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고 있고 바깥풍경은 어릴적 동화책속에서 본 세상같다. 포근하고 정겹다. 굴뚝에서 폴폴 연기라도 나는 풍경이 더해진다면 덧붙일것 없는 한폭의 평화스런 그림같으리라.
아침내내 깍두기를 담궈 보겠다고 부엌에서 서성였다.
이곳에 온 후 내내 남편은 식사때 마다 '시원한 어머니(울엄마) 깍두기' 타령을 해댔다. 어제(일요일)는 캔사스시티 근처 오버랜드 팍(overland park)이란 곳에 있는 한국시장을 다녀왔다. 토요일 밤에 눈이 조금 내렸지만 고속도로는 깨끗하고 한산했다. 로랜스에서 23번가 도로를 동쪽으로 그져 달리기만 했더니 그길이 쉬이 한국장이 있는 맷캘프(metcalf)란 도로와 연결이 되어있어 쉽게 한국장을 찾을 수 있었다. 집에서 45분 쯤 걸리니 자주 시장을 갈 수 없을걸 감안하여 집어 들기도 했지만 기본재료를 사야하다보니 277불 83센트 란 거금을 지불해야 했다.
한국장은 제법 규모가 컸고 물건도 한국식품과 아시안푸드까지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마트에 가면 늘 집어넣던 브랜드 식품들이 거의다 있었지만 역시 수입을 해온 것들이라 원래 가격에 30% 정도 더 붙여져 비싸단 생각이 들기도 했거니와, 그간 5년반을 못보고 지냈던 미국에서 만들어진 한국식품 브랜드(아씨표, 왕표, 주씨표 등등, 포장의 세련미는 한국에서 물건너온 것들만 못하지만 질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데 가격은 저렴함) 들이 반갑기도해 꼭 필요한 것만 빼고는 반가운 이곳의 한국브랜드식품을 집어들었다. 크고 싱싱한 무우 다섯개에 12불, 역시 싱싱한 중간크기의 배추 두포기를 5불에 주고 사며 내일은 김치를 담구리라 생각했는데 돌아오던길 액젓을 빼트린것이 생각났다.
김치와 깍두기 두가지를 다 하려해도 보관할 통도 없어서, 우선은 깍두기 부터 하기로 했다.
무를 두개 조금 넘게 깍뚝 썰기로 썰어놓고 나머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생채를 하려고 채썰기를 했다. 나중에 떡이나 해먹어볼까 하고 어제 집어넣었던 찹쌀가루를 조금 내어 찹쌀죽도 쑤었다. 마늘이랑 생강을 빴는데 chopper(가는 기계)가 있으면 스위치만 한번 넣으면 단번에 갈려질것을 마늘 빻는 그릇(이것은 Canda교수님 친구분 집에서 들고온것임)에 넣고 나무막대로 빻자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부실한 내어깨가 다 아파왔다. 완전히 원시때 김치담는 형상이다. 그간 문명의 헤택을 너무 누리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미국에 있을때 한번도(정말 단한번도) 사먹지 않고 담궈먹던 김치를 한국에 가선 늘 친정엄마한테 가져다 먹느라 사실 한국에 살던 5년 반동안 나는 몇번 김치를 담그지 않았다.
"힘든데 왜 그걸 하시냐고요? 제발 그만 하세요...." 늘 엄마한테 잔소리를 하면서도
"그럼 심어놔 있는걸 버리니?" 하시던 엄마의 김치를 낼름 가져다 늘 맛있게 먹었다.
그러느라 정작 14년 동안 갈고닦은 내 김치 만드는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몇번 가지지 못했었는데이제 그 실력을 발휘하려 하는데 첫작품이 젓갈 안들어간 깍두기라니... 버무릴 큰 그릇도 없어 두 곳에 나누어 버무린 깍두기가 오전내내 부엌에서 종종 거린 끝에 완성되었는데....익은 맛은 어떨지 모르겠다. 막 버무려 먹은 맛은 그런대로 일품인데...
오후엔 아이들과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동네길을 걸어보리라 생각한다. 어느집 벽난로에서 흘러나온 장작타는 연기냄새를 맡는다면 봄이 오던 고향, 논두렁을 태우던 그 정경이 아마도 떠오르리라.
그러나 저러나, 나는 춘천 퇴계동집 냉장고속에서 잘 익어가는 친정엄마표 김치생각이 오늘 참 간절하다.
첫댓글 그림같이실하게 보여주는 글 재미있습니다. 그나저나 젊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인터넷에 잘 안 들어오니 어떡하죠 전화로 통화 하시나요
고맙습니다. 통화는 이곳에 와서 한번 했었어요.
시간 맞추기가 수월치가 않아서...
이년쯤 김치를 담아 먹으면 귀국때는 김치담는 선수가 될것 같아요. 어려서 길들인 음식은 늙어서 다시 찾게 된답니다.
제 식습관은 아직 아이들 같아서 뭐 빵이나 과자나 과일 같은 것으로도 족히 끼니가 되는데 끼니때마다 밥에 국에 김치가 필요한 남편때문에 할 수 없이 김치를 종류별로 담아야지 싶습니다. 미국에 오면 대개가 요리사가 되어요. 사먹을곳이 마땅치 않으니 궁여지책으로 집에서 만들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실력이 늘게돼죠.
새로운 세상에서의 생활 재미도 있고 힘든일도 많으시겠어요. 젊어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
평생 한번도 우리나라를 벗어나지 못한 분들도 많아요. 행복한 마음 늘 간직하고 화이팅. 문학반총무
네...총무님. 근데...이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적응을 한다는게 그렇게 반갑지 만은 않네요. 남편과 아이들 때문에 왔지만...한국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많이 들어요.
박 선생님! 어쩜 젓갈이 안 들어간 소금 깍두기는 익을수록 더 시원한 맛을 내 줄거라고 확신합니다. 잘 숙성시켜서 시원하고 맛있게 잡수세요!! 파이팅!!! 선생님의 일상을 듣고보니 단 하루를 살더라도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반찬도 정성껏 만들면서 말입니다.
잘익어서 벌써 거의 다 먹었답니다. 어제는 그래서 배추한포기를 겉절이 처럼 무쳤지요. 젓갈이 안들어가도 별다른 차이가 없더라구요. 여긴 워낙에 재료자체가 맛이 있어 양념을 덜해도 왠만하지 싶어요. 잘지내고 계시죠?
정성스럽게 글 쓰시는 것처럼 요리도 살림도 야무지게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카페에 자주 들어오시니 미국에 계셔도 가까운 곳에 계신 느낌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생님. 명절은 잘 보내고 계시지요? 수필도 등단하셨다는 소식 들었어요. 축하드립니다. 더욱 건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