장(第十六章)
『子曰 攻乎異端이면 斯害也已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이단(異端)을 전공(專攻)하면 해(害)가 될 뿐이다.”』
『范氏曰 攻은 專治也라 故로 治木石金玉之工曰攻이라 異端은 非聖人之道而別爲一端이니 如楊墨이 是也라 其
率天下하여 至於無父無君하니 專治而欲精之면 爲害甚矣라』
『○ 程子曰 佛氏之言은 比之楊墨하면 尤爲近理하니 所以其害爲尤甚이라 學者는 當如淫聲美色以遠之니 不爾면
則´5´5然入於其中矣리라』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공(攻)은 전적(專的)으로 다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와 돌, 금(金)과 옥(玉)을
다루는 공인(工人)을 공(攻)이라 한다. 이단(異端)은 성인(聖人)의 도(道)가 아니고, 별도로 일단(一端)이 된
것이니, 양주(楊朱)와 묵적(墨翟) 같은 것이 이것이다. 이들은 천하(天下)를 거느려 무부(無父)•무군(無君)의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전적으로 연구하여 정밀히 알고자 하면, 해됨이 심한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불씨(佛氏)의 말은 양주(楊朱)•묵적(墨翟)에 비하면 더욱 근리(近理)하니,
이 때문에 그 해됨이 더욱 심하다.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음탕한 음악(音樂)과 아름다운 여색(女色)처럼 여겨
멀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츰차츰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말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17장
▣ 제17장(第十七章)
『子曰 由와 誨女知之乎인저 知之爲知之요 不知爲不知 是知也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유(由)야! 내 너에게 아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이것이 아는 것이다.”』
『由는 孔子弟子니 姓仲이요 字子路라 子路好勇하니 蓋有强其所不知以爲知者라 故로 夫子告之曰 我敎女以知之
之道乎인저 但所知者則以爲知요 所不知者則以爲不知니 如此則雖或不能盡知라도 而無自欺之蔽요 亦不害其爲
知矣라 況由此而求之면 又有可知之理乎아』
『 유(由)는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니, 성(姓)은 중(仲)이고, 자(字)는 자로(子路)이다. 자로(子路)는 용맹
(勇猛)을 좋아하였으니, 아마도 알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우겨서 안다고 여기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너에게 아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다만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라.” 이와 같이 하면 비록 혹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속이는 가리움이 없을 것이요, 또한 그 앎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알기를 구하면 또
알 수 있는 이치가 있음에랴.』
*논어 ; 위정 ; 제18장
▣ 제18장(第十八章)
『子張學干祿한대』
『 자장(子張)이 녹(祿)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였다.』
『子張은 孔子弟子니 姓컉孫이요 名師라 干은 求也요 祿은 仕者之奉『(俸)』也라』
『 자장(子張)은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니, 성(姓)은 전손(컉孫)이요, 이름은 사(師)이다. 간(干)은 구하는
것이다. 녹(祿)은 벼슬하는 자의 녹봉(祿俸)이다.』
『子曰 多聞闕疑요 愼言其餘則寡尤며 多見闕殆요 愼行其餘則寡悔니 言寡尤하며 行寡悔면 祿在其中矣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듣고서 의심나는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어
지며, 많이 보고서 위태로운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행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어질 것이니, 말에
허물이 적으며 행실에 후회할 일이 적으면 녹(祿)이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呂氏曰 疑者는 所未信이요 殆者는 所未安이라 程子曰 尤는 罪自外至者也요 悔는 理自內出者也니라 愚謂 多聞
見者는 學之博이요 闕疑殆者는 擇之精이며 謹言行者는 守之約이라 凡言在其中者는 皆不求而自至之辭니 言此以
救子張之失而進之也시니라』
『○ 程子曰 修天爵則人爵至하니 君子言行能謹은 得祿之道也니라 子張學干祿이라 故로 告之以此하여 使定其心而
不爲利祿動하시니 若顔閔則無此問矣리라 或疑如此라도 亦有不得祿者한대 孔子蓋曰 耕也에 ¥#在其中이라하시니
惟理可爲者를 爲之而已矣니라』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의(疑)는 아직 자신할 수 없는 것이요, 태(殆)는 불안한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우(尤)는 죄가 밖으로부터 이르는 것이요, 회(悔)는 이치가 안『[마음속]』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 내가 생각건대, 듣고 보는 것을 많이 하는 것은 배움이 넓은 것이요, 의심나는 것과 위태로운 것을 빼버리는
것은 가리기를 정밀히 하는 것이요, 말과 행동을 삼가는 것은 지키기를 요약하는 것이다. 무릇 그 가운데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른다는 말이다. 이것을 말해서 자장(子張)의 단점을 바로잡아 나아가게
하신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천작(天爵)을 닦으면, 인작(人爵)이 이르는 것이니, 군자(君子)가 언행(言行)을
삼가는 것은 녹(祿)을 얻는 방법이다. 자장(子張)이 녹(祿)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려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말씀
하여 그 마음을 안정시켜 이록(利祿)에 동요되지 않게 하신 것이다. 안자(顔子)와 민자건(閔子騫)이라면 이런
질문이 없었을 것이다. 혹자는 이와 같이 하고도 녹(祿)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음을 의심한다. 그러나 공자(孔子)
께서 ‘농사를 지어도 굶주림이 그 가운데에 있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오직 이치상 할 만한 것을 할 따름이다.”』
*논어 ; 위정 ; 제19장
▣ 제19장(第十九章)
『哀公問曰 何爲則民服이니잇고 孔子對曰 『擧直錯諸枉주:거직조제왕』이면 則民服하고 擧枉錯諸直이면 則民
不服이니이다』
『 애공(哀公)이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들어
쓰고, 모든 굽은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들이 복종하며, 굽은 사람을 들어 쓰고, 모든 정직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
들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哀公은 魯君이니 名蔣이라 凡君問에 皆稱孔子對曰者는 尊君也라 錯는 捨置也라 諸는 衆也라 程子曰 擧錯得宜
면 則人心服이니라』
『○ 謝氏曰 好直而惡枉은 天下之至情也니 順之則服이요 逆之則去는 必然之理也라 然이나 或無道以照之면 則以
直爲枉하고 以枉爲直者多矣라 是以로 君子는 大居敬而貴窮理也니라』
『 애공(哀公)은 노(魯)나라 임금이니, 이름은 장(蔣)이다. 대체로 임금의 물음에 모두 ‘공자대왈(孔子對曰)’이라고
쓴 것은 임금을 높인 것이다. 조(錯)는 버려두는 것이다. 제(諸)는 모두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들어 쓰고 버려두는 것이 마땅함을 얻으면 인심(人心)이 복종한다.”』
『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정직한 것을 좋아하고 굽은 것을 미워함은 천하(天下)의 지극한 인정이다.
이것을 순히 하면 백성들이 복종하고, 거스르면 백성들이 배반함은 필연적인 이치이다. 그러나 혹 도(道)로써
밝히지 않는다면, 정직한 사람을 굽었다 하고, 굽은 사람을 정직하다고 여기는 자가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거경(居敬)을 크게 여기고 궁리(窮理)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20장
▣ 제20장(第二十章)
『季康子問 使民敬忠以勸하되 如之何잇고 子曰 臨之以莊則敬하고 孝慈則忠하고 擧善而敎不能則勸이니라』
『 계강자(季康子)가 “백성으로 하여금 윗사람을 공경(恭敬)하고 충성(忠誠)하게 하며, 이것을 권면(勸勉)하게
하려는데,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대하기를 장엄(莊嚴)하게 하면 백성
들이 공경(恭敬)하고, 효도(孝道)하고 사랑하면 백성들이 충성(忠誠)하고, 이것을 잘하는 자를 들어 쓰고 이것을
잘못하는 자를 가르치면 권면(勸勉)될 것이다.”』
『季康子는 魯大夫季孫氏니 名肥라 莊은 謂容貌端嚴也라 臨民以莊이면 則民敬於己하고 孝於親, 慈於衆이면 則民
忠於己하고 善者擧之而不能者敎之면 則民有所勸而樂於爲善이라』
『○ 張敬夫曰 此皆在我所當爲요 非爲欲使民敬忠以勸而爲之也라 然이나 能如是면 則其應이 蓋有不期然而然者矣
니라』
『 계강자(季康子)는 노(魯)나라 대부(大夫) 계손씨(季孫氏)이니, 이름은 비(肥)이다. 장(莊)은 용모가 단정하고
엄숙한 것이다. 백성에게 대하기를 장엄하게 하면 백성들이 자신『[윗사람]』을 공경(恭敬)하고, 부모에게 효(孝)
하고 무리를 사랑하면 백성이 자신에게 충성(忠誠)하며, 이것을 잘하는 자를 등용하고 이것을 잘못하는 자를 가르
치면 백성이 권면(勸勉)되는 바가 있어 선(善)을 하기를 즐거워 할 것이다.』
『 ○ 장경부(張敬夫)가 말하였다. “이것은 모두 자신에 있어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이요,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공경(恭敬)하고 충성(忠誠)하게 하며, 권면(勸勉)하게 하고자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하면 그 감응이 그러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됨이 있는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21장
▣ 제21장(第二十一章)
『或謂孔子曰 子는 奚不爲政이시잇고』
『 혹자가 공자(孔子)에게 이르기를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정사(政事)를 하지 않으십니까?” 하자,』
『定公初年에 孔子不仕라 故로 或人疑其不爲政也라』
『 정공(定公) 즉위 초년에 공자(孔子)께서 벼슬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혹자가 정사를 하지 않는다고 의아해
한 것이다.』
『子曰 『書주:서』云孝乎인저 惟孝하며 友于兄弟하여 施於有政이라하니 是亦爲政이니 奚其爲爲政이리오』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서경(書經)》에 효(孝)에 대하여 말하였다. ‘효(孝)하며 형제간(兄弟間)에
우애(友愛)하여 정사(政事)에 베푼다.’고 하였으니, 이 또한 정사(政事)를 하는 것이니, 어찌하여 벼슬해서 정사
(政事)하는 것만이 정사(政事)이겠는가?”』
『書는 周書君陳篇이라 書云孝乎者는 言書之言孝如此也라 善兄弟曰友라 書言 君陳이 能孝於親하고 友於兄弟하며
又能推廣此心하여 以爲一家之政이라하니 孔子引之하여 言如此면 則是亦爲政矣니 何必居位라야 乃爲爲政乎아 蓋
孔子之不仕를 有難以語或人者라 故로 託此以告之하시니 要之至理亦不外是니라』
『 《서경(書經)》은 〈주서(周書) 군진편(君陳篇)〉이다. 서운효호(書云孝乎)라는 것은 《서경(書經)》에 효도
(孝道)를 말한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형제간에게 잘하는 것이 우애(友愛)이다.
《서경(書經)》에 “군진(君陳)이 어버이에게 효(孝)하고 형제간에 우애(友愛)하며, 또 이 마음을 미루어 넓혀서
한 집안의 정사(政事)를 하였다.”고 말하였다. 공자(孔子)께서 이를 인용하고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하면 이
또한 정사(政事)를 하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지위에 있어야만 정사(政事)를 함이 되겠는가?”라고 하신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벼슬하지 않으신 것을 혹자에게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것인데, 요컨대 지극한 이치는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논어 ; 위정 ; 제22장
▣ 제22장(第二十二章)
『子曰 人而無信이면 不知其可也로라 大車無혲하고 小車無횖이면 其何以行之哉리오』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서 신(信)『[성실성]』이 없으면, 그 가(可)함을 알지 못하겠다.
큰 수레에 수레채마구리가 없고, 작은 수레에 멍에막이가 없으면, 그 어떻게 길을 갈 수 있겠는가”』
『大車는 謂平地任載之車라 혲는 轅端橫木이니 縛Â2以駕牛者라 小車는 謂田車, 兵車, 乘車라 횖은 轅端上曲이니
鉤衡以駕馬者라 車無此二者면 則不可以行이니 人而無信이면 亦猶是也라』
『 대거(大車)는 평지에서 짐을 싣는 수레를 이른다. 예(혲)는 멍에 끝에 가로지른 나무이니, 멍에를 묶어서 소에게
메우는 것이다. 소거(小車)는 전거(田車)와 병거(兵車), 승거(乘車)이다. 월(횖)은 멍에 끝에 위로 구부러진 것이니,
가로 댄 나무에 멍에를 걸어서 말에 메우는 것이다. 수레에 이 두 가지가 없으면 갈 수가 없으니,
사람으로서 신(信)이 없으면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논어 ; 위정 ; 제23장
▣ 제23장(第二十三章)
『子張問 十世可知也잇가』
『 자장(子張)이 “열 왕조(王朝) 뒤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陸氏曰 也는 一作乎라하니라 王者易姓受命이 爲一世라 子張問 自此以後十世之事를 可前知乎잇가』
『 육씨(陸氏)가 말하였다. “야(也)는 일본(一本)에 호(乎)로 되어 있다.” 왕자(王者)가 성(姓)을 바꾸어 천명(天命)
을 받는 것을 일세(一世)라 한다. 자장(子張)이 “지금으로부터 10세(世) 뒤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습니까?” 하고
물은 것이다.』
『子曰 殷因於夏禮하니 所損益을 可知也며 周因於殷禮하니 所損益을 可知也니 其或繼周者면 雖百世라도 可知也
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은(殷)나라는 하(夏)나라의 예(禮)를 인습(因襲)하였으니,
손익(損益)『[가감(加減)]』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주(周)나라는 은(殷)나라의 예(禮)를 인습(因襲)하였으니,
손익(損益)한 것을 알 수 있다. 혹시라도 주(周)나라를 잇는 자가 있다면 비록 백세(百世) 뒤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馬氏曰 所因은 謂三綱五常이요 所損益은 謂文質三統이라 愚按 三綱은 謂君爲臣綱이요 父爲子綱이요 夫爲妻綱
이며 五常은 謂仁義禮智信이라 文質은 謂夏尙忠, 商尙質, 周尙文이요 三統은 謂夏正建寅하니 爲人統이요 商正建丑
하니 爲地統이요 周正建子하니 爲天統이라 三綱五常은 禮之大體니 三代相繼하여 皆因之而不能變이요 其所損益은
不過文章制度小過不及之間이어늘 而其已然之迹을 今皆可見하니 則自今以往으로 或有繼周而王者면 雖百世之遠
이라도 所因所革이 亦不過此라 豈但十世而已乎아 聖人所以知來者蓋如此시니 非若後世讖緯術數之學也니라』
『○ 胡氏曰 子張之問은 蓋欲知來어늘 而聖人이 言其旣往者以明之也라 夫自修身으로 以至於爲天下에 不可一日而
無禮니 天敍天秩은 人所共由니 禮之本也라 商不能改乎夏하고 周不能改乎商이니 所謂天地之常經也요 若乃制度文爲
는 或太過則當損하고 或不足則當益하여 益之損之를 與時宜之요 而所因者不壞하니 是古今之通義也라 因往推來면
雖百世之遠이라도 不過如此而已矣니라』
『 마씨(馬氏)가 말하였다. “인습(因襲)한 것은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이름이요,
손익(損益)한 것은 문(文)•질(質)과 삼통(三統)을 이른다.”』
『 내가 생각건대, 삼강(三綱)은,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고, 아비는 자식의 벼리가 되고,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됨을 이른다. 오상(五常)은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을 이른다. 문(文)•질(質)은 하(夏)나라는 충(忠)을
숭상하고, 상(商)나라는 질(質)을 숭상하고, 주(周)나라는 문(文)을 숭상한 것을 이른다.
삼통(三統)은 하(夏)나라의 정월(正月)은 인월(寅月)로 하였으니 인통(人統)이 되고, 상(商)나라의 정월(正月)은
축월(丑月)로 하였으니 지통(地統)이 되고, 주(周)나라의 정월(正月)은 자월(子月)로 하였으니 천통(天統)이 됨을
이른다.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은 예(禮)의 대체(大體)이니, 삼대(三代)가 서로 계승하여 모두 그대로 인습(因襲)
하고 변경하지 않았으며, 손익(損益)한 것은 문장(文章)과 제도(制度)상에 약간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한 것에
불과할 따름이었는데, 이미 그러한 자취를 이제 다 볼 수 있으니, 지금 이후 혹 주(周)나라를 이어 왕 노릇 하는 자가
있다면, 비록 백세(百世) 뒤의 먼 것이라도 인습(因襲)하고 변혁(變革)시키는 것은 이에 불과할 뿐이니,
어찌 십세(十世) 뿐이겠는가? 성인(聖人)이 앞으로 올 것을 미리 아는 것은 이와 같으니,
후세의 참위(讖緯)『〔圖讖說〕』나 술수학(術數學)과는 같지 않다.』
『 ○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자장(子張)의 물음은 미래를 알고자 한 것이었는데, 성인(聖人)은 이미 지나간 일을
말씀하시어 밝히신 것이다. 수신(修身)으로부터 천하(天下)를 다스리는데 이르기까지 하루라도 예(禮)가 없을 수
없으니, 하늘의 질서인 천서(天敍)와 천질(天秩)은 사람이 함께 행하는 바이니, 예(禮)의 근본이다.
상(商)나라가 하(夏)나라의 것을 고칠 수 없었고, 주(周)나라가 상(商)나라의 것을 고칠 수 없었으니, 이른바 천지
(天地)의 떳떳한 벼리라는 것이다. 제도(制度)와 문위(文爲)로 말하면, 혹 너무 지나치면 덜어야 하고 혹 부족하면
더해야 할 것이다. 더하고 덜어내는 것은 시대에 따라 적절하게 하였고, 인습(因襲)할 것은 무너뜨리지 않았으니,
이것은 고금(古今)의 통의(通義)이다. 지난 것을 인하여 미래를 추측하면 비록 백세(百世) 뒤의 먼 것이라도 이와
같음에 불과할 따름이다.”』
*논어 ; 위정 ; 제24장
▣ 제24장(第二十四章)
『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요』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 제사지내어야 할 귀신이 아닌 것을 제사하는 것은 아첨함이요,』
『非其鬼는 謂非其所當祭之鬼라 諂은 求媚也라』
『 그 귀신이 아니라는 것은 마땅히 제사지내어야 할 귀신이 아닌 것을 이른다. 첨(諂)은 잘 보이기를 구하는
것이다.』
『見義不爲 無勇也니라』
『 의(義)를 보고하지 않음은 용맹이 없는 것이다.”』
『知而不爲면 是無勇也라』
『 알면서 하지 않는 것은 곧 용맹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