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경을 넘나든 나무 이야기-3-부처님의 보리수
슈베르트(F. Schubert)의 연가곡<겨울 나그네>가 제격인 계절이다. 독일의 서정시인 뮐러 (W, Muller)가 쓴 시에 비운의 천제 작곡가 슈베르트가 곡을 입힌 노래, 24곡 중에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곡으로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 하는 그 노래 <보리수>가 부르고 싶은 날 이다.
나는 이 노래를 초등학교 6학년 때 유난히 풍금을 잘 치시던 J 선생님한테 처음 배웠다. 또 고등학교에서 몇 시간 형식적으로 배운 제2외국어 시간에는 독일어로 다시 배웠고, 대학 교양독어 시간에는 지금도 나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스트롬의 단편 소설 <호반 湖畔 Immensee>를 독해로 들었지만 나는 무디게도 슈베르트의 그 <보리수>가 부처님의 보리수 아닌 피나무(Lindenbaum)이라는 것은 한참 세월이 흐른 나중에 알았다. 슈베르트의 보리수는 피나무!!
저무는 이 해, 나는 오늘 음원에서 <겨울 나그네>를 찾아 연가곡을 듣고 있다. 더욱 내 마음 줄을 울리는 것은 이 노래 시를 지은 뮐러가 33세에, 슈베르트는 31세로 2년 간격으로 세상을 너무 일찍 하직했다는 기록이다, 그래서 내 속을 더 춥게 하고 있다.
(나는 그 그늘 아래서 단꿈을 꾸었네―-),
하나 더 있다. 결혼예식장에서 신부 입장과 함께 울려 퍼지는 행진곡으로 쓰이는 <딴- 따다 딴……, 딴- 따다 딴―> 하는 그 노래가 독일 민요 이고 우리나라 동요집에서는 곡명이 <소나무>로, 노랫말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으로 나와 있었다. 이 노래의 원어는 (O, Tannenbaum, O, Tannenbaum--)인데, 변역 번안이 아무리 창작이라 해도 전나무( Tannenbaum)가 소나무<Pine tree>로 요술 부린 듯 형질변경이 일어나니 정서니 뭐니 어쩌구 해도 그것을 알고 난 내 심사는 매우 못마땅했다. 나무도 제 이름을 바르게 불러 주는 게 예의 인 것을__. 전나무가 소나무로--
지난 2014년과 금년 2015년 두 해에 걸쳐 우리나라에 소중하고 귀한 부처님과 직접 연관된 보리수가 연거푸 들어 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는다.
2014, 1월 박근혜 대통령이 인도를 국빈 방문 했을 때 <반모한 싱> 인도 총리가 양국의 문화교류와 우호증진의 뜻으로 박대통령에게 선물한 <보리수> 묘목 한그루 선물한 적이 있다. 이 <보리수>나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은 얻은 그 자리에 있던 <보리수> 직계후손 이라했다. 인도에서의 반출문제와 국내 반입절차 등으로 박대통령과 함께 오질 못하고 몇 달 뒤에 인도항공편으로 한국으로 왔는데, 경기도 광릉 국립수목원에서 양국 관계자 입회하에 화려한 전입식이 있었다고 보도된 적이 있었고, 키 30cm의 이 <보리수> 나무가 열대성 상록 식물인 고로 지금 광릉 국립수목원 열대식물 온실 속에서 무난히 잘 자라고 있다.
또 다른 <보리수>는 2015. 3. 25일 조계사 스님들이 성지순례 차 스리랑카를 방문 했을 때 스리랑카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대통령이 이들을 방문단을 직접 대통령궁으로 초청하여 이 나라 국보급의 성스런 나무 <마하 보리수(Sti Bodhi)>라는 묘목 한 그루를 조계사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이때 스리랑카 대통령은 “조계사가 한국에 가 있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잘 보살펴준 감사의 마음”이라는 말도 함께 했단다.
이 <마하 보리수>는 인도 <아소카 왕>의 딸 <상가미타> 공주가 부처님의 깨달음의 성지인 보드가야의 보리수를 그 곳 스리랑카로 가지고 와 심은 것의 후손으로 이 나라에서는 국보로 여기는 나무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건너온 <마하 보리수>는 지난 7월 서울 조계사 연꽃축제가 열리는 날 화분이 황금색 보자기에 싸인 모습으로 잎줄기가 공개하기도 했었다. 나는 이 마하 보리수가 지금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 지을 수소문 중이다.
불교, 불교나라에서는 왜 이토록 보리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일까?
불교는 숲의 종교요, 나무의 종교라 이른다. 마야 왕비가 바로 이 룸비니 동산에서 한 나뭇가지를 잡고 아기를 탄생했으니 그 아기가 석가모니이시고 그 나무 이름을 걱정 없는 나무 무우수(無愁樹 , 아소카나무)이라 했고, 인도에서는 보통 보 나무(Bo tree), 스리랑카 에서는 피팔 나무(Pipal tree), 태국에서는 포 나무(Po tree)라고 다르게 불린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여 고행 끝에 6 년 동안 나무 밑에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 나무가 우리들이 말하는 <보리수(菩提樹)>라고 한다, 산크리스트어(범어)로는 깨달음을 보디(Bodhi), 인도에서는 피팔라(Pippala), 혹은 보(Bo)라고 하는 데,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가면서 한자를 빌려 보리(菩提)로 쓰고 그 나무를 <보리수(菩提樹)>라 한자로 기록된 것이다. 보리수는 뽕나무과 무화과속의 열대 상록 교목(큰키나무)이다. 고로 앞에서 말한 선물로 받은 두 보리수 묘목은 우리나라에서는 밖에서 자라지 못하고 온실 안에 모셔야 살 수 있다 한다.
부처님과 관계되는 나무, 즉 <무우수 無憂愁>, <보리수 菩提樹> 와 더불어 부처님이 40여 년간 세상에 도를 전하고 80세 되던 해에 여덟 그루 나무아래서 제자들의 받듦 속에 열반하시는 데, 이때 네그루의 나무는 말라 죽고 네그루가 쌍을 지었다 한다, 이 나무를 사라쌍수(斯羅) 혹은 <사라수娑羅樹>라 하여 이 역시 성스럽게 여기는 나무이다.
이들 세 가지 불교에서 성스럽게 여기는 나무들은 기후와 풍토상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살 수 없지만 이 들 성수에 가장 가까운 나무를 우리나라 나무들 중에 가까운 인연, 비슷한 나무을 찾아보자면 <무우수>는 남쪽지방에서 자라는 <붓순나무>가 이에 가깝고. <보리수>는 내가 인도 여행 시 여러 번 눈으로 확인 한 바로 우리나라에서는 낙엽성이지만 <찰피나무> 잎이 이에 가장 가까운 잎모양을 하고 있고. <사라수>는 한동안 우리가 많이 수입해서 쓰던 <라왕 (Lauan)> 과 사촌형제 정도가 되는 나무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 안에서 이 성스런 <보리수>가 가장 위엄 있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려면 경주 보문단지 열대식물원 <동궁원>에 가면 된다, 그곳에서 위용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내 유년시절 소꼴 베고 여름부터 가을까지 야산에서 소풀 먹일 때, 거기 우리 마을 앞 뒷산 중턱에도 <보리수>, <보리똥>이란 이름의 나무가 있어 그 달기도 하고 약간 시큼털털한 맛의 작은 열매를 직접 먹어본 적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중부지방이나 공원 가에나 고궁의 한 귀퉁이에 가면 바람이 조금만 불어 나뭇잎이 뒤집힐 때면 별안간 희끗희끗한 색의 이파리가 들어나 보이는 <보리수>라는 동명의 이 나무의 정체는 부처님의 <보리수>와 어떤 인연일가?
우리나라 안에 살고 있는 소위 <보리수>. <보리똥>,<보리밥>, <보리장> 이라고 불리는 이 나무 계통은 세계적으로는 50여종 있고, 국내에는 11종이 있다한다. 여기서 농본국가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나무들의 생태를 보고 기상예보를 감지하는 나무들이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런 나무를 지표목(指標木)이라 부르는 데. 예를 들자면 은행나무, 느티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버드나무, 이팝나무, 보리수나 등등이 예이다. 이 나무들의 자라는 상태를 보고 기상읽기 또는 농사의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풍흉을 점을 친다. 남부지방의 상록수로 해안이나 섬에 자생하는 대추알크기의 열매가 달리는 보리장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가을에 꽃피고 이듬해 봄 보리이삭 펠 때 붉게 익는다, 또 모심을 때 익는 녹보리똥나무 등등 모두 농사에 관계되는 농사지표, 농사일을 예고 해주는 나무들이다. 곤충 파리(fly 蠅)를 남도사투리로 <포리>라 한다. 우리나라에 이미 살고 있던 어떤 나무 열매 겉면에 마치 파리가 똥을 싸놓은 것처럼 반점이 생겨서 이 나무를 이름을 처음에는 열매에 포리똥 같은 게 묻어있는 나무, 즉 <포리똥나무>라 하다가 포리가 파리로 변하여 <보리똥나무>로 변하고 , 이 <보리똥나무>를 점잖고 좋은 뜻의 한자 이름으로 적을 때 적당한 한자가 없어 저 부처님의 깨달음을 표시한 보리(菩提)를 빌려오고, 참아 똥 자는 못쓰고 그저 <보리수 菩提樹>라 하게 됐다는 게 정설이 아닌 소설로 굳은 게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이 나무를 지방에 따라서는 지금도 포리수(甫里樹)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전역에 사는 보리수계통의 나무는 콩과식물은 아니더라도 뿌리혹박테리아와 공생하기 때문에 어디서나 잘 자라고 따라서 옛날에는 퇴비 등 풋거름을 만들고 생약으로도 여러 가지로 응용된 인간과 친근한 나무의 일종이다.
우리나라 절집 마당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키 큰 나무 보리수, 아예 그 나무 허리높이에 <보리수 - 부처님께서 이 나무 아래서 큰 깨달음을 얻었음>이라는 간판까지 걸고 있는 이 나무을 볼 수 있는데 이 나무는? 앞서 말했지만 석가모니님께서 나무 아래서 득도한 그 나무는 열대성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온실 밖에서는 살 수없는 데 ―
법주사 마당에도, 백양사 대웅전 앞에도, 오어사에도, 서울 아차산자락 영화사 마당에도 우람할 정도로 잘 자라서 우뚝 서있는데, 이 나무는 피나무 중의 한 종류인 <찰피나무>나 일본산 <구주피나무>가 대부분이다. 이 나무의 꽃에 꿀이 많아 밀원식물로 유용하고 인도 보리수와 닮은 점은 모두 잎이 비록 상록성은 아니지만 인도의 보리수와 같이 하트형에다 긴 꼬리를 달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 나무의 작고 단단한 검은 색의 열매는 덕 높은 스님들의 염주를 만들어 쓰고 지금도 사찰체험에 이 나무 열매로 염주 만들기 실습을 하고 있다. 이 피나무를 굳이 불교와 연관을 따지자면 열매 쓰임이 스님의 염주로, 나뭇잎이 인도 보리수와 비슷하다는 점이 전부이다.
이들 피나무류는 질기고 목재의 질이 좋아 가구재, 건축재 ,기타 나무껍질을 여러 방도로 유용하게 쓰인다. 슈베르트의 저 <보리수>는 부처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바로 유럽전역에 분포해 있는 피나무류의 <피나무 Lindenbaum>이라는 것을 알고 노래 불려야 할 것 이다.
불교에서는 무우수, 보리수, 사라수 이 세 가지 나무를 불교의 삼대 성수라 한다. 여기에다 종이가 없던 초기 불교시대 불경을 적는 데 사용하던 야자수의 한 종류인 다리수(多羅樹)를 합하여, 불교 4대 성수 (佛敎四大聖樹)라 하니 불가분 불교는 숲의 종교이교 나무의 종교임이 확실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불교는 가장 생태적인 종교이다.
근년에 불교 본고장에서 깨달음의 나무, 소중하고 귀한 <보리수>를 우리는 두 그루씩이나 선물로 받아드려 왔다. 보리수는 깨달음의 나무, 이참에 정치하는 분들이나, 종교인들이나, 기업하는 사람들이나. 가르치는 사람, 공무원들, 일반시민들이나 모두 우리나라의 현실과 미래를 진실로 옳게 깨달아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 나오는 그런 서글픈 풍정(風情)이 없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두 그루의 어린 보리수가 이 나라 풍토에 건실하게 잘 자라서 오욕과 망상에 든 중생들에게 바로 깨닫(正覺)고 서로 자비로운 삶을 누리도록 합장 기도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