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전 함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토요일의 도심은 열기로 가득차서 여름이 성큼 다가선듯한 사람들의 옷차림은 모두가 반팔소매 옷차림이다
친구의 병문안 가는길은 도심을 지나 지금 한창 열기를 뿜는 잠실쪽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엔 뚝방도 있고 들꽃도 피고 사람들이 심어놓은 하얀 싸리꽃도 활짝피었다
나고 죽는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 우리네 인생에 병마가 또 한친구를 괴롭히고 있으니 슬픈일이 아닐 수 없어 아픔을 달래고 홀로 터벅터벅 먼산 바라보며 집으로 가는중 이였다. 시간도 넉넉한데 조계사에 가서 카페어서 많이듣던 찬불가 음반을 구입하고져 맘먹고 발길을 조계사로 옮겼다 경내를 둘러보니 언젠가 들렀던 그때의 불사가 아직도 진행중이다 일주문도 걸출하게 짓고 총무원 자리에 큼직한 빌딩도 한창이구요 불사중이라 마당은 어수선해 보이지만 다니는데는 큰 불편이 없어 보였다.
먼저 법당에 들어가 삼배하고 용품점을 가려고 순서를 정하고 신발을 벗었다. 들어 가자마자 법문시간이 시작되어 그냥 앉아서 들었지요 스님의 법문을 듣는중에 마음은 저먼곳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눈앞에 번뜩이는 한 물체가 있었으니 그건 불전함이였습니다. 어느 법당이든 다 있는걸 뭐 새삼스레 놀라느냐구요. 지금부터 사건을 말하리다 조계사는 나에게 관광지에 불과 했지요 석탄일이면 행사가 큼직하고 의견의 충돌이 생기면 그것 또한 큼직한 사건이였으니 서울사람은 불자가 아니어도 생각이 깊은곳이기도 하지요 평범한 시민으로 있을때 지금으로부터 약 25년전 조계사의 한 스님으로부터 방문 요청을 받고 뒷날 스님을 뵈오니 법당안에 시주돈이 없어진답니다 많은사람들이 기도하면서 처다보고 있는데도 그걸 부수고 가져간대요 그러니 아무도 손 못대게 철판으로 튼튼하게 하고 들고가지 못할만큼 무겁게 만들어 달래요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하고서는 장정 네사람이 들어도 낑낑대게시리 만들어서 납품을 한 불전함이 긴세월을 버티어 온것이 묘하기만 했답니다. 모양은 네모나고 키는 일미터 반쯤되구요 무게는 몰라요. 법안스님의 법문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불전함만 한참을 처다보면서 이렇게 힘든 환경속에서도 지키고 서있다는게 제에게는 다시금 옛날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이리하여 조계사 법당에 불전함 2기 제작 납품자는 (속명 생략) 여래 였습니다
서울 주변에도 이렇게 납품한곳이 몇군데 있지만 이 모든걸 까맣게 잊은지 옛날인데 왜 이리도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아마도 번뇌인가 봅니다
오늘은 작은 정성이나마 제손으로 보시를 하고서 법당을 나서니 앞마당에 부처님 진신사리 보탑은 여전하고 백송은 늙어가는지 사람이 쓰러지지 말라고 콘크리트로 보완한 흔적이 보이더군요 일주문은 신축불사중이라 아직은 느낌이 없지만 부처님이 뭐라고 했길래 저렇게 웅장하게 짓는지 알 수는 없구요 가을이면 모두가 끝날거라고 히니 그때쯤이면 조용한 도량이 되겠지요 용품점에 들러 음반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하길래 뜰옆에 서 있는 白松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리면서 한생각 일어남은
아! 빈손 빈걸음이로다......
나에 아픔도 친구의 아픔도 무상하기만한걸 왜 이렇게 붇잡고 있는가
불전함이 여태껏 버티고 있거나 말거나 이몸은 아직도 거기에 집착하고 머물러 있으니 멀기만 한 이 물건은 아상(我相)인가 중생상인가 덮어두었던 금강경을 다시 열어 보련다.
2005. 05. 01
첫댓글 ()_()_()_
....().().()
절에선 불전함땜씨 일어나는 기이한 일들이 있더군요..참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여래님은 훌륭한 솜씨를 갖고 계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