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피폐하고 암울한
우리사회의 밑바닥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무가치성과 모멸감을
압축적으로 그려내는 일련의 문제작을 내놓은
소설가 손창섭(1922-2010).
전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이
주는 카뮈류의 부조리와 염세적 허무주의
분위기에 끌려 청소년 시절 즐겨 읽었습니다.
매우 뛰어난 작가로 기억되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1970년대에 절필하고는 한국사회에
환멸을 느껴서 그랬는지 아내가 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아예 일본인으로
귀화하여 여생을 보낸 것으로 나타납니다.
심지어 수소문해서 그가 사는 도쿄의 집으로 찾아간
기자의 “혹시 손창섭 선생님이냐“는 물음에 나는 손창섭이 아니라며
따돌렸다는 일화도 전할 만큼 한국과는 관계를 끊고 지냈습니다.
갑자기 손창섭 얘기를 꺼낸 이유는 그의 작품 중
“미해결의 장”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생각나서 입니다.
소설에서는 아무런 희망없이 방관자의 자세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화자가 "사느냐 마느냐"하는 문제를 두고
미해결의 장이라 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상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의문을 품었던
그 시절 저는 과학이 내놓는 대답이 가장 신뢰 할 만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찰에 의해 입증된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과학적 방법의 장점은 지난 수 백년 간의 성과가 증명한다고 보았습니다.
아리송한 용어를 길게 늘어놓는 철학이나
감성적인 정서를 이리저리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하는 문학의 동어반복적 서술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한 이유는 저의 인문학적 소양의 부족에서 오는 오해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연유로 지난 40여 년간 과학관련 서적을 읽으며
인간의 지식에 지평을 넓혀주는 새로운 이론이나 발견이 있었는지
수시로 신간 서적을 들추며 살펴 보았습니다.
알아볼수록 자연에 대한 지식 범위가 넓고 깊어짐에 따라
모르는 문제 즉 “미해결의 장”이 줄지어 새로 나타납니다.
제가 말하는 모르는 문제라는 것은 전문가의 특정된 분야가 아닌
일반인들도 이해하는 수준의 문제지만 최고의 과학자도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것을 말합니다.
물리학 그중에서도 요즈음 전성기를 맞이한 우주론의 문제로 예를 들자면
우주를 기술하는 이론중에서 현재 물리학계 및 천문학계에서
가장 널리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을
우주론의 표준모형standard model of cosmology이라 합니다.
1990년대 후반 및 2000년대에 이루어진 일련의 관측 및 발견들을 통해
현재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우리 우주를 가장 성공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모형입니다.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몇가지 요소들을 전제하고 있는데
빅뱅 및 인플레이션에 의한 우주의 탄생과 팽창.
차가운 암흑물질의 존재.우주공간에서 물질끼리 서로 밀어내는
에너지로 작용하는 암흑에너지.
거시적으로 등방적이고 균일하게 물질이 분포한 우주
(0의 곡률을 가진 평탄한 우주)입니다.
2018년 발사된 플랑크 위성의 관측과
우주배경복사, 은하 적색편이,중력렌즈 등의 결과를 종합하여
업데이트된 표준우주모형은 우주의 약 5%는 보통물질이,
26%는 암흑물질,나머지 69%는 암흑에너지가 채우고 있으며
우주는 꾸준히 증가하는 암흑에너지에 의해 가속 팽창을
겪은 끝에 빅 프리즈(대동결)의 형태로 결말을 맞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우주론의 표준모형은 종전에는 주로 마법과 기적에 의존해야만
설명이 가능하던 우주의 시작과 종말을 합리적 논리를 가진 하나의
과학법칙으로 발전시켰으며 우주를 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려는 야심찬 기획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그럼에도 표준우주모형의 미해결 문제들은 산적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빅뱅으로 갑자기 우주가 "펑"하고
탄생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첨단과학으로도 대답이 궁색한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다분히 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만약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기라도 했다면 어떤 것이 존재 했는가?
우주가 하나인지 아니면 다중우주론의 주장대로 우주가 여러 개인지 무한히 많은지,
심지어 우주공간의 차원이 3차원이 아니고 끈이론이 말하는 대로 10차원이거나
아니면 몇 개의 차원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초창기 우주에 빅뱅이 있었다면 바로 다음의 급팽창inflation이
진짜로 있었을까? 만약에 그렇다면 급팽창을
추동한 에너지인 인플라톤inflaton장의 본질은 무었일까?
우주질량의 26%을 차지하는 암흑물질을 찾는 대규모
연구결과는 현재 어떻게 되고 있는가?
그리고 우주 질량의 가장 큰 부분(69%)을 차지하는
암흑에너지의 정체는 무엇인가.
1990년대에 발견되어 많은 과학자들을 놀라게한 우주의
가속팽창은 가속의 정도가 일정한지 혹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스로
증가하거나 감속하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에 있습니다.
이외에도 많지만 대충 이 정도로 미해결의 문제들을
열거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알아보면
현재 지상의 여러 전파망원경을 연결한 거대한 시스템-스퀘어 킬로미터 어레이-
을 호주와 남아프리카에 건설하고 있습니다.
세계 16개국 망원경을 서로 연결하면 지구크기 만한
하나의 망원경으로 작동하게 되고
우주역사에 관한 자세하고 풍부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허블 우주망원경의 뒤를 이어 훨씬 정밀한 관측이 가능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우주공간에서 2022년 부터 가동하고 있습니다.
힉스입자.반물질.블랙홀.중력파의 예측과 발견 등 눈부시게 성공한 현대 이론물리학에
힘입어 우주론은 이제 이치에 맞는 새로운 우주의 매카니즘을 밝혀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니면 우주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원래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불합리한 존재일 뿐 일관성 있는 합리적 체계가 아닌 것일까?
심오한 우주적 질문을 다루는 우주론 과학자들의 논쟁을 보면
있는 그대로의 우주가 불가해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다만 실용적 작업으로서 과학 연구를 계속해 나가느냐
아니면 과학 활동 전체가 합리적 질서의 깊은 층에 기반한다는 가정하에
우주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원리를 지향하는가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만약 후자가 맞다면 깊은 층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지점까지 인간 정신이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가장 거대한 미해결의 장으로 남을 것입니다.
첫댓글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참으로는 신비롭고 말장난 말이었이고 그냥 일본에서 산다는 사실이 분노스럾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