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7주간 금요일
‘당신만이 내사랑’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극중에서 오 말수라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집안이 가난해서 부잣집에 도우미로 들어갔습니다. 드라마가 그렇듯이 주인집 아들이 가난한 소녀를 좋아하게 되었고 둘은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사랑의 결과 둘 사이에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비극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주인집에서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여자를 며느리로 맞이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아이 엄마에게는 병이 든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부잣집에서는 수술비를 주면서 아이를 포기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남편에게는 아이 엄마가 바람이 나서 도망갔다고 합니다. 엄마의 장례를 치루고 찾아온 아이 엄마에게는 아이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바람난 여자가 되었고, 사랑하는 아이를 먼저 보낸 슬픔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도 있습니다. 1991년에 있었던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입니다. 사람의 필체는 사람의 지문처럼 각기 다르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강기훈 씨는 유서를 대필했다는 누명을 쓰고 3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 유서의 필적을 감정한 기관은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였습니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거짓말처럼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의 거짓 판정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강기훈 씨는 재심청구를 하였고, 24년이 지난 2015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드라마와 현실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욕심이 거짓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둘째는 거짓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힘과 권력을 이용해서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럼에도 진실은 드러난 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알고 계시고, 거짓을 만들어낸 당사자들이 알고 있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와 현실에서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잘못한 사람이 결국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청한다는 것입니다. 억울한 사람도 지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용서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모두에게 화해와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결말이 쉽지 않습니다. 여전히 가해자는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감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일삼기 마련입니다. 왜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일들이 계속될까요?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나치에 협력한 이들을 심판했습니다. 독일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나라는 드라마와 같은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질문하십니다. ‘예 주님, 사랑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 주변의 억울한 이들,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병든 이들을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세례를 받아 교회의 일원이 된 모든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