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1) (법정과 최인호의 산방對談,여백刊)
지난 이야기는 “의정부 시장통닭과 初心”이었습니다. 오늘은 책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머리도 식힐겸 법정스님과 최인호 작가의 대담집을 읽어 봤습니다.
법정은 1932년생 수십 권의 수필집을 남겼다.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작품이 영화화된 작가 1위, 작가사진이 책표지에 실린 최초작가이다. 2010년 입적했고 최인호는 1945년생 서울고 2학년 때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등단했고 4년 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2013년 선종했다. 이 책은 무소유의 수행자 법정과 불세출의 작가 최인호가 남긴 행복과 사랑, 시대와 죽음에 대해2003년에 대담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행복이 시작되는 지점
법정: 얼마 전부터 기침 때문에 새벽에 잠을 깨어 차를 한잔 마십니다. 새벽녘 시냇물 소리가 맑고 투명한데 바로 이 자리가 정토요 별천지구나 싶어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기침 덕에 좋은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복이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늘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직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고통이 될 수 있고 행복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정스님은 폐암을 앓고 계시다.)
小欲知足(소욕지족)작은 것을 갖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알면 행복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일상적이고 지극히 사소한 일에 행복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최작가: 성경에도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했는데, 가난 자체가 행복한 것은 아니고 사실 궁핍과 빈곤은 불행이잖아요.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행복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같은 온도에서도 추워 죽겠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서늘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지만 특히 행복은 전적으로 마음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의 원형
법정: 사랑이라는 것은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풋풋해지고 더 자비스러워지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이 뒤따르는 겁니다. 박물관에 가서 좋은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만일 내 소유였다면 도둑맞지 않게 간수하느라고 바라볼 여유가 없습니다.
최작가: 며칠 전 TV를 보니 노래를 하는데 전부 사랑타령입니다. 가사도 원색적으로 “네가 날 버려? 나도 널 잊어 버릴 거야.” 사랑을 갈구하는 것 같은데 뭔가 왜곡된 느낌입니다. 이기적인 흥정이 사랑이라는 왜곡된 가치관이 팽배해지는 것 같습니다.
법정: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흥정이지요. 사랑은 나눔이고 보살핌이고 관심이지요. 더 못줘 안타까운 것이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정이야말로 순수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도 어머니 얘길 하고 흉악범이라도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최작가: 요즘 사랑이 왜곡되는 것은 조건을 지나치게 따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연애시절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것은 요즘에는 고전 취급하며 묻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 명동에서 젊은이 둘이 커피를 마시며 상대방의 눈을 깊이 쳐다보고 있는 것을 봤는데 서로에게 빠져들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고 이것이 사랑의 원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 고수의 대담에서 두 번째 꼭지의 “사랑”은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데 “욕심 없는 마음에 행복이 있다”는 이야기는 공감을 하면서도 피부에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와이셔츠와 양말에서 행복을 찾은 제 말씀을 드려봅니다.
제가 작년 말부터 나주에서 기러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주 초기에 없던 세탁소가 최근 생겼는데 세탁물을 맡기면 일주일정도 지나야 찾을 수 있습니다. 세탁소에 와이셔츠를 맡겨 생활을 하려면 최소한 와이셔츠 이 주일치 10벌이 필요한데 출장도 가야하고 직원들과 회식이 있어 찾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15벌이 있어야 합니다.
집에서 부인이 빳빳하게 다려주던 와이셔츠를 입고 다닐 때는 불편함을 몰랐습니다. 또한 이주초기 겨울에는 카디건을 입으니 와이셔츠를 다리지 않고 다녔는데 계절이 바꿔 카디건을 벋고, 여름이 되어 반팔 와이셔츠를 입고 다니게 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탁기로 빨아도 줄지 않고 구김이 가지 않는 와이셔츠를 구매해서 세탁한 후 땀을 흘리며 다려놓으니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해 집니다.
“다음 주 내내 와이셔츠 걱정은 해결되었다. 시간이 없어 다림질한 것이 없다 해도 여섯 장의 긴팔이 있으니 2주도 넉넉하고 잘하면 3주간 와이셔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다림질한 와이셔츠를 보고도 행복합니다.
검은 색상의 양말도 10켤레를 샀습니다.(출근할 때 왼쪽 오른쪽 구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신으면 되니 기러기아빠의 양말은 모두 같은 색입니다. 매번 다른 색 양말을 신는 기러기는 외기러기가 아닌 두 번째 기러기가 챙겨준다 보시면 됩니다.) 2주간 양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이것도 커다란 행복입니다.
두분 고수님들 말씀대로 窮하고 커다란 욕심이 없는데서 행복이 시작됩니다.
다림질해놓은 6장의 와이셔츠와 10켤레의 검정양말을 보니 대견하고 행복해 집니다.
2015.08.30 전력사업처 임순형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