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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리기
등현스님 |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 원장
무엇을 수행이라 하는가? 초기불교의 수행에 해당하는 단어는 계발(bhāvanā)이다. 그러면 무엇을 계발시키는가? 몸, 말, 마음(身口意)으로 행하는 열 가지 행위를 나와 남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행위하도록 계발시키는 것을 수행이라 한다. 몸과 입으로 행하는 일곱 가지 나쁜 행위, 즉,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취하며, 배우자가 있는 이성과 사랑을 나누는 행위 등과, 거짓말, 꾸밈말, 이간질하는 말, 거친 말 등의 일곱 가지 나쁜 행위를 삼간다.
다른 생명을 위하고, 주지 않은 남의 것을 취하지 않으며, 배우자가 있는 이성과 사랑을 나누지 않는 행위와 진실한 말, 화합하는 말, 꾸밈없는 진솔한 말, 부드러운 말 등의 일곱 가지 착한 행위로 계발한다. 이렇게 몸과 마음으로 짓는 일곱 가지 이로운 행위가 충족되면 다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수행이다.
“몸, 말, 마음(身口意)으로 행하는 열 가지 행위를 나와 남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행위하도록 계발시키는 것을 수행이라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수행은 이 세 가지 중에서 주로 마음을 닦는 것이 수행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면 마음은 무엇인가? 마음은 보통 느끼고 생각하고 욕구하는 작용이다. 그러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욕구하는가? 인간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의해서 받은 표상을 마음에 받은 후, 느끼고 생각하고 욕구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독일의 현상학자 훗설은 마음은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을 지향하는가? 대상 또는 표상을 지향한다. 그 표상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에서 왔는가? 나의 몸 밖에 있는 물질들을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받은 이미지이다. 나의 몸 밖에 있는 물질들이 마음에 의해 비추어진 표상들이라서, 순수한 마음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마음에 속하였기에 심소(心所)라 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마음이고, 마음은 순수하다.
심소는 느끼고(受) 생각(想)하고 욕구(行)하는 작용을 말한다. 흔히 ‘마음을 다스린다’라는 말은 욕망이라는 심소(心所)를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세상의 많은 불행은 바로 잘못된 욕망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 욕망은 좋아하고(好) 싫어하는(惡) 욕망이고, 삶과 인간관계에 고통이라는 결과를 가져다주기에 다스려야 한다. 이러한 좋아하고 싫어하는 욕망에 감정이 동요되지 않는 것을 일반적으로 마음을 다스린다고 한다.
욕망을 다스리는 데는 좋아할 만한 것도 본래 없고, 싫어할 만한 것도 본래 없다는 것을 깨달아 다스리는 방법과,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단지 참음으로써 다스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참는 것을 참된 수행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좋아하고 싫어함에 실체가 없다는 것을 보아서, 좋음과 싫음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욕망이 왜 발생하는지를 아는 것이 욕망을 다스리는 관건이다. 욕망의 구성요소를 알아야 욕망을 다스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욕망의 구성요소는 어떤 사물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是非)’라고 판단하는 작용과 그 어떤 대상에 대해서 ‘유익하거나 해롭다(利害)’고 믿는 두 가지의 판단작용이다.
사람들은 ‘내가 옳다’라는 믿음 때문에, 또는 ‘나에게 이롭다’라는 판단작용 때문에 그 대상에 집착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생각(想)이라는 심소를 다스리는 것이다. 생각은 어떻게 다스리는가? 옳고 그름에 대한 집착은 옳고 그름이 본래 없음을 앎으로써, 이로움과 해로움에 대한 집착은 자타불이를 이해함으로써 다스릴 수 있다.
절대적 선(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학적 공리에만 존재할 뿐이다. 경험 세계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실수한다. 인간은 오욕락을 가지고 있기에 끊임없이 선해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지금 현재에 내게 이로운 것이 후에는 해롭고, 지금 현재에 해로운 것이 나중에 이로운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가난함이 근면 성실함을 키우고, 풍요로움이 오히려 나태함을 키울 수 있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바르게 생각함으로써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기에, 생각을 다스리는 것을 마음을 다스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만 다스린다고 욕망이 다스려지는 것은 아니다. 이성과는 별개로 작동하는 다른 욕망의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좋은 느낌은 욕구하고 싫은 느낌은 밀쳐내 버리는 느낌에 대한 호오(好惡)이다. 이런 경우에는 느낌을 다스려야 욕망이 다스려진다. 흔히 좋은 느낌은 끌어당기고 싫은 느낌은 밀쳐내는데, 그것 자체가 바로 괴로움이다. 왜냐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면 괴로움이고, 원하는 상태 그 자체가 불만족이라는 괴로움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욕망(行)의 일어남을 자세히 관찰하면, 즐겁고 괴로운 느낌(苦樂受)과 이롭고 해롭다는 생각(想)의 두 가지 합이 긍정적일 때 바로 욕망이 발생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과 즐겁다고 느껴지는 것의 두 가지 구성 요소를 다스리지 않으면 욕망을 다스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욕망을 다스리려면 생각을 다스려야 하고, 생각을 다스리려면 또한 느낌도 다스려야 한다.”
이처럼 욕망을 구성하는 요소를 자세히 살펴보면 세 가지다. 첫째는 즐겁고 괴로운 느낌, 둘째는 옳고 그르다는 판단, 셋째는 유익하고 해롭다는 이해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서로 의존되어 작용한다. 그러므로 행복한 인생을 영위하려면 불행으로 인도하는 욕망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욕망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이 욕망은 참는다고 다스려지는 것은 아니다. 참기만 하면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서 나중에는 쓰나미 같은 욕망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욕망을 일으키는 데는 원인이 있다. 욕망은 이롭고 해롭다는 생각에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욕망을 다스리려면 생각을 다스려야 하고, 생각을 다스리려면 또한 느낌도 다스려야 한다. 왜냐하면 좋은 느낌은 유익하고 유익함이 옳은 것이라는 판단을 사람들은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게임에 탐착하는 한 소년이 그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거나, 마약을 즐기는 사람이 그것을 최상의 즐거움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면 그것들로부터 빠져나오기는 무척 어렵다. 그것들을 즐기는 그 순간만큼의 즐거움은 인정되더라도, 즐김의 순간이 지나고 난 후의 무상함, 허망함 그리고 그것들을 즐기기 위해 소모된 경제적인 해로움 등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욕망의 합은 그다지 유익하지도 않으며 괴로운 결말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욕망을 충족시키고 난 후의 결과가 심성의 피폐, 경제적인 손해등의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알게 되면 즐거운 욕망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고, 즐거운 욕망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 대상에 대한 욕구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이 어떠한 특정 대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대상이 유익하거나, 옳다라는 판단 작용에 의지해서 발생한다. 그리고 지금 좋은 것이 결코 항상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그와 같은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필자는 오렌지 주스를 무척 좋아하였다. 아마도 열대 지방에 오래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에 태국의 대학에서 강의할 때 일이다. 첫 강의료를 받고 학생들과 함께 백화점에 가서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 학생이 이런 말을 하였다. 호주의 한 방송에서 오렌지 주스를 만드는 과정을 촬영하여 고발하였는데, 그들은 오렌지에 묻어 있는 하얀 농약 가루를 제대로 씻지 않고, 오렌지를 담은 큰 통에 장화를 신고 사람이 들어가서 밟았다는 내용이다. 그 동영상을 본 학생은 오렌지 주스가 인체에 해롭다고 판단을 하였고, 많은 학생이 그 말에 동의하였다.
이처럼 한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할 때, 몸에 이로우면 좋아하고 해로우면 싫어하게 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 생각하면, 이 세상에 약이 안 되는 음식도 없듯이 독이 없는 음식도 없다. 다만 내 몸이 그것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와 독성이 얼마나 있는가의 함수 관계에 의해서 그 대상이 내게 얼마나 이로운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지 결정적으로 이롭고 해로운 것은 없는 것이다.
2월에 한국에 입국한 후 지인에게서 오렌지 주스 한 박스를 선물 받았다. 그러나 몇 달 동안 오렌지 주스를 마시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은 욕구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오렌지 주스를 좋아했던 이유는 열대 지방에 살면서 땀을 많이 흘렸기에 몸이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추운 한국에 오니 차가운 성분의 주스를 욕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조건이 해체되면 좋고 나쁠 것이 본래 없는,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느낌에 자성이 없다’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때 오렌지 주스를 좋아한다는 것이 온도와 기후 등의 여러 가지 조건에 의존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것을 떠나서 오렌지 주스 자체가 좋고 나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즉, 느낌 자체가 조건에 의지해서 발생하며, 조건이 해체되면 좋고 나쁠 것이 본래 없는,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느낌에 자성이 없다’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을 다스리려면 욕구를 다스려야 하고, 욕구를 다스리려면 생각과 느낌을 다스려야 한다. 즉, 욕구도 공하고, 생각도 공하며, 느낌도 공하다는 것인데, 반야심경의 오온자성개공이 그것이다. “관자재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의 자성이 공함을 보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느니라.”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孤雲을 빌어서 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五法堂十房舍(5동의 법당과 10개의 요사채)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보물 제246호)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28호)은 도선국사께서 조성하신 것들이다.
특히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이다.
옛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지장보살님의 원만자비하신 풍모는 물론이거니와 명부십대왕의 상호와 복장도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일제시대에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고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대소사찰들을 관장하고 있다.
사세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간의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도량이 해방이후 쇄락하여 많은 사찰재산이 망실되고 지금은 이십여명 대중이 상주하는 교구본사로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10여년전부터 중창불사의 뜨거운 원력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낡은 건물들을 수리 및 단청하여 지금은 위풍당당한 본산의 위상과 소박하고 절제된 수행지로서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정도 규모 이상의 고찰로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고운사는 민가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을 자랑하며 일주문에 이르는 솔밭 사이 비포장길은 부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다소곳이 다가서는 불자들의 마음처럼 포근하고 정감넘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청정하고 엄격한 수행가풍을 자랑하는 고금당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을 비롯한 고운사의 모든 대중들은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대승불교의 참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새벽의 찬공기를 가르며 부처님전에 발원을 멈추지 않는다
불교 명상음악 ㅣ 이완수 퓨전국악
1.반야심경 2.사무친그리움 3.회심 4.서산에해기울고 5.꽃비내리는 날 6.꿈속에서 7.나그네 8.동행 9.선운사가는길 10. 산사의아침풍경
아티스트참여 정보앨범
첫댓글 청산에하늘이 시인님의 좋은글 "마음 다스리기 - 등현스님 ㅣ 불교명상음악 ㅣ 이완수 퓨전국악"과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언제나 샘물은 퍼 낼수록 맑아지듯 우리들도 자주만나 즐거운 시간되세요....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불교명상음악 감상합니다
퓨전명상음악이라 반야심경 새롭게 다가옵니다
마음소리 울리는 가야금, 목탁소리 잠시 명상에 잠깁니다
마음을 다스리니 수행이라 합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안락하다 안락하다 안락하다
고요 속에서 되뇌입니다
몸과 마음 편안자리에 머뭅니다
신구의 삼업 잘 다스려 어디에 휘둘리지 않고 흔들림없이
평안자리 함께합니다
분별하지 않으니 마음자리 편안케 하옵고
언제나 어디서나 크나큰 경계 만나도 경계 아님을 알아
여실히 벗어나기를 바라고 원합니다
건강축원드립니다 ()
명상음악 차례의 이름이 청아한 발길 같습니다
우리 전통악기 함께하니 더 깊어지는 느낌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I return to Buddha, Law, and Seung Sambo.
I pray with all my heart that the holy and merciful Buddha's skin and mercy light will be reflected. Thank you.
Holy Father.
Avalokitesvara Bodhisattva ()()()
불교음악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