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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숙인 서정시인의 방 원문보기 글쓴이: 조규철
고은 시인 노벨문학상 수상 실패, 가을이 쓸쓸하다
시인 고은의 ‘가을 감옥’
김택근 논설위원
'참으로 향기로운 아침이다. 마침내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로 시작하는 사설을 준비했다. 그러나 싣지 못했다. 어느 해보다 수상이 유력하다는 외신 보도에도 불구하고 노벨문학상은 페루로 날아갔다. 시인을 위해 준비한 모든 찬사들은 다시 1년을 묵혀야 한다. 지난 몇 해의 가을 속에는 늘 고은 시인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노벨문학상은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듯했고, 수상을 바라는 국민적 바람과 관심은 하늘처럼 높았다. 국민적 성원에 갇혀야 했으니 그것은 '가을 감옥'이었다. 그런데 은근히 부아가 치솟는다. 시를 숭상했던 문(文)의 나라 백성이라 자부하고 살았는데 속이 상한다. 노벨상이 뭐 대수냐고 하다가도 ‘그런데 별것도 아닌 상을 왜 우리만 못 받느냐’는 푸념이 터져 나온다.
고은이 누군가. 우리 시대 거목이 아닌가. 현대사를 온 몸으로 끌어안고 치열하게 살아왔으니 그의 시들은 시대를 밝히는 불꽃이었다. 어둑발의 신작로 위에서 시집 <한하운 시초>를 주워서 읽었다. ‘가도 가도 황톳길….’ 이 시 한 구절이 그를 시인의 길로 이끌었다. 한하운 같은 문둥이가 되어 하룻밤 자고 나면 발가락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비극적 인물이 되기로 작정했다. 그는 결국 시대의 비극을 끌어안았다.
1970년 초겨울 무교동 낙지집에서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결이 실린 신문을 보았다. 돈오(頓悟)적 충격이었다. 전태일은 그의 의식을 종교로부터 현실로 옮겨가게 만들었다. 시대의 파랑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삶은 ‘가도 가도 팍팍한 황톳길’이었다. 자유, 민족, 농민, 노동자, 통일을 껴안았다. 정보부에 끌려가고 징역을 살았다. 시인은 자유실천문인협회,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참여하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이끌었다. 실천하는 문인이었다.
길 위에 있었기에 그 삶이 곤했지만 그래서 늘 싱싱했다. 그의 시는 펄떡거렸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때는 ‘우리 현대사 백년 최고의 얼굴이 아니냐/이제 돌아간다/한 송이 꽃 들고 돌아간다’는 시를 평양에 남겼다. 절창이었다. 가을은 다시 올 것이니 고은 시인, 부디 강건하시라. 노벨상은 죽은 자에게는 주지 않으니 오래 사시기 바란다. 노벨문학상을 꼭 받아서 ‘가을 감옥’을 나오시라. 그리고 우리네 가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시라.<경향신문 2010년10월9일자 '여적'>
가을이 가기 전에 고은 시인을 느끼고 싶다
◇ 고은 시인을 이야기할 때 노래로 널리 알려진 '새노야'를 말하면 가장 쉽게 그 분이 어떤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고은 시인의 시를 소개하는 첫 머릿시로 <새노야>를 소개한다.
세노야
고은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
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
이 노래는 양희은 씨가 부른 노래로 잘 알려져 있다. 정작 이 노래가 고은 시인의 시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아마 너무 흔하게 많이 듣고 불려진 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노야'는 무슨 뜻일까?
나는 이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새노'라는 인물이 있거나 새 또는 특정한 생물이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새노야'는 뱃사람들의 노동요에 나오는 노랫말 중의 앞소리라고 한다. 전북 옥구군 미면(지금의군산시 미룡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은 시인은 옥구 앞바다에서 뱃사람들이 멸치잡이를 할 때 부르던 흥겨운 노동요 그물질 소리의 앞소리 '세노야'를 소재 삼아 시를 지었다고 한다.
고은 시인은 천지개벽 하듯 급변하는 한국의 개발 변천시대를 살아오면서 온몸으로 시대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스스로 세상에 녹아 들고자 했던 시인이다. 독재에 항거하고 민족 평화에 목말라하고 탄압받는 노동자와 억압된 인권의 슬픈 현장을 세상에 알리고자 최선을 다했으며, 심지어는 이웃집 가정에서 행해지는 인권유린의 실상을 시편에 실어 타전함으로써 시대의 인권유린에 항거한 시인이다. 시인의 시편에는 언제나 인간과 삶과 우리의 아픈 시대상이 용해되어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심안으로 세상을 노래한 시인 고은 님이 또 노벨문학상 수상에 실패했다니 참 야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노벨위원회는 유독 대한민국의 문학에 대해 인색하다는 야속함도 있지만, 이건 다분히 나의 욕심이고 팔이 안으로 눕는다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내년 가을에는 이 아름다운 시인 고은 님에게 '가을 감옥'이 아닌 '가을 행복'이 배달되면 참 좋겠다.
대동강 앞에서
무엇하러 여기 왔는가
잠 못 이룬 밤 지새우고
아침 대동강 강물은
어제였고
오늘이고
또 내일의 푸른 물결이리라
때가 이렇게 오고 있다
변화의 때가 그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는 길로 오고 있다
변화야말로 진리이다
무엇하러 여기 강물 앞에 와 있는가
울음 같이 떨리는 몸 하나로 서서
저 건너 동평양 문수릿벌을 바라본다
그래야 한다
갈라진 두 민족이
하나의 민족이 되면
뼛속까지 하나의 삶이 되면
나는 더 이상 민족을 노래하지 않으리라
더 이상 민족을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그런 것 깡그리 잊어버리고 아득히 거처를 떠돌리라
그때까지는
그때까지는
나 흉흉한 거지가 되어도 뭣이 되어서도
어쩔 수 없이 민족의 기호이다
그때까지는
시퍼렇게 살아날 민족의 엄연한 씨앗이리라
오늘 아침 평양 대동강 가에 있다
옛 시인 강물을 이별의 눈물로 노래했건만
오늘 나는 강 건너 바라보며
두고 온 한강의 날들을 오롯이 생각한다
서해 남바다 거기
전혀 다른 하나의 바닷물이 되는
두 강물의 힘찬 만남을 생각한다
해가 솟아오른다
찢어진 두 동강 땅의 밤 헤치고
신 새벽 어둠 뚫고
동트는 아픔이었다
이윽고 저 건너 불끈 솟아오른
가멸찬 부챗살 햇살 찬란하게 퍼져간다
무엇하러 여기 왔는가
지난 세월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왔다
다른 이념과 다른 신념이었고
서로 다른 노래 부르며
나뉘어졌고 싸웠다
그 시절 증오 속에서 500만의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
그 시절 강산의 모든 곳 초토였고
여기저기 도시들은 폐허가 되어
한밤중 귀뚜라미 소리가 천지하고 있었다
싸우던 전선이 그대로 피범벅 휴전선이었다
총구멍 맞댄 철책은
서로 적과 적으로 담이 되고
울이 되어
그 울 안에 하루하루 길들어져 갔다
그리하여 둘이 둘인 줄도 몰랐다
절반인 줄도 몰랐다
둘은 셋으로 넷으로 더 나뉘어지는 줄도 몰라야 했다
아 장벽의 세월 술은 달디달더라
그러나 이대로 시멘트로 굳어버릴 수 없다
이대로 멈춰
시대의 뒷전을 헤맬 수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였다
천년 조국
하나의 말로 말하였다
사랑을 말하고 슬픔을 말하였다
하나의 심장이었고
어리석음까지도 하나의 지혜였다
지난 세월 분단 반세기는 골짜기인 것
그 골짜기 메워
하나의 조국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다
무엇하러 여기와 있는가
아침 대동강 강물에는
어제가 흘러갔고
오늘이 흘러가고
내일이 흘러가리라
그동안 서로 다른 것 분명할진대
먼저 같은 것 찾아내는 만남이어야 한다
큰 역사 마당 한가운데
작은 다른 것들을 달래는 만남의 정성이어야 한다
얼마나 끊어진 목숨의 허방이었더냐
흩어진 원혼들의 흔적이더냐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우리가 이루어야 할
하나의 민족이란
지난날의 향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온갖 오류
온갖 야만
온갖 치욕을 다 파묻고
전혀 새로운 민족의 세상을
우르르 모여 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통일은 재통일이 아닌 것
새로운 통일인 것
통일은 이전이 아니라
이후의 눈시린 창조이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무엇하러 여기 왔다 돌아가는가
민족에게는 기필코 내일이 있다
아침 대동강 앞에 서서
나와 내 자손대대의 내일을 바라본다
아 이 만남이야말로
이 만남을 위해 여기까지 온
우리 현대사 백년 최고의 얼굴 아니냐
이제 돌아간다
한 송이 꽃 들고 돌아간다
이 시는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이 발표된 6월 14일 아침 숙소인 주암산초대소에서 쓴 시로 이날 만찬에서 고은 시인이 직접 낭독했다고 전한다. 고은 시인은 이렇게도 구구절절하게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날이 오기를 염원하는 민족시인이다.
고은 시인은 무려 30권이나 되는 '만인보'라는 대한민국 최대의 연작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만인보는 <시로 쓴 한민족의 호적부>라고 할 정도로 고대의 역사적 인물부터 시인의 고향마을 사람들, 그리고 근현대사를 수놓은 굵직한 인물들이 5,600여 명이나 등장한다.
고은 시인은 군사정권에 저항하다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 1980년 여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제7호 특별감방에서 '만인보'를 처음 구상했다고 한다. 그해 5월17일 자정을 기해 발효된 비상계엄령의 전국 확대와 동시에 체포되었던 고은 시인은 김재규 씨가 사형 직전까지 머물렀던 감방에 갇혀 손바닥만한 창도 하나 없이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는 무덤 속 같은 방에서, 그의 의식은 옛날의 회고와 아련한 추억들을 탈출구로 삼은 것이다. 만일 살아서 나간다면 삶의 구비마다 마주친 이땅의 얼굴들과 그 얼굴에 스며든 사연들을 시로써 되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그로부터 6년이나 지난 뒤에야 처음 실현해 냈다고 한다. 옥고를 치루는 사이에 고은 시인은 고문으로 만신창이의 몸이 되었지만 시인은 의지를 불태우며 만인보를 완성해 낸 것이다.
"나의 만남은 전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공적인 것이다. 이 공공성이야말로 개인적인 망각과 방임으로 사라질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삶 자체로서의 진실의 기념으로 그 일회성을 막아야 한다. 하잘것 없는 만남 하나에도 거기에는 역사의 불가결성이 있다." (만인보 1권 ‘시인의 말’ 중에서)고 시인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만인보는 내가 개척한 시적 행위를 넘어서서 고전서사시 이후에 있어야 할 서사의 한 장르로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귀납과 연역, 서사와 서정, 서술과 묘사, 기억과 상상, 문학과 역사, 현실과 허구, 시와 시가 아닌 것의 합일이 만인보의 의미일지 모르겠다." 시인으로서 진취적 사고와 문인 정신을 빛나게 드러내는 이 얼마나 아름답고 경전 같은 언어이며 정신인가.
'그 죽음은 무덤이 없어야겠다 차라리'로 시작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다룬 시 '봉화 낙화암'과 수경 스님, 문정현 신부 등 당대 인물에 대한 시편이 포함되어 있지만, 만인보에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편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5.18 직후 감옥에서 만인보를 구상한 시인은 그때를 불러내 잔혹했던 장면이나 유가족의 고통 등을 가감없이 전하는가 하면, 뱃속의 태아인 상태로 학살당한 아기가 2030년 5월 50세의 최연소 대통령이 되어 광주를 방문한다는 '2030년 5월'로 희망의 상상력을 펼치기도 했다.
시인은 광주시민, 학생, 부모, 자식 등 여러 사람에게 애정 어린 눈길을 보냈다. 4천1편의 마지막을 장식한 시 '그 석굴 소년'은 "낙조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버림받고 재수 없는 아이라고 핍박받다 "끝없이 읽어야 할 책이" 기다리는 석굴로 들어가 "세상의 시간"이 아닌 영겁의 시간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그대로 하여금 이 세상의 낙조 가득히
이 세상 길고 긴 이야기 다함 없는 오늘 밤도 그대 따라가는
만인의 삶 이야기 삶과 죽음 이야기 그칠 줄 모르리
지금 세상 밖은 온통 머리 푼 바람 속
영겁의 소년 수레여 다할 줄 모르는 영겁의 돌책이여 돌노래여 돌이야기들이여
<그 석굴 소년> 일부
고은 시인은 "문익환 목사와 함께 암흑 같은 감옥에서 아지랑이처럼 부정확한 광주의 죽음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감옥에서 살아 나가게 된다면 꼭 써야겠다고 만인보를 구상했을 때, 진혼의 의미를 넘어서 이들의 중단된 삶을 재생시켜 이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그렇게 뒤집히고 엎어지고 들끓으며 아우성쳤던 현대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를 위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두 동강 난 국토와 민족의 화해를 위해 선봉자로서 울었고 시인으로서 오열하며 시대의 비극을 달래고 토닥였다. 고은 시인이 격동기를 살아오는 동안 만났던 다양한 인물들을 시로 형상화 한 연작시 '만인보'에는 역사의 역동을 만들었던 전직 대통령들도 등장한다. 시인의 통찰력과 촌철살인은 전·현직 대통령들을 노래한 시들에서도 빛을 발한다. 만인보에서 일부를 옮겨보기로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11권·1996)
"녹슨 쇳소리/ 그의 파쇼는 성난 독사였다/ 탄압과 건설이/ 행여 뒤질세라/ 마구잡이 솟구쳤다…어느덧 춘궁기 보릿고개가 사라졌고/ 전란 이후/ 휴전선 이남의 산야는/ 천박한 근대화 조국 근대화/ 개발의 나라/ 성장의 나라였다 가발공장에서 원자로였다/ 그런 어느날/ 쉬쉬쉬 또다시 소문이 돌았다/ 감옥 지붕의 비둘기들이 우르르 날아오르며"
-김대중 전 대통령(10권·1996)
"고난이 필요한 시대 그는 고난의 과녁이었다// 일본 수도의 한 호텔 안에서/ 토막져 죽어야 했다가 살아났다/ 현해탄 복판에 던져져/ 물귀신이 되어야 했다가 살아났다// 71년 대통령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졌다/ 그의 파도치는 웅변이/ 백만 인파의 지진처럼 흔들어댔다/ 그는 혼자서도/ 백만 인파였다"
-이명박 대통령(15권·1997)
"70년대 개발연대기에는/ 한 샐러리맨이 이렇게 저 밑에서 솟아올랐다…부디 그의 신화가 더 이어질수록/ 개발이 악이 아니라 선이기를/ 개발이 정치가 아니기를"
노무현 (만인보 15권, 1997)
모든 것을 혼자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장에 다니다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사법고시도 마친 뒤
그는 항상 수줍어하며 가난한 사람 편이었다
그는 항상 쓸쓸하고 어려운 사람 편이었다
슬픔 있는 곳
아픔 있는 곳에
그가 물속에 잠겨 있다가 솟아나왔다
푸우 물 뿜어대며
그러다가 끝내 유신체제에 맞서
부산항 일대
인권의 등대가 되어
그 등대에는
마치 그가 없는 듯이 무간수 등대가 되었다
힘찬 불빛으로
어디 그뿐이던가
사람들 삐까번쩍 광(光)내는데
그는 혼자 물러서서 그늘이 되었다
헛소리마저 판치는
텐트 밑에서
술기운 따위 없는 초승달이었다
아무래도 그의 진실 때문에
정치를 할 수 없으리라
속으로
속으로 격렬한
진실 때문에
만인보(萬人譜) 서시
고은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이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의 주제는 "민족공동체의 소중함"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제의 상징성인 만인의 족보 또는 모습과 행태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서로 껴안고 가야할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
이제 고은 시인의 만인보는 끝났지만 그 정신이 녹아든 만인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만인보를 끝내니까 술에 취했다가 깬 것 같다. 25년 동안 등에 지고 온 길마를 벗었으니 겨드랑이에 날개가 생겨 날아갈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만인보의 본질은 끝이 없다. 누군가가 31권을 쓰고 있는 내 혼백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앞으로 사라지는 모국어에 대한 진혼의 의미로, 시인으로서 모국어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새로운 시어를 시 속에 넣어보고자 한다며 '아련가련', '오련가련', '가슴바람 등바람' 등 직접 지은 시어를 소개하기도 했다. 참으로 정신이 투철하고 아름다운 시인이 우리 곁에 계신다는 것이 충만한 행복이다.
고은 시인이 이 가을 쓸쓸하게 떠난 이들 그리워 하지 말고 알알이 여문 결실로 가득가득 채워지는 가을 맞으시기를 기원한다. <글 조규철>
고은 시인
1933년 8월 1일 전북 군산 출생.
본명 고은태, 법명은 일초. 11년간 불교 승려 생활함.
학력 군산고등학교 (중퇴)
데뷔 1958년 시 '폐결핵'으로 등단
활동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서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수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시집 <피안감성>,<새벽길>,<조국의 별>,<네 눈동자>,<만인보>,<아침이슬>,<해금강>,<내일의 노래> 등
필례
동고티 멍석 많은 집 필묵이네 집
걸핏하면 필묵이 누나 필례 매맞는다
다 큰 딸 때리는 죄 살인죄 다음인데
필례 아버지
그런 것 알 까닭이 없다
똘에서 가물치 잡아 숫제 고추장도 없이
그냥 뼈 발라 먹는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도 아버니거니와
아무리 매 맞아도
입 옹다물고
아프다 소리 하나 없는 필례도
단 한번 빌지 않는 필례도 모지락스럽기 여간 아니다
헌 멍석 빌리러 갔다가 듣건대
필례 아버지 매질에 거품 물고 욕사발 퍼붓기를
이 천하에 독살스러운 년
시집 가서 친정부모 죽어도 울지 않을 년
오사할 년 어서 내 앞에서 칵 뒈져버려라 칵
-고은 시집 <만인보 1> 중에서
새벽닭
새벽닭 두 홰에 생각나느니
작년에 죽은 남편보다
재작년에 집 나간 자식이 더 생각나느니
죽은 사람이야 묻혀도
뒷산에 묻혀 있으니 아주 떠난 것 아니지
창옥이 어머니는
새벽닭 울 때
떠난 창옥이 가슴에 못박은 창옥이
날 새면 올까 올까 하고 생각나느니
찬물 한 모금 떠먹을 생각 없이 생각나느니
삼청냉돌 갈자리방 이불 개고 주섬주섬 나가서
마당 쓸고
사립문 밖 내린 첫눈 쓸고 허리 펴고 생각나느니
-고은 시집<만인보.1> 중에서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 천리 물과
아득히 조상 대대 계시옵고
아득히 자손 대대 계시오리라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 온갖 갈래
한줄기
한줄기 모여들어
저 보청천으로
저 미호천으로
저 초강 갑천으로
저 봉황천으로
또 저 무슨 천 무슨 천으로
한줄기
한줄기 모여들어
우리 금강 이루어 나가는 도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가는 데 마다
평생 절경 아니리
저 무슨 천둥
저 금산 적벽강
저 영동 양산 8경이라
가는 데 마다
미울 것도 고울 것도 없어
하루하루 같은
어버이 같은
누이 같은
저 문 물기슭 아니리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오는 데 마다
이름 없는 골짝 등성이
언제까지나
떠난 사람 기다리는
언덕 배기 아니리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온갖 마을 지나노라면
머리 풀고
백리 유역
그 청청한 들녁 이루었나니
거기 곡식 심어 거두노라면
벌써 갓난 아기 자라나
보름달 보는 도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우리 모두 금강가족
우리 모두 금강나라
오늘 밤 떼지어
좌도 사물 모진 액 물리치옵고
여기 복 불러들이옵나니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
여기 죽은 물고기 그대로 좋은가?
(대답할지어다)
금강!
여기 산 물고기
산짐승
산 사람
훨훨 살아 있는 세상 좋은가
(대답할지어다)
금강!
금강이 우리인 것을
우리가 금강인 것을
안 그런가?
(대답할지어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독도
내 조상의 담낭
독도
네 오랜 담즙으로
나는 온갖 파도의 삶을 살았다
저 기우뚱거리는 자오선을 넘어 살아왔다
독도
너로 하여
너로 하여
이 배타적 황홀은 차라리 쓰디쓰구나
내 조국의 고독
너로 하여
나는 뒤척여 남아메리카에 간다
뼈와 살이 닳도록 봄밤 북두칠성에 간다
가서
반드시 돌아온다
내가 내 자식이 되어 너에게 돌아온다
내 자식의 담낭
독도
벼를 털며 이 세상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허깨비가 아니다 눈길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아직 가지 않은 길 이제 다 왔다고 말하지 말자 후배에게 국가는 섬세할 수 없단다 국가는 그냥 왈패란다 그럴수록 문학은 섬세해야 한단다 자네 문학이 행여나 떠밀리고 떠밀려 변방 읍내 호프집에 처박히게 될지라도 낙담 말게 더더욱 외따로 고개 저어 섬세하고 섬세할 노릇일세 장차 그 섬세함의 장관이라니 -고은 시집『 허공 』중에서
지은 가을 곡식 엄숙함이여
벼 눕혀 말리면 안 된다 해도
쌀에 싸라기 있고
밥맛이 가신다 해도
아서라 볏단 세우기에 어디 일손 남아 돌더냐
이 세상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논두렁에는
콩도 팥도 심지만 피가 성했다
때마침 찬바람에 벼 잘 말라
한 번 뒤집어 둔 다음
일찌감치 벼 타작하니
쉴 데 없는 마음 하나가 논 하나가 된다
탈곡기 먼지 속에서
늙어가는 안식구 일손 좋아
오직 두 눈만 뻥 뚫려 있다
고등학교 졸업반 큰놈도
거드는 솜씨 제법 건실하여서
하루해 질 무렵까지는
어둑발에 방아달 논 한 배미 다 털겠다
이 세상은 무슨 일로도 다른 세상 아니다
벌써 저녁 바람 찬 기운이 사납다
이 세상은 우리 세상 우리 자식이 아니더냐
된 일에 된 몸 쉬는 것도
건너마을 어른 지나는 참이라
벌써 다 터는가
우선 한 배미지요
쌀 좋겠네
편히 건너가시지요
이 세상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아무리 나이 먹어도
말 한마디에는 언제나 오늘이 어린아이같다
옛날 옛적 타작에는 개상 탯돌이다가
옛날에는 홑태질로
하루내내 훑어내다가
이제는 탈곡기에 벼 털어
벼 한 가마 한 가마 곳간에 부리니
곳간 문 열면 웃음 울음 가득하다
며칠 지나 모진 공판장에 내볼지라도
오늘 흐뭇흐뭇한 바 어이할 줄 모른다
이 세상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허깨비가 아니다
천리 만리였건만
그동안 걸어온 길보다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
행여 날 저물어
하룻밤 잠든 짐승으로 새우고 나면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
그동안의 친구였던 외로움일지라도
어찌 그것이 외로움뿐이였으랴
그것이야말로 세상이었고
아직 가지 않은길
그것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모르는 세상이리라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