米麵寺址(미면사지)의 階段式 積石塔에 올라...... 13:00:27
엄대장님의 수고로 산북면 소야리 주차장에 주차 후 출발... 09:32:47
소야리동회관, 소야리노인회관 앞에서..... 09:37:22
洞 史 (소야리)
우리 마을은 高麗末 소정승(蘇政丞)이 관직(官職)에서 물러나면서 이곳에 정착(停着)하여 소야(蘇野)로 호칭(呼稱). 西紀 一九一四年 행정구역 개편 時 소야(昭野)로 바뀌었으며, 세종시(世宗時) 통천최씨윤덕장상(通川崔氏潤德將相)의 엄숙한 존령이 동금수호신(洞金守護神)으로 현몽하사 성황당에(城隍堂)에 모시고 每年 정월 초순(正月 初旬)에 동금(洞金)의 무사태평(無事太平)을 비는 조양제(祚禳祭)를 지금까지 실천(實踐)함을 이 비(碑)에 약초기재(略草記載) 함.
西紀 二00三年 十二月 日
마을 입구에 괴목 공원을 애향심이 많은 출향인과 동민들의 성금으로 조성하고 표지석을 세웠다.
앞면 槐木(괴목) 공원 조성 찬조 명단
서울 최종윤 7,000,000 서울 최종희 5,000,000 부산 최영호 1,000,000
소야 림봉수 200,000 서울 림학규 300,000 총찬조금액 : 13,500,000
위 사람은 공원 조성에 공이 크므로 이 標石에 담아 길이 남길까 합니다.
2007년 3월 소야리 동민 일동
뒷면
昭野里 歷代 里長 序名錄
張漢卓(장한탁) 崔燉旭(최돈욱) 崔鍾奭(최종석) 崔鍾河(최종하) 張世文(장세문)
崔道圭(최도규) 崔寶圭(최보규) 金鎭海(김진해) 崔伯圭(최백규) 崔昌圭(최창규)
趙聖甫(조성보) 金鎭何(김진하) 尹洪植(윤홍식) 崔榮圭(최영규) 尹保植(윤보식)
崔鍾태(최종태)
西紀 二00七年 丁亥 三月 日
소야리에서 괴목이 많은 언덕을 올라서면 .....
언덕에 올라서 소야리 마을을 배경으로...
언덕을 내려 오니 천주산의 암봉이 보인다...
동로면 석항리에 돌이 많았는데 여기도 큰돌 작은 돌이 엄청나게 많았다...
산북면과 동로면의 경계인 동물 이동통로 터널을 오른다...
동물들이 이동한 흔적이 터널 앞 비탈에 보였다... 로드킬의 원인 제공이 되어 안타깝다...
동로면의 안내판이 있고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간다..
수평2리에 들어 서면서 뽕나무 밭과 장엄하게 솟은 천주산의 암봉( 입 벌린 조기머리 모양) ..
다리 안쪽의 이층 건물은 수한녹색농촌체험관이다.
수한녹색농촌체험마을 (동로면 수평2리. 2011.11.22. 준공)
문경시에서 문경지곡리, 농암궁기리, 가은수예리, 마성하내리에 이어 5번째로 조성.
농촌민박시설, 농촌체험관, 쉼터 등을 갖췄다. 도농교류촉진, 농산물 판매촉진을 기대한다.
수한녹색농촌체험관 앞에 시청직원과 주민들이 모여있어서 우회하여
수평1리로 내려가는 길 아래에 "신성농장"이 있다.
앞쪽의 작은 트럭은 산불예방 홍보차량이고, 돌을 가득 싫은 대형 트럭은 땅을 울리며 내려 간다.
수평1리 경천호 옛 길가에 있는 萬里亭에서 서서 간식을 즐기고.... 10:46:36
경천호의 겨울 풍경과 호수 변의 데크길이 잘 놓여 있다.
송강이 옛 기억을 더듬어 지름길(산 고개를 넘어 감)을 찾아 갔는데,
송강이 관리하는 문중 밭에서 주민이 지름길이 막혔다고 하여 되돌아 나왔다..
길을 따라 오르며 옛날 철광광업소하던 장소와 송강 부친이 부근에 구입한 밭에 대한 담소를 들은며 ....
수평2리 입구의 밭 가운데 오래된 배나무가 밭을 지키고 있다.
천주산의 암봉이 햇살에 빛나니 더욱 가깝게 보인다..
동로면과 산북면의 경계를 오르는 우측에 追 慕 堂 (추모당: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하는 집)이 있다.
비석 앞면 坡平尹氏修義處士公派 三十二世
尹 榮 夏
慶州 金氏
醴泉 林氏 家 族 墓
비석뒷면
子 仁赫 子婦 全州李氏 孫 鍾河 孫婦 李敬任
鍾洛 全淑子
鍾海 李春子
鍾浩 卞玉粉
曾孫 昱漢 正漢 一漢 允漢 相漢 洙漢 載漢 吉漢 珍漢 詠漢
高孫 成根 晙根 澤根 孝根 亨根 載根 大根 玟根 泰近 普根
西紀 二0一0年 四月 五日 立石
터널을 빠져 나오니 산북면 안내판이 반긴다.....
굽이치는 도로가 멀리 보이는 곳은 소야리에서 거산리로 넘어가는 길이다...
대형 자연석들을 많이 모아 놓고 임자를 기다린다....
햇살에 빛나는 소야리(昭野里: 밝을소, 들야, 마을리)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언덕을 내려 오며....
주차장에 도착하여 이곡리로 내려간다.. 12:43:57
회장님이 미면사지 장소를 기억하여, 도로 우측의 잡초와 잡목이 우거진 오솔길을 앞서 올라 적석탑을 찾았다 .
米麵寺址(미면사지)의 階段式 積石塔
大乘寺 寺蹟記는 碧天이라는 僧侶가 1705년에 쓴 大乘寺에 대한 記錄에 지금 돌로 쌓은 造山이 절밑 6~70步 程度 아래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적석탑은 安東 北後面 石塔里, 義城 安平面 石塔里, 우리 聞慶 山北面 昭野里의 積石塔이 現在까지 알려진 狀態이다.
적석탑이 훼손되어 탑이 무너져서 가운데가 깊게 들어가 있다...
앞쪽의 둥근 평평한 석재는 옥개석같이 보였다...
무너져 내린 돌탑의 위쪽에 앉아 기념사진을 남긴다..
일부 아래에서 위로 3층계단의 흔적이 약간 보인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절터는 보이지 않아서 되돌아 내려 온다..
회장님의 산이 손으로 가르키는 도로 건너편에 있어서,
오래전에 여기를 지나며 미면사지의 위치를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도로변에 주차한 차에 승차.... 13:13:04
산양 유가네식당에서 염소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첫댓글 米麵寺址의 유래에 대한 자료를 읽고, 미지의 장소를 찾아서 현장을 갔는데, 계단식 적석탑이 도굴군의 훼손으로 돌무더기는 되었어도, 당시 돌은 그대로 쌓여 있으니 언젠가는 옛 모습을 복원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합니다. 처음 찾은 산북면 소야리에서 수평2리를 거쳐 수평1리까지 가서 시원한 경천호를 찾아가서 되돌아 오는 길에 회장과 송강의 초임시절 수평초등 근무시절 과 송강의 김료초등 재직 시절 가족과 부모님댁에 오던 담소는 벌써 50년이 지난 추억이 되었습니다. 천주산의 암봉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빛나고 추억의 입 벌린 조기 머리 산이었습니다. 즐거운 하루 감사합니다.
昭野里는 꿈속같은 理想鄕에 비유할 아늑하고 고즈넉한 傳統的인 마을이었다.種谷里를 거슬러 狹小한 골짜기를 지나는듯 하던 풍경이 갑자기 열리며 童話속의 마을이 전개된다.駐車場까지 잘 그어진 車線에 따라 반듯하게 정렬한 후 오른쪽 언덕을 올라서니 石項里 처럼 돌 무더기가 지천을 이루고 있다.이따금 지나가는 車輛에 비하여 도로사정은 과분할 정도의 시설이었고 動物 移動通路는 細心함이 缺如되어 아쉽다.嶺넘어서니 東魯面이다.누가 作名했는지 慧眼이 놀랍다.摩光里를 막았고 水坪里는 물이 평평하게 되었으며 물안리는 물을 안고 도는 마을이 되었다.그 중에서도 단연 壓卷은 天柱峰이다.붕어 입처럼 뾰족한 입을 하늘 향해 열고 우뚝하니 이런 光景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水坪1리를 돌아 元點回歸 할때까지 아쉽게도 住民 한분 만나지 못했다.그러나 歸路에 會長님이 기억을 되살려 米麵寺址를 踏査한 것은 큰 소득이었다.10여년전 觀光科長 嚴元植 님의 한탄을 들은것이 엊그제 같은데 훼손되고 망실된 모습이 지금도 그대로였다.그러나 5층 정도의 積石塔 윤곽이 남아 있어서 언젠가는 元型에 가깝게 復元될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文化財 保存 의지가 가장 강한 우리 고장이기에 可能性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