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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놓는다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사자성어로는 이어탁수라고 합니다. 의미를 해석을 하면 한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 그가 속한 공동체나 가족을 수치스럽게 만든다 이런 의미입니다.
비슷한 속담을 찾으면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킨다. 영어에도 이런 표현이 있어요. 썩은 사과 한 개가 한 통의 사과를 망친다. 이래저래 찾아보니까 이런 속담은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거의 비슷한 속담들이 다 있더라고요.
이것은 어떤 걸 의미하냐면 어느 나라라도 이와 비슷한 속담이 있다는 것은 어떤 가정이든 교회든 또 해서든 나라든 그 집단을 힘들게 하곤 하는 사람들은 꼭 있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쓰는 용어가 약간 좀 자극적인데 그냥 이해하시고 들으십시오. 미꾸라지 같은 꼴뚜기 같은 썩은 사과와 같은 존재가 어디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고 없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도 그건 아주 무모한 거예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12 제자 공동체도 완벽하지 않았어요. 한 아버지 밑에 태어난 야곱의 아들들도 문제 투성이였고요. 한 민족이었던 이스라엘 12지파도 문제가 있었어요. 이 땅에 처음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좀 우리가 고민을 해볼 필요성이 있어요.
온 웅덩이를 흐트려 놓는 미꾸라지가 위대할까요? 아니면 미꾸라지 한 마리에게도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웅덩이가 무능할까요?
여러분 한번 우리가 생각을 진짜 해봐야 돼요. 그러니까 온 엉덩이를 흐려놓는 미꾸라지가 위대할까요? 아니면 미꾸라지 한 마리의 영향력도 감당하지 못하는 웅덩이가 무능력할 거야. 정말 고민되는 이 질문이에요. 얼마나 공동체가 무능하고 건강하지 않으면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다 흐트러질까요? 가정이 얼마나 건강하지 않으면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다 쑥대밭이 될까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정말 깊게 생각해 보면 이미 이 공동체는 문제로 가득 차 있었다는 거예요. 이미 존재하는 문제들이 많았어요. 단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숨겨져 있던 잠잠해 있던 문제를 부각시킨 것에 불과한 거죠. 대두시켰던 거지 문제가 없는 공동체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미꾸라지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미꾸라지 한 마리의 힘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무능한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미꾸라지 한 마리의 부정적인 영향을 막지 못할 만큼 공동체가 무능했던 거죠. 지금 우리나라나 이 땅에 많은 교회들이나 성도들의 가정이나 이런 말이 좀 자극적이라고 그랬죠. 진짜 무능이에요. 왜냐하면 가족을 흐트려 놓는 한 마리의 미꾸라지를 대체할 힘이 없는 거예요.
나라도 그렇고 교회도 그래요. 그래서 결국 한 마리의 미꾸라지 때문에 온 웅덩이가 흙탕물이 되는 거죠. 이미 많은 부유물이 가라앉아 있었던 거죠. 밑거래 다리가 흐트러 돌아다니지 않아서 이 부유물이 떠오르지 않았을 뿐인 거지 이미 많은 문제가 그 웅덩이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땅에 속한 공동체는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정도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을 수 있어요. 우리 가정은 절대로 깨어질 것 같지 않지만 깨어질 수 있고요. 교회도 절대로 깨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깨어질 수도 있어요. 나라도 절대로 깨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얼마든지 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속담에서 또 조심해야 되는 게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미꾸라지 한 마리에게 모든 문제를 떠넘긴다는 거예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트려 놓는다. 이 속담 안에는 웅덩이의 모든 문제를 미꾸라지에게 다 증가시키는 거죠.
앞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닥에 찌꺼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다는 것은 이미 문제가 많았다는 거예요. 그냥 단지 미꾸라지 한 마리에 의해서 문제가 대두된 것뿐인 거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우리가 이렇게 말하죠.
쟤만 없으면 우리 가정 평안할 거야.
우리 교회 저 사람만 없으면 문제없을 거야.
우리나라에 저 사람만 저 집단만 없으면 우리나라는 아무 문제없을 거야
이렇게 핑계를 댄다는 거예요. 희생양을 찾아서 그게 우리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제를 희생양에게 다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은 아그리바 1세라는 왕입니다. 헤롯 아그리파 1세가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를 죽인 것은 유대인들과 잘 지내기 위한 정치적 정치적인 술수 때문인 거예요. 특별히 이 헤롯은 바리새인들과 잘 지내길 원했어요. 왜냐하면 그래야 유대 땅을 잘 문제없이 잘 통치할 수 있었고, 그래야 로마의 왕인 가이사에게 잘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인 거예요.
야고보를 죽인 때는 주후 44년이었고, 예수님이 죽으신 후 11년이 지난 유월절 인근이었습니다. 야고보를 죽인 것을 많은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 이제는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베드로를 잡았습니다. 옥에 가둔 이에 4인 1조로 된 4개의 팀에 의해서 베드로를 지키도록 했던 거예요. 만약에 이때가 무교절이 아니었다면 베드로를 죽였을 거예요. 그래서 무교절 지나면 유월절이 지나면 베드로를 죽이려고 오게 가두어 놓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좀 이상한 장면이 있어요. 여러분은 그냥 지나서 이렇게 읽으셨겠지만 좀 이상한 장면이 있어요. 베드로가 갇혔어요. 옥에. 그런데 교회가 전혀 요동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5절에 보면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교회가 움직임이 있었다면 베드로의 갇침 때문에 교회 안에 어떤 움직임이 만들어졌다면 혼란스러움이 아니라 기도에 집중하는 삶이었던 거예요.
원래 이 정도 베드로는 초대교회 수장이었잖아요. 사도의 우드루머이기도 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가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다가 전혀 요동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도행전 8장 스데반의 죽음 때에는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와 사마리아의 모든 땅에 다 흩어졌다 이렇게 돼 있어요. 8장에도 동일 비슷한 사건이 있었어요. 근데 그때는 예루살렘 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 흩어졌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8장에 흩어진 반면에 12장인 오늘 본문에서는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 앞에서는 흩어졌던 교회가 베드로의 옥에 갇힌 사건 앞에서는 모여 기도했습니다.
물론 8장과 12장을 이렇게 단순하게 비교하는 건 좀 무리가 있어요. 그냥 말씀의 전개를 위해서 오늘은 제가 그냥 단순하게 이렇게 비교해 봤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헤롯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가 잡히고 옥에 갇히게 되자 온 교회가 모여서 기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작은 문제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작은 문제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성도가 돼야 됩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많은 공동체는 작은 문제에 쉽게 흔들려요. 문제가 많은 개인도 작은 문제에 쉽게 자극받고 쉽게 흔들려, 문제가 많은 개인도 작은 문제에 쉽게 흔들립니다.
건강하지 않은 공동체도 작은 문제에 쉽게 흔들려요. 건강한 개인은 작은 문제에 쉽게 흔들리지 않아요. 근데 이 땅에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이 미꾸라지 한 마리에 너무 쉽게 흔들려요.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미꾸라지가 강력해서가 아니에요. 여러분 미꾸라지는 강에 사는 물고기 중에 거의 가장 작은 부위에 속해요. 물론 아주 큰 것들은 있긴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갈견이나 피라미 종류도 큰 건 엄청나게 크거든요. 갈견이도 큰 건 손바닥 만지는 아니지만 손바닥에 가까울 만큼 큰 갈견이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미꾸라지는 따지고 보면 강에 사는 물고기 중에 그의 가장 작은 부류에 속하는 물고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흙탕물이 연못의 흙탕물이 다 흐려졌다는 것은 그 연못에 문제가 있었다는 거죠. 교회가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흘린다는 것은 교회가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고, 건강하지 않은 교회와 사람들은 작은 문제에도 쉽게 흔들려 넘어지게 됩니다. 성도들을 보면 작고 사소한 문제에 감정이 쉽게 상하고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아요. 왜 저럴까라고 싶을 정도로 작은 문제에 많은 갈등을 경험하고 또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도 문제가 있지만 그 사람의 내면에 문제가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쉽게 자극을 받고 내면이 쉽게 흐트러지는 거죠.
여러분 부유물이 많지 않으면 큰 돌을 웅덩이에 집어던져도 웅덩이는 어때요? 깨끗해요? 맑아요. 물이. 그러나 부유물이 많이 깔아진 웅덩이는 작은 돌을 던져도 그 부유물이 훅 하고 위로 솟아 올라옵니다. 가라앉아 있는 그래서 쉽게 보이지 않는 내면의 문제가 많기 때문에 작은 일에 감정을 상하고 작은 일이 문제가 되어서 때로는 스스로를 넘어지게 하고 남까지도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소하고 작은 문제도 쉽게 그 사람의 내면에 가라앉아 있는 문제들을 자극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최소한 우리는 미꾸라지의 흙탕물이 되는 교회는 되지 말아야 하고, 미꾸라지의 흙탕물이 되는 나의 내면도 되지 말아야 돼요. 그러면 우리는 계속 불행하고 힘든 삶을 살아요. 계속 요동하거든요. 작은 문제에도 오늘 아침에도 마음이 요동하고 점심에도 요동하고 저녁에도 요동하고 다음 날도 요동하고 그다음 달도 요동하고 그다음에도 요동하고 계속 마음이 요동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꾸자리지의 능력이 대단해서가 아니에요. 내 내면의 문제가 라나사인 거죠. 미꾸라지가 위대해서가 아니에요.
근데 어쩌면 미꾸라지는 자기를 위대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 자기가 지나갔더니 막 온통 다 물이 다 흐려지니까 야 나는 정말 위대하다 아니라는 거예요. 미꾸라지가 위대해서 그런 게 아니라 공동체나 개인의 삶과 내면에 문제가 많아서인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이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고 우리의 신앙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문제만 제기하고 끝내면 안 되잖아요. 교회나 우리의 내면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하면 문제가 나를 때로는 괴롭히고 사람이 나를 자극해도 내가 반응하지 않고 어떻게 잘 넘어설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답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답을 기도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어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마가 요한의 어머니 집에 기도했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헤롯의 박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는 전혀 흔들림 없이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헤롯의 박해의 초대교회가 기도로 인해서 흔들리지 않았던 거예요. 내면을 흔들지 않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기도라는 거죠. 그러니까 내 내면을 가장 안전하게 하고 고요하게 하는 게 뭐냐 기도인 거예요. 깊은 기도, 울부짖는 기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는 이 기도가 우리의 내면을 힘 있게 하고 작은 문제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우리의 영성을 지니게 하는 것입니다. 문제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지 흔들리지 않고 있는지는 그가 기도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있다면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흔들리게 될 거예요.
우리의 잘못은 기도를 하면서도 기도의 능력을 잘 모른다는 거예요. 심지어 저는 여러분에게 정말 기도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잖아요. 제 주변에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기도 이야기를 해요.
근데 가끔 제가 기도의 능력을 간과할 때가 있더라고요. 기도하지만 기도의 능력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순간들이 정말 많은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기도는 아주 강력하다는 거예요. 기도가 못하는 일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과 제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 한 기도가 우리의 내면을 맑게 하고 기도가 우리의 내면을 치료하는 역사들을 경험하기 어려워요.
믿음의 내용만큼 내 안에 역사가 일어나요. 믿음의 내용만큼 내가 무엇을 어떻게 믿는 그 내용만큼 내 삶과 내 안에 우리 교회와 우리 공동체 안에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데 기도가 우리 안에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는다는 거죠. 기도하지만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 이런 이상한 아이러니가 우리의 삶에 많습니다.
하나 더 우리가 좀 고민할 것은 앞에서 좀 해봤지만 우리를 자극하고 힘들게 하는 문제들은 생각보다 작고 사소하다는 거예요. 미꾸라지는 그리 큰 물고기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어요. 대부분 냇가에 있는 물고기들은 미꾸라지보다는 더 커요. 미꾸라지가 웅덩이의 부유물을 다 일으켜서 흙탕물로 만들었다는 것은 미꾸라지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 웅덩이에 부유물들이 많이 문제가 많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를 넘어지게 한 건 큰 것이 우리를 넘어지게 하지 않아요. 작고 사소한 것이 여러분과 저를 넘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넘어질까요? 왜 작은 문제에 넘어질까요? 시험 같지 않은 시험에 들어서 예배를 멈추고 신앙을 왜 멈출까요?
그만큼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신앙이 견고하지 않는 거죠. 내 믿음이 견고하지 않으면 작은 문제에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또 하나 문제가 있어요. 믿음은 믿음은 이런 것과도 같아요. 우리가 태권도 단증을 따잖아요. 예를 들어서 뭐 오단이라는 단증을 따요. 이 단층을 따고 운동을 안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점점 더 하향 곡선을 그려 운동 능력이 딸 때는 5단의 실력이었는데 운동을 안 하니까 좀 지나면 4단 실력이 되고 그단 3단 실력이 되고요. 1단까지는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어떻든 계속 그 능력치가 떨어지게 된다는 거예요.
이처럼 우리가 기도든 우리의 내면이든 일정한 수준을 늘 유지하고 있어야 되는데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인 거죠. 기도도 일정량을 늘 유지하고 있어야 되고 내 내면의 삶도 늘 신앙도 늘 일정량을 유지하고 있어야 문제에 안 흔들려요.
그런데 우리의 기도도 등락이 너무 많고 우리의 믿음도 등락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바닥을 쳤을 때 작은 문제가 문제를 못 이길 만큼 우리가 믿음이 약해진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미꾸라지에 의해서 내 내면이 박살이 나는 거죠. 우리 공동체가 박살이 나고 우리 가정이 때론 박살이 나게 되는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의 교회들이 외부적인 문제나 내부적인 문제로 많이 흔들립니다.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죠. 견고하지 않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기도보다 교회를 더 강력하게 하는 건 없고, 기도보다 성도를 더 강력하게 하는 것도 없어요.
기도는 그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큰 그 든든한 섬과도 같은 거예요. 어떤 포탄이나 화살이나 어떤 무기도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성과도 같은 게 기도예요. 그러니까 교회가 기도를 멈추는 순간 성도의 기도들이 약해지는 순간 성은 성벽은 자꾸 낮아지고 성벽이 흐러져요. 그래서 누구도 그 성벽을 어떤 사람이라도 넘을 수 있는 성이 되고 성벽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견고하지 않아서 지금 작은 문제에 흔들리고 가정도 흔들리고 교회도 흔들리고 내 내면의 삶도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여러분의 마음을 잡아줄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소 그럴 수 없습니다. 기도만이 여러분의 마음을 잡아줄 수 있어요. 어떤 휴식이 여러분의 마음을 잡아줄까요? 편안함은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마음을 힘 있고 강력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잡아주는 것도 기도고 우리의 마음을 잡아주는 것도 기도예요. 그래서 기도가 견고해질수록 우리의 내면도 견고해지고 우리의 문제 많은 삶도 견고해지는 거예요. 지금 내가 미꾸라지 한 마리에 내 내면이 막 요동치고 있다는 것은 내게 기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거예요. 교회의 기도가 안 들리면 교회가 흔들리고, 가정의 기도가 흔들리면 그 가정이 흔들리고, 개인의 기도가 안 들리면 그 개인의 삶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문제가 가라앉아 있지 인기 있게 하지 말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자꾸 이렇게 가라앉히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묻어두려고 그래요. 여러분 묻어두는 문제는 언젠간 대두되더라고요. 부부 사이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언젠가 또 튀어나와서 부부를 갈등으로 몰아가요. 성도와 목회자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언젠가 드러나서 또 갈등으로 몰아가요. 공동체의 덮어놓은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튀어나와서 그 공동체를 또 괴롭히고 나라를 힘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과 제가 잘못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덮어놓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해요. 덮어놓는 것 나라의 문제든 교회의 문제든 개인의 문제든 잘 덮어놓고 남들이 잘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떨 때는 그렇게 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해결책은 부유물이 가라앉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부유물을 제거하는 거죠. 가라앉지 않도록 부유물을 제거하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문제를 숨겨둡니다. 그리고 열심히 가라앉히려고 노력합니다. 문제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큰 문제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예요.
계속해서 여러분 내 삶의 문제 숨겨 놓잖아요. 아내가 잘 모른다고 해서 숨겨놓고 남편이 잘 모른다고 숨겨놓으면 남편은 모를 수 있고 아내는 모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문제는 큰 문제가 돼서요. 부부 가를 완전히 박살 낼 수도 있어요. 가족도 마찬가지예요.
아버지가 어떤 문제를 숨겼어요? 부모가 자녀에게 문제를 숨겨요 아니면 자녀가 부모에게 문제를 숨겨요. 그러면 지금 우리 가정은 행복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언젠간 이 문제는 점점 커지고 커져서 큰 폭파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터지면 그때는 가정이 깨지는 거죠. 교회도 마찬가지고 나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잘 가라앉혀 놓으면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기껏해야 흙탕물 정도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폭탄이 된다는 거예요. 가라앉히는 문제는 언젠가 폭탄이 돼 내 인생을 망치는 내 내면의 폭탄이 되고 우리 가정을 망치는 가정의 폭탄이 되고 교회를 망치는 교회의 폭탄이 되고 나라를 망치는 나라에 폭탄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어떤 일까요? 이거를 제거하는 거죠. 제가 지금까지 얻은 결론은 두 가지예요. 첫 번째 하나는 사과하고 용서해야 부유물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사과하고 용서해야 이게 진정성이 많을수록 진정성이 많이 담겨 일수록 작용은 더 커지겠죠. 사과하고 용서해야 돼요. 두 번째로는 기도해야 부유물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말씀드린 기도로 답을 얻은 문제는 상처로 내 삶에 남지 않아요. 하나님이 왜 이렇게 힘든 남편을 만나게 했는지 하나님의 답을 얻으면 그 힘든 남편 때문에 얻었던 상처가 상처로 결코 남지 않아요. 왜 하나님이 이렇게 힘든 교회를 섬기게 했는지를 답을 받으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알려주시면 힘들지 않아요. 이게 상처로 남지 않아요. 기도하지 않고 답을 못 얻으니까 이게 부유물로 가라앉아 있어서 점든 층이 깊어지고 두터워지고 폭탄이 되는 거죠. 그리고 어느 순간 뻥 하고 터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공기 청정기와도 같고요. 기도는 공기 정화 식물과도 같고요. 기도는 수질을 개선하는 식물이나 장치와도 같아요.
여러분 저는 뭔가를 좀 끈질게 하는 성격이 있긴 있나 봐요. 제가 물질도 물질이라는 이게 고기를 키우는 걸 말해요. 여러분 이것도 제가 20년 넘게 했어요. 제가 약간 뭔가 이렇게 약간 오타쿠 이런 이렇게 뭐라고 그러죠? 하여튼 그게 약간 덕후 기질이 좀 뭐가 있나 봐요? 물질도 20년 넘게 했어요.
그런데 이 물을 물이 깨끗하지 않으면 고기가 죽잖아요. 여러 방법이 있는데 물을 계속 갈아주는 거예요. 또 하나는 수생 식물을 많이 넣어줘요. 밑에 쏘일하고 수생물을 많이 넣어줘요. 또 하나는 수질을 정화하는 장치가 있어요. 정화 장치를 넣어줘요.
근데 이게 정상적으로 잘 세 가지가 잘 돌아가면 돌아가면 물이 항상 깨끗해요. 이 세 가지 정화 장치 중에 하나라도 멈추면 물이 오염돼요. 제가 제때 물을 안 갈아주거나 풀들이 죽어서 기능을 못하거나 아니면 정화 장치가 너무 많은 부유물이 끼어서 오히려 작동을 못하게 되면 어항의 고기들은 죽게 되더라고요.
여러분 기도가 기도가 어항에 있는 우리 삶에 있는 공기 청정기와 같고 공기 정화 식물과 같고 수질을 개선하는 식물과 장치와도 같아요. 특별히 깊은 기도가 효과 있는 기도가 효과 없이 하고 가는 기도가 아니라 효과 있는 기도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기도가 하나님의 만지심을 경험하는 기도가 수십 년 된 문제를 해결하고 수십 년 쌓여 있던 문제들을 풀게 합니다.
여러분 야곱의 약곡 강의 기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얍복강의 기도가 야곱과 에서를 화해하게 했던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과 야곱을 화해하게 했습니다. 얍복강의 기도 이후에 다른 길이 다른 삶이 야곱에게 열리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의 터치가 있는 기도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풀지 못했던 형과의 화해가 열리고 그가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고 그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던 것입니다.
온전히 집중하는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는 기도는 힘이 있어요.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기도보다 하나님이 만짐이 있는 기도를 경험해야 돼요. 그래야 내 내면에도 부유물이 가라앉지 않고 교회도 부유물이 가라앉지 않아요. 우리 교회도 그렇지만 우리 교회는 이제 새벽을 집중하려고 이제 저 홍보를 한 달에 한 번밖에 안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이 통성 기도가 다 사라졌어요.
철야도 통성 기도를 잘 하지 않더라고요. 코로나 때문에 저는 코로나 이후에 교회들이 문제가 더 많아졌어요. 그건 확실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핑계 대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기도를 들고 싶어요. 하나님의 만짐이 있는 기도가 교회에서 자꾸 사라지기 시작한 거죠. 철화 시간을 통해 울부짖고 응답을 받고 하나님이 육체와 영혼을 만지는 걸 경험했던 많은 성도들이 사라지면서 작은 문제가 큰 문제처럼 여겨지는 그런 우리 내면과 삶이 신앙이 되어버린 거죠.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기도가 교회와 가정, 우리의 내면을 든든하게 하고 견고하게 하는 날이 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기도가 수백 마리의 미꾸라지에도 요동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는 기도가 우리의 내면에 가라앉아 있는 많은 문제들을 수시로 튀어올라와서 나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들을 깨끗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더 많이 기도하시고 더 열정적으로 기도하시고 더 깊게 기도하시고 더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저는 제 핸드폰에 정말 많은 설교 자료를 이렇게 적어요. 길 가다도 생각이 나면 적고 어떻든 대화하다가 죽고 해서 제 컴퓨터에도 설교와 관련된 자료들이 제가 이렇게 수시로 적은 것들이 정말 방대한 양이 있고 제 핸드폰에도 정말 많은 양이 있어요. 저는 말씀을 준비하고 난 후에 항상 그걸 이렇게 살펴요.
오늘 말씀과 그동안 내가 묵상한 것 중에 적당한 게 뭘까 제가 이제 오늘 새벽이 끝나고 좀 살펴봤어요. 혹시 오늘 말씀에 마지막에 내가 한 줄 정도 읽어주면 좋은 말씀이 어떤 걸까라고 한번 봤어요.
근데 제 마음에 이렇게 들어오는 문장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영원한 것은 기도다. 참된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기도예요. 여러분 영혼을 경험하게 하기도 하고 영혼을 살게 하기도 하고 영혼을 누리게 하기도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가장 성도가 참되게 추구해야 될 것도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기도하는 삶입니다. 이 목장 교회가 다시 기도의 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권사님들 기도의 자리로 오십시오. 여러분이 기도해야 우리 교회가 든든해지지 않을까요? 우리 교회 부흥하는 소리 들리잖아요. 근데 권사님이 기도하지 않으면 이 부흥이 하루 아침에도 날아갈 수 있습니다. 장로님들도 안수 집사님들도 향후에 되실 분들도 기도의 자리에 오십시오. 명절에 딴 데 안 가시면 새벽에 여기 오세요. 제가 목요일 새벽 외에는 여기 다 있으면서 매시간 예배를 또 기도를 합니다. 이번에는 좀 특별한 명절을 보내보세요. 집에서 들어누워 주무시지 마시고 야 여보 우리 평생에 못 가니까 지금 휴가니까 이번 주간 우리 새벽 기도 한번 가보자.
보통 이 정도면 아멘도 할 텐데 아면도 안 하시고 우리 그렇게 다짐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최소한 5 60명은 다짐한 것 같으니까 한 5 60명은 오시겠죠. 제가 기대하면서 말씀 준비 잘 해놓겠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