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 움직이는 하느님의 말씀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8).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2013년 성서 주간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머물기를 바랍니다. 올해 성서 주간의 주제 성구인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라는 말씀은 바오로 사도가 우상으로 가득 찬 도시 아테네에서 이교도들에게 행한 설교의 한 구절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하느님의 자녀’(사도 17,29 참조)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대로 성경은 우리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는 지침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성경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과 만나시며 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게는 버팀과 활력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영혼의 양식 그리고 영성 생활의 순수하고도 영구적인 원천이 되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계시 헌장 21항).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성경인 「성경직해광익」(聖經直解廣益)에서도 성경을 “영혼을 밝히는 빛, 횃불, 영혼을 기르는 양식, 풍성한 잔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박해 속에서도 필사를 통해 신자들에게 널리 퍼진 이 최초의 성경으로부터 힘을 얻어 신앙을 지켜 냈습니다. 『한국천주교회사』를 쓴 프랑스의 달레 신부는 모진 고문과 문초를 당하며 죽어 가는 순교자들을 보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길이요 생명이신 하느님의 전능하신 말씀은 그것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이 말씀은 그렇게도 겁이 많은 저 사람들을 용사로 만들었습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만일 우리 신앙이 약하고 메말라 있다면 그것은 영혼의 양식인 성경을 가까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약한 신앙을 틈타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사이비 종교는 여전히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파생되어 성경만을 강조하고 왜곡하는 사이비 종교가 한국 가톨릭교회 신자들에게 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신자들이 성경을 열심히 읽지 않음을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믿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 내가 믿는 신앙의 진리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고 거기서 힘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애써 알아들어야 하는 단순한 ‘인식 대상’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살아 내야 하는 ‘실천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음으로써 힘을 내고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도 몸소 받아들이고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땅속에서 발아하는 씨앗들은 죽어야만 살아나는 생명의 신비를 묵상하게 해 줍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한 12,24). 우리도 자신을 죽이고 욕망을 버려야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의 밭에 뿌리시는 생명의 씨앗을 품을 수 있습니다. 온갖 나약함과 이기심과 욕망에서 벗어나 우리의 사고방식을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일치시켜야 합니다. 동시에 그 말씀을 통하여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께 신뢰와 순종과 사랑으로 응답하고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필리 2,15) 있습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제29회 성서 주간이 시작되는 날인 금년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지난 2012년 10월 11일부터 시행되었던 ‘신앙의 해’를 마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께서 자의교서 「믿음의 문」(Porta Fidei)을 통하여 준비하신 신앙의 해를 우리는 지난 1년여 동안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으로 고백하는 이때 우리는 한 해 동안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았는지 돌아봅시다. 그리하여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콜로 2,7)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도록”(필리 2,16) 말씀을 살아 내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안에 충만하게 현존하시는 진리의 성령에 힘입어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 안에서 더욱 힘차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3년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손삼석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