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목 현장에서 주님의 사랑을 증언하고자 노고를 아끼지 않는 형제 사제들에게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21회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며
1992년 국제 연합(UN)은 ‘세계 장애인의 재활과 복지의 상태를 점검하고, 장애인 문제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고 장애인이 더욱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와 보조 수단의 확보를 목적’으로 12월 3일을 세계 장애인의 날로 제정하였습니다. 제21회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우리 한국 교회는 장애인과 노인,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목적 배려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나눔으로써,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모든 인간이 존엄한 삶을 영위하여 모두 한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장애인 인권에 관한 인식의 빠른 발전
1948년 UN은 「세계 인권 선언」(UDHR)에서 천부 인권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천명하고, “모든 인간은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후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은 급속히 발전하여 UN의 1971년 「정신 지체인 권리 선언」, 1975년 「신체 장애인 권리 선언」을 통해 “일반 시민과 동등한 장애인의 권리를 선언하였고, 1982년 「세계 장애인의 해 행동 계획」(1983∼1992년)을 채택하면서 교육ㆍ노동ㆍ교통 이동ㆍ건물 접근ㆍ문화 향유 등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의 일반적 권리를 보장’하도록 권고하였으며, 이날을 기념하여 1992년부터 12월 3일을 ‘세계 장애인의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2006년 192개국 대표가 참석한 제61차 UN 총회에서는 「장애인 권리 협약」(CRPD)을 만장일치로 최종 채택하였고, 2008년 5월 3일에 발효됨으로써 세계 6억 5천만 명에 이르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협약이 채택되었습니다.
이처럼 세계는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장애인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고자 모든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권에 관한 인식의 정도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권 의식 향상에 따른 영향으로 1977년 「특수 교육 진흥법」을 제정하면서 장애인 정책에서 최초로 장애인 차별 금지 법리를 도입해 인권에 대한 인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990년 「장애인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 1991년 「장애인 복지법」에 따라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선포하였고, 1992년 아ㆍ태지역사회경제위원회(ESCAP)가 ‘아ㆍ태 장애인 10년’(1993∼2002년)을 선포하면서 장애인의 사회 통합에 관한 인식이 높아져 마침내 1998년 정부는 「한국 장애인 인권 헌장」을 제정, 선포하면서 UN의 장애인 권리 선언의 정신에 따라 장애인의 인권 보호와 완전한 사회 참여 그리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여건과 환경 조성을 위한 기틀을 놓았습니다. 이후에도 정부는 2011년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으로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고, 지난 2012년 4월 18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발표하여 제1종 근린 생활 시설과 제2종 근린 생활 시설, 문화와 집회 시설, 종교 시설, 의료 시설, 교육 연구 시설, 노유자 시설, 수련 시설, 교정 시설, 묘지 관련 시설 등에 장애인과 노인과 임산부들을 위한 시설물을 설치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권 의식은 국제적 장애인 인권 의식의 빠른 발전에 영향을 받아 함께 성장해 왔지만, 실천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상태입니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1,26) 하시고 당신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심으로써 인간을 신성하고 존엄한 존재로 창조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레위기는 “너희는 귀 먹은 이에게 악담해서는 안 된다. 눈먼 이 앞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 된다.”(19,14)고 하며 장애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곧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밝히는 행위이며 주님을 경외하는 행위에 속함을 드러냅니다. 신명기는 “‘눈먼 이를 길에서 잘못 인도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온 백성이 ‘아멘.’ 하고 말해야 한다.”(27,18)고 하며, 이스라엘 백성 또한 이들을 특별히 사랑으로 돌보기를 명령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사랑이 율법서의 근본 정신에 속함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욥은 “나는 눈먼 이에게 눈이 되고, 다리 저는 이에게 다리가 되어 주었지.”(29,15)라고 고백하며, 짓밟히고 억눌린 이들의 권리를 되찾아 주는 약자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강조하였고, 이사야 예언자는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사람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 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35,5-6)하는 예언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확고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은 눈먼 이가 현실적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구약의 약속이 신약에서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루카 복음서는 나병 환자 치유(5,12-14), 중풍 병자의 치유(5,17-26),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치유(6,6-11), 눈먼 사람의 치유(18,35-43) 등 내ㆍ외적, 정신적ㆍ육체적 질병과 장애들의 완전한 치유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고, 바로 그곳에 하느님 나라가 현존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치유 행위를 통해 장애인과 병자들을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복귀시켜 사회 통합을 이루십니다. 중풍 병자를 치유하신 다음 들 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셨고(마르 2,11), 시청각 장애인은 손을 잡아 일으키시어(마르 9,27) 낫게 하시는 등 예수님께서는 장애인들이 스스로 인간 존엄성을 되찾아 갈 수 있도록 지지하시고 격려하시며 손을 잡아 이끌어 주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장애인과 병자들을 육체적으로 치유해 주실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이 사회 공동체의 정상적 구성원으로 통합됨으로써 인간적 삶을 온전히 누리게 하시고, 그들이 독립 생활과 사회 통합을 이루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되찾아 주는 일을 통해 영적 구원에 이르는 참된 구원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 1981)에서 “장애인들 또한 천부적이고 신성하며 침해할 수 없는 권리에 상응하는 온전한 인간 주체이며, 그들의 육체와 기관에 미치는 어떠한 제약과 고통이 있다 하여도 그들은 더욱 분명히 인간의 존엄과 위대함을 드러낸다.”(22항)고 천명함으로써 장애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위대성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며 장애인들의 권리를 증진하려는 각 정부 차원에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였습니다. 또한 장애인 차별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며 “기능이 온전한 사람들에게만 공동체 생활을 허락하여 노동하게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부당하며, 만인에게 공통된 인간성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 이는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 약하고 병든 사람에게 심각한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이 된다.”(22항)고 강조하였습니다.
「간추린 사회 교리」(Compendium of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에서도 ‘장애인들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 조건, 정당한 임금, 승진 가능성, 각종 장애 철폐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장애인들의 정서적 차원과 성적 차원에도 신경을 써야 하며,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상관없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도덕 질서를 존중하는 가운데,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하며, 애정과 관심과 친밀감이 필요함’(148항 참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지금 우리 교회는 장애인과 노약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장애인과 노약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기쁘게 주님의 성전에 나와 비장애인들과 더불어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 안에서 위로와 축복을 받으며 행복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까?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에 대한 권고
우리 교회가 장애인과 노약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이고, 신앙 안에서 그들과 함께 하나가 되며, 그들이 완전히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뜻입니다. 국제 사회와 우리나라에서 장애인과 노약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권 의식이 날로 발전하고 충만히 실현되도록 촉진하는 일 또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따라서 장애인과 노약자 등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여 교회는 다음과 같이 사목적 배려를 할 것을 권고합니다.
첫째, 교회 안에서 장애인과 노약자들에 대한 인식 개선과 인권 의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인식 개선 활동과 교육 기회를 제공할 것을 권고합니다.
둘째, 우리 교회가 먼저 앞장서 장애인과 노약자들을 위한 편의 증진 시설을 갖추어 교회 안에서 주님을 만나는 모든 시간에 장애인과 노약자들도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권고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집에서 장애인과 노약자, 비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져야 합니다.
셋째, 모든 성당과 그 부속 시설, 수도회 건물과 피정ㆍ교육 센터, 학교 등에서는 장애인과 노약자들의 편의 증진 보장을 위한 시설물을 설치하기를 권고합니다. 그리하여 장애인과 노약자, 비장애인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주님의 집에서 쉼과 위로를 얻게 해야 합니다.
넷째, 교회 시설물에 대한 편의 증진 규정을 만들고 이에 따른 시설물을 설치하여 시각, 청각, 감각 등을 활용한 안내를 하고 성사와 전례, 교육, 피정 등을 함께할 수 있기를 권고합니다. 그리하여 장애인과 노약자, 비장애인 모두 불편함 없이 주님을 만나도록 해야 합니다.
다섯째, 특히 발달(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이 주일 학교 등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 줄 것을 권고합니다. 그리하여 당사자와 그들의 가족이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피조물이 다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기쁨에 넘쳐 환호성을 지르게 하소서.” 아멘.
2013년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김운회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