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의 고통
손톱 끝, 발톱 끝에 가시가 박히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본인도 손톱 사이에 가시가 끼어 며칠 동안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가시인데 얼마나 아프고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지 여러 날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어느 분은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박혀 병원에 입원하여 심방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몸에 작은 가시가 박히면 잘 보이지도 않고 병원에 가서야 해결이 될 때가 있습니다. 가시라는 것이 작은 것이지만, 이렇게 사람을 성가시게 하고 찜찜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성경이 말하는 가시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은 몸에 가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세 번이나 간구했지만,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하면서“내 은혜가 네게 족 하도다”라는 응답과 함께 도리어“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10)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가시가 자신을 자만하지 않게 하려는 도구로 쓰이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시의 긍정적인 면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시는 인간에게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숲속으로 소풍을 왔습니다. 그 중에 한 소녀가 나무들을 구경하며 숲속을 산책했습니다. 마침, 소녀는 활짝 핀 장미를 보고 다가서다가 그만 장미를 보호하고 있는 가시에 찔리고 말았습니다. 울상이 된 소녀는 떡갈나무를 끌어안으며 말했습니다.‘너는 장미처럼 예쁜 꽃은 없지만, 가시가 없어서 이렇게 내가 껴안아 줄 수 있구나’
외면은 화려하지만, 가시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가졌어도 몸에 가시가 있다면 아무도 그 사람을 안아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말했습니다.‘사랑 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가시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5절에서는, 가시와 비슷한 것으로‘쓴 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쓴 뿌리가 나서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괴롭게 되고, 더럽게도 되기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쓴 뿌리의 열매는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주고 더러움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내면속에 있는 열등감, 사랑 결핍증, 미움과 증오심 등 갖가지로 인한 마음의 상처 등이 바로 그러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는 가시 같은 사람이 되어 해를 주며, 또 쓴 뿌리가 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스폰지 같은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