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콩을 가리켜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합니다. 실제로 대두에 포함된 단백질은 쇠고기보다 2배나 높으며, 칼로리는 약 3배, 칼슘은 무려 20배나 더 많습니다.
이런 콩의 효능에도 불구하고 콩의 비린내 때문에 콩을 먹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콩으로 만든 두부입니다. 두부는 단백질이 90%나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의 약 93%가 인체에 흡수되는 놀라운 효능을 가진 식품입니다.
그렇다면 두부는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두부는 중국 한나라 때 처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선의 정조 임금이 집권하던 때인 1798년에 이만영이라는 사람이 쓴 문헌인 <재물보>를 보면 중국 한나라의 회남왕 유안이 두부를 발명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두부는 중국 한나라를 전후해서 등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세상에 선을 보이자마자 두부는 금세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는데, 두부와 관련된 유명한 인물로 삼국지의 영웅인 관우가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관우는 두부와 두부 장사꾼들의 수호신으로 추앙받습니다.
삼국지에는 나오지 않지만, 관우에 얽힌 민담 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관우는 원래 하늘에 살던 적제(남쪽을 다스리는 신)였습니다. 그런데 금기를 깨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왔다가, 이 일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지상으로 쫓겨나 갓난아기가 되었습니다. 이 갓난아기를 보구사라는 사찰의 주지승이 발견하고 절에 들른 두부 장사 부부한테 맡아 기르게 하였습니다.
이후 관우는 양부모를 도와 두부 장사를 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자기 약혼녀가 여옹이라는 음탕한 노인에게 납치를 당했노라며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여옹은 나이가 환갑을 넘었는데도 여색을 무척 탐하는 노인이었습니다. 그 수법이 참으로 치졸했는데, 자기 집 마당에 있는 우물만 남기고 마을의 모든 우물에 똥을 넣었고 사람들이 물을 마시려고 여옹의 집으로 몰려들면 물을 길러 온 여인들 중에서 젊고 예쁜 처녀만 골라 능욕한 것이었는데, 거기에 친구의 약혼녀도 있었습니다.
이런 추악한 죄를 짓고도 여옹은 지역 유지인 데다 그 지역 태수의 친척이어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는 친구의 말을 듣던 관우는 분을 참을 수 없었고, 친구와 함께 여옹의 집으로 찾아가 담을 뛰어넘고는 친구의 약혼녀를 막 겁탈하려는 여옹에게 칼을 휘둘러 죽인 후 약혼녀를 구해냈습니다.
하지만 졸지에 주인을 잃은 여옹 집의 하인들이 관청에 신고를 하는 바람에 관우는 살인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관우는 생업인 두부 장사를 그만두고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았습니다. 그러다가 유비와 장비를 만나 도원결의를 맺고 의형제가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이런 설화가 만들어진 배경은 한번쯤 주목해야 하는데, 무엇이 관우를 두부 장사꾼들의 수호신이 되게 했을까요?
관우의 고향인 산시성의 하이저우에는 소금기 많은 연못이 있어서 바다와 접하지 않고도 소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하이저우에서는 중국 내지를 오가며 소금을 팔던 소금 장사꾼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이 때문에 소금이 풍부한 산시성에서는 더 질 좋은 두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한 꽌시(인맥)를 중요시하는 중국 사회에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영웅호걸 관우와 고향이 같다는 사실은 큰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산시성의 두부 장사꾼들이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려고 관우가 두부 장사를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지어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연을 가진 두부는 대략 고려 말, 원나라를 통해 한반도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고려 말의 시인이자 정치인인 이색의 시집인 목은집을 보면, 대사구두부래향(大舍求豆腐來餉)이라는 시가 있는데 거기에서 “새로 나온 부드러운 두부를 썰어보았다. 이의 사이가 벌어졌는데, 먹기에 편하다. 참으로 나인 든 몸을 다스리는 데 뛰어나구나.”라는 시구가 나옵니다.
또한 1592년 조선을 침입한 일본군을 몰아내고 조선을 돕기 위해 파병된 중국 명나라의 군사들은 두부를 무척이나 좋아하여, 조선 조정에 자신들이 먹을 음식에 두부를 반드시 넣어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주로 잘게 썬 돼지고기와 두부를 함께 볶아 먹는 마파두부 같은 요리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명나라 군사들은 조선에 두부의 수호신인 관우를 숭배하는 신앙을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임진왜란 이후부터 조선에는 관우를 신으로 섬기는 사당인 관제묘(關帝廟)가 전국 각지에 들어섰고, 조선의 숙종 임금은 그 자신이 관우를 열렬히 추앙하여 관제묘에 직접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밖에도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이민자들이 미국에 건너가서 두부 문화를 전파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토푸티(Tofutti)라 불리는 음식이 디저트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 토푸티는 바로 두부를 얼린 아이스크림입니다. 토푸티는 부드러운 순두부를 얼린 다음 거기에 크림이나 설탕을 첨가해 먹는 것인데, 먹을 때의 감촉이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습니다. 또한 토푸티는 주로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나 몸에 유당이 부족해 우유를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크게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두부가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전파되면서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난 것입니다.
출처: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도현신 지음/ 시대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