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기일 미사의 은혜는 특별한가
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미사를 봉헌하려는데 그 날짜에 약속된 분이 계시어 담당 수녀님과 상의하여 제가 원하는 그날 기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 후 오랫동안 저의 어머니 때문에 약속된 날짜(아마 그분도 그날이 기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를 양보하신 분께 죄송스러웠고 어쩐지 저의 어머니께서도 미사 은혜를 풍부히 받지 못하신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과연 기일 미사의 은혜는 특별한 것이고 그 미사로 못다 한 세상의 성덕을 닦는지요?
11월은 한국 교회가 ‘위령의 날’(11월 2일)과 연관시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여 기도하는 달(위령성월)로 정해 놓았습니다.
위령성월은 일차적으로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자비하신 하느님께 기도와 보속을 드리는 엄숙한 달이며 이차적으로 한 번은 죽게 될 우리들의 죽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의로운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영원한 세상을 동경해 보는 거룩한 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교회의 정신에 따라 11월인 위령성월에 우리 신자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이미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과 친척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면서, 특히 위령 미사를 통해 그들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여 평안한 복락을 누리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합당한 준비와 지향을 갖고 그들이 미사의 은혜를 통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기를 기도하기보다는 기복적인 은혜만을 비는 관습적이면서도 형식적인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령성월을 보내면서 위령 미사의 참다운 의미와 지향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죽은 이들에 대한 신심과 위령 미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기념하는 미사 전례를 봉헌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들이 상호 영신적인 도움을 제공하며 다른 지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위령 미사는 옛 로마와 희랍 문화권 풍습에서 죽은 자의 장례일이나 기념일에 ‘사자 밥상’ 또는 ‘위안상’을 차려 놓고 그를 위해서도 빈자리를 마련하던 관행을 초기 교회에서 그리스도교적 성찬 예식으로 대치한 데서 연유됩니다.
그러나 중세기에 미사의 제사성이 강조되면서 미사는 극히 좁은 의미의 제사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동물이나 곡식을 제물로 바치고 그 대신 하느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비는 구약의 제사와 같은 관점에서 미사를 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미사의 본질이 제사화함에 따라 미사를 바치는 사람에게는 미사 예물이라는 제도가 생기게 되었고 이것이 중세기에는 극도로 강조되었습니다.
특히 중세의 이런 미사의 제사화와 더불어 당시의 신학 사상 즉 구속론과 시대적 여건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죽은 이들에 대한 관심이 교회에서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구원 문제는 당연히 죽음과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 문제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은 교회의 전례나 기도 생활 등을 크게 지배하여 죽은 이의 명복을 벌며 그들의 죄 사함을 비는 신심 행사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바치는 기도나 희생이 죽은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가정 아래 이러한 행사들이 거행되었으며, 그 가운데 미사는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한마디로 죽은 이들에 대한 문제를 산 사람들이 온통 떠맡고 나선 것입니다.
그리고 연옥에 관한 교리의 발달이 죽은 이들을 위한 신심 행사에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하였습니다. 즉 사람이 죽으면 선인은 천당으로 가고 악인은 지옥으로 가는데 비록 선인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자기 죄를 완전히 보속하지 못한 사람은 죽은 후에 연옥이라는 곳에서 단련을 받아 완전히 깨끗해진 후에야 천당에 오르게 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련을 받는 영혼은 이미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할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시련을 당해야 하고, 이 시련은 괴롭고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견디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죽은 이를 대신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며 하느님께 간구한다면 하느님은 우리의 정성을 보아 연옥에서 단련받는 이의 고통과 시련 기간을 단축시켜 주실 것이라는 이론에 따라 연도나 위령 미사를 바치는 관습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물론 성경상으로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적인 사고로 가능한 이론이고 또 개개인의 신앙생활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세에는 이러한 관습이 본의미와 달리 너무나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에, 구약의 제사가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지나치게 형식적인 종교 예식이 된 것처럼 비관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중세 후기의 신자들은 죽은 이를 위해 바치는 미사를 온전히 객관적 제사로 이해하여 미사 예물을 바치는 것으로 죽은 이에 대해 자기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부모나 친지들에게 대한 정성은 위령 미사를 위해 바치는 예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측정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위령 미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 역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조상 숭배 사상이 효도의 일종으로 강조되고 있었던 까닭에 죽은 이를 위한 신심 행사는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초기의 선교사들은 조상에게 바치는 전통적 제사를 금하는 대신 연도나 위령 미사를 크게 강조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초기 교회 신자들은 제사를 바치는 대신으로 위령 미사나 연도를 바쳤던 것입니다. 이런 영향으로 지금도 위령 미사를 높게 평가하고 또한 미사를 엄숙하게 거행하고 거기에 참여한 신자들 역시 다른 어느 미사보다 더욱 경건한 자세로 참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신자들이 위령 미사를 열심히 바친다고 해서 문제삼을 이유는 없지만 한번 생각해 볼 문제는 위령 미사 자체를 너무 중요시함에 따라 미사가 지닌 원래의 의미나 본질이 변질되어 가톨릭의 종교 생활이 오해를 받을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미사가 지닌 제사적 의미를 이해하면서 위령 미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제사는 당신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사는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만이 아니고 출생과 공생활, 수난과 죽음, 부활을 포함하는 전생애를 하느님께 바친 것을 의미합니다. 미사는 이러한 의미에서 제사이며 또 제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사를 바친다고 할 때 우리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분과 함께 우리 자신의 전생활을 하느님께 바치고 그분을 위해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우리의 제물은 단순히 미사 예물만이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포기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죽은 이들을 위한 위령 미사를 지낼 때 예수께서 세우신 미사의 본의미를 생각하여 여기에 합당한 지향과 마음가짐으로써 먼저 준비를 한 다음 그 미사 안에서 죽은 이에 대한 기도와 은혜를 청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일 미사와 그렇지 않은 날짜에 드리는 미사 은혜의 차이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미사가 어느 개인, 특정인을 위한 미사가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보편 구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이 보편 구원적 의미 속에서 죽은 이에 대해 특별한 지향을 갖고 전구(기도)하는 것이 미사의 은혜입니다.
물론 돌아가신 그 본날에 미사를 드리면서 그분을 위해 기도하면 더욱 의미가 크겠지만 그렇다고 미사의 은혜가 더 큰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득이한 사정으로 그날에 드리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가까운 날짜를 정해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사 안에서 지향자가 감사와 찬미하는 마음속에 얼마만큼 정성된 준비로써 죽은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구원 효과의 은총을 바라는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3, 7, 30, 100일과 주년 미사가 가지는 의미
삼일재, 사십구일재, 백일재 등은 사람이 죽은 후 거행하는 예식으로 불교에 정착되어 이제는 거의 우리 생활의 제례 예식에 관습화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전례에서 이 날짜들이 갖는 큰 의미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우리의 관습이 된 이런 상제례 예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성찬례(미사) 속에 거행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로마의 초기 교회에서도 로마인들의 풍습에 따라 죽은 후 3일, 7일, 30일 또는 기일에 미사를 드렸지만 그 의미는 다른 특별한 것은 없고 육체의 부패 과정과 연관되어 있는 듯합니다. 사람이 죽은 지 3일이 되면 내장의 부패가 있고 9일에는 육체의 부패가 있으며 40일에는 뼈의 부패와 탈구가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세기에 이르러 아프리카 지방에서도 죽은 후 3일이나 기일에 무덤 옆에서 성찬례를 거행하였으며, 8세기경에는 프랑스와 독일 지방에서도 죽은 후 3일이나 7일, 30일에 기도와 미사를 거행하였습니다.
생전에 닦지 못한 성덕과 죄업이 미사의 은혜로써 사해지는가
미사를 봉헌할 때, 그것은 언제나 교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이 함께 포함되고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제물을 봉헌하며 또 모든 사람들에게 효과를 줍니다.
미사에 참여함은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여러 계층의 신도들과의 일치만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에 우리와 공존할 수 없고 또 우리와 상통할 수 없는 이들과의 일치도 의미합니다. 그들을 위해서도 그리스도의 제물이 봉헌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사 때마다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있기를 청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매미사 때마다 사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한 기도’ 부분에서 “세상을 하직한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천국에 들어가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고 있으며, 우리들은 그들이 생전에 하느님께 부족했던 점을 우리들의 희생과 기도로써 대신하여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케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경향잡지, 1992년 11월호, 정의철 다마소(가톨릭 대학교수 ·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