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
곽재구
음악을 틀어주랴 가시내야
진저리치도록 그리운 이 땅에 태어나
그 무슨 그리움이 또한 부족해서
너는 푸른 보리밭 속 그리움의 맴을 도느냐
고향을 찾느냐 에미를 부르느냐
아니면 겨울언덕 위 무지개라도 꿈꾸느냐
풀꽃들은 흩어져 봄바람 속에 피어나고
저려오는 가슴을 쓸어안고 네가 누운 곳
가시내야 두 눈을 부릅뜨고 흰창으로 마주친
그리운 보리밭길 황토언덕이
네가 찾은 천형의 고향땅이 아니겠느냐
무엇이 아쉬워서 서러운 꿈 깨지 않느냐
밥이냐 자유냐 사랑이냐
언덕 아래서는 학교를 가는 아이들의
보리피리 소리가 성글지다
음악을 틀어주랴 가시내야
네가 꿈꿔왔으면서도 한번 가지지 못한
그리운 나라의 한맺힌 생각들이
네 버림받은 핏속에 스며 있지 않느냐
맴을 돌아라 푸른 보리밭 위 무지개를 띄워라
거품을 물고 흰창을 드러내고
네가 못다 꿈꾼 이 땅의 그리움이
또 한번 네 가슴을 밀려오기 시작할 때
가시내야 음악을 틀어주랴
아리랑 스리랑 흰옷 입고 넘어온
오천년 한 깊은 봄언덕도 불러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