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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룡포 마을의 뿅뿅다리 위를 걷는 생태답사 참가자들 ⓒ문양효숙 기자 |
강가의 너른 모래밭은 며칠 전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내성천의 겨울은 고요하디 고요했고 간혹 눈밭에 남은 너구리와 노루의 발자국만이 살아있는 것들의 기운을 느끼게 했다. 그 속에서 삼삼오오 강가를 거니는 이들은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의 생태탐방 팀이다.
지난 12월 5일 이곳을 찾은 탐방 팀은 걸을 때 마다 소리가 난다하여 ‘뿅뿅다리’라 불리는 좁은 철망 다리를 줄 서서 건너는가 하면 신발을 벗고 차디찬 강물로 들어가기도 했다. 한 겨울의 냉기가 발을 아리게 하지만 얕고 맑은 물 아래로 느껴지는 고운 모래들의 부드러운 느낌이 좋다.
낙동강의 지천인 내성천은 경상북도 봉화군 남쪽에서 발원하여 영주, 예천, 문경을 지나 낙동강에 이르는 길이 110㎞의 긴 사행천(蛇行川)이다. 나지막한 산을 끼고 굽이굽이 흐르는 내성천은 360도 회전하는 물길에 쌓여있는 회룡포 마을을 비롯해 4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금강 마을, 외나무다리로 유명한 무섬 마을 등 아름다운 물돌이 마을들을 만들어왔다. 2010년 6월 내성천을 찾은 미국 환경학계 석학 랜디 헤스터 교수는 “이렇게 아름다운 모래강은 미국 내에서 평생 한 곳 밖에 본적이 없다. 은퇴 후에는 정말 이곳에 들어와 살고 싶다”고 말한바 있다.
영주댐 건설로 인한 모래 유실로 변하고 있는 내성천
이 아름다운 내성천이 변하고 있다. 상류의 영주댐 건설과 하류에서 만나는 낙동강의 4대강 사업 때문이다. 정부에서 밝힌 영주댐 건설의 용도는 ‘낙동강으로 흘려보낼 용수의 유지보수’를 위해서다. 갈수기 때 영주댐에 가둬놨던 물을 한꺼번에 방류해서 낙동강 하류의 수질 악화를 막겠다는 것이다.
영주댐이 내성천에 미치는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아름다운 모래의 유실이다. 4대강 사업이 낙동강 수위를 더 깊게 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모래를 퍼내면서 지천인 내성천의 모래들이 쓸려 내려가는 동시에 상류에 건설된 영주 댐이 새로운 모래 유입을 차단시키며 중하류 지역의 모래밭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 중상류로 올라갈수록 고운 모래는 없어지고 굵은 자갈밭 사이를 흙탕물이 가로지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실제로 하류인 회룡포에서 영주댐이 있는 중상류로 향할수록 강가의 하얀 모래는 온데간데없고 돌밭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연히 만난 마을 이장 권태종 씨는 “댐 공사를 시작하고 2년여 만에 고왔던 백사장이 이런 자갈밭이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권 씨는 댐을 건설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평생을 살았는데 물이 깨끗했어요. 오히려 공사한 다음에 물이 이렇게 됐죠. 자기네 밥 먹고 살려고 공사를 하는 것 같아요. 정부에서 돈을 막 찍어 내는 건가, 우리나라가 부자라서 이러는 건가 하는 생각 밖에 안 들어요.”
유용성 찾기 힘든 대형 국책사업, 어디에나 삼성이 개입하고 있어
권 씨가 서 있던 강가 뒤로는 산을 뚫는 터널 공사가 한창이었다. 영주댐 건설로 잠기는 중앙선 철도를 이설하는 공사다. 댐 공사로 철로를 옮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 중앙선 승객들은 아름다운 내성천 대신 6km 구간을 터널 속을 지나야 한다. 철도 이설 공사는 현재 삼성이 진행 중이다. 영주댐 건설도 마찬가지로 삼성이 하고 있다. 처음 2300억을 예산으로 시작한 철도 이설 공사비용은 현재 1조 3천억으로 불어났다. 탐방 팀을 안내했던 생태사진작가 박용훈 씨는 “8400억으로 시작한 영주댐 건설비도 얼마 전 1조 천 억 원이 넘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말했다.
“대형 댐의 예측 사업비와 실제 사업비는 평균 3배가 차이나요. 처음 보고된 예산보다 10배 이상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요. 국책사업에서는 경제적 타당성이 중요한 요건인데 댐은 대부분 경제적 타당성도 안 나와요. 그 뿐만이 아니죠. 환경은 환경대로 망가지고 지역 공동체도 해체 돼요.”
상류로 올라가며 차창 밖으로 보인 영주댐은 잔잔히 굽이쳐 흐르는 내성천의 모습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2014년 완공 예정인 영주댐은 4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아담한 물돌이 마을인 금강마을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만들 터이다. 영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가구는 금강마을을 비롯해 540여 가구에 이른다.
탐방 팀 일행인 서울대교구 쑥고개 성당신자 이아형 씨는 눈앞에 나타난 영주댐 건설 현장을 보며 “경악스럽다”고 말했다. 환경대학원에 다니는 이 씨는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보살핌, 보호, 청지기 정신 같은 가치가 전혀 없는 듯하다”며 “자연은 자기 정화를 할 수 있는 힘이 한계가 있는데 국책 사업들이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은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수질 정화를 하는 모래는 자연적으로 끊임없이 흐르고 쌓인다. 습지와 강가의 수림은 물을 머금어 홍수를 완화한다. 이런 강에 기대어 다양한 생명이 살아간다.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이 다시 하느님의 백성으로 회복되리라 외쳤던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하느님은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강의 환상을 보여주신다.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에제키엘서 47,9)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강은 흘러야 한다.
▲ 내성천 모래 밭 위의 너구리 발자국. 내성천은 양 옆으로 도로나 산이 없어 동물들이 접근하기 좋은 강이다. ⓒ문양효숙 기자 |
▲ 강의 상류로 갈수록 고운 모래는 없어지고 자갈만이 남았다. ⓒ문양효숙 기자 |
▲ 내성천은 맑은 물과 부드러운 모래로 맨발로 걷기에 좋다. ⓒ문양효숙 기자 |
▲ 낙동강의 수질을 위한 다는 목적으로 건설중인 거대한 영주댐. 이로 인해 내성천의 원래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 멀리 보이는 평은초등학교. 영주댐이 완공되면 이 지역은 모두 수몰될 예정이다. ⓒ문양효숙 기자 |
▲ 영주댐 공사로 주변 산들이 파헤쳐지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