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지고, 피고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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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국립극단 특별공연
2008. 11. 14(금) ~ 11. 28(금)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공연 의의
국립극단이 선택한 2008 우수레퍼토리 선정작 <피고지고 피고지고>
국립극단(예술감독 오태석)은 2008년 시즌을 마무리하는 국립극단 우수 레퍼토리 특별공연으로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의 <피고지고 피고지고>를 오는 11월 14일부터 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1990년대 이후 최고의 화제작을 만들어낸 "불 좀 꺼주세요"와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의 명콤비인 이만희 작가와 강영걸 연출의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자신들의 공동 작품 중 단연 최고로 꼽는 작품이다.
1993년 초연 당시 관객의 열렬한 반응에 연장 공연에 들어갔고, 1997년 앵콜 공연에는 한 달 동안 매회 유료객석 점유율 80%이상을 기록했던 최고의 화제작이다. 1998년 미국 뉴욕 특별 공연을 올렸고, 2001년에는 초연 당시 아쉽게도 시간제한으로 들어내었던 30여분의 분량을 되살려 최대한 원전에 충실하게 다듬어져 더욱 원숙한 무대로 재공연 되었다.
이 작품은 저마다 도박, 사기, 절도, 밀수 등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세 명의 노인들이 생의 마지막 희망으로 땅속 어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보물을 찾아 좌충우돌 애쓰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흔치 않은 수작으로 꼽힌다. 초연 이래 15년간 출연배우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 가며 더욱 깊어지고 완벽해진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국립극단의 중견단원 연기앙상블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명품공연’이 될 것이다.
15년 세월 농익은 베테랑의 힘, 세 남자와 한 여자
15년간의 농익은 세월에 깊이를 더한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다는 강영걸 연출의 창작욕은 무대 위의 네 명의 베테랑 연기자와 함께하여 더욱 빛이 난다. 1993년 초연부터 각각 왕오, 천축, 국전 역을 맡아 국립극단 최고의 개성파 배우로 부각된 이문수(60세), 김재건(62세), 오영수(65세)가 더 성숙하고 깊어진 몸짓으로 인생 패잔병인 세 노인의 덧없는 꿈을 연기한다. 초연 때보다 15년의 세월이 더 흐름으로써 그때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노인들의 섬세한 감정까지 다 표현해 낼 수 있겠다는 이들은 배우와 함께 작품도 같이 성숙해진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천방지축 예측 불가하지만 세 노인들에게 구원과 같은 존재로 최고의 찬사를 받는 난타 역은 계미경이 맡았다. 93년 초연부터 98년까지의 1대 난타 역에 손봉숙, 2001년 2대 난타 이혜경을 거쳐 3대 난타 역을 맡은 계미경은 특유의 부드럽고 섹시한 여성적인 매력으로 극에 활기를 더 해 준다.
◈ 작품 소개
아름답고 쓸쓸하여라,
부생약몽(浮生若夢) - 덧없는 인생, 꿈꾸며 사는 게지 …
우리말의 묘미를 가장 절묘하게 잘 살리는 작가로 알려진 이만희(55세).
드러내놓고 주제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재미와 철학이 조화되어 있는 그의 작품 가운데서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인생의 패잔병인 노인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욕망과 꿈의 덧없음을 직설적인 언어에 은유적인 효과로 풀어낸다.
갈 때까지 간 패잔병들의 마지막 한탕, 프로젝트명 ‘신 왕오천축국전’
작품의 주인공들의 이름은 신라 때의 고승 혜초가 727년에 4년 동안 천축(인도)을 기행한 후 쓴 「왕오천축국전」에서 따왔다. 무교동 낙지골목에서 만난 여자로부터 신라 때 보물이 묻혀 있다는 절터 얘기를 들으면서 이들은 인생의 마지막 베팅을 절터(돈황사)의 도굴에 건다. 이들의 도굴을 뒤에서 조종하는 여자는 신혜초, 나이순으로 신왕오(이문수 역), 신천축(김재건 역), 신국전(오영수 역)이라고 창씨개명까지 한 이들은 ‘신왕오천축국전(新往五天竺國傳)’이라 사업명을 정하고, 돈황산 아래 돈황굴을 파며 오로지 보물을 발견하겠다는 신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한달 한달 하며 참던 것이 어느새 3년. 보물은 과연 언제쯤 나타날 것인가,
아니 보물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능가하는 이만희의 <피고지고 피고지고>
부랑자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끝없는 기다림을 통해 구원의 세계를 찾아보는 사뮤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들어선 대표적인 연극 작품이다.
“난 누굴 기다리는 게 제일 싫어. 밀수 할 때도 매일 접선 접선 접선! 기다리는 게 일이었지. 저쪽 놈을 기다리노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라. 일이 잘못된 건 아닐까, 이 자식이 배신한 건 아닐까, 짜부가 낌새챈 건 아닐까…. 의심의 연속이지. 극도로 불안해지고 도망치고 싶고 나중엔 내가 먼저 배신해버리고 싶어진다고.”(왕오)
3년 동안의 도굴생활로 사람들과 하다못해 택시나 버스까지 아니 서울역 화장실 찌린내까지 그리워하는 왕오, 천축, 국전. 보이지 않는 보물에 대한 이들의 기다림은 미련이 있는 한 욕망이 있는 한 결코 버릴 수 없는, 아니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마는 또 하나의 ‘고도’다.
이 작품의 미덕은 인간 욕망의 질기고 질긴 미련을 기다림의 미학으로 풀어낸다는 데 있다. 또한 현대사회 속에서 지표를 잃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함께 시대와 상황이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인생의 진리를 조용히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마지막 진리, 대저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대저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 아니던가. 백일홍이 피었다 진다한들 어찌 세월을 탓할 쏘며 이 몸 죽어 무소귀면 산천 또한 더불어 황천행이 아니던가. 인간이 신선의 경지에 달하면 어찌 재물이 재물인쏜가, 어찌 권력이 권력일쏜가, 죄는 욕망을 좇음이요, 욕망은 무지를 좇음이니 욕망의 개꿈 속에 머물다간 세월들이 못내 아쉽도다.”(천축)
“… 그런데도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고 만물의 영장이란 말이야. 지구는 별 축에도 못 껴. 더부살이하며 떠도는 항성에 불과해. 인간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놈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떵떵거리며 살았든 죽을 쑤며 살았든 똑같은 거야. 그저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는 거야. 이 쪽 저 쪽 옮겨 다니면서…. 어디 쯤 엔가 우리가 살만한 별들이 또 있겠지, 안 그래? 이렇게 큰 우주 속에서 그런 별 하나쯤 없을 라고? 헤헤헤….” (천축)
◈ 작가 및 연출가 소개
이만희와 강영걸.. 그들이 다시 만났다.
연극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외곬수 강영걸 연출
연출가 강영걸은 1943년생으로, 이만희와 함께 한국 연극계의 스타로 잘 알려져 있다.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이듬해, 1970년 연극 ‘버스스탑’으로 데뷔한 이래 40여 년간의 그의 연극 인생동안 우리말의 정신과 멋을 무대 위에 잘 살려내는 연출가로 정평이 나 있어서 우리말의 기본이 돼 있지 않은 배우들에겐 호된 연출가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최선을 다하자. 죽을 듯이, 목숨을 걸고”는 그의 연극 정신이다. “내 연극적 신조는 언제나 휴머니즘이며,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와 문학성”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막이 오를 때마다 매회 긴장하는 철저한 직업인으로,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여 행간의 미세한 상징도 표현하고 정확한 분석과 깊이 있는 해석으로 작품의 문학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연출가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 <넌센스>, <올리버>, <불 좀 꺼주세요>, <피고지고 피고지고>, <아름다운 거리>, <리타 길들이기>, <아름다운 인연>등을 연출하였고, 한국연극상, 백상예술대상 연극연출상, LA예총 올해의 예술가상, 국립극장 올해의 좋은 연출가상, 예총예술문화상 예술부문 대상 등 수상하였다.
우리말의 묘미를 가장 절묘하게 살리는 작가 이만희
극작가 이만희는 1954년 충남 대천 생으로, 휘문중고,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에 동아일보 장막희곡공모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미이라 속의 시체들>로 등단하여 이후 <문디>,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등 발표하는 작품들마다 성공하여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작가로 주목받았다. 그는 드러내놓고 주제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탁월한 언어감각과 연극적 기호를 적절하게 풀어내며 작품 안에 재미와 철학을 조화시킨다. 연극 무대의 스타 작가로 활동하다가 영화 <약속>을 시작으로 충무로와 대학로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현재 동국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작품으로 <문디>,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불 좀 꺼주세요>, <돼지와 오토바이>, <피고지고 피고지고>, <처녀비행>, <돌아서 떠나라>, <용띠 개띠>, <좋은 녀석들> 등이 있으며 월간문학 신인문학상, 삼성문예상, 서울연극제 대상 및 희곡상,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영희연극상, 동아연극상 희곡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영화 시나리오는 <약속>, <와일드카드>, <보리울의 여름>, <아홉 살 인생>, <신기전>등이 있다.
◈ 등장인물 및 출연진 소개
항상 꿈을 꾸지만 언제 한번 활짝 피어 본 적 없는 피고지는 인생들
【왕오 / 69세】
“이놈아. 사귀어 봐야 절교하고 죽어봐야 저승 안다고 파 보기 전에 누가 알겠어?
확신이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파 온 것 아냐.”
절도로 이 세계에 입봉한 왕오는‘무교동 불곰’이란 별명에 어울리는 우직한 덩치의 소유자. 보물을 발견하면 청맹과니 여동생 집 한 채 마련해 주고 막내동생 짐차 하나 사 주는 게 소원이다.
이문수(60세)
콧수염에 듬직한 체격이 독특하다. 외모에서처럼 항상 에너지가 넘쳐 보이며 강하고 굵은 음성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을 준다.
1949생. 서울예술전문대학에서 수학
1974년부터 극단 동랑레퍼토리, 1979년부터 극단 에저또, 1985년부터 극단 산울림에서 활동한 후 1989년부터 국립극단에 몸담고 있다.
<초분>, <리어왕>, <출세기>, <마의태자>, <작가를 찾는 6인의 인물>, <동물원 이야 기>, <농민>, <유토피아를 먹고 잠들다>, <고도를 기다리며>, <뻔데기전>, <오이디 프스왕>, <사로잡힌 영혼>, <검찰관>, <홍동지는 살어있다>, <리차드 3세>, <브리타 니쿠스>등이 대표작이다.
【천축 / 68세】
“우리한테 너무나 어울리지 않지만 난 우리가 수행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각자의 죄를 씻기 위해 캄캄한 어둠 속에서 굴을 파고… 저 산 너머엔 뭔가가 있겠지 하면서 또 굴을 파고… 속죄키 위해 또 파고.”
귀한집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선생까지 했지만 노름에 빠져 처자식 모두 잃고 버스 운전수로, 종국엔 밀수운반책을 거쳐 형무소를 전전하였다. 시인과 철학자의 면모를 갖춘 천축은 몸은 약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가장 절절하게 표현할 줄 안다.
김재건(62세)
국립극단 부설 연극배우양성소 5기 출신으로 올해로 국립극단 생활 35년째다. 연약하고 병약한 듯한 분위기지만 의외의 코믹한 면이 크게 부각되는 독특한 느낌을 간직한 배우다. 이런 개성으로 외부 섭외가 많으며 역할마다 자기 고유의 색깔을 묘하게 우려낼 줄 아는 배우다.
1947년생. 서울 예술전문대학에서 연극을 공부.
극단 드라마센터를 거쳐1974년부터 지금까지 국립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고랑포의 신화>, <초립동>, <둥둥 낙랑둥>, <삭풍의 계절> 등이 대표작이다.
<물보라>의 '신기리', <꿈하늘>의 '신채호', <소>의 둘째 아들, <물거품>의 '나', <홍동지는 살어 있다>의 '전령', <테러리스트 햄릿>의 ‘클로디어스’ 역이 두드러진다.
<사로잡힌 영혼>의 일점도사 역으로 ‘사랑의 연극잔치’ 최우수 남자 조연상과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국전 / 67세】
“우리네 인생에서 기다리는 걸 빼고 나면 남는 게 뭐 있어? 손을 씻을 날을 기다리고 소식 있길 기다리고 친구를 기다리고 종국엔 회춘을 기다리겠지 기다리는 수밖에”
‘젊게 살자’가 신조인 국전은 보물을 찾으면 마카오에 가서 카지노를 경영하는 게 꿈이다. 허풍과 변덕으로 바람 잘 날 없는 국전이지만 가슴속에 뼈저린 아픔을 묻어두고 있다.
오영수(65세)
실제로는 세 주인공 중 제일 나이가 많지만 작품에서는 제일 어리고 촐삭대고 변덕많은 국전 역이다. 비교적 마른 스타일이지만 꾸준한 운동으로 단련된 건강한 체력이 장점이다. 특유의 발성법과 어투가 어떤 연극에서든 제격으로 들어맞는다. 연기력, 개성, 힘의 세박자를 두루 갖추었다.
1944년 생. 동국대 졸업
1963년부터 극단 광장, 자유에서 활동 1987년 국립극단 입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파우스트>, <승부의 종말>, <백양섬의 욕망> 등
희극적인 인물인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그래미오’와 <태평천하>의 맏아들 역에서 비극성을 지닌 간교한 인물인 <간계와 사랑>의 부름 역까지 연기의 폭이 넓다.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국전 역으로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자상을 받았다.
동아연극상 남자주연상(1979),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1993) 연극협회 최우수 연기자상(2000)
【난타 / 35세】
“전 진하게 살고 싶어요. 요즘은 주머니 속에 독약 넣고 다니면서 그날 그날을 최후의 날인 듯 살아가는 덜 떨어진 철학도들이 차라리 부럽다니까요?”
본래부터 뒤죽박죽인 난타는 불란서 유학까지 갔다 온 연극배우 출신이지만 어쩌다 요정 마담이 되었고, ‘진한 삶’에 대한 꿈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다.
계미경(37세)
세 노인들의 구원이자 극의 홍일점인 난타 역의 계미경. 극에 따라 이미지 변신이 큰 것이 장점이다.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방송사 아나운서를 거쳐 1998년 국립극단 입단.
<브리타니쿠스>의 ‘주니아’역, <햄릿>의 ‘오필리어’역, <문제적 인간 연산>의 ‘녹수’역, <산불>.의 ‘사월’역 등 개성 있는 주역을 맡아 왔다.
◈ 공연 미리보기
세 노인은 왜 도굴을 할까? 오늘도 …
좋은 공연에 대한 기억은 참 소중하다. 국립극단이 50년 역사속에서 대표적인 작품들을 골라내 새 무대로 다시 만드는 작업은 그러므로 의미가 크다.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1993년 초연돼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고 오영진작 김상열 연출의 <맹진사댁 경사>와 함께 90년대를 대표하는 창작무대로 선정돼 그동안 4차례의 국내무대와 미국뉴욕공연을 갖는 등 총 5차례의 공연을 가져왔다. 창작극의 대부분이 초연으로 사장돼 버리거나 어쩌다 재공연이 있더라도 많지 않았던 우리무대의 형편을 생각한다면 이작품은 그동안 자주 그리고 가깝게 관객과 만나온 이례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국립극장의 50년사 대표 레퍼터리로 선정된 작품들 중에서 좀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은 세 명의 나이든 남자와 한명의 젊은 여자다. 우선 국립극단의 레퍼터리 중에서 가장 소규모 출연진으로 만들어진 무대다. 무슨 거창한 역사를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회적인 문제를 파헤치는 문제작 같은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국립극단의 주요 레퍼터리로 선정된 이유는 뭘까? 거기에는 몇 가지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나는 처음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무대를 대했을 때 이작품의 작가 이만희와 연출가 강영걸의 만남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었다. 이 두 사람은 그때 이미 극단민예의<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로 서울연극제에서 대상과 희곡상등 각종상을 받았고 대학로 극장에서 <불좀 꺼주세요>의 공동제작에 참여해 연극계의 새로운 공연관행을 만들어 내는등 우리무대에 확실하고 차근차근한 족적을 그리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사람은 ‘말’을 아는 작가, 한사람은 작품읽기의 깊이와 무대구축의 장인으로 평가를 받고있는 연출가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만남은 국립극단의 중견 연기진들의 단단한 연기앙상블과 조화를 이루면서 득의 무대로 태어났고 이무대의 기억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명하게 오래 좋은 무대로 남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의 공연무대를 마주대했을 때 관객이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은 말의 재미였다. 이 작품에는 왕오, 천축, 국전이라는 이름의 세 노인이 등장한다. 이들의 이름을 붙여서 불러보면 그대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된다. 여기에 이 세 노인을 고용한 여자의 이름은 난타다. 견강부회로 보자면 그 이름 역시 백제에 불교를 전한 승려 마라난타쯤에서 왔다고 할까? 세 노인은 젊은 시절 도박, 사기, 절도, 밀수 등 온갖 잡동사니 범죄속을 드나들며 살아온 평탄치 않은 삶의 주인공들이고 이들의 고용주인 혜초여사는 과거와 직업이 아리송한 여자다. 세노인 하고 있는 일은 몇 년째 땅굴을 파면서 옛 절터에 뭍혀 있다는 전설의 보물을 찾는 것이다. 무대위에 사건은 없다. 땅을 파고 흙을 처리하고 그 흙으로 화초를 기르고 가끔씩 찾아오는 혜초여사를 바라보며 농담도 해보고 그런다.
무슨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극이 진행되면서 뭔가 변화하는 상황도 없다. 이들은 계속 땅굴을 판다. 보물을 발견한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그 희망마저 희미해진다. 이들의 행위를 좀 거창하게 설명하자면 마치 그리스신화의 시지프스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연극으로 치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부럽지 않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무대가 그만큼의 의미와 크기로 관객에게 슬금슬금 다가와서 큼직하게 마주서서 의연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이 작품이 지닌 매력이고 능력이다.
이무대의 이런 힘은 작가가 만들어낸 말들, 그 말들에 리듬과 의미를 찾아서 차근차근 구축해낸 연출의 손길, 그 말과 그 소리를 자신의 몸으로 서둘지 않고 풀어낸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 등이 모여서 이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작품의 초연무대 프로그램에 글을 쓰면서 작가 이만희의 말에 대해 나름대로 뭔가 설명을 해보려고 했다. 그의 작품에는 어디에나 ‘말’이 있다. ‘말’같은 ‘말’, ‘말’다운 ‘말’이 있다. 그의 주인공들이 하는 말은 사실감이 있다. 그것은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현실적인 느낌과는 다른 진실함이다. 그것은 그가 끌어낸 그의 주인공들이 겪는 그들의 생활이며 그 생활속의 진실이다. ’ 이글에는 작가 이만희의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말에 대한 감격이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의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말들은 언제나 진실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말들은 가락이 있고 신명이 있고 자금자금 삶의 진리가 스며 나오고 큼직큼직하게 삶의 의미를 그려낸다.
연출가 강영걸은 이만희의 이런 ‘말’들을 살려내는데 신이난 듯, 신명나게 풀어낸다. 그 말들이 지닌 가락을 찾아내고 장단을 추려내고 신명을 입혀서 재미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모든것이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덩치 큰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우리무대에서 장인정신이 투철한 연출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언어의 분석과 표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철저한 자세와 기술적인 해법을 찾아내는 연출가로 유명하다. 그는 작가의 말을 알고 그 말을 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는 연출가다.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에서 공호석을 필두로 한 민예배우들의 최선의 연기를 끌어낸 것이나, <그 여자의 소설>에서 이용이를 비롯한 배우들의 득의의 연기를 할 수 있게 한 것이 모두 그러한 ‘바르게 말하기’의 장인으로서 그의 힘과 능력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수 있다.
이 무대에서 세 노인역을 맡은 오영수 이문수 김재건은 15년전에 이미 국립극단의 중견단원으로 좋은 연기 로 득의 무대를 만들어냈었다. 그들은 그 이후 계속된 무대에서 같은 배역으로 함께 무대에 섰고 이제는 그무대, 그 배역의 이미지가 그들 연기인생의 주요 좌표가 됐을 정도다. 어떤 부분 어떤 대사에서 그들은 관객의 뇌리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소리와 어조, 느낌을 만들어 냈다. 이제 그들은 극중 세노인의 나이와 비슷비슷한 연배가 됐다. 어쩌면 2008년의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무대에서는 이들 원로가 되어가는 세배우의 명연기중의 명연기를 볼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기억을 능가하는 더욱 극중 인물, 왕오 천축 국전다운 주인공들이 우리를 만나러 무대에 등장하지 않을까?
이 무대에 화사한 색채를 보태주는 난타역에는 처음에 손봉숙, 2대 난타로 이혜경이 등장했었다. 이두여배우는 세노인과 땅굴이라는 칙칙한 무대에 이색적인 색깔을 칠해주는 역을 아주 선명하게 해줬다. 두 배우 모두 아주 예쁘고 매력적인 면을 많이 만들어내 보여줬었다. 새 무대에는 3대째의 새로운 난타로 국립극단의 젊은 주역인 계미경이 등장한다니 그 또한 기대가 간다.
2008년의 <피고지고 피고지고>가 감격일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연출가 강영걸씨가 아직도 건재해서 다시 한번 이 무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병에서 일어나 다시 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운데 그의 성공무대 중에 하나였던 이 작품을 새롭게 다듬어 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새로운 <피고지고 피고지고>에 기대의 갈채를 보낸다.
◈ 공연리뷰 기사 (1)
세 노인의 유쾌한 희망찾기 ‘정감’
고단한 삶이 거짓없이 고백될 때 화자와 청자가 갖게 되는 서로에 대한 우호적 정감은 우리가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서로에 대한 의무는 굳이 위로의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지 않아도 된다. 내 삶의 무게를 들어줄 사람이 있고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해줄 사람이 있어 말하고 싶은 걸 이야기 하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듣는 과정만으로도 위무는 충분히 전달된다. 국립극단이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공연중인 ‘피고지고 피고지고’(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은 이런 우호적 정감을 느끼기에 참 좋은 작품이다.
지칠대로 지친 세 노인의 삶의 무게가 무대에서 고백되고 관객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듣는다. 도박과 사기, 절도, 밀수 등으로 청춘을 날린 세 노인 왕오(이문수), 천축(김재건), 국전(오영수)이 가파른 인생길목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이들의 이야기가 희망을 향하고 있어서 청자는 더욱 흐뭇하다.
밑천 다 떨어진 세 노인은 도굴로 한 밑천 잡아 행복한 노후를 맞겠노라며 날마다 신라시대 한 무덤을 향해 땅을 파들어간다. 세상에서 쫓겨나 산속으로 들어온 그들이 또 한번 세상에서 쫓겨나 지하세계에서 펼치는 마지막 발버둥이다. 파도 파도 금은보화가 나오지 않지만 그들의 의지는 절대 허물어질 수 없다. 인생의 마지막을 앞뒀기에 이들의 고집과 희망은 그만큼 절실한 것이다. 난타(이혜경)라는 요염하고 젊은 술집 마담의 방문에 어쩔줄 몰라라하며 그녀에게 달라붙는 세 노인의 모습에서도 그들의 생의 집착, 희망 움켜잡기가 얼마나 강한지 엿볼 수 있다.
그들의 땅파기는 욕심을 덜어내는 과정이다. 땅을 파 생긴 빈 공간만큼 그들의 한몫 잡겠다는 즉물적 욕심은 점점 덜어진다. 더 이상 이들은 땅파기의 성과없음에 조급해하지 않는다. ‘조금한 희망 쟁취’에서 벗어나 ‘희망 기다리기’로 전환한 뒤의 이들의 땅파기는 얼마나 평화스럽고 아름다운가.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품고 매일 매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은 작가 이만희의 작품에서 늘 접할 수 있는 유쾌한 주제의식이다.
이문수 김재건 오영수 콤비는 삶에 지친 노인이자 아등바등 싸우는 친구이며 욕심에 찬 도굴꾼역을 과장된 몸짓없이도 잘 전달해줬다. 배우의 연기만 좋다면 무대적 과장이나 귀와 눈을 자극하는 몸짓이나 소리가 아니어도 참 좋은 공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준 호연이었다.
-2001. 5. 7 국민일보 손병호 기자
◈ 공연리뷰 기사(2)
원작대본 복원 … ‘유장한 호흡’ 살아나
국립극단의 스테디셀러 ‘피고지고 피고지고’(27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는 연출, 희곡, 배우 등 연극의 3박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이만희, 강영걸씨는 현재 우리연극계에서 가장 능숙하게 '말을 쓸 줄 아는' 작가와 ‘말을 그릴 줄 아는’ 연출가로 꼽힌다. 강씨는 90년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시작으로, ‘불 좀 꺼주세요’, ‘아름다운 거리’, ‘돼지와 오토바이’ 등 이씨의 거의 모든 작품을 연출해 공연마다 예술성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면서 연극계 최강의 콤비로 자리잡았다. 이들 콤비가 만든 ‘피고지고 … ’는 93년 국립극단이 초연한 후 거의 매년 공연되면서 국립극장의 고정 레퍼토리가 된 작품. 이번 공연에서 강씨는 그동안 공연시간 때문에 잘라냈던 30여분 분량의 대본을 모두 살려내 2시간 35분짜리 대작으로 새롭게 만들어냈다. 주인공 3명이 각자 자기 삶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조각맞추기식으로 의미가 만들어지는 상황이 시간관계상 1~2개 에피소드로 축소되면서 다소 비약됐던 극의 흐름이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제 모습을 찾은 것이다.
원작의 의미는 찾았지만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은 연륜있는 배우들의 페이소스와 유머를 함께 갖춘 연기로 채웠다. 오영수씨가 다소 허랑한 사기꾼의 색깔로, 김재건씨가 나약한 지식인으로, 이문수씨가 힘 좋은 깡패의 느낌으로 닫혀있는 비극적 현실을 재미있게 색칠하면서 인간의 순수한 영혼을 그려 내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이혜경씨가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인간에 대한 따듯한 사랑이 넘치는 즐거운 에로티즘을 선사, 끝없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며 피고지고, 피고지는 인연의 꽃을 그려낸다. 또 고(故) 최연호의 무대를 약간 화사한 느낌으로 재구성한 아들 기봉씨의 무대, 아스라한 나태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대경씨의 재즈맛나는 음악, 사실과 우화의 공통부분에서 찾아낸 손진숙씨의 분장과 의상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부분이다.
- 2001. 5. 18 문화일보 김승현 기자
첫댓글 두말할 필요 없이 서명했슴다! 역시 부선언니를 깨우는 건 '불의'로군요...불의를 보면 못참는 정의로운 김부선...언니가 보자는 연극인데 당연히! 봐야겠죠...^^ 날짜 조정 함 시작해 볼 게요...연극 벙개라..구미가 아주 당깁니다요...^^ 더불어 북한산행 벙개도..함 추진해 볼까요?
좋은생각 ^^
내일 사고친다 ... 또 ... ㅋㅋ
산행 포함시 16일 제안합니다. 비 산행시는 14일 또는 21일
칫 !
제가 계절이 주는 못된 선물, 감기를 결국 비켜가지 못해서...약간 뻗어있습니다..감기랑 싸워서 얼른 이기고...날짜 진짜조정 들어가볼 게요..오르미님 의견도 잘 참고하겠습니다...이번에야 말로 오르미님을 뵙게 되는 건가요?^^
믿지마라 상처받는다 ㅋㅋㅋㅋ
상처 받더라도 갈길은 가야지요. 부선님 많이 삐지셨나보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