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고래 / 금동현
고래의 천적은 무지개입니다
바다에 비가 오면 무리 지어 다니는 고래 떼가 보여요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이미 해류의 궤적을 잃고 엎치락뒤치락
숨 쉴 땐 물이 튀지 않게 도망치는 게 상책이죠
실망은 하교 후 저녁쯤에 일어납니다 난 종이처럼 소심해져 음악만 들어요 그곳은 다른 바다 무지개 고래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죠
농담의 주파수가 달라 언니랑 따로 놀았어요
달팽이처럼 엎드려 책을 읽는 언니는 리본 달린 치마 하나 없이 어떻게 긍정적으로 자랐을까요
난 선천적으로 부정문이 좋았어요
우리는 서로 좋아했다 보다는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진 않았다처럼
양은 술주전자를 집어 던지다 고래 꼬리에 걷어차였죠
그때 내 눈과 고래의 눈이 마주쳤는데
정말 고래의 눈이었습니다
술멸치가 아니라 술고래여서 다행입니다
뭍에서 물속으로 들어가 진화한 동물이라잖아요
사전에 멸치보다 고래가 먼저 나오잖아요
길고 짧은 건 대보지 않아도 알았습니다
서점보다 술도가에 자주 갔으니 속수무책을 살핀 시간보다 파도를 읽은 시간이 길었겠죠
오른쪽 뇌는 잠들고 왼쪽 뇌로 우리와 소통하느라 대화는 무지갯빛으로 횡설수설 멀리 있는 무리에게 신호를 보낼 땐 외마디 소리를 질러요
바다에 비가 그치면 이제 고래는 돌아오지 않고
거대한 고래등 같은 무지개만 뜬다
무지개의 일곱 가지 빛을 더하면 흰색
일곱 가지 색을 섞으면 검은색
달빛이 물결처럼 찰방거리던 마루에서 새끼고래가 아장아장 자랐네요
네모난 통에 숨어있는 고래밥을 빼먹으며
태초는 모르지만 어느 바다에서 건 난 태어난걸요
다시 뭍으로 배밀이한 걸요
본지 주관 ‘김유정 신인문학상’ 임한·금동현·김율희 당선 영예 - 강원도민일보
한국 문단을 대표할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김유정 신인문학상’의 31번째 주인공들이 결정됐다. 김유정문학촌과 강원도민일보가 공동 주관하는 제31회 김유정신인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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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슬픔 정화하는 상상력, 마침내 도달한 따뜻함”
‘무지개 고래’와 ‘박쥐의 문장’을 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함께 투고된 작품들의 수준이 고른 것으로 보아 두 분 모두 치열한 습작을 거쳤음을 알 수 있었다. 습작기를 통과해 자기 개성을 시적으로 우뚝 세우는 첫 번째 관문, 본심의 논의 방향은 개성의 시적 성취에 얼마나 힘이 있는지에 맞추어졌다.
‘박쥐의 문장’은 유년의 공포와 외로움을 아름답게 풀어낸 서정성과 내적 운율의 자연스러움이 돋보였다. ‘무지개 고래’는 대단히 재미있는 시다. 화자와 술고래 아버지, 성격이 다른 언니가 등장하는 환상적 단편영화 같다. 어린 시절의 불행을 회고하는 방식은 다양할 터인데 이 작품의 특장은 김유정 문학의 핵심이라 할 해학과 웃음에 닿아있다.
과거를 드러내어 시적 성취를 이루기는 매우 까다롭다. 너무 드러나면 시적 긴장을 유지하기 어렵고 너무 감추면 시화의 거점이 뭉개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바다와 술, 무지개와 고래, 흰색과 검은색의 알레고리를 통해 감정을 적절히 조율하며 슬픔의 정화를 이루어낸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지만 함부로 꺼내기 쉽지 않은 슬픈 과거를 정화해내는 일에 문학은 탁월한 기능을 한다. 동화적 상상력을 통해 정화를 이루어내고 자기 긍정에 도달한 따뜻한 힘이 느껴지는 이 작품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 심사위원 고형렬·김선우(대표집필)
[출처] 제31회 김유정신인문학상 / 금동현|작성자 ksujin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