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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요당(羅謠堂) 이소라 시조집
『치라재』평설
나요당 이소라 박사와는 1990년 전후 제가 대전광역시 문화예술과에 근무할 때 당시 문화재청에 전문위원으로 계셨고 한국의 민속예술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가장 많이 하신 분으로 알았기 때문에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대전 웃다리 농악』 연구책자 발간을 요청하였으며, 이후 대전의 농요에 대한 연구를 요청 드리면서 가히 초인적인 열정을 가진 분으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이 박사는 서울법대를 졸업하신 분인데 농요에 심취하여 결혼도 안하고 평생을 사시는 분으로 널리 알려진 신비한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경남 창원에서 출생하여 부산여중, 경기여고,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서울음대 대학원에서 음악학 석사(국악이론 전공)를 받은 다음 (예술)철학 박사학위까지 받고 국가유산청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정년하시고 나서도 민족음악 연구소 대표로 촌음을 아껴 쓰며 특히 농요의 조사와 연구에 전념해온 분이다.
1960년대 제초제가 나와 논매기가 없어지고 1980년대엔 농요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서둘러 농요를 하시던 그당시 70세 이상 그 지역 토박이 노인들을 찾아가 생생한 음성을 채록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전국의 175개 읍면 방문 조사를 마치고 나서 그분들은 이제 대부분 고인이 되었지만 생전의 농요는 영원히 남길 수 있게 되었다.
1985년에 [한국의 농요 제1집]을 발간하였고 1986년부터 신동아, 샘터, 동아일보, 대전일보, 서울신문, 부산일보, 삼성사보(社報), 엽연초, 등에 많은 글을 발표 또는 연재하였으며, 1989년 8월 천신만고 끝에 국내 전국 읍면별 방문 농요 녹음을 단락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방문 녹음을 단락 짓자, 경상도 지역 모심는 소리 가창방법은 특이한데, 가야, 신라의 멸망과 함께 이 지역 민중들도 따라 건너갔을 터인 즉 , 일본은 어떠한지 알고 싶어, 세 차례에 걸친 20일 간씩의 국비 출장 조사를 하였고, 세편의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일본 모심는 소리에 대한 연구를 단락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은 우리보다 30년 전인 1930년대에 이미 들에서 사라진 농요를 NHK가 전국의 민요학자들로 하여금 조사 녹음한 자료들이 나요당의 1991년 방문당시 복간되어 나온 것을 모두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오랜 연구자들의 자료도 전해 받거나 헌책방을 다니며 수집하였단다.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전해 받았다는 사실을 소홀히 할 것 같아, 1992년~1995년 사이에 기회를 마련하여 중국으로 나갔다. 한국의 외무부와 중국 외사처 및 중국 소수민족학회의 도움으로 벼농사를 짓는 황하 이남의 24개 성(황하 이북의 4개성은 밀농사)을 모두 방문하여 모심는 소리 위주로 방문녹음 하였고 각 성에서 발간한 민요 책(중국民間歌曲集成)들을 구입하여, 중국의 모심는 소리에 대해 대략을 파악하였다. 대만의 원주민 촌도 방문녹음을 마치자 더 서쪽으로 나가보아야 한반도의 모심는 소리에 대한 유래가 명확하겠기로, 이어서 베트남(현지인인 민요학자가 계셔, 20일의 방문 녹음으로도 전체를 가늠할 수 있었음), 캄보디아(톤레삽 호수 주변 마을들, 베트남과의 국경 마을 등), 필리핀(마닐라, 케손, 바기오, 사가다, 본톡,칼 링가, 바나우에, 바타드 등), 미얀마(양곤, 빠떼인, 야생벼 지역이며 방문 위험지역인 미찌나, 땅지, 체인통, 만달레이 등), 태국(트라이 앵글, 북부 태국 등), 인도네시아(토라자, 발리, 족자카르타 등)을 방문하여 녹음하였다. 인도도 자유 방문 금지지역인 앗삼까지 운 좋게 방문 조사하였지만, 벼농사지대인 남부 인도에 대한 현지 학자들의 연구가 전혀 없고, 한 마을밖에 가질 못하여 한국의 모심는 소리 유래에 관련한, 보다 명확한 언급도 답보 상태라 한다.
2007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애리조나 주립대학에 3년간 교환교수로 있는 기간에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2개월 머물면서 옛 인디언 민요자료들과 미국의 국회도서관에서 재 발행한 초기 음원자료 모두와, 그밖에 2개의 음원 회사에서 발행한 초기 인디언 민요자료들을 모두 구입해 올 수 있었고, 귀국하자마자 [북미 인디언의 민요를 찾아서]를 발간(2013년)하였다. 이 기간에 미국 서부 호피 인디언들의 묵직한 희귀 사전을 입수한 것도 적지 않은 소득이었다 한다.
이탈리아의 벼농사 지역인 북부 포강 유역 롬바르디아 농가 방문, 헝가리, 슬로바키아와 바이칼,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와 케냐 농요 녹음, 중부 오스트랄리아의 원주민 지역, 동남아시아, 또한 국내의 농요 중심 민요 조사(상여소리, 동요 등)를 하면서 여성인 나요당이 현지 토박이 농민들과 나눈 대화는 음악적 가치, 향토사적 가치, 민중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국내의 지역별 방언조사가 어려운 시점에서 선율 이외에 나눈 대화도 방언 연구에 소중한 자료일 것이다.
나요당은 그동안 발간서적 80여권, 논문 160여 편을 발표하였다. 그 중에서도 북한 포함 전국 도별 [음원첨부 논매기소리 총서]12권을 업적으로 여긴다고 한다. 지금은 공익재단 나요당 농요상 기념사업회를 발족하면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나요당 시조집 발간을 보면서 시조가 시절가조(時節歌調)라는 데 연계하여 배경을 염두에 두고 볼 필요가 있어 그동안 지구촌의 민요와 농요를 연구해온 부분을 조금이나마 먼저 소개하는 것이다.
이토록 참으로 고결하신 분으로 경외심을 가져온 나요당 이소라 박사의 문학적 배경을 감히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엄두를 내기 어려운데, 친히 불러주시고 미력한 저에게 시조를 먼저 써왔다는 선입견으로 평설을 부탁하셨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무겁고 난해한 과제가 아닐 수 없으니 난감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나요당이 문학 활동으로는 2001년 수필집 『농요의 길을 따라』를 발간함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볼 수 있고 2008년부터는 대전의 문학모임 <전원에서>의 회원이 되어 본격적으로 문인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2010년 <다시올 문학>에서 수필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한 문인이 되었다.
내가 대전문학관 초대관장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 문학단체 <전원에서>가 대전문학관에서 모임을 갖는데 당시 참석을 요청받고 갔는데 놀랍게도 그토록 동분서주하시던 나요당 이소라 박사가 거기 참여하고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그때 나는 나요당에게 시조를 쓰시기를 권해드렸다. 농요와 민요와 시조는 정서적으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 후 나요당께서는 2017년부터 시조를 종종 발표하고, 10년 가까이 시조문학에 대하여 섭렵한 끝에 그동안 써온 시조작품을 모아 이번에 시조집을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시조만 써온 사람들과는 달리 나요당은 우리말의 운율 리듬 정서 사상 맛과 멋, 정과 한, 어조, 음악성, 역사성, 문화성, 철학성, 생생한 체험으로 숙성된 순수성, 애환, 기억, 그 토속 언어 속에서 살아가신 분들에 대한 그리움, 흙의 내음이 깊이 젖어있는 넓고 깊고 독자적인 시조세계를 바탕에 깔고 있어 앞으로 시조로 자연스럽게 녹여낸다면 독창성 있는 시조세계가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되므로 나요당의 시조세계와 관련된 정서적 배경에 대하여 긴 설명을 전술하였다.
< 시조 창작 >
시조집의 제목에서부터 이 시조집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시조시인들의 작품집과는 차별화된 특별한 주제와 시어와 시심이 깃든 시조집임을 짐작하게 한다. 나요당의 창작 시조는 그 배경에 다름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읽어 가면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특별한 의도를 가진 작품을 엇시조나 사설시조의 형식을 빌고자 한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작품이 모두 시조의 정격을 지켜 작품을 창작하였다. 일반적인 시조집에는 대개 한 묶음에 15~20편씩으로 단락을 지어 편집하는데 나요당의 시조집은 시조의 배경에 따라 구분하여 편수에 얽매이지 않고 다섯 단락으로 엮어 편집하였다.
<A>
첫 묶음 <바닷가에서>에는 노 철학자의 사변(思辨)으로부터 출발한다.
바닷가에서, 묘수, 맹꽁이, 두드림, 썰물을 단시조로, 수선화, 허수아비, 겨울나무, 뻘 뱃길을 연시조를 써서 엮었는데 한 편 한 편이 뚜렷한 주제를 담아내고 있으며 시조의 배행과 전개도 각기 음악적으로 적합하게 선택한 것 같다.
저만큼 파도가 일었다 사라지듯
마음속 번뇌도 일었다 사라지네
물결은 치료사인가
대 자연의 보살핌 -<바닷가에서> 전문
잠들지 않는 바다 언제나 노래하는 바다 나요당의 철학은 자연에 귀착하여 의인화하고 예술화하는 통로로 동반하는 번뇌도 자연으로 회향한다. 파도는 일었다가 사라지고 또 끊임없이 일어서 온다. 물결은 대 자연의 경작이고, 대자연의 치료사이다. 그렇듯 끊임없이 일어오는 번뇌도 사유(思惟)의 물결이고 치료사이며 대 자연의 작용이다. 그것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토착 원주민의 노래이고 몸짓임을 직감할 수 있다. 많은 할 말을 함축하여 한편의 단시조에 담았다. 한 곡의 음악으로 작곡하여 악보도 첨부하였다. 음악적 해석을 붙일 수 없어 미안하다.
잎들 다 떨쳐내고/ 앙상히 서있는 너/ 죽었나 여기지만/ 봄 되면 잎 돋우네/ 이 세상 이치라는 것/ 이에 더함 없어라//
겨울잠 자는 동안/ 넌 무엇 하려할까/ 여전히 땅 속에선/ 일상이 반복되네/ 새 봄을 준비하느라/ 한눈 팔 틈 없는 듯//
여름내 맞은 햇살/ 되삭임 하여놓고/ 열매 분 모양 따라/ 따로 모아 놓으네/ 결실의 여유로움이/ 채곡채곡 오늘도 -<겨울나무 전문>
나요당의 시조는 여러 편에서 도치법을 즐겨 사용함을 볼 수 있다. 겨울나무는 잎도 꽃도 열매도 다 내려놓고 죽은 듯 살아 있다가 봄이 되면 잎을 피우기 시작함 같이 세상 이치가 굴레를 벗어나지 않는다. 들노래도 그러하다. 추수가 끝나고 모두 거두어간 들에는 아무도 노래를 불러주지 않지만 봄이 오면 정령(精靈)이 되살아나듯 노래도 되살아난다.
지혜로운 나무는 겨울을 사는 방법을 안다. 나무뿐만 아니라 사람도 세상도 겨울을 사는 방법을 안다. 죽은 듯 계절에 순응하면서 살아있고, 쉬는 듯 분주한 나무의 말을 3수의 시조로 대변해주고 있다.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를 나무에 비유하여 자연스럽게 풀어낸 시조인 듯하다.
<B>
두 번째 묶음은 구구절절한 소리의 일부이다. 지구촌 어디를 가나 나요당이 가는 곳에는 토착의 소리가 있다. 원주민의 토속 민요가 있고, 자연의 곡조가 있으며 몸짓에 따르는 가락이 있다. 바람이 흐르고 강물이 흐르고 기억이 흐르고 역사가 흐르고 삶의 희로애락이 소리를 내며 흐른다. 그 흐름의 결이 지형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다르고, 언어에 따라 다르고,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다름을 나요당은 알뜰히 취록해 낸다. 녹음하고 취보하고 기록하고 정리하여 생생히 살려냈으니 하나하나가 영원히 이어 흐를 수 있는 고귀한 보화가 되는 것이다. 불경이 부처님의 진리를 전해주어 불자가 되게하고, 성경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진리를 전해주어 성자가 되게 하듯이 기록은 소중하다. 어느 땅에나 살아온 사람들의 참다운 삶을 가꾸는 순수한 문화가 있었기에 누군가 그것을 기록하는 일은 성스러운 작업이다. 나요당의 엄청난 기록들이 앞으로 다양한 예술문화로 꽃피우기를 기대하며 이제 시조 창작으로 착수한 작품 중에 한두 편을 골라 읽어보고자 한다.
에헤이 에이헤야 소호호니 잘하네
상선땅 농부님네 손이가 잘한다고
불렀던 소호니 소리 강길따라 단밀에
위야산아 잘하네 에헤후야 잘하네
의성 단밀 백성들은 위야산아 잘한다고
불렀던 잘하네소리 태령넘어 신평에.
잘하네 못하네 에이후야 잘하네
괴산의 민머리들 잘하면서 못한다고
불렀던 못하네 소리 세종시라 전동에.
저러구 저러한다 소호니의 잦은소리
서부 상주 농사꾼과 보은군 민초들
불렀던 저러구한다 옥천 영동 땅에도
잘하고 잘하네 얼카산이 참잘해요
한밭의 두레꾼들 불렀던 얼카산이
꽃심엔 소호니더니 테두리엔 알카산.
산봉우리 마다에 피어난 꽃 각가지
한 조상 이웃들 억양 속에 남아 있는
그 이름 잘하네 산맥 한 뿌리라 하네요.
-<거대산맥 ‘잘하네’> 전문.
우리나라 농요에 있어서 ‘잘하네’를 사용하는 지역이 꽤 널리 분포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아리랑이 지방에 따라 여러 곡조로 나타나듯이 들노래 가운데 ‘잘하네’라는 곡조가 충청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음을 깨우쳐 주는 시조이다. 나요당의 대전농요에 대한 여러 차례 언급을 들은 바 있는데, 대전농요의 특징 가운데 “잘하고 잘하네 얼카산이 잘하네”란 구절과 또한, 대전에는 다른 시군과 달리 ‘미싱이’라는 곡명을 쉽게 들을 수 있음이 특징인 바, 특히 유성의 탄동(현 노은3동) 들녘에서 불렸던‘미싱이’는 전국에서도 유일한 가창방법의 유장한 소리라 꼭 길이 보존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안타깝게 들려주었다. 이 시조에서 나요당은 ‘잘하네’가 흐르는 여섯 줄기의 흐름을 시조로 함축하여 작품화 하고 있다. ‘잘하네’가 들노래의 핵심구절로 그 가락을 전해주는 음악이며 역사인 이 시조를 달리 은유법이나 상징법을 동원하여 비유할 수가 없고 실제의 음악을 사실대로 전개하는 것이 소중하다.
‘잘하네’가 흐르는 지역을 거대한 들노래의 산맥이라 하였다. 상선땅 농부, 의성 단밀 백성, 괴산 민머리들, 서부 상주 농사꾼, 한밭의 두레꾼들이 뿌리를 이루어 불러주는 억양 속에 피어나는 꽃물결이 얼마나 장엄한 춤사위가 되는지를 실정 ․ 실감할 수 있는 시조이다.
농요는 민초의 구전적 사료이다
산으로 막히고 강길따라 열리고
두레가 생겨서부터 걸음마한 이 노래
천 구백 육십년대 제초제 보급으로
들에서 사라진 논매는 소리들이
토민인 소리애비의 기억에만 또렷이
-<발자취> 4수중 제1, 제2수.
농요는 교과서가 있어서 배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농요가 먼저 있어서 적어놓고 채록할 수는 있지만 들판에서 모심으며 모심기 농요, 논을 매며 논매기 농요를 선소리, 후렴소리로 불러서 구전으로 대를 이어가는 것이니 대가 끊기면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채록을 해두는 작업이 중요하다. 나요당은 이 시조에서 1960년대를 표기한 것은 초벌, 재벌, 만물로 여름내 두레를 모아 합동으로 논매기를 하면서 부르던 논매기 농요가 제초제가 생기고 나서 사라지니 농요마저 자취를 감추는 연대이기 때문이다. 당대에 들노래를 부르던 예인 즉 소리애비들이 세상을 떠나면 더 이상 농요는 이어지지 못하게 되므로 나요당은 사명감을 가지고 그분들이 살아계실 때 찾아다니며 채록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한 것이다. 그래서 전국의 읍면을 전부 다니면서 소리애비들을 알아보고 찾아가 채록 작업을 해두는 역사적인 책무를 다한 것이다. 농요를 사랑하는 사람, 농요의 참가치를 아는 사람, 농요를 버리지 않는 선각자가 스스로 지는 외로운 책무일 것이다.
< C >
세 번째 글 묶음은 나요당이 그토록 찾아가 만났던 사람들의 그리움에 관한 내용들이다. 우리나라의 175개 읍면, 북한 이주민, 일본, 중국, 미국,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앞에 전기한 세계 여러 나라의 원주민 민요를 들려주고 또 연구자료집을 전해주신 분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간직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의 일부를 시조로 새겨 놓았다. 대부분 고인이 되셨을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소리애비들, 향토 문화를 지키시던 명인들, 작고하신 통명농요 보유자 안용충 선생, 대청댐 가에 연꽃마을 고 장덕천 시인, 남양주 석화촌 설립자 고 백이세 노시인 김돈식 선생, 제주민요 고 고성옥 님 물허벅, 옛 정선 아라리의 숨자리 최봉출 선생을 비롯한 여러 명인들, 그리고 아프리카 추장님으로 알려진 파암 선생을 비롯해서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전한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공간을 보았네
오르면 별천지 하늘과 숲과 대화
도랑물 비추이니야 호수건너 산이라
오를 때 타종하고 떠날 때도 고하고
소리쳐 외치면 하늘로 오를 뿐
눈(雪)길의 수고로움을 감당할 만 하더라
활자와 선율의 뒤안길 담아내고
솔직함이 요약된 정감어린 그 모습
청중의 마음속까지 깊은 울림 울리네
-<어느 소리꾼의 작업실> 전문
그분들의 노년에 만나 이미 이승 분들이 아니어도 그분들이 들려준 이야기와 민요와 정한들은 나요당의 뇌리 속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고 또, 나요당은 그 기록들을 정리하여 영원히 물려줄 채비를 마쳤을 것이다. 문명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들이 살아오신 별천지 세상과 숲과 그 하늘, 거기 흐르는 여울물소리가 나요당의 호수에 가득히 모여 물에 잠긴 산에서 종소리, 북소리, 민요소리가 들린다. 계절이 바뀌어 눈이 쌓이면 발자국 없이 그 길로 찾아오는 소리들과 함께 살아가는 바로 그 소리꾼들의 작업실과 나요당의 작업실은 이웃하기도 하고 하나이기도 하다.
만났던 수많은 명인들과의 추억과 묵은 편지들은 오늘 나요당이 시조의 소재로 풀려나오고 있다. 앞으로 끊임없이 시조의 봄볕을 받고 새싹으로 돋아날 것이다.
가랑비 나리는 날
중국집 해물우동
한 그릇 시켜놓고
나누자 오라는 임
농막에 듣는 빗소릴
자장가라 하더라
-<초대> 전문
이 낭만적인 단시조 한 편에서 두 분의 다정한 한때를 선연히 볼 수 있다.
나요당은 방방곡곡을 찾아다니고 채록하고 정리하고 연구하면서 수많은 저서와 논문과 악곡을 만드느라 결혼하고 가정생활을 꾸려 사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신 것으로 알아왔다. 대전에 문화재청이 있어 이곳에서 정착하여 사시다가 노년에 문인이신 진악과 만나서 팔순과 파트너로 세계여행도 함께하시고 문학 활동도 함께하면서 살아가시는 모습이 곱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초대」라는 한 편의 시조는 진악께서 나요당을 초대하는 다정한 모습을 행복하게 그린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 D >
미래사회를 생각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서 봉사하고, 미래를 사랑하며, 미래를 위한 기도를 올리는 간절함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장 클 것이다.
미래를 위한 작품들로 한 묶음을 이루었다.
두세 사람 뜻을 세워 행동으로 옮기니
도심 속 삶의 터에 자그마한 책 마당
기증책 모으자마자 순식간에 넘치네
어린이 모여드는 우리 미학 아파트
저마다 재능 기부 시간 기부 멋진 이웃
엄마들 아이 손잡고 몸소 실천 책사랑
(화 15시 근무를 종료하며, 2022. 10. 18. 나요당)
- < 도토리 도서관 > 전문
자라가는 어린이를 보는 것만큼 큰 즐거움은 없을 것이며 희망차고 보람 있는 일이 더 있으랴. 아마도 나요당은 마을의 어린이 도서관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봉사하면서 느끼는 마음과 전해주고 싶은 현장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이 시조를 쓴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젊어서는 더 큰 봉사에 매달려 살았고, 아이를 직접 낳아서 기르지는 못했지만 이제 노년에 들어서 아이들을 보는 애착은 누구못지않음을 이 시조를 통해서 눈치챌 수 있다.
「베스트셀러」라는 시조에서는 현란한 광고보다는 진실하고 진정한 가치를 지닌 책들이 값짐을 알지 못하는 사회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는 내용을 담고 있고, 「일」이라는 작품에서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일하는 진정한 일꾼이 되어 나랏일을 잘하는 풍토가 아쉬움을 사자후와 같이 외치고 있다.
돌아보면 나라를 사랑하고, 사라져가는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서 일생을 바쳐온 나요당으로서는 물질화 되어가는 현실세태의 실망스러움이 얼마나 크겠는가?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애틋한 작품들을 읽고 공감하면서 안타까움을 부인할 수 없다.
기계가 숨쉰다 기계도 숨을 쉰다
팽개쳐 놓아두니 아예 숨을 거두더라
컴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노라면
들어온 바이러스 사람과 다투더라
대수술 하기 싫어 이리저리 피해보면
숨쉬는 기계도 요리조리 안(案) 내더라
고단수 생명체 앞에 마주앉아 있는 듯
-< 무생물 > 전문
이 작품에서는 시조의 형식에 대한 고민과 이해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시조의 추세는 700여년을 이어온 시조의 형식을 오히려 더 엄격하게 지켜가지 않으면 시조와 자유시와의 경계가 허물어져 시조의 정격 전통성이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 시조단의 추세라 할 것이다. 시조가 처음부터 형식을 정한 것이 아닌데도 그동안 남아있는 시조 5000여수가 자연스럽게 형식을 정립해 왔다는 것을 소중히 계승하자는 견해이다. 조선조 후기에 시조가 일반 서민에까지 영역이 넓어지면서 엇시조와 사설시조가 등장하게 되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양장시조까지 잠시 등장한 일이 있다. 시조는 일본의 하이쿠나 중국의 절구와 같이 엄격한 정형시는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유연성을 인정하는 부분이 있어왔다. 민요와 들노래를 평생 안고 살아온 나요당은 시조의 형식에 있어서도 효과적인 표현문학으로서의 유연성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위 「무생물」이란 작품에서는 초장 중장을 세 번 쓰고 맨 마지막 한 줄을 후렴구로 붙인 것은 음악에서 통용되는 ‘후렴’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그 외의 몇 작품에서도 사설시조에 가까운 작품 등이 불가피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민요를 전공한 학자가 불가피하게 쓰는 시조의 형식에 대하여는 앞으로 별도의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무생물」이란 작품은 기계를 이용하는 인간이 인용한계를 넘어 휴머니즘에 맞서는 메커니즘과의 갈등을 치열한 현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기계의 인간화가 앞으로 어떤 미래를 전개할 것인가에 대하여 인류는 여러 가지 예상을 가지면서 우려하고 있다. 오늘날 AI가 인간의 창작영역을 거침없이 지배하고 있다. 인간스스로 공격과 방어에 골몰하면서 보이지 않는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농요의 세상을 재현하고 계승하는데 효과적으로 매체를 활용하는 것은 큰 혜택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일시적인 실수나 공격을 받아 공중분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E >
다섯 번째 묶음은 다양한 생활체험과 세월의 기억들을 20편의 시조로 창작하여 엮었다. 자연과 상생하고, 불의에 저항하며, 여행에서 얻은 단상들을 시조로 승화시키고, 나요당의 취향에 따라 깊은 해석들을 붙여 놓았다.
20편의 작품가운데 마음에 더 생생하게 기억되는 작품 세편을 골라 본다.
산마루 흰 벚꽃/ 강가엔 버들 벚꽃
춤 공연 있다하여/ 봄나들이 나서다
* * * * *
양켠으로 열 지은/ 발놀림도 제각각
머리위엔 눈부신/ 아취형 만들고
그 중에 꽃잎 휘날림/ 으뜸인가 하더라
나는야 사라질 때/ 어떤 나락 이룰까
떨어지는 꽃잎에/ 일등상 메김은
마음속 깊숙한 슬픔/ 그것 때문 일까요
-<봄의 향연> 전문.
봄을 맞이하는 환희를 온몸으로 느끼고,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나아가 자연이 자신이 되어 노래한다. 자연의 의인화를 넘어 진심으로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 한다. 산마루에 또 강가에 만발한 꽃의 봄나들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꽃잎의 휘날림이다. 그리고 자신이 사라질 때 저토록 아름답게 낙화하여 휘날릴 수 있기를 소망함은 마음속의 슬픔을 다 털어버리고 해탈에 이르는 경지로 해석하고 있다. 첫수에서는 초장과 중장을 쓰고나서 종장을 아예 말줄임표로 전개하였다. 온갖 꽃들이 환희에 찬 춤의 공연을 펼치는 경계없는 자연의 무대에 상상의 여지를 남겨 종장을 대신한 것이다.
금수봉 애기폭포 사시장천 물 내리고
탐방객 끼리끼리 사랑방을 이루네
혼자서 산길 걸어도 두려움이 적은 곳
큰 폭포 아니라고 소침할 필요없고
산골물 졸졸졸 새끼 도롱 갸우뚱
오늘도 꽃비 맞으며 찾아드는 나그네
-<금수폭포> 전문
나요당은 금수봉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친 아래 마을에 자리 잡고 노년을 살아가고 있다. 계룡산의 굽힌 팔과도 같은 금수봉, 수통골, 도덕봉 아래에는 사계절 내내 물이 흘러 대전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휴양처가 되고 있다. 산책로로부터 등산로로 이어지는 대전시민의 대표적 명소로 국립현충원과 삼군본부가 있는 계룡대와 계룡산 정상까지도 이어지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정기가 왕성한 명당이라 하여 이곳에 머물면서 북벌계획을 성안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하고, 주변 자드락길에는 이삼평이 도자기를 구웠다는 계룡도요의 명소가 이어져 있으며, 학이 내려앉는 형국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학하리라 부르는 곳이다. 신선처럼 살아가는 파트너의 은거처로는 적합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물이 있고, 산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서 나요당과 진악께서 꽃비를 맞으며- 꽃비가 되어 금수폭포로 피어나 무지개를 거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울컥 솟은 눈물은 그 어떤 연고일까
칠세기 이끼 낀 끼추 라캉(Kichu Lhakhang) 사원의
송첸 감포(Songtsen Gampo) 침상엔 꽃잎이 쌓이고
축적된 정신활동 생활속에 담아내네
고승의 환생을 실제 믿고 살아가는
며칠을 지내보면, 진실의 나비효과
사라진 옛 소리도 땅에 녹음 되었다던
몇해 전 합천 촌로 믿음같은 바램도
잘츠로 향하던 숲길 아름다워 흐른 눈물.
*잘츠로 :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Salzburg.)
-< 끼추 사원에서 > 전문.
이 작품은 6행으로 초장을 삼았으며, 2행을 중장으로 삼았고, 종장은 1행으로 3,5,4,4의 음절로 4소절을 지키고 있다. 세계의 민요를 작품소재로 삼아 쓰는데 있어서 이 같은 형식을 활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란 특수성을 감안해 본다. 나요당은 제목 앞에 형식을 <엇시조>로 표기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엇시조는 어느 한구가 2~3음보 길어진 형태로 ‘중시조’로 보는데 현대시조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고, 이 시조는 ‘장시조’에 속하는 사설시조에 가깝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설시조는 형태적인 면에서 별곡내용과 대상 면에서 속요 내용을 혼융한 일종의 가극형태로 조선 선조 때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를 처음 시작된 형태로 보고 있는데 본 원고는 초장과 중장이 동시에 과음보로 되어있고 초장은 6행이나 되기 때문이다.
본 작품의 내용은 나요당이 세계 여러 나라의 민요를 연구한 부분의 한 예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좀 더 자세히 배경을 살펴보았다.
탄압받고 있는 외로운 나라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울컥 눈물이 솟는 것은 당연히 이해가 간다.
끼추사원은 티베트 라싸강을 티베트어로 부르는 이름이고, 끼추 사원은 티베트를 통일한 송첸 감포왕이 659년에 세운 사찰로 알려져 있다. 나요당은 이 사원을 방문하여 큰 감동을 느껴 그 기록을 함축하여 이 작품을 쓴 것으로 보인다. 7세기 이끼낀 끼추 라캉 사원에서 송첸 감포왕의 침상에 꽃잎이 쌓이고 그 전통정신이 생활 속에 이어져 고승의 환생을 믿고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의 나비효과를 어찌 감명 받지 않을 수 있었으랴. 옛 소리를 찾아서 전 지구촌을 밟고 다니는 나요당이 ‘사라진 옛소리도 땅에 녹음되었다’던 합천의 한 시골노인의 믿음과 바램을 떠올리며 솟아나는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는 이 같은 전설과 신화를 안고 이어져온 소리가 무수히 많을 것이다. 바로 나요당의 보물이 아니랴. 함축적인 시조로 쓴다해도 그 이야기의 뼈대를 꺾어놓을 수 없어 사설시조의 형식을 나름대로 차용하고, 가락을 가진 시조 한 편으로 엮어낸 것으로 이해된다.
오스트리아가 등장하는데 공식적으로 오스트리아는 하나의 중국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오스트리아 의회와 인권단체들은 티베트인들의 인권과 종교적 자유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2차 대전 중 독일의 포로가 되었던 하러가 티베트로 탈출하여 달라이라마를 만나고 티베트사람들의 고난을 그린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은 20세기 위대한 기행문학으로 인정되고 있다. 잘츠부르크는 알프스의 관문이고 고대 로마 때부터 만들어진 유서깊은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세계적인 관광도시이다.
< 맺는 말씀 >
이 글의 앞부분에 밝혔듯이 나요당 이소라 박사는 풍부한 학식과, 올곧은 철학과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한국은 물론 지구촌 토착민의 소리를 채록하고 연구해온 훌륭한 학자이다. 이 같은 현인이 시조를 함께한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고 그 많은 결실들을 시조로 다시 꽃피울 때를 기대할 수 있는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훌륭한 분이 쓴 시조 작품을 저로서는 헤아려 평설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다. 저에게 평설울 부탁하기에 제 나름대로 그동안 알아온 나요당의 삶에 비추어 처음으로 엮는 시조집에 나름의 평설을 붙이게 되었다. 나요당으로서는 첫 시조집이지만 편 편의 작품에 숨어있는 심오한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한 면이 많을 것이다. 다만 맡겨주신 분의 믿음에 충분한 답을 드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뜻을 존중하여 이 평설을 작성하였음을 밝힌다. 제가 본 작품들은 정격 시조는 철저하게 형식을 잘 지켰고, 부득이 작품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 평시조 형인 정격시조의 형식을 변용할 필요가 있는 작품은 그에 맞도록 창작되어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무게있는 첫 시조집을 상재함을 환영하고 축하하며 평설을 맺는다. (사)한국시조협회 고문 다울 박헌오.
E-mail : minjokeumak@hanmail.net

첫댓글 사라질 농요 보존을 위해 현장을 답사하여 채록하고 연구하는데 평생을 헌신하신 나요당 이소라 박사님의 삶이 존경스럽습니다.
나요당 시조집 '치라재' 발간을 축하드리며 박사님을 시조의 길로 인도하시고 빛난 평설을 써주신 박헌오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망설임이 있었지만 뜻있는 요청이어서 나름대로 썼습니다.
일생을 신념으로 사신 훌륭한 분입니다.
바로 읽고 격려의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