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주는 위로 / 정선례
3년 전. 퇴근하다가 의식을 잃어 중환자실에서 여러 날 만에 깨어났다. 일반 병실에 옮겨져서도 종일 누워만 있는 날이 며칠이던가. 혼자 일어나 앉고 휄체어로 화장실을 다니게 되었다. 드디어 보행 보조기에 몸을 의지해 재활, 작업치료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관할 목포 근로복지 관리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크고 작은 사고는 대부분 산재로 인정되는 반면 질병은 대개 그러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병원에 오래 있었던 적이 있다. 종일 비가 내려서인지 그때 들었던 음악이 떠오른다.
굵은 빗줄기가 연일 퍼붓는 어느 날이었다. 내가 앓았던 질환은 날이 궂으면 몸이 천근만근으로 느껴지게 한다. 마음이 공허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하루였다. 같은 병실 환자들은 저마다 커튼을 치고 무엇을 하는지 조용하다. 제 키보다 더 작은 보호자 간이침대에서 책을 보던 딸이 나를 힐끔 올려다보더니 좁은 침대로 올라온다. 마주 보고 눕더니 전공과목 교수님, 학과 친구들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흥미롭게 얘기하며 내 기분을 끌어올리려 애쓴다. 이 아이는 아빠를 닮아 말솜씨가 있다. “엄마 이 노래 들어 볼래? 이제 막 나왔는데 완전 대박이야.”. 딸은 이어폰 한쪽을 내 귀에 꽂아 주고는 나머지 한쪽을 제 귀에 꽂으며 말한다.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야. 우주 어느 공간을 흐르는 듯한 전주곡이 꿈을 꾸는 듯 몽롱하고 잔잔하다. 곡이 낯설면서도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 듣고 싶은 곡이다. 멜론 월간 차트 1위를 차지할만 하다. 사랑의 감정을 허스키한 음색과 서정적인 감성으로 부른 이 노래를 수시로 찾아 듣는다. 잔나비 보컬 최정훈은 모르긴 몰라도 영혼이 맑은 사람일 것 같다.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 달랠 길 없는 외로운 마음 있지 / 머물다 가셔요
가사가 한 편의 시로 작사자가 최정훈이다. 리더인 최정훈과 김도형, 장경준이 악기를 연주하며 부르는 밴드다. 어느덧 그에게 빠져들었나 보다. ‘꿈과 책과 힘과 벽’, ‘전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등 잔나비가 부른 노래를 다 찾아 들었다. 오늘도 일하고 들어와 젖은 옷 갈아입고 뜨끈한 온돌에 누워 성능 좋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듣는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음에 와닿아 좋다. 이 밴드의 다음 노래가 기대된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은 방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이 감미롭다. 그 노래에 얽힌 추억이 떠오른다. 젊은 날 음악다방에서 마음을 주었던 이와 테이블을 마주하고 듣곤 했던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와 이별하고 김완선의 ‘이젠 잊기로 해요’를 온종일 들었던 때가 있었다. 노래 한 곡이 가슴 깊은 곳에 들어와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해준 위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최근에 발표된 곡보다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불리는 노래가 귀에 잘 들어온다. 김원중 ‘바위섬’과 폴 킴 ‘모든 날, 모든 순간’, 김필 ‘다시 사랑한다면’ 다비치 ‘거북이’,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를 즐겨 듣는 걸 보면 나는 댄스곡보다는 발라드가 내 취향에 맞는 것 같다. 노래가 좋으면 덩달아 그 가수까지가 마음에 든다.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가수들의 타고난 가창력이 부럽기만 하다. 음악이 주는 위로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