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롱한 목소리로 소년이 중얼거렸다. 장소가 좁고 꽉 막힌 곳이었던지 크게 증폭되어 울려퍼졌다.
"내가 어쩌다가?"
황당하다는 표정이 깊게 서려있었다. 온통 주위엔 붉은색의 꿈틀거리는 혈관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소년의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양분을 공급해주고 있었다. 마치 자궁속의 태아처럼.
"나, 난 분명히 죽었는데."
죽음. 그래, 분명히 소년은 죽었었다. 다시 살아나지 못할정도로. 과도로 몸 전체를 여든두번이나 찔리고 살아남는 괴물은 없을 것이다.
그 때의 고통이 여과없이 생생하게 신경을 타고 느껴졌다. 불쾌한 느낌에 소년이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이건 또 대체 뭐야. 무슨 막 같은게...... 꼭 에일리언 같잖아. 설마 내가 괴물도 아닐테고."
두 팔을 들어올려 허우적거려봤다. 소용없는 몸부림이라는 걸 알고있었지만 어서 빨리 이 곳에서 빠져나가야 된다는 일념 뿐이었다.
일련의 동작이 몇번 더 행해지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자연적인건지 소년의 노력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희망의 징조였으므로 더 빠른 속도로 노 젓듯 저어댔다.
"찌이이익."
균열이 점점 더 커지며 바깥바람이 불어왔다. 세상 무엇보다 상쾌한 느낌에 소년은 입가에 미소까지 띄우며 균열을 흔들어댔다.
"찌이익, 찌이이익-"
바깥에서 뭔가 환호성 비슷한 것이 들려왔다. 무슨 환영인파인가? 그런 생각은 억측이라고 단정지으며 마침내 몸을 던졌다.
"꿀럭!"
드디어 붉은색 구체 안에서 소년이 튀어나왔다.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듯 온통 검은색천으로 몸을 두른 이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오체투지했다.
소년, 아니 마신 레니크가 눈을 부릅떴다. 한국에 있을 적 그 누구보다 일본타도에 열을 올렸던 그였다. 그리고 가족이었다. 한때 독도로 영주권을 옮겼을 정도로 열렬한 반대파였다.
"고야마라면 일본어잖아?"
"일본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이시온지......"
"그런게 있어. 하여튼 여긴 어디냐?"
레니크가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아무리봐도 검은색밖에 눈이 띄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이리 환한건지. 사완이 답했다.
"마신전이옵니다. 본래 마신은 인간계에서 가장 마스러운 마신전에서 잉태되는터라 그렇사옵니다."
"마스러운?"
말도안되는 어휘에 레니크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반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완은 안절부절했다.
"예, 예. 마스러운...... 뭐가 잘못됬습니까?"
"아니야."
"마신이시여."
고야마가 신전이 울릴정도의 웅후한 목소리로 레니크를 불렀다. 안그래도 이름때문에 기분나빠 죽겠는데 왜 부르냐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서 마계로 가시지요. 마족공들과 기타 마족들에게 인사를 시켜야하니까요. 이미 환영식은 준비해 놓았으니 바로 가시면 됩니다."
"마계라...... 그리고 지금 나는 인간계에 있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몸은 비록 13~14세의 앳된 골격이지만 정신상태만은 전생의 25세 그대로였으므로 사고방식에 뭔가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엇갈리는 부분이라면 전생의 그가 제대로 돌은 백수에 싸이코였다는 점?
'어차피 백수노릇에 시달려 시름시름 했었는데, 이걸 기회라고 봐야하나?'
마신이라면 아무거나 맘대로 해도 되는 직위가 아닌가. 수천만, 어쩌면 수억마리일지도 모르는 마귀들을 다루는 신이라!
하지만 그는 천생이 인간인지라 4천왕들에게 물었다.
"마계로 갔다가 다시 이리로 돌아오려면 얼마나 있어야하지? 내가 전생에 인간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기가 좀 더 편한데."
매끄러운 흑발의 여인, 레그나가 부드러운 곡선의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마신이시여, 본래 마신이란 재판권만을 지니고 있사옵니다. 실질적인 권력이 없어 무제한적으로 유희를 즐기셔도 상관이 없다는 거지요. 다만 본연의 마력은 대단한지라 저희 7마왕 4천왕이 모두 연합해도 안될정도시라...... 하지만 인간들은 사악합니다. 그들은 엘프나 드워프들, 또는 같은 종족마저도 노예로 쓰는 악독한 자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하급마족들보다 더하다고 할수도 있겠지요.
따라서 마신께서는 서고와 연무장에서 약간의 무력을 익히셔야만 합니다. 검과 마법을 배우신다면 속성으로 인간들이 말하는 그랜드 소드마스터나 13써클에 도달하실 수 있으니 아마 3개월쯤 후면 될 듯 합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 13써클?"
늘 뒤적이던 판타지소설에서 많이 나오던 단어. 레니크는 환생하면서 지닌 연한 녹색의 눈과 찰랑거리는 연갈색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흔들며 되물었다.
레그나는 질리지도 않는지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예. 13써클은 드래곤이 갈 수 있는 한계. 또한 모든 신이 닿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하지만 신을 제외하고 13써클에 다가갈 수 있는 이들은 없다고 봐야 옳습니다. 인간들은 고작 8써클만 되도 대마도사라 칭하며 경배하고 지상최강의 생물이라는 드래곤마저도 11써클에만 들면 만족하니 왜 안그러겠습니까.
저희 천왕이나 마왕들은 인간계에 나가면 주신의 제약으로 인해 힘이 1/10으로 줄어들어 당하고 살지만, 마신님께서는 그러한 제약에 묶여있지 않으니 충분히 안전하고 즐거운 유희를 즐기실 수 있을거라 봅니다."
"오오. 그럼 빨리 가자고."
첫댓글 레그나....;;;
레그나....
레그나......
레그나…… [뭐여?;;]
말머리가 안 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