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내산악회 계획 H 코스에 안산을 더한 '한계령 휴게소 → 한계령 삼거리 → 귀때기청봉 → 대승령 → 안산 → 십이선녀탕계곡 → 남교리 지킴 터 → 신의주순대국밥 앞' 20km 구간을 11시간 동안 달릴 예정이었다.
1
설악산 서북 능선
설악산 서북 능선: 강원 인제군, 속초시
한계령 갈림길을 기준으로 동쪽 구간과 서쪽 구간으로 구분
서북 능선은 설악 최장의 능선으로, 설악 최고봉을 향해 오르면서 설악의 전모를 둘러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코스가 따라올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코스다.
서북릉은 매우 힘든 산행 코스로 정평이 나 있다. 능선이 길면서도 굴곡이 심해 체력 소모가 심하고, 강인한 인내심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힘든 산줄기를 걸으며 한여름의 더위와 갈증, 한겨울의 심설 등, 극한을 헤쳐 나아가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능선이 서북릉이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은 금강산과 향로봉을 지나 설악산의 북주릉, 공룡릉을 거쳐 대청봉에서 서북릉으로 흘러내리다가 한계령을 거쳐 남쪽의 점봉산으로 이어진다.
안산과 대승령에서 대청봉까지 이어진 능선을 서북 주 능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서북 능선은 능선의 거리만도 18km에 9시간이 소요된다. 등정과 하산을 포함하면 13~16시간이 소요된다.
서북 능선은 서북 능선의 한가운데에 있는 한계령 갈림길 삼거리를 기준으로 그 동쪽의 백두대간 주 능선 구간과 한계령 갈림길 삼거리~대승령, 안산 사이의 서쪽 구간의 2개의 능선으로 나눌 수 있다. - 한국의 산하
삼일절을 맞이하여, 갈만한 산을 찾다가, 한 안내산악회의 시산제를 겸한 남양주 축령산, 서리산 연계 산행을 발견하고 신청했다. 그런데, 신청자가 몰리면서, 수도권에서 총 7대의 버스가 출발해,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인간이라, 그 산행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 대안을 찾다가, 무박 설악산 종주 산행을 발견하고, 2022년에는 설악산에 몇 번이나, 갔는지, 곰곰이 계산해봤다. 해마다 최소 서너 번은 오르는 설악산인데, 2022년에는 5월 28일 봉 감독과 음주골을 다녀온 게 유일했다[산행기]. 해서 설악산을 다녀오기로 하고, 안내산악회의 산행 계획을 살펴보니, 한계령 휴게소를 기준으로 A부터 H까지 총 8개 코스를 운영한다. 그렇다고 산행 대장이 따라가는 게 아니라, 승객이 알아서 해라니, 수십 개 코스도 될 수 있지만.
그래봐야, 한계령 휴게소에서 한계령 삼거리로 올라가, 백두대간을 따라 북진하느냐, 서북능선을 따라 서진하느냐의 두 코스가 핵이다. 그중에서 한계령삼거리에서 남교리까지 달릴 생각으로 무박 설악산 종주 산행을 신청했다. 이 구간은 2016년 6월 3일 남교리에서 중청까지 서북종주를 목표로 했다가, 한계령 삼거리에서 탈출하고, 2016년 9월 30일 다시 도전해, 귀청 아래에서 1박 후 간신히 서북종주에 성공했을 때 이번과는 반대 방향으로 두 번 달린 적이 있다. 이후 십이선녀탕~안산 구간과 한계령삼거리~대승령 구간은 가끔 다녔으나, 한계령삼거리에서 십이선녀탕 구간은 갈 기회가 없었다. 고로 이 구간 산행은 나눠서 진행하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남교리까지 달리는 산행으론 처음이다.
물론 반대 방향인 공룡능선을 달린 것도 2019년 1월 19일이니[산행기], 4년이 지났다. 해서 공룡도 염두에 두었으나, 의외로 이번 종주 산행 신청자가 많아, 3대의 버스가 빈자리 하나 없이 양재에서 출발하는데, 승객의 90% 이상이 공룡능선을 택할 거라는 게 내 예상이다. 해서 한가하고 처음인 반대쪽을 선택했다. 오히려 서북을 선택하는 승객이 거의 없어, 심설을 러셀해야 하지 않을까,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당연히, 산악회 코스 안내에는 없으나, 바로 십이선녀탕으로 내려가지 않고, 안산에 들렀다가 남교리로 하산할 생각이다.
화요일 심야에 출발하는 무박 산행이라, 산행 당일인 삼일절에는 산에서 두 끼를 해결해야 한다. 처음에는 한 끼만 컵라면 등으로 해결하고, 하산 후 늦은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야외에서 화기 없이 조리가 가능하다는 '바로 쿡'이라는 걸 2022년 아무 생각 없이 온라인으로 샀다가 도착한 물건을 보고 실망해 아지트의 한쪽 구석에 처박아 뒀었다. 그러다, 라면을 한번 끓여볼까 해서 거의 10분이 걸려, 라면을 끓인 게 아니라, 불려서 먹었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이후 아지트에서 해장라면용으로 사용했는데, 산에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줄지 궁금해 이번 산행에서 사용해 보기로 했다. 아침은 귀청 주변에서 누룽지를 끓이고, 아니 데우고, 점심은 십이선녀탕에서 선녀들이 목욕한 물로 라면을 데워 먹을 생각이다. 물론 이 둘이 실패해도 굶지 않게 비상식은 가져간다. 그리고 당일 설악산 기온이 영하 6~4를 오르내리나, 그렇게 추울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평소와 다름없이 준비한다. 다만, 날씨가 흐린다는 예보라 동쪽의 공룡과 주봉을 보지 못할까 걱정이다. 물론 하산지인 남교리에서 하산주도 염두에 두고 있다.
2 - 1
수면제를 반주로 평소보다 늦은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서기 전, 배낭의 무게를 재봤다. 8.7kg이다. BPL을 구현하려면, 6kg 내외가 적당한데, 초과다. 그런데 뺄만한 게 없어, 그냥 짊어지고 10시 45분경 집을 나서, 10시 49분에 도착한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갔다. 이후 불광역에서 11시 5분 오금행 열차로, 양재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48분으로 예정대로 착착 진행됐다. 개찰구를 나오니, 꽤 많은 등산객이 추위를 피하려고, 또는 동료를 기다리기 위해 역 구내에서 삼삼오오 모여 서성이는 모습을 훑어보고 바로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기 위해 12번 출구로 나갔다.
국립외교원으로 접근하며, 그 앞을 보니, 지하철역 구내에 많은 승객이 있음에도, 많은 등산객이 있다. 그것도 심야에 출발하는 등산객이다. 도대체 몇 대의 버스가 심야 출발하는지 궁금해 산악회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하니, 23시에 이미 출발한 차를 제외하고 총 8대다! 고로 심야에 각지로 출발하는 등산객이 최소 200명이 넘는다는 거다. 하긴 비록 코스가 A부터 H까지 나뉘기는 하지만, 설악산에만 28인승 3대, 인원으로 84명이 떠나고, 섬으로 떠나는 버스도 4대만 있다. 와중에 한 대는 36인승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배낭을 들고 탈 생각이었으나, 선반에 넣고, 빼고 하는 게 번거로워 그냥 짐칸에 싣기로 하고, 버스 내에서 필요한 게 든 보조 파우치를 배낭에서 꺼냈다.
그렇게 승차 준비를 끝내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23시 57분에 사량도행 버스를 선두로 속속 버스가 도착해, 기다리는 승객을 태우고 출발했다. 와중에 내가 타야 할 설악산행 2호차만 보이지 않았다가, 다른 차가 다 떠난 후 제일 늦게 도착했다. 그래봐야, 예정보다 2분가량 늦었지만,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짐칸에 넣고,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버스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소음에 잠이 깨 눈을 감고 상황을 파악해보니, 휴게소다. 홍천강 휴게소가 아닐까 생각하며, 볼일보다 잠이 더 중요해 계속 잠을 청하는데, 버스가 출발을 안 한다. 겨울철 국립공원 산행 시작이 4시부터라, 휴게소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해서 그게 한계령휴게소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취침을 위해 버스는 불을 끈 상태지만, 승객이 들락거려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다, 살짝 눈을 떴는데, 버스 앞창 위에 달린, 시계는 1시 5분이다. 응? 당시는 내가 왜 놀랐는지 몰랐으나, 놀랐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어, 버스가 힘들게 급경사, 급커브를 도는 느낌에 잠이 깨, 눈을 살짝 떠보니 3시가 조금 넘었다. 한계령을 올라가고 있다. 4시에 맞춰 한계령에 도착할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계령 승객이 주 고객이 아니라, 오색 승객이 주 고객이라, 오색에 시간을 맞춘 거다. 해서 한계령에는 3시 37분에 도착했다. 버스가 도착하자, 인솔 대장이 서북능선을 타는 산꾼은 손을 들어보라고 해서 손을 들었는데, 내 앞에는 아무도 없다. 다만 대장이 5명이라고 얘기하는 걸 듣고서야 숫자를 알 수 있었다. 산행이 끝난 후 파악한 바로는 3대, 84명의 승객 중 서북을 택한 산꾼은 9명에 불과했다. 버스가 정차하고, 승객이 내릴 준비를 하자, 대장이 내게 와 남교리 '신의주 순대국'에서 6시 5분에 버스가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생각보다 일찍 버스가 한계령에 도착하는 바람에 슬리퍼를 벗고 등산화로 갈아 신는 거 외에 산행 준비는 할 수 없었다. 와중에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패드가 빠지지 않아 더 지체돼, 한계령을 들머리로 하는 모든 승객이 하차 후 간신히 미니 스패츠를 들고, 착용이 아니라,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한계령에서 내리는 등산객도 몇 명 안 된다. 역시, 한계령에서 시작해 공룡을 달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 때문에 버스 출발이 늦어지는 거 같아, 서둘러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백두대간 오색령' 표지석으로 갔다. 그리고 다른 등산객과 함께 나머지 등산 준비를 한 후 화장실로 가 매일 기상하면 치루는 의식을 마쳤다. 국립공원이라 따뜻한 화장실에서 가능한 의식이다. 이후 탐방로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그사이 변한 게 있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2 – 2
4시 정각 등산로를 막고 있던, 문이 열리자, 3대의 버스에 내린 열댓 명의 등산객이 일제히 산행을 시작하는 순간, 스마트 워치와 핸드폰의 등산 앱을 기동시킨 후 한계령의 고도를 확인했다. 해발 1,000m가 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등산 앱에 의하면, 951m다. 비록 해발 1,000m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귀청이 1,600m가 조금 안 되니, 표고차는 600m가 조금 넘는다. 표고차만 놓고 보면 설악산행은 한계령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쉽다. 산행은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그저 랜턴 빛에 의지해 앞만 보고, 급경사를 올라갈 뿐이다. 그런데 아래와 달리 고도가 높아질수록 빙판이라,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어, 4시 14분경 아이젠을 꺼내 착용했다.
가끔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 뒤따라 올라오는 랜턴 빛을 감상하기도 하고, 산행에 14시간이 주어져 급할 게 없어, 급하게 공룡으로 가는 등산객을 위해 길을 양보하기도 했다. 버스가 소공원부터 차례대로 등산객을 태운 후 마지막으로 남교리에 정차하는 거라, 대청 왕복 후 공룡능선을 지나 소공원으로 내려가는 23km 구간에 13시간 30분의 시간 주어져 가장 적고, 남교리 즉 서북능선, 십이선녀탕 18.5km 구간에 14시간이 주어져 가장 많다. 그나마 나는 안산을 거칠 예정이라, 20km가 넘을 거로 예상되지만. 고로 가장 길고, 가장 적은 시간을 선택한 산꾼은 서두르지 않으면, 차를 놓친다. 그런데, 서둘러 가는 등산객 중에는 아이젠이 없는 사람도 보인다.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해 꺼내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젠 없이 공룡을 통고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한계령에서 산행을 시작했을 시 첫 번째 고지인 무명의 봉우리에 5.12분에 도착했다. 한계령까지의 거리가 1.7km니, 1시간 12분 만에 1.7km를 올라온 거다. 그리고 5시 18분에 마른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통과했다. 조금 위에 있는 갑판 계단으로 올라가면 한계령 삼거리가 멀지 않다. 급경사의 갑판 계단을 올라, 해발 1,353m의 한계령 삼거리에 도착한 시각이 5시 30분이다. 2.3km, 수직으로 400m 높이를 올라오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이 속도로 대청과 공룡을 달린다면 낙오다! 그럼, 뒤에서 따라오는 등산객들은 공룡을 안 탄다는 얘기니, 대청 찍고 천불동으로 하산하거나, 서북을 지나, 십이선녀탕으로 하산한다는 얘기다.
아무도 없는 삼거리에서 이정표의 위치가 바뀐 거 같아, 혹시 다른 이정표가 있나, 대청 방향으로 50여 미터를 가봤으나, 없다. 내가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다고, 여기고 바로 귀청으로 향했다. 귀청과 표고차는 225m고, 거리는 1.6km다. 그중 1km는 마의 너덜 구간이다. 앞선 등산객이 있나 살피며, 귀청으로 향하는데, 불빛이 전혀 없는 걸 보니, 예상대로 내가 선두다. 다만, 폭설이 내린 후 많은 등산객이 다녀갔는지, 등산로에 쌓인 눈이 잘 다져져 러셀이 필요 없어, 오히려 산행이 쉬웠다. 랜턴 빛에 보이는 상고대를 감상하며, 과거 산행 때는 알지 못했던, 너덜 구간의 길을 안내하는 철봉에 감사했다. 너덜 구간이라 리본을 달, 나무도 없고, 계속 이정표를 설치할 수도 없어, 길을 따라 빛을 반사하는 철봉 덕분에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빛을 반사하는 철봉에 의지하며, 귀청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 돌아보니, 100여 미터 뒤에서 두 개의 불빛이 따라오는 게 보였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며, 다시 너덜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면 다시 귀청으로 향하는데, 6시 43분에 등산 앱이 음성으로 귀청 반경 50m 내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이번 구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그리고 2분 후 해발 1,578m, 귀때기청봉에 도착했다. 역시 그 이름에 걸맞게 귀때기가 떨어져 나갈 거 같은 바람이 불어, 온몸을 꼭꼭 감싸고 셀카로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귀가 떨어져 나가기 전에 재빨리 귀청을 떠났다. 물론 귀청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귀청에서 내려가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산꾼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어디서 출발했는지 물었다. 장수대란다. 규정대로 장수대에서 4시에 출발해 벌써 귀청에 도착했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다. 그 산꾼의 속도에 감탄하며, 귀청을 내려가는 동안 안개가 약간 걷히는 틈을 타, 재량골(상투바위골)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7시 5분에 상투바위골 정상이자, 지난 2016년 9월 남교리에서 시작해 서북능선 종주 시 야영[산행기]을 했던 쉼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쉼터에는 남녀 한 쌍이 쉬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어디서 출발했는지 물어, 한계령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빠르십니다!" 한다. 해서 나도 혹시 귀청에서 내려오다 만나 산꾼과 일행이 아닐까 해서 어디서 출발했는지 묻자, 출발지는 얘기하지 않고, 계속 걷는 중이라고 해, 배낭의 모양새를 보고 '어디서 비박했습니까?'하고 다시 묻자,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더 얘기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상투바위골로 내려가는 길은 안녕한지 확인하고[산행기1, 산행기2], 쉼터 의자에 앉아 아침을 먹을까 하다가, 바람이 강해 포기하고 떠났다.
비록 짙은 안개로 20m 밖이 보이지 않으나, 가까운 곳의 상고대는 절경이라, 그 모습을 사진 찍으며 가다가, 바람을 불지 않는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침 준비를 했다. 먼저, 용기에 물을 붓고 핫팩을 넣은 후 식기에 물을 붓고 누룽지를 넣은 후 용기에 올렸다. 큰 기대는 없이, 누룽지가 데워지지 않으면, 차지만 불은 누룽지를 먹겠다는 생각으로 8분 정도 후에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뜨거운 끓인 누룽지가 됐다. 그런데, 당시는 8분 정도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면 시간을 계산해 보니, 22분이 걸렸다. 성능은 만족하는데, 애초 예상대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시간에 쫓기는 산행에는 사용할 수 없어 아쉽다. 어쨌든 반찬으로 가져간 메추리알 장조림과 김치를 반찬으로 뜨거운 누룽지로 아침을 먹어, 남은 구간을 달릴 힘을 보충했다.
비록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만족할 만한 아침을 먹고, 모든 인적을 깨끗이 치우고 식당을 떠나, 대승령으로 향하는데, 곳곳이 계단이다. 처음 계단의 번호 확인한 게 22번이니, 대승령까지 최소 22개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는 거다. 와중에 상고대의 절경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계단을 오르내려, 9시 16분에 1,408봉 정상에 도착했다. 이정표에 명패를 붙여 놓은 걸 보면, 국립공원에서 인정하는 봉우린데, 등산 앱이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산꾼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봉우리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정상에서 내려오다가, 빙판에 미끄러져 꽈당하는 순간 재빨리 몸을 절벽 반대쪽으로 굴러, 밑으로 떨어지는 걸 간신히 막았다. 절벽이 높지 않아, 죽지는 않겠지만, 헬기를 타고 집에 갈 뻔했다. 이 날씨에 헬기가 뜰 수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암벽에 뒤로 넘어져 아픈 허리를 주무르며 다시 길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등산 앱이 반응한다. 깜짝 놀라, 확인해 보니, '큰감투봉' 반경 50m 내다. 해서 큰감투봉을 향해 계속 갔으나, 어디에도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가 없다. 해서 지도로 위치를 확인해 보니, 이미 정상을 지나쳤다. 뭐 그러려니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나무를 연결한 깃대에 빨간 깃발이 바람에 날리는 게 보인다. 도대체 누가? 왜? 설마 큰감투봉? 그럼, 정상에 세워야지! 계속 길을 가면 붉은 깃발의 용도가 뭔지 아무리 추리해봐도,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러다, 길을 막고 있던 나무에 머리를 얻어맞고, 빨간 깃발은 망각으로 들어갔다. 아픈 머리를 쓰다듬으며, 등산로 상에 나 같은 숏다리도 부딪힐 정도의 방해물을 처리하지 않은, 국립공원 공단에 욕을 한바탕 퍼부었다.
안개 속에서 왼쪽으로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가리봉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서북능선을 따라 대승령으로 향하는데, 등산 앱이 반경 50m 내에 고지가 있음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깜짝 놀라,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대승령'으로 그때 시각이 10시 48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대승령도 산꾼이 인증한 고개가 된 거지? 그때, 진행 방향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대승령으로 갔으나, 아무도 없다. 사실 30분 가까이 아침을 먹는 동안 수를 알 수 없는 산꾼이 나를 추월했고, 그중 한 명을 내가 다시 추월해, 앞에 몇 명이나 있는지 궁금했다. 해서 서둘러 그들을 따라가기로 하고, 대승령의 표지목과 소개문을 사진으로 남기고,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남기려는 순간, 장수대 쪽에서 등산객이 올라오더니, 표지목만 사진으로 남기고 바로 귀청으로 향했다.
상부상조로 서로의 인증을 남기려 한 내 생각이 무색하게 재빨리 사라져가는 등산객의 뒷모습을 보고, 다시 삼각대를 조립해 강한 바람에 넘어가지 않기를 빌며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남겼다. 심하게 흔들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대승령에 있는 지도를 보며, 앞으로 가야 할 구간의 경사도를 확인하고, 대승령을 떠나, 11시 29분에 안산 갈림길에 도착했다. 왼쪽이 안산, 오른쪽이 십이선녀탕 계곡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다. 해서 일단 오른쪽으로 가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안산으로 향했다. 이정표에 의하면 남교리까지는 7.6km 거리다. 안산을 거쳐 가면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떠한 정보다 없다. 안산 방향으로 가자, 금줄과 출입 금지 경고문이 서 있다. 물론 금줄 넘어, 경고문 뒤로, 산꾼이 오간 흔적이 확연하다. 경고문에 의하면 올해 12월 30일까지 출입 금지다. 그럼, 내년에는 합법적으로 갈 수 있다는 건데, 믿을 수가 없다. 북한산 보현봉도 매번 종료 시기가 되면, 계속 연장해 지금까지 출입 금지다.
사실 여기서부터 안산까지는 기복은 있으나, 심하지 않아, 거의 평지나 다름없다. 다만 안산에 오르는 건 쉽지 않아, 땀을 좀 흘려야 하지만. 안산 가는 길목에 한반도봉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어, 가끔 능선에서 벗어난 정상에 오르기도 하며 가, 정상석이 서 있는 곳에 도착해 보니, ‘한반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왜 한반도라고 기억하고 있었을까?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안산으로 향해 철조망으로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는 지역을 통과했다. 매번 지나칠 때마다, 도대체 뭘 보호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철책을 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안산으로 향하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오는 게 점심시간이다. 해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봤으나 없어, 아무도 오가지 않을 등산로에 주저앉아, 아침과 같은 방법으로 점심을 준비했다. 다른 게 있다면, 누룽지에서 라면으로 바뀌었다는 거.
그런데 이번에는 15분이 걸렸다. 누룽지를 끓이는 것보다 라면을 끓이는 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등산로 상에 있는 모든 흔적을 지운 후 다시 안산으로 향해, 12시 50분에 안산 갈림길에 도착했다. 갈림길에서 십이선녀탕 계곡으로 내려가야 해, 배낭을 벗어 나무에 걸어두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안산을 오르기 시작해 3분 정도 올라가자, 위가 정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등산 앱이 전혀 반응하지 않아, 비법정이라 그런지 궁금해하며, 올라가 보니, 정상은 더 올라가야 한다. 다시 오르기 시작해 한참을 올라가자 등산 앱이 반응한다. 정상 50m 내로, 그때 시각이 12시 55분이다. 정상이 가까워 혹시 놓치는 모습이 있을까 봐, 동영상을 찍으며, 위로 올라가는데, 급경사에 빙판이라, 네발로 기지 않는 한 올라가는 게 불가능했다. 두 손은 주위의 뿌리든 뭐든 붙잡고, 아이젠을 빙판에 박으며 올라가, 12시 59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50m를 가는데, 4분이 걸렸다.
아예 인적이 없는 곳이라, 삼각대를 이용해 간신히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가까워, 몸통만 나왔다. 해서 멀찍이 띄어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이번에는 바람에 흔들려 쓰러지며 사진이 찍혔다. 다행히 핸드폰에는 충격이 가지 않아, 다시 삼각대를 세우고 재빨리 인증을 남겼다. 강한 바람에 날려갈 거 같아, 사진을 찍은 후 재빨리 내려가려고 보니, 올라온 길보다 상태가 좋아 보이는 길이 있어 그 방향으로 정상에서 200여 미터를 내려갔다. 그런데 배낭이 있는 곳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예상대로다. 이게 이번 산행 첫 번째 알바다! 해서 다시 네발로 기어 정상으로 돌아와, 아까 올라왔던 길로 내려갔다. 암벽이나, 빙벽이나,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힘들고 위험해 주변의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그렇게 내려가 배낭이 있는 곳에 도착한 시각이 1시 21분이다.
이제는 십이선녀탕 계곡으로 내려가는 게 문제다. 당연히 이정표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그나마 다행은, 눈 위에 찍힌 앞선 산꾼의 발자국 덕에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었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앞선 산꾼도 길을 찾아 우왕좌왕했다는 거. 그렇게 발자국을 따라 내려가, 1시 45분에 십이선녀탕 계곡 정규등산로와 만났다. 간식으로 귤을 까먹으며, 첫 번째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1시 50분에 두 번째 안산 갈림길을 지났다. 2019년에는 두 번째 갈림길로 안산에 올라, 첫 번째 갈림길로 하산했었다. 2시 1분에 남교리까지 6k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날 때, 갑자기 6시 5분에 버스가 ‘신의주 순대국’ 앞에 도착한다는 인솔 대장의 말이 16시를 잘못 말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6시면 산행에 14시간을 주는 거라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든 생각이다. 해서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해 보려고 했으나. 통신 불량지역이다. 현재 시각 2시, 16시면 남은 시간은 2시간으로 서둘러야 한다.
십이선녀탕 계곡을 따라 내려가며, 좌나 우의 계곡과 폭포를 감상했는데, 아직 얼어 있어 폭포의 느낌이 살지 않았다. 그래도 동영상과 사진을 찍으며 내려가, 2시 33분에 복숭아탕 전망대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복숭아탕은 다를 거라는 기대를 안고, 전망대로 향하는데 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럼, 장엄한 빙벽이라도 볼 수 있을 않을까 기대했는데, 막상 전망대에 도착해 복숭아탕을 보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복숭아탕은 여름이다. 비록 탕에 실망했을망정, 남교리까지 남은 거리가 얼마되지 않는다는 것을 위안 삼아 잔도를 따라가다가 예상대로 거대한 빙벽을 만났다. 내려오면서 여기는 빙벽이 있지 않을까 했던 곳에 정확히 빙벽이다.
2시 57분에 구름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물을 마시려고 보니, 덥지 않을까 해서 얼린 차 한 통과 얼리지 않은 차 한 통, 두 통의 물을 가져왔는데, 얼린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안 얼린 차까지 추위에 얼어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해서 체온으로 얼음을 녹이며, 남교리로 향해, 3시 18분에 십이선녀탕 계곡의 마지막 폭포라고 할 수 있는 응봉폭포를 지났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통신 가능 지역에서 안내산악회 사이트에 들어가 마감 시각을 확인했는데, 6시 즉 18시가 맞다! 고로 남은 시간을 뭘 하며 보내야 할지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뭘 할까 고민하며 가는데, 아이젠이 걸리적거리기 시작해 3시 44분에 벗었다. 그리고 계곡으로 내려가 깨끗이 씻은 후 손에 들고, 다시 내려가 4시 4분에 남교리 탐방 센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탐방센터 앞에 있는 십이선녀탕 계곡 소개문을 보니, '복숭아탕'이 아니라 '용탕'이라 표기하고 있다. 언제 이름을 바꿨을까? 내가 엉덩이탕이라고 놀려서 바꾼 건가?
사실상 산행은 끝나고, 남교리 '신의주 순대국'으로 가면 된다. 남은 시간은 하산주를 마시며 보내기로 했다. 탐방센터를 떠나며, 설악산국립공원 안내도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뒤로 돌아 안산 주변의 모습을 사진 찍기도 하며 남교리 버스 정류장으로 향해, 4시 20분에 도착했다. 그런데, 신의주 순대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한계리 방향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쪽으로 향했다. 한 300여 미터를 가자 저 멀리 대규모 황태 판매장이 보인다. 순간 거기에는 신의주 순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해서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해 보니, 반대편에 있다. 두 번째 알바다! 버스 정류장에서 지도를 확인하지 않을 걸 후회하며 걸음을 돌렸다. 그나마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이 남아, 급할 건 없으나, 무박 산행이라 지칠 대로 지쳐 걷는 게 힘들었다. 그렇게 지친 몸을 끌고, 500여 미터를 가자 저 앞에, '신의주 순대국밥' 간판이 보인다. 4시 35분으로 산행이 끝난 시각이다.
3
식당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야외테이블에 앉아 있던 등산객이 아는 체를 하며, 식당 안에서 기다리면 된다고 한다. 주인장이 날이 추워, 주문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식당 안에서 버스를 기다릴 수 있도록 배려한 거다. 애초 하산주가 목적인 나야, 상관없지만.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마을 주민?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쌍이 식사 중이고, 우리 일행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해서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보니, 다 순대 관련인데, 와중에 '순대 정식'이 눈에 띄었다. 해서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순대 모둠과 국이 같이 나온다고 해, 이슬이와 함께 그걸 주문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주문한 게 나왔는데, 순대 모둠은 예상대로다. 그런데, 국의 다진 양념을 푸는 동안 내부의 고기를 보고, '아차, 실수했다!'라고 속으로 외쳤다. 유명 순댓집 술국보다 양이 많다. 둘이 소주 5병은 비울 수 있을 수준이다. 와중에 밥까지!
그냥 순대, 물에 빠진 순대를 안주로 이슬이를 마시는데, 순대 맛도 일품이다. 그리고 석박지가 맛있어 보여, 밥과 함께 먹었는데, 맛있다. 반찬이나 순대 다 일품이다. 원래 산꾼들이 전국 여기저기를 다녀, 맛집을 잘 아는데, 안내산악회 버스 정차장으로 이 집을 선택한 이유를 알 거 같다. 그렇게 맛에 감탄하며, 이슬이 두 병을 마시고, 5시 55분경 계산 후, 버스가 도착하는지 창밖을 주시했다. 애초 6시 5분 도착 예정인데, 5시 59분경 도착해, 버스에 탔다. 그리고 무박이라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추위에 떨며 해발 1,000m가 넘는 23km를 달렸고, 따뜻한 식당에서 이슬이 두 병을 마셨으니, 잠을 자기에는 최상의 상태라 바로 잠이 들었다. 와중에, 휴게소에 들리는 거 같았으나, 올 때와 같이 무시하고 그냥 잤다. 그리고 8시 44분에 양재에 도착하는 거로, 4년 만의 설악산 서북 종주를 최종 마감했다.
처음 계획한 대로 '한계령 휴게소 → 한계령 삼거리 → 귀때기청봉 → 1,408봉 → 큰감투봉 → 대승령 → 대한민국봉 → 1,408봉 → 안산 → 십이선녀탕계곡 → 남교리 지킴 터 → 신의주순대국밥 앞'의 23.24km 구간을 12시간 40분 동안 달렸다. 이동 11시간 25분, 휴식 15분!
역시 설악산 서북능선은 만만한 구간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예보대로 싸락눈과 짙은 안개로 조망이 좋지 않아, 그저 앞만 보고 달린 산행이다.
앞으로 다시 갈 일은 없을 거 같아, 무리해서 안산까지 달린 산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