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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박 3일 동안 여러 종교 지도자들과 사회 인사들을 모시고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생 200주년 기념 순례를 떠난 지 3일째 마지막 날입니다.
어젯밤 늦게, 스님은 순례단보다 먼저 서울에 올라와서 오전 10시부터 정토회관 방송실에서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밤새 많은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였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2박 3일 동안의 순례 여정을 소개하며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생 200주년을 기해서 우리가 되새겨봐야 할 점을 짚어 주었습니다.
“저는 지난 3일 동안 한국 근대사에서 자생적 민주주의와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문을 연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선생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 여러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최제우 대신사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했습니다.
K-문화가 꽃피운 대한민국, 그 뿌리는
오늘날 우리가 K-문화라는 말이 세계화될 정도로 이렇게 발달된 나라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바로 후천개벽(後天開闢)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선포한 동학사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천개벽이란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세계를 뜻합니다. 조선 말기, 탐관오리의 수탈이 극심해져 사람이 맞아 죽고 굶어 죽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농민들은 견디다 못해 관아를 습격하는 삼도 민중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또 수많은 외세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어난 동학혁명은 정부군과 일본군에 의해서 수십만 명이 학살당하는 대참극을 빚었습니다. 학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너무나 처참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시점이 공식적으로는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庚戌國恥)이지만 사실은 그보다 앞선 1894년 동학혁명군이 일본 군대에 무참히 학살당하며 실패로 끝나면서 국운은 이미 기울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나라의 주권을 주변 강대국에 빼앗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참극을 딛고도 우리는 다시 1919년 3월 1일,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운동은 3.1운동 직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역사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해서 지금 젊은 세대는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러한 대한민국의 뿌리를 부정하고 그저 외세에 의해서 분단되어 1948년에 설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대한민국의 시작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잃어버리게 하는 수치스러운 주장입니다. 한일 간의 관계 개선도 필요하지만, 이런 역사를 제대로 알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관계 개선을 해나가야 합니다.
민(民)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향한 유구한 역사
이렇게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뜻은 분명하였지만, 결국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많은 희생을 치르고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강대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남한과 북한이 분단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남한을 중심으로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민(民)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6월 항쟁 등을 거쳐오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민주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룩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최제우 대신사 탄생 200주년을 기해서 다시 한번 되새겨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세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명상할 때의 평온함이 지루함으로 이어지게 된다며 어떤 관점을 갖고 명상을 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명상할 때의 평온함이 지루함으로 변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불교대학을 다닐 때부터 주말마다 명상을 하면서 줄어들 것 같지 않던 괴로움이 많이 줄었습니다. 요즘은 평온하고 가벼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명상에 재미를 붙여 퇴근 후 집에서도 명상을 하고, 회사에서도 점심 식사 후에 시간을 내서 매일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명상하면서 달라진 것은 평온하고 잡념이 줄어들고 제 행동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제 행동과 마음에 대해 알아차리는 순간들이 많아진 것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루함과 따분함으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정말 복에 겨워하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만 평온함과 일상에 대한 알아차림이 지루함과 따분함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제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은 눈으로 모양과 색깔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에서 여러 감각을 느끼고, 머리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에 늘 바쁩니다. 그런데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외부 정보가 들어오지 않으니까 마음이 할 일이 없어집니다. 할 일이 별로 없으면 편안하지만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 할 일이 많으면 바쁘다고 아우성치고, 할 일이 없으면 지루해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입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너무 바빠서 힘들고, 직장에 다니지 않을 때는 하루하루가 지루하다고 아우성입니다. 이것은 모두 마음 작용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을 감고 가만히 있을 때 호흡을 알아차리든 감각을 알아차리든 알아차림이 유지되면 지루하지 않습니다. 지루하다는 것은 알아차림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끝나나?’ 하고 생각하거나 ‘이렇게 한다고 뭐가 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루함이 생깁니다. 지루함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늘 바쁘게 다니다가 멈추면 처음에는 편안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지루함과 따분함이 발생합니다. 바쁠 때는 바쁜 데에 빠져 알아차림을 놓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고, 가만히 있을 때는 편안한 데에 빠져 알아차림을 놓쳐서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 끝나나’, ‘이렇게 한다고 뭐가 되나’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지루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명상이란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내려놓고 감각을 알아차리거나 호흡에 깨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에서는 화두가 성성해야 합니다. 혹시 놓치게 되면 ‘놓쳤구나!’ 하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면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마치 바닷가에 앉아서 파도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보듯이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뇌는 같은 것이 반복되면 약간 지루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알아차림을 유지하면 똑같은 것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방금 숨 쉴 때 숨이 들어와서 살았고, 지금 숨 쉴 때 숨이 나가서 사는 거예요. 어제 밥 먹어서 내가 살았고, 오늘 밥 먹어서 내가 사는 것과 같습니다. 어제도 밥 먹고, 오늘도 밥 먹고, 늘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똑같지 않습니다. 강물이 흐를 때 똑같은 물이 흐른다고 하지만 물마다 다 다른 물이잖아요. 길을 걸을 때도 이 길을 걷다가 저 길을 걷는 것이 걷는다는 관점에서는 똑같지만, 어느 길인가를 따지면 다 다른 길입니다. 그런 것처럼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갈 때 온전히 깨어 있으면 지루함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루하다는 것은 내가 알아차림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보통 명상수련을 시작하면 첫날은 졸음과 싸우느라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은 다리 통증과 싸운다고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그런데 졸음도 없어지고 다리 통증도 없어져서 이제 할 만하다 싶을 때 나타나는 가장 큰 장애가 지루함입니다. ‘계속 이런다고 뭐가 되나’ 하는 생각이 들고, ‘똑같은 걸 왜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뭔가 자꾸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사람과 살려니 지루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한테 관심을 둡니다. 연애를 해도 만났다가 또 헤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같은 사람하고 만나면 지루하고 재미없다 하고, 사람이 바뀌면 또 바뀐다고 문제 삼고, 편안하면 지루하다고 문제 삼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이래도 문제이고 저래도 문제인 인생을 살게 되는 겁니다.
이런저런 일이 발생해서 바쁘면 또 힘들다고 합니다. 바쁠 때는 일이 많아서 좋고, 일이 없으면 편안해서 좋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깨어 있지 못할 때 지루함이 발생합니다.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가는 것은 내가 한번 나고 죽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지루함이 생겼다가도 사라지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세 명의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누고 나니 법회를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 법회를 기약하며 12시가 다 되어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스님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생 200주년 기념 순례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천도교 중앙대교당으로 향했습니다. 서울 전역에 대설 경보가 발효된 가운데, 하늘에서는 끝없이 눈이 쏟아졌습니다.
아침 일찍 남원을 출발한 순례단도 폭설이 내리는 와중에 무사히 천도교 중앙대교당에 도착했습니다. 순례단은 동학 농민군들이 서울을 향해 진군했던 그 길을 따라 올라오면서 공주 우금치 전적비를 참배했습니다. 스님은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 사회 인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와 동학사상이 한국 근현대사에 끼친 영향
오후 2시 정각에 마지막 대화마당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대화마당의 주제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와 동학사상이 한국 근현대사에 끼친 영향’입니다. 학계, 종교계 인사뿐만 아니라 동학사상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도 160여 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과 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먼저 지난 2박 3일 동안의 순례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경주로, 경주에서 남원으로, 남원에서 다시 서울로, 대신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 순례의 여정에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천도교 윤석산 교령님이 순례단을 맞이하는 환영사를 해주었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여러분께서 다녀오신 경주, 남원, 우금치는 동학 천도교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들입니다. 용담정에서 수운 대신사께서 시작하신 가르침은 남원 은적암에서 세 편의 중요한 경전을 남기신 것으로 이어졌고, 그 후예들이 우금치 전투에서 새로운 세상을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이어졌습니다. 이 대교당 역시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역사적 건물입니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생 200년을 맞아 이러한 역사를 되새기고, 미완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게 되어 감격스럽습니다. 함께해 주신 법륜 스님과 종교계 사회 원로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대표하여 경동교회 박종화 원로 목사님이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
“우리 종교가 추구하는 본질은 분열이 아닌 융합입니다. 사랑은 그 융합의 중심에 있습니다. 최제우 대신사가 말한 '시천주(侍天主)'는 한울님을 모시며 사랑하라는 뜻이고, '사인여천(事人如天)'은 모든 사람을 한울님처럼 섬기라는 뜻이고, ‘인내천(人乃天)’은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종교는 사랑과 화합이라는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바탕으로 이 땅에 평화를 이루어 나갔으면 합니다.”
다음은 2박 3일 전체 일정을 함께 한 신낙균 전 문화체육부 장관님이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창시하신 동학은 1800년대 지배층과 외세의 억압 속에서 인간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한 혁명적이고 위대한 업적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위대한 철학이자 사상으로, 오늘날 우리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K-철학'과 'K-종교'의 근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과 영웅의 업적이 하나의 종교로만 여겨지며 국민적 대우를 충분히 받지 못한 점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교육과 사회운동을 통해 동학의 사상과 삶을 널리 알리고 가꾸어 나갔으면 합니다.”
이어서 오늘 이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내어 준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님이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수운 최제우 선생께서 환생하셔서 오늘날의 모습을 보신다면, 160년 전 개탄하며 걱정하셨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당시 정치적 문란, 가치체계의 혼란, 사회계층 간 갈등, 그리고 외세의 압력이 나라를 위태롭게 했던 것처럼, 지금도 물질만능주의와 분열, 양극화가 심각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의 '1987년 체제'는 이미 수명을 다했음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남북 분단 문제와 각자도생의 세계 질서는 국가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망국적 정치 체제를 개혁하고, 물질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가치로 전환하며, 동맹 체제와 자강을 균형 있게 구축해야 합니다. 이번 순례가 어지럽고 불안한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축사를 마치고 대화마당을 시작했습니다. 평화재단 지도위원인 조민 박사님이 대화마당의 마중물 역할을 해줄 세 명의 발표자를 소개했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 동학 학회 임형진 회장님이 ‘동학이 동학농민혁명에 끼친 영향’을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동학의 핵심은 '모심과 섬김'에 있습니다. '모심'은 하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며, 모든 존재가 하늘을 모시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섬김'은 모든 사람을 하늘 대하듯 존중하며 살아가는 자세를 말합니다. 이 정신은 동학농민혁명의 행동 강령으로 이어졌습니다. 동학은 선천의 각자 위주의 시대에서 후천의 동기일체, 즉 모두가 하나로 귀일되는 공동체의 시대를 열고자 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단순한 농민 봉기가 아니라, 이러한 동학의 사상을 바탕으로 봉건적 신분 질서와 외세의 침탈에 맞서 싸운 반봉건·반외세 혁명이었습니다. 동학군이 내세운 '폐정개혁안'과 같은 개혁 강령에는 자주정신과 공동체주의가 담겨 있었으며, 이는 동학의 사상이 구체적으로 구현된 결과였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물리적 저항에 그치지 않고, 조화와 통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 질서를 꿈꿨습니다.”
두 번째 순서로 윤경로 한성대학교 명예교수님이 ‘동학이 3.1독립혁명에 끼친 영향’을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동학사상의 핵심은 '시천주(侍天主)'와 '인내천(人乃天)'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하늘을 모시는 존귀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고, 봉건적 신분 질서를 부정하며 만민평등을 주창하는 사상입니다. 이러한 동학의 정신은 3.1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민주공화국의 기반을 형성했습니다. 3.1 독립선언문의 첫 구절인 '오등은 자에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는 동학의 자주정신과 평등의 가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임시 헌장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명시한 부분은 동학사상의 실천적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정신은, 3.1 독립운동을 통해 백성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하며 봉건적 제도를 넘어서는 민주적 체제의 기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동학사상은 단순히 민족적 자각을 넘어 '동양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한 계단이 되겠다' 하는 3.1독립선언문의 비전에도 깃들어 있습니다. 이는 동학이 지향한 조화와 통합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세계와 인류의 공존을 추구하는 가치로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순서로 구해우 박사님이 ‘동학사상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끼친 영향’을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동학사상의 본질은 단순한 과거의 혁명적 사상이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며 지속적으로 진화해 온 철학적 기반입니다. 동학의 다시 개벽 사상은 최제우에서 시작해 최시형을 거쳐 손병희의 사상적 융합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손병희는 3.1운동을 통해 동학과 근대 문명을 융합한 '신동학'의 출발점을 제시했습니다. 우금치 전투와 같은 역사적 패배를 통해 근대 문명의 본질을 깨닫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 개벽과 물질 개벽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점은 동학의 철학적 진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손병희는 단순히 동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3.1운동의 독립선언서를 통해 민주주의, 평등, 평화라는 근대적 가치를 포함하며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동학사상은 개벽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철학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이는 단순히 다수결과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다양성과 평등을 존중하며 중도와 회통(和通)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넘어서는 진화된 민주주의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동학사상이 현대의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철학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통합적이고 진화적인 성격에 있습니다.“
발표를 모두 마치고 나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자유롭게 청중석으로부터 질문을 받으면서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고경빈 평화재단 지도위원은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님에게 "일제가 한 장의 조약으로 조선을 쉽게 무너뜨린 과정과 동학사상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형성에 미친 영향을 장기적인 시민혁명의 관점에서 볼 수 없겠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면서 "수십만의 동학군이 희생된 것이 민주공화국의 토대가 되었고, 이는 기독교의 순교처럼 동학정신이 민족에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윤 교수님은 동학의 인내천 사상이 주권재민의 맹아로 작용했다는 점에 동의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헌장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한 배경에는 1917년 대동 단결 선언과 같은 선언적 철학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일제가 강화도 조약(1876)을 통해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분리시키고, 관세 체계에 무지했던 조선의 약점을 이용해 경제적 종속을 심화시킨 과정을 설명하며 "무지는 부정부패보다 더 위험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토회의 한 회원은 "동학사상이 현대에서 어떻게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를 물었습니다. 조민 박사님은 동학사상의 무위이화와 정태와 동태의 조화를 설명하며 "동학은 천(하늘)과 인(인간), 소우주와 대우주가 하나라는 비분리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분열된 현대 사회를 통합하는 가치를 제공한다"고 답했습니다.
천주교 김기화 신부님은 "동학사상을 K-사상으로 세계에 전파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임형진 교수님은 "한류가 억지로 확산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처럼, 동학사상이 가진 보편성을 외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국수주의적 태도를 경계했습니다. 조민 지도위원은 “서구 종교는 포섭과 배제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갖고 있지만, 동학은 모든 존재가 혼연일체라는 무위이화를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특성이 K-사상으로서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행사의 말미에 임형진 교수님은 "동학-천도교 순도자 약 100만 명이 희생되었음에도 이들의 뜻이 역사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그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동학농민혁명의 집강소 체제를 언급하며 "이는 동아시아 최초의 민중 집권 체제"로 세계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강조했습니다. 집강소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이 전라도 각 고을(邑 · 州)의 관아에 설치한 민정기관입니다.
3시간 동안의 토론을 끝마치며 사회를 맡은 조민 박사님은 "동학사상에는 인류 위기를 극복할 내재적 논리가 있다"며 “이를 사회 변화를 촉진하는 집단 의지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후 대화마당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번 대화마당은 동학사상이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와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한 사상적 토대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무위이화 정신이 한국적 근대화와 K-사상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화마당을 마치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참석자 모두 스님에게 다가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께서 초대해 주신 덕분에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스님은 참석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천도교 중앙대교당을 나왔습니다.
하루 종일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이 눈부시게 하얗게 물든 서울 도심을 지나 다시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부터는 2025년 스님의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정토회 임원단과 온라인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각 부서에서 스님이 꼭 참석해야 할 행사를 제안하고, 일정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하며 내년 1월부터 월별로 스케줄을 정리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보니, 스님의 내년 일정이 벌써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보수 법사님의 어머니 막재에 참석하여 영가 천도 법문을 한 후 오후에는 INEB(참여불교국제네트워크)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출발하여 방콕을 경유한 후 인도 첸나이로 이동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