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니라'
<시편73:28>
기독교에서 말하는 십자가 예수의 하나님뿐만이 아니라 인간 생명체의 사람들도 스스로가 부모와 형제 조상님들을 망라한 가까운 하나의 님을 근원으로 믿고 따르며 신뢰하면 모든 피조물들을 대상으로 사랑을 받고 복이 따를 것이다.
신(神)들의 염려와 기대와는 달리 우리는 아차 여차함들의 고비들 속에서 생경(生硬)스러운 삶들을 경험하면서 산다.
지나치게 과(過)하면 화(禍)를 불러일으킨다.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사람이라는 우매하고 멍충한 속물들만 상생(相生)의 원칙에 앞서 이를 간과하며 눈앞일 것만 바라보고 눈 밑의 것을 모르는 게 한계일 뿐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아프냐? 마음이,
아프냐? 정신이….
아프냐? 육신이….
그래
너도나도 아픔이다.
생(生)으로의 출현이란 고통은 아픔의 경험들 속에 멸(滅)하게 되어있음이다.
가까이한다는 건 늘 내 것이어야 한다는 목적성보다는 숭고한 봉사와 희생이 선행되어질때 비로소 그 진가가 나타난다.
막연한 사고의 개념 없는 가식적 가까움이란 장단의 이점들에 앞서 심신의 기복성(祈福性)이 강하게 작용하게 된다.
결국 복(福)이란? 남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이 복(福)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는데 역으로 생각하면 남에게는 없는데 나에게 있는 것 그것이 복(福)이 아닐까? 생각만 바꾸면 모든 게 복이 되는데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복이란 사랑의 감사와 믿음이 온전한 관계에서 착하고 선하게 살면 주고서 받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
해마다 의례적인 새해 인사말의 덕담(德談)만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누리게 되는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들에서 얻는 기쁨과 즐거움은 다 같이 빌어주는 삶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