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4~18 / 악한 농부들이 받을 심판을 말씀하신 예수님
(눅 20: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눅 20: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눅 20: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눅 20: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눅 20: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14~15 농부들은 상속자를 죽이고 포도원을 아주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상속자인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쫓아내어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교만과 탐욕으로 포도원을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고자 아들을 포도원 밖에 쫓아내 죽였습니다. 농부들은 주인의 마지막 사랑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사랑을 끝내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장 심판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겼습니다. 그들은 교만하게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주인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하는 교만이 있었습니다. 바쳐야 할 십일조도 자신이 갖고 나중에는 그 포도원까지 차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어떻게 합니까?
주인은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십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심판하시고 다른 나라들에게 경영권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지 않는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주인은 이들을 철저히 진멸하십니다. 주인은 심판의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다고 바로 심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참았다가 그때 심판하십니다.
그들이 아들을 죽인 죄까지도 회개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인간들이 죽을 때까지는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심판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십니다. 다시 오시는 그날 회개치 않고 아들 예수님을 영접지 않는 자는 멸망합니다. 그날 철저하게 멸망 당합니다.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그 후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변화됩니다. 특별히 많은 이방인들이 회개합니다. 농부들을 사랑하여 아들까지 주신 그 사랑에 감동하여 회개합니다. 이것이 바로 원자폭탄과 같은 사랑의 힘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아들을 죽인 자를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원자폭탄과 같은 사랑을 영접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많은 종들을 희생하시고 마침내는 자기의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원자폭탄과 같이 힘이 있는 사랑입니다.
우리도 이런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도 이런 사랑으로 자녀들을 돌보고 주위 사람들과 불신자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이 바보 같은 사랑이 힘이 있습니다.
17~18 저자 누가는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한 마디로 모퉁이의 머릿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머릿돌은 다른 말로 주춧돌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은 머릿돌을 먼저 세우고 여기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습니다.
머릿돌은 집의 기초가 되는 돌입니다. 머릿돌은 집의 주민등록증과 같습니다.
머릿돌에 설계자 시공자 시공 년 월 일들을 기록해 놓습니다.
돌이 건축자에게 버림받은 것은 예수님이 유대인에게 버림받아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메시아가 아니라고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머릿돌이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여 주요,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반석이요, 심판의 돌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릿돌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기초요. 중심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머릿돌로 영접하고 그 위에 모든 집을 지어야 합니다.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예수님에게 세워야 합니다.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집을 예수님에게 기초하여 지어야 합니다.
예수님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은 인생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님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은 집이 튼튼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까지 가서 영생합니다. 예수님의 돌은 베드로 전서에는 산돌 살아있는 돌이라고 나옵니다. 이 돌은 집에 끊임없이 생명을 공급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은 점점 번성하고 왕성하고 강성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고도 예수님 십자가의 사랑을 멸시하고 부활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지 않는 자들은 마지막 날 철저히 심판하십니다.
우리도 머릿돌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면 영생을 얻지만, 또한 사람들에게 버림받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많은 성도가 그 사회에서 버림받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다가 세상에서 버림받을 때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버림받으신 예수님께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산돌로 삼아 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믿음으로 사는 자를 반드시 생명의 역사에 쓰십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버림받아도 예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한 마디로 예수님은 모퉁이의 머릿돌 권위가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랑의 권위와 구원의 권위와 심판의 권위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40살 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이 무슨 권위로 이 일을 했냐고 묻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모퉁이의 머릿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했다고 말합니다.
머릿돌 되신 예수님은 생명의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주는 권세가 있습니다. 병든 자를 치료하는 권세가 있고 죄인에게 죄사함을 주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의 저주를 제거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머릿돌 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 개인도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아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와 학교의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의 사상과 언어와 행동의 기초로 삼아야 합니다. 나라도 머릿돌 예수님을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집이 하늘나라까지 영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은 다시 오시는 날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산산이 흩어질 것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나의 머릿돌로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의지하여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날 심판받지 않고 다 구원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