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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엽기 혹은 진실..(연예인 과거사진) 원문보기 글쓴이: jh0434
디씨인사이드 ㅇㅇ님 께서 작성한 글이신데.
유동닉이시라;; 퍼가는걸 허락받기가 힘들어서 일단 출처를 남기고 퍼옵니다.
문제되면 쪽지좀 주세여 님들아
원문 : http://gall.dcinside.com/hit/9405
(사진 출처,글 퍼온곳 : http://jaykorean.tistory.com/)
아 그리고 part2 에 올리지 못한 두 사진들
ㄱㄱ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떴다
괜찮았다
어디 모기 물린 곳도 없었고 그렇게 춥지도 않았다
자기 전에 핸드폰이랑 디카를 다 배낭에 넣어두고 잤기 때문에
몇 시인지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아마 몇 시간 안 잔것 같았다
다시 자야지
눈을 감았다
갑자기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ㅍㅍ : 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만화 속 초능력자가 기 폭발 할때나 내는 소리일까
무거운 철퇴를 두손으로 잡고 빙글빙글 돌리면 그런 기합이 들어갈까
대사만 찹살떡으로 좀 바뀌어주면 찹~~살~~~~떡~~~~~~~~ 이렇게 정겹게 들렸을지도 모르겠으나
하필이면 대사가 으아 였다
뭔가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남자 신음 소리
마음 깊은 곳에 맺힌 한을 뱃속에서부터 꺼내 뱉어내는 소리
술취한 사람이 분명했다
아 ...제발
제발 여기 들어오지마라
소리가 정확히 어디서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차를 두고 멀리서 계속 소리가 들려왔다
ㅍㅍ : 으으으아아아아아.......
ㅍㅍ : 아......... 으!!!!!!!!!!아........
진짜 난 그 때 엄청 무서웠다
난 누워서 눈을 뜬채 잠은 못 들고 저 사람이 제발 여기로 안 들어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계속 들려오는 소리에 불안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버스정류장 출입문 2개가 열려 있었는데 그걸 닫으려고 했다
문이 다 닫혀 있으면 누가 들어올 때 문 여는 소리가 나서 내가 잠에서 깰 수 있으니..
근데 닫으려니까 문 삐걱거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났다
혹시 문 닫히는 소리 듣고 이쪽으로 오는 건 아닌가 싶어서
벽에 몸을 숨기고 살살살..... 하나씩 조용하게 닫았다
그러면서 정류장 밖을 몰래 힐끔 내다봤지만 다행히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에 있나 보다
그래도 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정류장 문을 다 닫고는 혼자 정류장 안을 왔다갔다했다
아 ㅅㅂ.. 어떡하지 어떡하지 자다가 여기로 오면 어떡하지
불안해서 못자겠네..
설마..설마 여기로 올까..설마
안오겠지.. 내가 너무 겁먹고 오바하는거겠지
자자 설마 진짜 여기로 오겠나..
역시 난 겁이 너무 많다
아무일 없었다
그래도 잠은 제대로 못 잤다
불안해서 그런지 자다가 자꾸 잠에서 깼다
나중에는 춥고 모기까지 물리기 시작해서 많이 뒤척였다
또 한번 정신이 번쩍들었다
저 멀리서 아기 울음 소리같은게 들려왔다
정류장 밖에서 들리는 소리 같은데 정확히 어디서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들리는 알 수 없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가만히 귀를 귀울였다
아 이건 또 뭐지?.. 무슨소리지?...
어린아이 웃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기 울음 같기도 하고..
tv에 나오는 귀신 소리 같기도 한.. 무서운 소리였다
처음 그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을 때는 정말 깜짝놀라고 마음이 철컹했었다
섬뜩했다
아 ㅅㅂ..이게 뭐지? 내가 잘못 듣고 있나? 노숙하다가 미쳤나....
은은하게.. 멈추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끄아이ㅡㅇ으ㅡㅡㅡ
까아아ㅏㅏㅏㅏㅏㅏ
뭐지 졸라 무섭다...
진짜 섬득한 소리가 가끔은 선명하게 가끔은 희미하게 저 멀리서 계속 들려왔다
끄앙오ㅓㅏㅇ아아ㅏ,,,,,,,,,,,
ㄲ아ㅏㅏㅏ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
어라..
이거...
왠지...닭....
닭 우는 소리 같기도 한데..
그래 닭 우는 소리였다
아 무슨 닭이 저딴식으로 우노 ㅅㅂ..
닭 울음 소리라고 느껴진 이 후에도 정말 닭이 맞는지 의심가게끔 괴상한 소리로 울어댔다
닭이 우는 걸 보니 시간이 꽤 됐나보다..
너무 추워서 의자에서 일어나 버스정류장에 열려있던 창문을 다 닫았다
창문을 닫다보니 창문 위에 벽시계가 걸려있었다
4시 40분
꽤 됐네?
다행이다 여기서의 밤이 빨리 지나가길 바랬는데.. 조금만 더 누워있다가 나가자
30분정도 더 누워있다가 잠자리를 정리하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버스 정류장 떠나기 전에
어제 나 때문에 겁먹었던 미용실에 미안해서 연습장을 찢어 쪽지를 남겼다
어제 저 보고 많이 놀라시는 것 같던데
죄송해요 전 나쁜 사람은 아니고 그냥 여행 중인 사람인데 잘 곳이 없었어요
다신 안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자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아주머니가 나 때문에 계속 불안해할까봐 안심해도 된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버스정류장을 나왔다
나가기 전에 추억이 될 내 잠자리를 ㅇㅇ
떠나기 전에 119에도 고맙다고 인사하기 위해 들러봤지만 문이 잠겨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메모장을 찢어 쪽지를 남겼다
고마워요 덕분에 잠 잘 잤어요
이제 출발
철푸둭
오늘은 어디까지 갈까
울진까지만 가서 울진에서 돈을 좀 벌어볼까..
돈 벌어서 찜질방에 가서 쉴까..
아 아니다.. 이제 찜질방은 그만 가고 싶다
아침 먹으려고 휴게소 식당에 가서 밥을 좀 얻어보려했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나를 좀 못 마땅해하셨다
ㅍㅍ : 그게 고생한다고 하는데 고생이 아니야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어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주인이 보니까 빨리 나가라고 하셨다
날카로운 말투에 기분이 좀 나빴다 괜히 밥 얻으러 갔나..
이렇게까지 얻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뭐 원인 제공은 내가 했으니까.. 내 잘못이다
이미 얻은 거 어떡하나 맛있게 먹어야지
밥 먹는데 자꾸 아주머니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고생하는 게 아니야
내가 고생해보려고 이러고 있는건가?..
나는 왜 이러고 있지..
경험을 많이 하니까? 뭔 경험? 새로운 것? 보고 느끼기? 뭘?
지금 나와서 무언가 달라진 게 있나?
없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서 우울했다
난 정말 어쩔 수 없는 건가..
도로가에서 밥을 먹고 난 뒤에 그대로 앉아 좀 쉬고 있었는데
드디어 나 처럼 걸어다니는 사람과 마주쳤다
언젠가 한 번은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보는구나 반가웠다
20대로 보이는 남자 두 분이었는데 포항 호미곶에서 인천까지 간다고 했다
지나가면서 잠깐 인사만 하고 다시 그분들은 길을 떠났다
태극기가 자꾸 걸리적 거려서 빨리 군청에 갖다 주고 싶었다
혹시 태극기를 그냥 내 배낭에 달고 다니는 건 어떨까 하는 상상을 0.1초 하기도 했었지만
내가 걸어다니는 게 뭐 자랑할거리도 아니고
저 걸어다녀요~~~~~~이렇게 뭐 광고하는 것 같고 괜히 시선 끌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러기 싫었다
또 무엇보다 내가 과연 태극기를 달고 다닐만큼 우리나라를 사랑하는지 자신이 없었다
버려진 장갑 뒤에 부서진 인형 팔이 떨어져 있었음
가지 말아요
울진에 다 와갈때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울진에서 울진친환경농업엑스포라는 것을 하고 있었는데
가는 길에 한번 구경하고 가볼까 고민이 됐다
내가 농업엑스포에 가서 뭘 보고 느낄 만한 게 있을까?....
아무래도 관심도 없는데 억지로 가서 봐봤자 느낄 게 없을 것 같아 그냥 지나갔다
아... 그럼 뭘 보고 뭘 느낀다는건데?
지금 뭐하자고 나온 건데
내가 한심하기도 했다
나는 그냥걷기
점심이 되기 전에 울진에 도착하면 밥도 해결하고 돈도 좀 벌어볼까 싶었는데
막상 도착하니까 뭘 해야할지 막막하고 괜찮은 게 눈에 띄이지도 않아서
그냥 그대로 울진을 지나쳐 계속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다가 울진 시내에서 할머니 한 분을 보게됐다
비도 꽤 많이 오고 있었는데 우산도 없이 물건이 조금 실려있는 유모차를 끌고
맞은 편 인도에서 혼자 천천히 걸어가고 계셨다
나와는 반대 방향이었지만 어짜피 난 갈 길이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었고
걸어다니다가 중간에 내가 도움될만한 일이 생기면 해보자는 생각도 계획에 있었으므로
가서 우산을 씌워드리고 할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할머니를 처음 봤을 때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가 내 눈에는 짐수레처럼 보였기 때문에
할머니한테 짐이 되는 그 유모차를 내가 끌어주고 유모차 대신에 내 우산을 드릴 생각이었다
난 어짜피 오래 걸어다녀서 이미 몸이 꽤 젖은 상태였고 가방은 커버를 덮어놨으니까 난 굳이 우산을 안 써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는 비 피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걸어다니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 유모차는 짐이 아니라 할머니의 지팡이 역할을 해주는 보조기구였으며
아무것도 모르고 그걸 짐수레로 생각했다는 나의 무지함에 속으로 부끄러워했다
할머니는 유모차로 몸을 지탱하며 걷고 계셨고
그렇게 걷는 것조차 버거워 30m만 걸어도 숨이 차 헉헉 거리셨다
정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것만 같이..
나는 어찌 해야할지 몰라 우산만 씌워드린채 어설픈 부축을 하며 할머니를 집 근처까지 모셔다 드렸다
역시 내 무식한 표현력으로는 제대로 못 하겠다
그냥 되는데까지 써보고 있는 것이다
왠지 전달이 정확하게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답답하다
다시 나는 내가 갈 길을 걸어갔다
마음이 착잡했다
할머니도 분명 한 때는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였을텐데
이제는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할머니가 되었다
왜 사람은 늙게 되는 걸까
사는 건 무엇일까
늙기 위해?
죽기 위해?
산다
자신의 죽음을 차마 스스로 택하지는 못하고
어떻게 오게 된 지도 모르는 세상에 떨어져
어떻게 갖게 된 지도 모르는 생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젊음 늙음 죽음 그 사이에서 이런 저런 많은 일을 겪는다
결국엔 늙고 죽는다
늙을대로 늙어서 죽음 앞에 서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지금까지 살아온 내 모든 시간들이 오직 이 고통과 곧 다가올 죽음을 위해 존재한건가 하고 회의를 느끼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음
gg
어
할머니의 유모차에 실린 물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긴 한데
그건 정말 내 무식한 머리로는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서 그건 그냥 덮어둬야겠다
우리 엄마도 나중에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가 아니지..
우리 엄마도 저렇게 될 것이다
나 또한 언젠가는 늙고 병들 것이다
음..
정말 내 자신만을 생각하고 내가 바라는 삶이라면
그냥 원룸같은 작은 방이나 하나 구해서
혼자 방 안에서 컴퓨터나 하고 노래나 듣고 가끔 먹고싶을 때 통닭이나 한 마리씩 시켜 먹을 수만 있을 정도이면
그게 내게 행복이고 더 이상의 큰 돈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굳이 내가 다른 물질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하여도
최소한 나의 가족, 유일한 내 인간관계인 내 가족들이 언젠가는 늙고 병들 것이며
그 때 돈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아파하는 가족을 그대로 죽게 만들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둬야한다
뭘 해도 죽음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돈이 있으면 죽음까지의 고통은 줄일 수 있잖아
지금 이 후기를 쓰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언제 내가 그렇게 밖을 걸어다녔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시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와 딱히 하는 거 없이 그저 병신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말 하는지 모르겠다
후기로 ㄱㄱ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다시 나는 내 길을 걸어갔다
지나가는 길에 울진군청에 들러 태극기를 갖다주고 바로 울진을 지나쳐갔다
점심을 먹으려고 한 농기계 수리센터에서 라면 물을 받고 나가려는데
안에서 먹고 가라며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반찬이 없어서 줄 게 없다고 미안해하시기까지 했다
커피를 뽑아주셨는데 배가 고픈 상태여서 그런지 정말 너무너무 맛있엇다
그래서 한 잔만 더 마셔도 되냐고.. 한 잔 더 마셨다
마음으로는 열 잔이라도 뽑아마시고 싶었지만..ㅠㅠ
농기계 수리센터를 나와 가던 길을 이어 갔다
잠시 비가 그쳤다가 곧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꽤 많이 쏟아졌는데 어디 비 피할 곳이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 샛길로 빠져서 좀 쉴 곳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걸어도 걸어도 곧은 4차선도로가 끊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빗길을 계속 걸어야했다
때문에 몸이 다 젖은 건 물론이고
발이 젖은채로 계속 걸어다녔더니
이제는 발바닥이 물컹물컹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대로 계속 걷다가는 발바닥이 물집투성이로 완전 떡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배낭에 든 일기장
배낭 자체도 방수가 되고.. 커버까지 덮어두긴 했지만.. 아무래도 걱정됐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조금이라도 물이 스며들어 내 일기장이 젖은 건 아닐까 걱정됐다
어디 잠깐 비를 피해 좀 쉬기도 하고 젖은 발도 말리고 일기장도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답답하게도 옆으로 빠지는 길이 안 나왔다
몸이 지치고 우울했다 혼자여서 더 막막하고 외롭기도 했다
젖은 발에 무리가 갈까봐 한 걸음 한 걸음 신경쓰면서 계속 걸어갔다
그러다 드디어 4차선 교차로가 너왔다
교차로 다리밑에서 휴식을 취했다
배낭을 벗고 발을 말렸다
일기장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하나도 안 젖었다
아하
일기장이 내가 넣어온 지퍼백에 들어가는지 넣어봤다
크기가 딱이었다
지퍼백 안에 일기장 연습장 편지지 등 종이류가 다 들어갔다
와..굿
이 안에 넣어두면 배낭 안에 물이 좀 들어가더라도 지퍼백 때문에 안 젖겠지!
지퍼백 3개 가져온 게 딱이었다
하나는 카메라가방만으로는 비를 못 견뎌낼 것 같아 카메라가방용
하나는 젖으면 못쓰는 휴지용
하나는 종이용!
계산하고 챙겨온 것도 아닌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알맞은 3장을 챙겨왔다는 거에 감탄했다
역시 잘 맞는다니까
낄낄
교차로 밑
가만 보면 다리 만들어놓은 것도 대단하다
인간들은 천재임
난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거 만들 생각 못했을듯
이 다음 지도에 표시된 지역으로는 원덕이라는 곳이 있었다
원덕은 얼마나 남았을까
거리 표지판이 나오지 않아서 지금 내가 있는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 빗길을 더 걷기는 힘들것 같아서 원덕까지는 도저히 무리일 것 같고
교차로에서 충분히 쉬었다가 오늘은 여기서 더 이동하지말고 근처에 있는 마을을 찾아다녀보기로 했다
마을에서 받아줄까.. 마을 아니면 어디 갈 곳이 없는데..
다리밑에서 한 시간 가까이 쉬었던 것 같다
마을을 찾아다녔다
마을 두 군데에 찾아 가봤지만 모두 이장님이 안 계셨고
한 군데는 이장님 댁에 계신 할머니께서 많이 날카로우셨다
누가 이장님 댁 위치를 알려줬냐며... 화를 내셨다
괜히 내가 자꾸 폐만 끼치고 다닌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고 스스로 위축됐다
그렇게 두 마을에 가보고 거절당하자 다른 데 가볼 용기가 사라졌다
다리는 아프고..발바닥은 질퍽거리고.. 비는 계속 오고
몸은 젖은 상태라 이제 슬슬 추위도 느껴졌다
또 막막함이 몰려왔다
아 마을에서 안 받아주는데 어떡하지.. 비와서 어디 잘 곳도 없는데..
다리 밑에서 자면 자다가 얼어죽을지도..
다시 마을 찾아가기가 망설여졌다
가봤자 거절당할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려다가
혹시나.. 해서 다음 마을에 들어가봤다
이장님 댁을 찾으려는데 마침 마을 회관 앞에서 어르신 두 분이 얘기를 하고 계셨다
가서 내 사정을 말하고 하루만 쉬고 갈 수 있을지 여쭈어봤다
그럼 쉬고 가도 되지, 이렇게 다리도 아프고 비도 오는데 당연히 쉬어야지
자기가 이장은 아니지만 깨끗하게만 쓰면 문제될 게 전혀 없다고 ,
이장님이 지금 투표하러 가셔서 마을에 안 계신데 밤에 오시니까 안에서 쉬고 있다가 투표 끝나고 돌아오시면 그때 애기하면 된다고
회관 문을 열어주며 들어가 쉬라고 하셨다
친절히 대해주셨다
회관 안에 들어갔다
아 살았다...!
근데 불안했다
문턱에 걸터 앉아 가만히 있었다
혹시 모른다 그 어르신 두 분은 허락하셨지만
막상 저녁에 이장님이 오셔서 안 된다고 하시면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제도 그랬었으니.. 아직 좋아하기는 이르다..
아 8시,9시 넘어서 여기 나가게 되면 완전 밤이라 곤란해지는데..제발 허락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직 확실한 허락을 받은 게 아니니까..
불도 안 켜고 젖은 옷도 안 갈아입고 회관 방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현관에 짐만 내려놓은 채
그냥 문턱에 걸터 앉아 수첩에 낙서도 하고 사진이나 찍어보며 이장님을 기다렸다
8시가 넘어 날이 깜깜해져도 왠지 이장님이 오시질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회관에 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이장님 댁을 찾아가기로 했다
근데 이장님 댁이 어딘지..
회관 바로 옆집 거실에 불이 켜져있고 tv도 켜져있는 걸로 봐선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길 좀 물어보자..
저기요
저기요 실례합니다
거실 현관 문으로 꼬마가 나왔다
난 단지 이 밤에 갑자기 나타난 내가 수상한 사람이 아니란걸 어떻게든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ㅇㅇ : 저기.. 부모님 안 계세요? 뭐 제가 나쁜 사람은 아니고요..
부모님 안 계시냐니.... 나쁜 사람은 또 뭐임...그게 더 이상하잖아.....
말을 하면서도 이게 아닌데 생각은 들었지만 말은 더 꼬이고 이상한 말만 줄줄......
그냥 길만 물었으면 됐을텐데 괜히 쓸데없는 말을 더 내뱉은 탓에 꼬마 아이가 나를 더 수상하게 봤을 것 같았다
여튼 꼬마가 이장님 댁 찾아가는 길을 가르쳐줬다
꼬마가 가르쳐 준 길로 가긴 갔는데 어디가 이장님 댁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여긴가?저긴가? 하며 헤메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ㅍㅍ : 저기에요 저기!
아까 그 꼬마였다
고맙게도 날 수상하게 여기지 않고 내가 길을 제대로 찾아가는지 궁금해서
빗길에 우산을 쓰고 멀리서 날 따라 오고 있었던 거다
아 고마워라
덕분에 이장님 댁을 찾았다
투표를 하고 집에 와 계신 상태였다
이러쿵 저러쿵..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다 말씀드렸다
일단 회관으로 가보자고 하셨다
이장님은 내가 혼자 걸어다니는 걸 이상하게 여기셨다
둘도 아니고 왜 혼자 그러냐며..
둘이면 이해하겠는데 혼자라서..
나쁘게 보는 건 아닌데
자기가 마을을 맡고 있는 이장으로서 회관을 빌려주는 데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혹시 모르니 확인을 좀 해봐야겠다고 하셨다
신분증을 달라고 하셨다
경찰을 불렀다
┓━..
경찰에게 한번 판단을 요청해보고
경찰에서도 괜찮다고 하면 자신도 마음 편하게 허락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일이 너무 커지나.....괜히 여기저기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곧 회관앞에 경찰차가 도착하고 안에서 경찰 아저씨 두 분이 나오셨다
난 그냥 걸어다니는 사람이에요....
다행히 경찰 아저씨들은
아 다행이.. 아니라 난 진짜 수상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ㅠㅠ
경찰 아저씨들은 날 나쁘게 보지 않았고
아이고 이장님~ 그냥 한 번 재워주세요~ 나쁜 사람 아닌 것 같은데요~
저희가 있잖아요~ 무슨 일 있으면 저희가 바로 와드릴게요~ 좀 재워줘요~~
이렇게 이장님께 잘 말해주셨다
고마웠음^,,^
덕분에 이장님도 허락하셨다
회관에 혼자 남아 젖은 옷을 갈아입고 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관 문 앞에 누가 와 있는 것 같았다
아까 그 꼬마였다
친구까지 한 명 데리고 와서는 우산을 쓰고 회관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내가 밖을 내다 보자 날 신기해하며 웃었다
ㅍㅍ : 혼자왔어요????ㅋㅋ
귀여웠음..
나도 어릴 땐 저렇게 귀여웠을까 ㅠㅠ
몸은 피곤하고.. 왠지 회관 불 켜는 전기세 쓰는 것도 미안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일기는 또 나중에 쓰자고 미루고 바로 잠 ㄱㄱㄱㄱ
맨날 이럼
2.
자다가 여러 번 깼다
너무 추웠다
건물 안에서 자도 이렇게 추운데 밖에서 잤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 마을에 들어온 걸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몸을 움츠리고 담요를 다 덮어도 너무 추웠다
그래서 입고 있던 반팔 옷에 긴팔을 덧입고
반바지 아래에 7부 바지를 덧입었다
완전 긴 바지를 입으면 샌들 신는데 불편할 것 같아서
바지 준비할 때 다 20cm 쯤 잘라버렸기 때문에 긴 바지는 없었다
이렇게라도 껴 입으니까 훨 낫네
개판
5시 30분쯤 일어나 약 한 시간동안 어제 못 쓴 일기를 썼다
그리곤 슬슬 짐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회관에 이장님이 오셨다
잠 잘냐며, 밤에 추울 것 같아서 내가 잘 때 회관에 와서 보일러를 틀어두고 갔다고 하셨다
아.. 옷을 덧입어서 따뜻했던게 아니었나..;;
헐..근데 누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잤네.. 이러면 안되는데..
아침에 떠나기 전에 회관에서 라면 끓여서 먹고 가라고 하셨다
국수도 있으니 국수도 더 넣어서 먹으라며 회관 안에 있는 국수를 찾아주셨다
그리고 아침 일찍 회의에 나가신다며 회의 가기 전에 회관에 한번 들르겠다고 하시고는 회관을 나가셨다
라면 끓여먹으려고 했는데 가스가 없어서 그런지 가스렌지에 불이 안 켜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가스통 밸브 안 열어서 그런 거였음)
그래서 그냥 아침은 나중에 뽀글이 해서 먹기로 하고
어제 내가 잠 잔 방을 좀 닦아보기로 했다
내가 신세진 거에 대한 보답으로 할 수 있는거라곤 이런거밖에;;
원래 깨끗했던 방이라 닦아도 티는 안나지만.. 그냥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마음이 편했다
회관 한 구석에 있던 걸레를 빨아 방 바닥을 닦았다
어후...걸레질이 이렇게 힘들었나..굶어서 그런가...체력이 떨어졌나..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금방 지쳤다
걸레질 다 하고 대충 씻고 짐을 정리했다
이장님이 회관 찾아오시기 전에 내가 먼저 이장님 댁에 가 인사를 드리려고 회관을 나서는데
마침 이장님이 회관으로 오고 계셨다
이장님께 다시 한 번 고맙다며 인사 드렸다
이장님께서는 어제는 미안했다고 자기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런거니 이해해달라고 하셨다
당연한거죠 제가 밤 늦게 찾아온게 이상한건데..
혹시 내려 올때 똑같은 길로 내려오게 되면 또 마을에 들러서 자고 가라고 하셨다
고맙습니다!
자칫 어제 경찰을 부른 이장님이 의심많고 차가운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이장님은 정말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될지 확신이 안 섰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경찰을 부를 당시에도 이장님은 계속 미안하다며 이해해 달라고 하셨었다
이장님은 순한 분이셨다
마을을 떠났다
마을 나오는 길 아스팔트 땅바닥에 어제 내린 빗물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는데 참 예뻤다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할지.. 뒤에 전봇대 때문에 이상할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사진으로 찍으면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아서 사진은 찍지 않았다
사진 찍는 행동
이것도 처음에 고민 많이 했다
왠지 카메라가 있긴 있어야 될 것 같아서 사 가지고 나왔는데..
뭘 찍어야하지?.. 난 사진 찍으러 나왔나?..
눈으로 봐서 뭔가를 느껴야 정말 의미있는 게 아닐까?
사진찍기 위해 눈으로 보는건가?
그래도 나중에 남는 건 사진밖에 없잖아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그러다보면 여기저기 되는대로 카메라 들이대가지고
내가 뭘 보고있는지도 모르면서 사진만 찰칵찰칵 찍어댈것같은데?..
눈과 머리는 딴 곳에 가 있고.. 몸은 카메라를 쥐고 셔터를 누르는..뭔가 따로 노는 상황
나중에 지금 찍어놓은 사진을 봤을 때 내가 무슨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사진 찍은지 기억은 날까?
사진은 뭐지? 표현이 뭐? 기록이란?
나는 정말 지금 너무 짜증이 난다
일기장에 무언가를 써 본다
글자를 쓴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글자를 써 본다
그린다고 하는 게 낫겠다
의미없는 글자를 그린다
ㅎ 그리고 ㅐ 그리고 ㅇ 그리고
ㅂ 그리고 ㅗ 그리고 ㄱ 그리고
ㅎ 그리고 ㅏ 그리고 ㄷ 그리고 ㅏ 그리고
행복하다
오늘의 날짜와 시간을 쓴다
대부분의 감정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희미해진다
이 때 내가 느꼈던 짜증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훗날 내가 이 일기장을 언젠가 들춰보는 날이 오면
난 이 때를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걍 이런 느낌..... 뭔가 따로 놀고 가짜같은거..
확실하게는 나도 뭐라 못하겠음..
이런 뻘소리 할 때마다 쪽팔림..
아.....................
난 정말 쓸데없는 거에 고민한다
아무튼 처음엔 그렇게 고민해서
사진 찍을까 말까하다가 안 찍기도 하고 찍기도 했다
초창기에 찍은 사진들은 처음엔 조금씩 다 망설이다 찍은 사진이 많다
아...어떡하지...
아 몰라....일단 찍고 보자
이런 식이었다
나중엔
에라 모르겠다 다 찍자 이히~~~~~~~~~~~~~~
결국 내가 뭘 보고 있는지, 뭘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사진만 찍어대는 깡통이 됨
배가 너무 고파서 빵을 하나 사먹었다
라면도 하나 더 사 뒀다
남은 돈이 330원
만 원이 더 있긴 한데 이건 왠만하면 안 쓸생각이었다
봉화에서 총 4만원을 얻게 됐었는데 이거 다 쓰면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서
일단은 3만원까지만 쓸 계획이었다
다리 건너는 데 멀리서부터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길래
뭐 이상한 물건이 실린 화물차가 오는가보다 생각했는데
완전 다 망가짐.. 반 쯤 찌그러지고 꺠지고 타이어는 터져서 바람 다 빠진..
덜컹덜컹 거리는 차가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뭐지........저래도 굴러가긴 굴러가는구나...
빵 하나 먹고 주유소에 라면 물 받으러 들어갔는데
아저씨가 먹고 가라고 자리 만들어줌 ^,^
김치도 챙겨줌 ^,^
물도 2병 챙겨줌 ^,^
누가 길에 빵꾸 뚫어 놓음
이제 강원도 쪽으로 넘어와서 그런지 오르막길도 많고 내리막길도 많았다
그냥 계속 걷고 있었는데
오토바이 타고 가는 아주머니가 갑자기 내 앞에서 멈춰서더니
ㅍㅍ : 우유줄까?
딸기우유 줄까 초코우유 줄까
우유배달 하시는 아주머니가 내가 아들같다며 우유를 그냥 주셨다
고맙습니다 잘 마실게요
...우리엄마도 우유배달을 했었다
우유배달 하는 아주머니한테 우유를 받다니..
엄마 보고싶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우유라도 먹으니까 좀 나았다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다 꼭대기쯤 다다르자 쉼터가 나왔다
화장실에서 씻고 쉼
할머니들이 오시길래 처음엔 그냥 관광으로 놀러오신 줄 알고 먹을 거 얻어볼까 했는데
가만보니 일하러 오신 할머니들이셔서.. 그냥 쉼터를 빠져나왔다
처음으로 짖지 않는 개를 만났다
지금까지 개들은 나만 보면 죽어라 짖어댔었다
자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멍머어와왕ㄹ오와콰오왈 아주 날뛰었다
낯선 사람만 보면 원래 그렇게 짖는건지..
아니면 큰 배낭을 메고 이상한 차림새를 한 내 모습이
개들의 눈에는 더 낯설고 위험한 존재로 보여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짖어댄건지.. 알 수 없다
세 마리가 졸졸졸 따라옴
그 중 제일 어린 것 같은 개가 내 바지를 자꾸 칵칵 물었음
잠깐 놀다가 이제 난 내 길을 떠나려고 했는데 개들이 날 계속 따라왔다
떨어질 생각을 안하고 원래 자신들이 놀고 있던 자리를 떠나서 날 따라 도로길을 계속 따라오는 것이었다
헐......
설마 개 3마리 데리고 같이 걷게 되는건가..
잠깐동안 우연히 길에서 만난 개 3마리와 같이 걸어다니는 걸 상상했다
괜찮을것 같은데?..
물론 상상일뿐임
먹일 것도 없고 같이 걸어다니다 차에 치일게 분명하니 데리고갈 수 없었다
개들이 자꾸 따라온다고 말하려고 주인을 찾았는데
바로 옆에 있던 두 건물에 모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한 곳은 휴게소였는데 아예 망해서 문을 닫은 상태였고
한 곳은 어떤 사무실같았는데 문이 잠겨있고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 어떡하지..
개들을 떼어놓으려고 일부러 처음 만난 곳으로 데리고 갔다가
지들끼리 놀라는 나만의 몸짓을 보여준뒤에 다시 혼자 걸어가니까
개들이 따라오지 않았다
안 따라와줘서 다행스럽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좋아라 할 땐 언제고 이제 본척만척하고 지들끼리 놀다니ㅠ
점심 때가 되니까 또 배가 고파왔다
먹을 건 남은 라면 하나가 전부이고 이제 돈도 없었다
원덕에 도착하면 점심을 먹어보자..
항상 생각은 그렇게 해도
막상 도착해서 식당에 들어가보려고 하면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
식당 문 앞에 서도 못 들어가겠다
왠지 안 될것 같고 폐만 끼칠 것 같고 주눅들어서 그냥 원덕을 지나쳤다
배고프면 남은 라면 먹자..저녁은..뭐 어떻게든 되겠지
원덕을 나와 조금 더 걷는데 휴게소 식당이 나왔다
혹시나.....혹시나.....
안되면 안되는 거고 해보지도 않고 겁먹지말자는 생각으로
식당안에 들어갔다
방금 전에 드시고 간 손님상이 있었는데 그걸 내가 치워주고 일도 도와드리겠다며
밥 한끼만 줄 수 있는지 부탁해봤다
ㅍㅍ : 그럼 저희랑 같이 드시지요
ㅡㅡ;
음?
분명 저런 말을 했었다
ㅇㅇ : 예?...
ㅍㅍ : 저희도 밥 아직 안 먹었는데 같이 드시면 되겠네요
맛있는 점심을 먹게 됨
근데 기분이 좀 찝찝했다
내 혼자만의 생각이겠지..
마음속으로는 날 싫어하지 않을까..
공짜로 얻어먹는 거에 대해 먹으면서도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어떡하나
이럴려고 나온건데
안되면 안되는 거고
말이라도 해봐야지
그거 말 한마디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고 힘들다고
안될걸 하면서 지나친 적도 수없이 많다
그렇게 지나치고서는 자책한다
병신.. 말만이라도 해보는 것도 못함?
근데 그렇게 자책하고 다음번엔 꼭 해버릴것처럼 마음을 먹고도
막상 사람들에게 해보려고 하면 망설여지고 주눅든다
반복
반복
한동안 몸에 들어간 대부분의 영양분이 라면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여러가지 음식물을 내 몸속에 넣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점심 때 먹은 음식이 다 소화되기도 전이었는데
외진 2차선 도로를 걷다가 다리 밑에 있던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먹다남은 김밥이라도 있으면 좀 주세요!! 하고 나름 활기차게 말을 걸어봤다
먹다남은 김밥같은 건 없는데.. 그럼 와서 밥 같이 드시고 가요 오세요
그 분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고
비록 찬밥과 반찬 몇 개가 전부였지만
그 때 내게는 내 약해진 몸을 건강하게 만들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할나위 없이 맛있었고 기쁘기만 하였다
다만.. 조금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그렇지 않아도 이 전에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나온 샌들을 내 걸어다니기의 오류로 지적하였고
이 날 만난 분들 역시 내 샌들이 크게 잘못 됐다며 지적하셨다
기본이 안 됐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고 괜히 기가 죽었다
소심한게 죄임
나 역시 출발 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이미 신고 나온 거.. 그대로 신고 계속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아...그래 샌들 신고 나온 게 너무 무리한 거다..
난 이거면 될 줄 알았지 뭐..
나는 왜이렇게 무식하나..
후... 내 발은 왜 아직도 아픈거지...
이 정도면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나?
계속 걸어주면 빌이 걷는데 적응할거라는 내 생각이 아예 잘못 된건가?
이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발목이 당기고.. 발바닥이 따갑고..
발 뒷꿈치가 다 갈라졌다
샌들... 샌들 때문인가..정말 샌들로는 안되나?... 샌들이 문제인가..
아니지.. 내가 약해서 그런거지..
샌들이 어때서...
우리엄마는 평생을 시장에서 파는 만원짜리 운동화를 신고 우유배달하며 날 키웠다
내 발, 고작 얼마 되지도 않는 거 걸어다녀보겠다고 나와서 갈라진 내 뒷꿈치
우리엄마 발 뒷꿈치는 평생 아주 마를대로 마르고 지독한 가뭄이 들어 매말라버린 땅처럼 굳은살로 쩍쩍 갈라져 있었고
나는 어렸을 때 그걸 보고는
우리엄마가 고생해서 발이 이렇게 갈라졌구나....라는 생각은 전혀, 전혀 하지 않았으며
때문에 엄마에게 미안해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거나 그런 감정은 조금도 갖지 않았다
다만 엄마의 발이 갈라진 굳은살 투성이다라는 사실만이 내 눈을 통해 머리 속에 들어왔고
우와 엄마 발 왜 카는데
이렇게 만졌는데도 안 아프나
우와.....신기하다...........
갈라진 굳은 살을 내가 만지고 심지어 때내기까지 해도 아무 느낌이 안 난다는 엄마발을 마냥 신기해하기만 했었다
그게 이제 생각나네 내가 왜 그랬지
난 정말 그 발이 아플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어떻게하면 발이 그렇게 갈라진 굳은살 투성이가 되는지 의문도 가지지 않았었다
왜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한걸까
나는 지금 엄마의 그 발와 비슷한 발을 가지고 있다
갈라진 뒷꿈치가 걸을때마다 더 벌어져서 피도 나고 따끔따끔거린다
나야 잠깐 이렇게 걸어다닌답시고 나와서 걷고 있지만
엄마는 평생을 이 발로 걸어다녔다
엄마의 신발은 만원짜리 운동화였고
지금 내 신발은 8만원짜리 샌들이다
나는 우리엄마의 아들이다
그런 내가 엄마가 신었던 운동화보다도 훨씬 비싼 샌들을 신고서
이 잠깐 걸어다는 게 힘들어서 쩔쩔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엄살을 부리고 있나
시팔
밟아라 밟아라 꾹꾹 더 세게 땅을 밟아라
조금 아프고 따끔따끔 거린다고 내가 발을 제대로 안 디디니까
자꾸 아프기만 하고 적응이 안되는거잖아
발걸음만 제대로 걸어주면 되는데 조금 아프다고 그걸 못하나
약해빠진 새끼!!
울컥하고 벅차오르는 알수없는 감정에 한동안 난 정말 가볍고 빠른 걸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빗 길을 걷는건 정말이지 너무 괴롭고 막막했다
조금만 걸으면 발이 질퍽질퍽 불어버려서 물집투성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됐다
비 때문에 더 못 걷겠다
제발 마을에서 받아줘야할텐데.. 비와서 갈 데가 없다..
마을을 찾아다녔다
세 군데 들어가봤지만 허락해주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나처럼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그걸 다 받아주니까
안 좋은 일도 많이 생긴다며 이장님들 사이에서 얘기가 오간다고 하셨다
아..그럼 이 주위는 다 안되는건가..
어디서 자야하지
비 오는데..바람도 많이 불고..춥다..
이제 배도 고프고..
배가 고파지니까 혹시 옥수수나 떡이라도 하나 얻어먹을 수 있을까해서
도로길에 나오는 직판장에 괜히 인사도 하고 쓸데없는 질문도 몇 번 해봤었다
막 그냥 달라고는 못하겠고....
계산적인 행동
얻은 건 없다
곧 있으면 어두워지는데 잘 곳을 못 구했다
주위가 바닷가라서 민박집이 많았는데
잘 곳이 없으면 민박집으로 가라고하지 그냥 재워주진 않을 것 같았다
이 마을에 들어가볼까..아니면 앞으로 계속 걸어갈까..
이 마을에 들어갔는데 못 재워준다고 하면.. 마을 갔다오는 사이에 어두워져서 앞으로 더 가지도 못할텐데..
그냥 앞으로 걸어가볼까.. 걸어가봤는데 잠 잘만한 곳을 못찾으면? 그래서 도로 중간에 멈춰서면?
머리속이 복잡했다
아...그래도 모르잖아 한 번 가보자
ㅍㅍ : 그러니까 지금 무전여행한다는 말인가?
요즘 안 좋은 일이 너무 많아서...
재워주는 건 문제가 아닌데...
최근에 마을 민박 손님들 물건 없어지는 일도 생기고..
신분증 가지고 있는가?
안 좋은 일이 많아서 좀 그렇지.. 재워주는 건 문제가 아니야
그냥 쓰기에는 상황 설명하는 게 어려워서.. ㅍㅍ
저렇게 줄줄 말하시진 않았지만 저런 말들을 다 하셨었다
정말 친절하셨다
진짜 두분 다..
할머니가 나를 마을회관까지 데려다 주셨다
나올 때 그릇에 밥을 담아 가지고와서는 회관에 있는 라면을 찾더니 직접 끓여주셨다
냉장고에서 반찬 찾아다 꺼내주시고.. 맛있게 먹고 푹 쉬라고 하셨다
맛있게 먹고있는데 누가 노크를 했다
이장님이셨다
김치를 가지고 오셨다
회관에 있다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셨다
샤워해야 피로가 풀린다고 회관 보일러 틀어서 뜨거운 물로 샤워도 하라고 하셨다
내일 아침밥은 자기 집에서 같이 먹자고 하시며 회관을 나가셨다
정말 두분 다 너무 잘해주셨다
우와...
오늘은 이왕 신세 지는 김에 제대로 신세를 져보기로 했다
차마 보일러까지는 못 틀겠고.. 그냥 찬물에 시원하게 샤워했다
핸드폰이랑 카메라 충전기도 꽂아놓고..
이불 깔고 베개 놓고 포근한 잠자리도 만들었다
오늘 여기서 푹 쉬고 내일 아침에 일하신다는 걸 꼭 도와드리자
여기 와서 정말 다행이다
여기 안 왔으면 이 빗길에 난 어디를 헤메고 있었을까
매일.. 결국엔 도움을 받는다 난 정말 운이 좋은건가
행운이 날 이 마을에 오게끔 만들어준 것같다
정말 여기 안 왔으면 난 엄청 힘들어하고 있었을텐데..
아직 밖에선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방안 포근한 이불속에서 편히 누워 일기를 썼다
왜 그렇게 피곤한지
얼마 안 쓰고 펜 놓고 잠시 누워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3.
잠이 들었다는 걸 몰랐엇다
눈 떠보니까 캄캄한 이불 속이었고 이불을 들춰보니 쓰다가 그대로 펼처둔 일기장이 보였다
아.. 잠들었었네.. 몇 시지..
일기장 옆에 있던 카메라로 시간확인해보니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잠깐 잠 든 것도아니네.. 5시간이나 잤네.. 왜 이렇게 피곤하지..
카메라 시계보다가 갑자기 사진 찍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누운채로 잠결에 또 한번 쑈를 했다
타이머 ㄱㄱ
삑
후다닥
낄낄 재미있네
다시 잤다
꿈을 꿨다
두 개의 꿈
둘 다 개꿈이다
하나는 정말 개가 나온 개 꿈이고
하나는 그냥 현실성 없는 개꿈이다
물론 개가 나온 개 꿈 역시 현실성 없는 개꿈이다
둘 다 뒤죽박죽
먼저 첫번째 개가 나온 꿈이다
예전에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운 적이 있는데
특허감인 내 무책임함과 무관심으로 강아지가 죽어버렸었다
내가 죽인 것과 다름없다
그 강아지가 나온 꿈이었다
이름은 소림이
꿈 속으로
정원으로 느껴지는 흙더미 위에서 난 소림이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실수로 인해 소림이는 머리가 잘리게 되었다
머리와 몸이 두 동강이 난 것이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지만 머리만 있어도 사는데는 지장이 없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잘려나간 몸을 그대로 버려두고 머리만 가지고 그 자리에서 나왔다
핸드폰으로 동물병원을 찾으려는 잠깐의 노력을 해 봤다
노력이 아니었다
없네? 없으면 말고..뭐 설마 죽겠나 그런 식이었다
그 후 내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누군지 모르는 아저씨에게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둥
개꿈 특유의 뒤죽박죽한 상황이 잠시 이어졌다
그리고 몇 시간인지 며칠인지 얼만큼의 시간이 지나갔고
다시 소림이를 보게 됐다
머리만 남아있는 소림이가 말라가고 있었다
아차
그 때 생각났다
머리만 있으면 살리가 없잖아
위가 없어서 먹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잖아
후회했다
머리가 잘렸을 때 바로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어야하는데..
소림이의 잘린 몸이 있는 곳으로 다시 찾아갔다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소림이의 몸은 이미 다 썩어가는 상태였다
늦었다
내가 왜 그랬었지
왜
뒤늦게 후회를 하며 자책했다
마지막엔 내가 말라가는 머리를 안 썩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 한건지
소림이는 냉장고 안에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여니 소림이는 알 수 없는 뚱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망하는 표정 같기도 했고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멍한 표정 같기도 했다
다음 꿈으로 넘어갔다
비가 쏟아져서 논이 물로 가득 잠겨 있었다
나는 논에 가득 차 있는 물 빼는 일을 돕기로 했다
삽을 이용해서 물이 빠져 나갈수 있는 길을 만드는 일이었다
군용 야삽같은 삽을 쥐고선 논 주변을 살살 파내고 있었는데
농장 주인이 다가오더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삽질을 하라고 했다
나는 농장 주인이 말한 그 방법이 틀린 것이고 내가 하는 방법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나는 땅을 넓게 파서 빨리 물을 빼면 좋을거라 생각했고
농장 주인의 말을 무시하고 단번에 커다란 길을 뚫었다
그러자 갑자기 물과 함께 벼들이 마치 팝콘터지듯 폭발하며 여기저기로 튀어올랐다
괜히 일 좀 도와보려다가, 괜히 내 생각대로 일 하려고 하다가 내가 논을 다 망쳐버렸다
눈을 떴다
찝찝했다
꽤 선명한 꿈이었다
둘다 좋은 꿈 같진 않았다
내 잘못을 다시 한번 생각나게끔하는 소림이가 나오고
안 그래도 오늘 이장님 일을 도와볼 생각이었는데 내가 일을 다 망치는 꿈이라니
뭔가 불안한 꿈들이었다
아침 6시 기상
이장님 댁에 몇 시에 가야되나..
지금은 너무 이른가? 주무시고 있는데 괜히 깨우면 어떡하지
근데 아침에 일 나간다고 하셨는데.. 밥 먹고 나서 하겠지?
일어나자 마자 일하는건가?
늦게 가서 못 돕게 되는건 아닐까?
일 돕긴 무슨 일을 돕겠냐고..안 도와줘도 된다고 하셨었는데
내가 늦게 찾아가버리면 아마 두 분이서 일 다하고 계실걸..
지금 가봐? 말아? 언제 가야되지?
고민의 연속
7시.. 7시면 주무시고 계실것 같지도 않고.. 그 때가 좋겠다
7시에 가보자
그 동안 어제 쓰다 만 일기를 이어썼다
그리곤 회관을 나갔다
비가 그쳤다 하늘도 꽤 맑았다
오예 비 안온다
이장님댁에 가고 있는데 마침 이장님께서도 회관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아침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집에 들어가니 할머니께서 벌써부터 집 옆에 있는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처음엔 안 도와줘도 된다고 말리셨지만
내가 계속 도와보겠다고 하니 허락하셨다
이장님을 부르시더니 내가 있을 때 일 다 해치우고 잊어버리자고 적극적이 되셨음
난 좋지 ㅋㅋ 잘 됐다 할 만한 일이 좀 있긴 있나 보다
ㅍㅍ : 이걸 메고..
어? 이게 뭐지?.....
메라고 하길래 멨는데 그건 쟁기였다
사람이 끄는 쟁기가 있는 줄은 몰랐다
내가 몸에 천을 메고 앞으로 걸어가면
천과 이어진 삽같은 걸 쥐고 이장님이 따라오셨다
그러면서 땅이 파졌다
설명 능력 안습
신기하기도 했고 내가 소가 됐다는 생각에 우습기도 했다
발만 멀쩡했으면 진짜 소 비슷하게 끌어줄 수 있었을텐데..
그래도 어제 푹 쉬었고 배낭도 메지 않은 상태라서 일 하는데 무리는 없었다
그렇게 파낸 땅에 검은 비닐을 쫙 깔고선 삽을 이용해 흙으로 덮었다
이장님이랑 호흡맞춰서 하는데 내가 못해서 망치면 어쩌나 내심 불안했다
안 그래도 꿈도 안좋고..
다 해놓고 보니 망친정도는 아니었음 꽤 잘 된듯
잘했다고 말해줘서 기분 좋았음.. 별거 아니지만
여긴 나중에 배추 심을 곳이니까 이렇게만 해두면 이제 여기 일은 끝난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옆 줄에 무우를 심었다
할머니가 호미로 무우 심을 곳 만들어 나가시고
이장님이 무우씨를 뿌리고
나는 뿌려진 무우씨를 흙으로 덮었다
무우씨는 파란 알맹이었는데 마치 구슬 아이스크림 같았다
크기가 더 작고 타원형이었음
무우밭이 나무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모기가 정말 윙윙 바글바글 거렸다....
한 열마리 넘게 계속 달려듬.... 죽자살자 달려들었음..
할머니가 몸을 비틀며 모기 때문에 불편해하고있는 날 보시곤
가서 이장님한테 약 좀 쳐달라고 하라고 하셨다
이장님한테 갔다
ㅍㅍ : 모기?
모기약을 가지고 오셨다
에프킬라였다
내 온 몸에 에프킬라를 푸쉬푸쉬 잔뜩 뿌리셨다
헐......모기약이 이건가.... 하긴 에프킬라가 모기약이지.....
살짝 당황했다 또 뭔가 웃기기도 했다
에프킬라 위력이 대단했음
그렇게 뿌리고 나니까 모기가 정말 단 한마리도 안 달려듦
주위에 모기는 많았는데 나와의 일정한 거리를 항시 유지함
오.. 내가 가지고 있는 약 보다 훨씬 좋은듯? ㅋㅋ 좋네
에프킬라 덕분에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밭이 넓은 밭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은 그리 오래하지 않았다
1~2시간 정도 하고 일이 끝났다
이제 아침 시간
또 계속 퍼주는 밥 공격에 배가 불뚝해졌다
밥 다 먹고는 커피도 타 주시고 찐 옥수수도 주셨다
옥수수... 찰옥수수?
노란 옥수수 말고 군데 군데가 까만 점박이 옥수수
어렸을 때 시장에서 이 옥수수를 보고선 노란 옥수수가 썩으면 이렇게 군데군데가 까매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내 눈에는 썩은 옥수수로 보이는데 그걸 그대로 내다놓고 팔고 있는 광경이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갔었다
근데 원래 색깔이 이런 듯ㅋ
보는 건 많이 봤었지만
먹는 건 노란 옥수수만 먹어봤었지 이거 먹는 건 처음
아침을 먹고 난 뒤 그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쉬었다
쉬고 있으니 마을 어르신 두 분이 이장님댁에 오셨고
이장님과 할머니는 나를 아들이라며 농담도 섞어가시며 소개해주셨다
농담중에 오늘 밥값했다 라는 말도 있어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곧 어르신들 사이에서 최근 마을에 생긴 일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다
근데 난 그 말들의 반 이상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내 귀에는 잘 들리지도 않고..뭔가 말이 빠른 것 같기도 하고.. 사투리도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뜻은 모르겠고..
난 안그래도 사오정인데 이 때는 특히 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난감했음..
얼만큼의 시간이 흘러가고.. 어쩌다 내 쪽으로 관심이 몰렸다
내 발을 보시곤 안타까워하시더니 그 중 한 분이
집으로 돌아가서는 운동화 한 켤레를 가지고 오셨다
신어 보라고..
헐......
난 사실 이미 여기까지 함께 해온 내 샌들을 계속 신고 걸어다니고 싶었었다
근데 이렇게 챙겨주시는 걸 어떻게 마다할 수도 없고...
받게 되면 버릴 수도 없는데.. 가지고 다니기에 짐이 될 수도 있는데..
신발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아니었다
내게 애써 신발을 챙겨주려고 하는 그 할머니가 너무 따뜻하게 느껴지고 고마웠지만
다만 나는 내 샌들을 계속 신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했다
어떻게 거절은 못하겠고 일단 신발을 신어봤다
다행히?;; 신발이 내게 작아서 안 들어갔다
신발이 작은 걸 아시고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셔선 더 큰 신발을 가지고 오셨다
헐.....
그 신발 역시 내 발엔 작았다
난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그 분에게는 단지 신발이 내 발보다 작기 때문에 못 신는거니까 서운해하지 않으실테고
나는 부담없이 계속 샌들을 신고 걸어갈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표현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내 머리의 한계.....
11시 쯤인가 어르신 두 분이 이장님 댁을 나가시고
나는 한 시간정도 집안 잡일을 좀 도와드렸다
밖에 쳐 놓은 천막 정리하고 연탄 쌓고 안 쓰는 빨래줄 걷어내고
큰 일은 아니었지만 이런 자그마한 무언가라도 하고 있다는 거에 마음이 편했다
일이 끝났다
이제 점심 먹고 슬슬 출발해보라고 하셨다
젊은애들이 라면을 좋아한다고 하시며 점심은 라면을 끓여주셨다
라면 2개..
라면 2개가 그렇게 많아 보인 건 처음이었다
여행중에 그리 넉넉하게 먹고 다니진 못해서 배가 줄어든 상태? 였기도 하고
아침도 되게 많이 먹었었는데 소화 되기도 전에 점심을 먹으려니 양이 더더욱 많게 느껴졌던 것 같다
결국에 밥은 다 못 먹고 반만 말아먹었다
진짜 배가 터질 뻔했다
라면 맛이 처음 먹어보는 라면 맛이었다
삼양라면 같기도 하고...뭔가 특이한 맛이었다
다 먹고 앉아 좀 더 얘기를 했다
음......
대학 얘기가 나왔다
이 때도 .. 이 전에도.. 이 후에도
학생이냐는 질문은 항상 나왔었고
나는 그런 질문에 매번
학생 나이인데 대학교를 안 가서 학생은 아니에요
라고 나름 표현이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한 문장으로 대답했다
대학교를 안 갔다고 하니.. 특히 나이가 많으신 분은 뭔가 더 씁쓸해하셨다
대학 안 간걸 이런데서도 느끼다니 ㅠ.ㅠ
이런 건 대학생이 해야하나 ㅠ.ㅠ
어떤 사람은 내가 대학을 안 나왔다고 하니 아예 집 나온, 가출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서운했음...
두분 다 꼭 대학에 가라고 하셨다
걸어다니는 거 어느 정도까지만 하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올해 수능을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년에 대학 들어가고 여자친구 만들어서 한 번 같이 놀러오라고...
또 찾아오라는 정이 느껴지는 말씀에 기분 좋기도 했고..
아직 난 어떻게 해야할지 마음을 못 잡은 상태여서
그냥 마지못해 대답만 했다
인사드리고 이장님 댁을 나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나오면서 받은 게 많다
라면4개 - 회사도 처음보고 이름도 처음 보는 특이한 라면 4개 시골에서만 파는 건가??
아까 내가 먹은 라면이 이 라면인가 보다.. 어쩐지 맛이 특이하더라
와 라면 4개면 이틀은 먹겠다 든든하다!
찐 옥수수 2봉지 - 찐 상태라 빨리 상하니까 최대한 빨리 먹으라고 하셨다
위장약 - 돌아다니다가 혹시 배 아프면 먹으라고 주신 위장약
돈 1만원 - 마지막에.. 이야기 하시던 중에 갑자기 이장님이 주머니에서 꺼내시더니 툭 주심
정말.. 어제 그 막막했던 빗길에.. 오갈데 없는 나를 받아주고.. 덕분에 푹 쉬고..
조금이지만 일도 도와드리고.. 얘기도 하고.. 떠날 때는 이렇게 많이 챙겨주고..
좋은 곳에 다녀왔다는 생각에 보람도 느껴지고 기분이 좋았다
너무 기네
이제 사진 좀
마을 나와서 삼척을 목적지로 계속 걸어갔다
마을 앞에 있는 다리
건너는데 덜컹덜컹 거림..............
라면은 배낭에 꾹꾹 쑤셔넣어둔 상태라 귀찮아서 안 꺼냄
사실 사진 찍을 때 라면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음
저기 어딘가 마을이
수평선 근처엔 왜 색깔이.. 신기함
옥수수밭
강원도로 넘어오니까 죄다 옥수수밭
깻잎인가 하고 찍은건데
다른 지역에서 깻잎봤을 땐 줄기가 좀 다르게 생겼었음
걸어가다보니 해수욕장이 나왔다
해수욕장 따라 계속 올라갔는데 막다른 길..
어디선가부터 길을 잘못 들었던거임..
다행히 되돌아가는데 그리 멀진 않았었고..
그래도 덕분에 시원한 바다를 보게 됐다
구름ㅋㅋ
말라 죽은 옥수수?
날아라 거미
국도도 아닌 지방 해안도로라 그런지 차가 거의 안 다님
이런데가 걸어다니기 좋음
차가 하도 안 다니길래 잠깐 중앙선에서 사진 찍어봄
찍자마자 바로 갓길로 도망 ㄱㄱ
구름이다
배 나왔다고 찰칵 ㅇㅇ
삼척에 다 와가니까 도로가 넓어짐
역시 차가 거의 안 다님
삼척 도착! 사진이 많이 어둡네
삼척역!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불렀지만
먹으라고 준 옥수수를 썩혀서 버리는 일은 없어야 했기 때문에
걷다가 뱃 속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느껴진다 싶으면 옥수수를 하나씩 먹어줬다
그렇게 먹어도 한 봉지가 남아서 삼척에 도착한 후 저녁으로 남은 한 봉지를 마무리 했다
저녁 먹고 어느 병원 앞 벤치에 앉아 쉬면서 앞으로 어떡할지를 생각해봤다
음...시간은 8시.. 잠 자기 전까지 돈을 벌어보자..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 주위에 시장,홈플러스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ㅇㅇ 가보자
막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저 맞은 편에 음반 판매점이 보였다
오..
사고 싶은 앨범이 있었다
더더 4집
지금은 품절되서 파는 곳이 거의 없는 앨범이였다
그렇게 희귀한 줄 몰랐는데 예전에 인터넷 돌아다니다 그 사실을 알고서는
괜히 더 갖고 싶어져서
인터넷 검색엔진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음반 쇼핑몰이라고는 전부 뒤져봤지만 다 품절이었다
대구에 있을 때도 ..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니
다 없다고 하고 아마 다른 곳에도 없을거라고 했다
이번에 이렇게 걸어다니다가 혹시 음반점을 지나가게 되면
혹시 모르니까 중간에 들러서 한번씩 물어보자는 생각을 했었었다
드디어 음반점을 지나치게 되었다
집에서 출발 한 지 꽤 시간이 지나고 여러지역도 지나왔는데
내가 그 동안 이 음악씨디 생각을 잠시 잊고 있어서 음반점이 있었는데도 내가 모르고 그냥 지나친건지
아니면 정말 내가 지나쳐 오는 길에 음반점이 하나도 없었던 건지 확실하게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삼척에 도착해서 본 음반점이 내가 인식한 첫 번째의 음반점이었다
뭐..아마 안 팔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물어나 보자
ㅇㅇ : 안녕하세요 저기.. 좀 오래 된건데 혹시 더더4집이라는 앨범 있어요?
주인인줄 알고 물어봤는데 그 사람은 손님이었고
손님이라고 생각했던 분이 앞으로 나와서는 나를 맞아주셨다
ㅍㅍ : 더더 4집..
잔뜩 진열되어있는 씨디들 앞쪽으로 가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더듬더듬 하시더니 한 장 꺼내셨다
ㅇㅇ : ( 3집 이겠지? 3집은 많던데..3집을 착각하고 있는거겠지
ㅍㅍ : 어 3집이네요 죄송합니다 4집은 없네요 이러겠지? )
한 장 뽑아 내 앞에 툭 내민건 4집이었다
헉!!!!!!!!!!!!!!!!!!!
뭐지??
이거 분명 안 파는 거랬는데..
뭐지....진짜 4집이다
그렇게 기대 안하고 들어온거였는데..
처음 눈에 띄인 음반점에서 한 번만에 이걸 사게되다니....
난 절대 이거 못 살 줄 알았는데...그냥 혼자 헛 기대 하다 끝날줄 알았는데..
4집을 사다니!!
태어나서 처음 사 본 음악cd다
음악에도 그리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에 좀 관심이 생겨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앨범은 꼭 시디로 사 보자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이 여행이 끝나면 나도 한 장 한 장씩 내가 좋아하는 음악 씨디를 사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그리고 희귀하다고 해서 더 갖고 싶어했던 이 더더4집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만약
혹시라도 정말 돌아다니다가 내가 이 앨범을 사게 될 일이 온다면
그땐 여행경비 외의 돈으로 살까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살 수 있는 상황이 오게 되니까
이걸 살 수 있게 된 게 다 여행 덕분이고..
어쩌다보니 내가 여길 지나치게 되었고..
돈이 이제 거의 없었는데 ( 330원 )
하필 봉화에서 얻은 안쓰기로 했던 1만원과
그리고 때 마침 오늘 마을에서 나오다가 받게 된 1만원
2만원
이렇게 2만원이 내게 남아있는 것도 왠지 이 시디를 사기 위한 돈이라 생각이 되어 이 돈을 쓰기로 했다
내가 봉화에서 얻은 4만원을 지금 다 써버렸었다면..
내가 봉화에서 3만원을 얻어서 지금 남은 돈이 아예 없었더라면..
내가 어제 그 마을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하필 이장님께서 돈을 주시다니.. 이장님께서 돈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가진 돈이 330원뿐이었다면..
돈을 갖게 되지 않았더라면 왠지 여기로 올 일도 없었을 것 같고..
돈이 있는 이유가 다 씨디를 사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연히 이렇게 앨범을 살 상황이 오게 됐는데
어떻게 딱 앨범을 살만 한 돈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뭐라고하는거지....
아무튼 난 정말 놀라웠었음
시디를 샀다
보자마자 깜짝 놀라서 아주 대놓고 좋아하는 티를 팍팍냈다
ㅇㅇ : ????????????????
????????????????
어 4집!!!!! 4집이네!!
기념으로 당장 사진이라도 찍어야 될 것 같아요!!
더더4집을 획득함
기분 정말 좋았음
음반점을 나왔다
시디를 계속 가지고 다닐 순 없었다
갖고 다니다가 혹시 깨 먹거나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그래서 집에 보내기로 했다
집에 보내려면 택배비가 있어야지.. 돈 벌 곳을 찾아다녔다
근데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시내에 가봐도.. 없고
홈플러스에 가서 혹시라도 잠깐 할일 없냐고 물어봤지만
당연히 없지..
시장에 가보니까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사람도 없고.. 시장 자체도 작고..
그래서 포기했다
찜질방이 한 곳 있길래 청소해준다고 하며 한 번 들이대봤지만..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해서 거절당했다
또 헤매는 꼴이 되었다
시장,시내를 빙빙 돌아다녔다
삼척시내에서 보도블럭 다시 까는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오늘 어떻게든 여기서 잠을 해결하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사장에 돈을 벌 수 있는지 한 번 부탁해보기로 했다
잠자리를 구하기 전에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역시 나만의 개떡같은 걱정이었지만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혹시라도 깡패를 만나면 깡패가 뭘 뺏아가도 하필 내 더더4집을 뺏아갈 것 같고..
혹시 아무데서나 자고 있는데 누가 나를 발견하고서는 힘들게 구한 내 더더4집을 훔쳐갈 것 같고...
불안에서 배낭에 넣어서 배낭 못 훔쳐가게 머리에 베고 잤는데 재수없게 머리에 눌리는 힘에 내 더더4집이 안에서 부서질 것 같고..
그런 지나고보면 가짢기만 한 걱정들이 당시에는 내 머리속을 꽉 채우고 있었고
그래서 씨디를 홈플러스 입구에 있는 물품보관함에 넣어버렸다
분명 물건 넣어놨는데 혹시라도 내일 아침에 없어지는 일이 생길까봐 증거를 남김
이제 빨리 잠잘 곳을 찾아서 최대한 일찍 자자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공사장에 나가 잠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9시에 홈플러스 문 열면 바로 씨디 찾아서 택배보내고 동해를 향해 출발!!
완벽하다!! 그레이트!
내 계획이었다
잠 자리를 찾자
어디서 자나...여기저기 헤매다가
불이 꺼져 있고 밤에는 아예 텅 비어있을 것 같은 상가건물을 하나 발견했다
복도가 그렇게 더럽지도 않고..사람 올 일도 없을 것 같아 여기서 자기로 했다
근데 막상 누워서 자려고 하니까....
춥기도 했고
진짜 불안했음...
자는데 누가 갑자기 나타나서 찌를 것 같고...
너무 무서웠음....
수첩의 일부
2009.8.13 23 : 20
6시간만 버티자
아무일 없기를
아무래도 이건 너무 위험하다
무섭다 불안하다
나는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건지..
4.
자다가 깼다가 자다가 깼다가
불안감 + 추위 떄문에 편하게 못 잠
날씨가 심하게 추운 건 아니었는데 바닥이 너무 차가웠다
다행히 이 날은 밤에 날씨가 추웠던 건 아니었지만
다른 날은 여름이었어도 밤만 되면 낮에 언제 그렇게 더웠냐는듯이 추워졌다
자다깨다를 반복
그러다 한 번 깊은 잠에 빠졌다가 다시 잠에서 깼는데
시간이 4시였다
아 살았다
살았다
이 만큼 잤으면 됐지 이제 나가자
아 무서운 밤이 지나갔다
이게 잠들기 전 사진이고 어제 올린 사진이 잠든 후 사진임 실수로 잘못 올림
갑자기 배가 아파와서 상가 건물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다녔다
2층에 있는 화장실은 문이 잠겨 있었고
3층이 다행히 열려 있었다
아싸
실컷 똥 싸고 이왕 화장실 들어온 거 씻기까지 함
상쾌했음
똥 냄새만 빼면
어후 똥 냄새
누가 올까봐 불안해서 화장실 문 잠궈뒀기 때문에 냄새가 안 빠짐
불안불안하게 똥 싸고 머리감고 세수하고 양치하고 화장실을 나가려고 했다
1분간 똥줄 탄 얘기
어?
왜 문이 안 열리지
ㅅㅂ 왜 문이 안 열리지
누가 나 있는 거 보고선 못 나오게 뭔 짓을 해 놓은건가?
손잡이가 고장났나?
왜 안 열리지 ㅅㅂ!!!!!
괜히 쎄게 당기다가 손잡이 부러지는거 아닌가..그러면 완전 망하는데
왜 안 열리노
갇혔나 설마
아 문 괜히 잠궜네
열려라 열려라!!
혼자 화장실 손잡이 쥐고 1분간 지랄한 끝에 문이 열렸음
진짜 갇힌 줄 알고 잠시 식겁함
휴... 큰일 날 뻔 했네
진짜 갇혔으면 그게 뭔 꼴..
화장실 문 괜히 잠궜다
지나고 보니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화장실 좀 쓴 게 죄 짓는 것도 아니고.. 걸리면 죄송하다고 하면 되잖아
쓸데없이 겁 먹는데는 비공식 대구 랭킹 1등 먹을듯
건물을 빠져나왔다
와 상쾌한 아침
잠은 제대로 못 잤지만
어쨌든 무사히 밤이 지나갔고
내 앞에는 이제 밝은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기쁘고 아주 상쾌한 아침이었다
일 찾으러 가자
윽.. 썰렁했음
하나도 못 함..
공사자재가 엄청 많이 실려있는 트럭을 보고 찾아가보니
8시에 관리자가 오고 그때부터 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근처 버스 정류장에 앉아 밀린 일기를 썼다
시간 맞춰 다시 그 트럭에 가봤지만 관리자가 사람 필요없다고 함..ㅠㅠ
시장도 한 번 돌아보면서 여기저기 물어보기도 했지만 실패
마지막 희망인 시내 보도블럭 공사현장에 가봤다
아까웠다 어제 였으면 시킬 일이 있었을텐데 오늘은 현장에 자재가 안 내려와서 시킬 일이 없다고 했다
윽..
그래서 그냥 9시까지 시간이나 때우다가 홈플러스 열자마자 더더4집을 찾았다
무사히 있었구나 낄낄
일은 못했지만 씨디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홈플러스 들어간 김에 아침으로 먹을 빵 구입
1000원짜리 빵 990원
유통기한이 하루 남아서 딱딱하고 좀 맛이 없었음.. 배도 고픈 상태였는데
여기서 돈 벌기는 힘들 것 같고.. 동해까지 12km정도 밖에 안되니까
먼저 동해에 간 다음에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진짜
더웠음
첫 날 이튿 날 빼면 대게는 흐린 날씨였었는데 때문에 더위를 심하게 느끼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근데 이 날은 해가 쩅쨍 뜸 .. 가장 더운 날이었다
해가 쨍쨍....
우산으로 햇볕을 막고 걸어가는데도 너무 더웠음..
우산...
그냥 비 올 때 쓰려고 챙겨 온 우산
비 그친 뒤에도 젖은 상태라 배낭에 못 넣고 손에 들고 다녔는데
그렇게 들고 다니던 도중 이게 햇볕을 막을 수 있는 양산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좀 쪽팔리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장 땡볕에 노릇노릇 구이될 지경이라 그런 걱정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 살고봐야지
우산으로 막아주니까 훨~~~~~씬 나았음
이래서 양산을 쓰는구나ㅋㅋ
너무 더워서 한 시간도 못 걷고 조금 걷다가 지쳐서 쉬고 또 쉬고..
차, 특히 공사 트럭.. 동해 -> 삼척으로 가는 대형차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우산 쓰고 가는데 대형 트럭이 지나가면서 일으키는 바람에 우산이 자꾸 뒤집어 지려했다
우산 각도 낮춰서 안 뒤집힐려고 신경썼는데 결국 2번 뒤집힘
한 번 뒤집히니까 그 후로는 바람만 좀 분다 싶으면 뒤집어지려고 함.. 약해졌음
땡볕에 내 몸이 다 타고 있다는 걱정 외에
내겐 또 한 가지 커다란 걱정이 있었다
일기장과 더더cd
가방의 가장 바깥쪽 칸에 넣어뒀는데
일기장이랑 씨디가 더워서 녹을까봐..............
말도 안되는 얘기 같으면서도 왠지 신빙성이 있는 생각이라 느껴졌었음..
겁나 불안했음......
걷는 내내
이렇게 더운데 일기장 글씨가 다 녹아서 들러붙는 건 아닐까
왠지 씨디란 건 더우면 잘 녹게 생긴것 같은데 이 정도 날씨면 녹는 거 아닐까
어떻게 쓴 일긴데... 어떻게 구한 씨딘데.... 녹으면 안 된다
그래서 우산을 최대한 내 몸을 가리면서도 일기장과 씨디가 들어있는 배낭부분까지 가릴 수 있도록 신경써서 들고다녔다
희한한 포즈로 들고 다님
그.. 칼 높이 들어서 내리치기 직전의 포즈
별 걸 가지고 걱정을 다 함
그게 녹을 리가 있나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난 얼마나 고민했었나
재주소년 귤
누가 길 따라 조개 껍데기를 심어놨네
덥다
얼른 동해에 도착한 다음
근처에 있는 학교 찾아서 밀린 빨래나 해 놓고 그늘에서 푹 쉬고 싶었다
2시 다 되갈때 쯤 동해시내에 도착했다
근처에 있는 학교를 찾고 있었는데
동해에서도 삼척에서 봤던 것처럼 보도블럭 공사를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지나가는 길에 한 번 물어봤지만 할 일이 없다고 하였다
거길 지나쳐 조금 더 걸어가다보니 현장 한 군데가 더 나왔다
묻고 물어서 공사 책임하시는 분을 찾았다
ㅇㅇ : 저기요 실례합니다 제가 돈은 1000원을 주든 2000원을 주든 뭐 얼마를 주든 주시는 데로 받을테니까
잠깐만이라도 어떻게 할만한 일 좀 없을까요?
많이 생각하고 여러번 연습한 멘트다
ㅍㅍ : 허허..진짜 1000원 주면 어떡할려고
미소가 띈 얼굴이었다
긍정적인 표정
될 것 같다!!
순간 밀어부쳐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ㅇㅇ : 1000원 주셔도 되요! 제가 1000원 받기로 하고 일 했는데 3000원치 일을 못해드리면 1000원도 안 받을게요!!
진짜 진짜 열심히 해드릴게요!!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단지 꼭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때 보도블럭을 다시 깔기위해 혼자서 힘들게 땅을 파고 있는 내 또래의 청년?;;이 보였다
내가 나온 부대는 공병이다
공병...흔히 삽질하는 부대로 알고있는데
내가 나온 부대는 공병 치고는 삽질을 많이 하는 부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난 뭘해도, 아무리 많이 해본거라도 한들 그렇게 썩 잘해내는 편이 아니다 삽질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삽질이라면
난 정말 자신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예 안 해본 것보다야는 잘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기세 등등하게
ㅇㅇ : 저거, 저거 땅 다 파야되는거에요? 제가 저거 다 파 드릴게요!!!!! 삽 좀 줘보세요!!
ㅍㅍ : 허허.. 그래 한번 해봐라 야 여기 삽 하나 갖다줘라
드디어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선크림으로 팔과 얼굴을 떡칠한 뒤 삽을 잡았다
후
버닝!!!!!!!!!!!!!!!!!!!!
미친듯이 팠다
진짜 미친듯이 팠다 군대에서도 그렇게 파본 적은 없다
판 흙을 몸을 움직여서 갖다 버리지 않고 그냥 제자리에서 다 던져버렸다
ㅍㅍ : 어 천천히 해라 뭐 바쁠 거 없잖아ㅋㅋ
그래도 계속 미친듯이 팠다
어서 여기 땅을 다 파버리고
학교 수돗가에서 빨래 한 다음 그늘에서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후딱 파버리자
빨리
빨리
빨리
내가 이미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하니까 무조건 열심히 해야한다는 생각과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 생각 때문에 급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삽질을 그렇게 하면 안되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지쳤다
아직 1/10도 못 팠는데...
그리고 처음 윗부분만 흙이었고 그 밑에부터는 반은 커다란 돌맹이 투성이라 삽이 잘 꽂히지도 않았다
옆에서 곡괭이로 땅 찍어주는 사람이라도 없었으면 진짜 뒤질뻔....
삽질하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고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휴... 괜히 오바했다... 힘들어 죽겠네
아 오늘 먹은 게 빵 밖에 없어서 그런가... 힘이 더 안 나네.. 배고프다
이러다가 몸살나면 안되는데..
아.. 일 괜히 해본다고 했나... 이거 언제 다 파노....
미친 새끼 뭐 믿고 이거 다 파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들이댔나....어휴.......
안그래도 너무 더워서 동해 도착하자마자 빨래하고 그늘에서 쉴 생각이나 하고 있었는데
괜히 이런 게 눈에 띄여서..
하필 이 2시 땡볕에 다른 일도 아니고 삽질을 하다니....아...괜히 했다....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서 후회도 됐다
머리속엔
아 힘들다 + 배고프다 + 아 발목 + 허리도 아프네 + 괜히 했네 + 이거 언제 다 파노 + 빨리 가고 싶다
삽질하는 내내 이 생각들만 순환하며 떠오름
기세 좋게 일 시켜달라고 들이댔는데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물이라도 벌컥벌컥 마셔가며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계속 땅을 팠다
1시간정도 판 결과 파고자했던 길을 다 파냈다
힘이 다 빠졌다
후...드디어 다 팠다
이렇게 오래걸릴 줄 몰랐는데....
다른 일도 시키면 어떡하지? 빨래해야 되는데..
저 멀리 계신 아저씨가 땅 파낸 자리에서 쉬고 있는 날 부르셨다
만 원을 주셨다
헐 만원
10000원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고맙습니다
아싸 만원!!
오늘은 찜질방 가야지!
만 원을 벌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좀 전까지 힘들어했던 그 기분이 싹 날아갔다
이제 빨래하자
어떤 체인점으로 운영하는 식당 앞에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나와 계셔서 그분에게 길을 물었다
여기 근처에 학교나 놀이터 같은 거 없어요?
그 때 식당 안에 계시던 다른 아주머니가 질문하고 있는 날 보시더니 갑자기 식당 밖으로 나오셨다
ㅍㅍ : 왜 왜 무슨 일인데
ㅇㅇ : 아.. 다른 게 아니고 혹시 이 근처에 학교나 놀이터 같은거 있어요?
ㅍㅍ : 학교는 왜 뭐할라꼬
내가 식당 문 앞에서 얼쩡거리는 게 못 마땅해서 그러시는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알고보니 그분은 나와 같은 대구에 살던 아주머니였고
안그래도 목 말랐는데 냉커피도 한잔 주시고
그 아주머니 덕분에 그 식당 주차장에 있던 수돗가에서 빨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ㅍㅍ : 좀 있으면 여기 주인오거든
주인오기 전에 빨리 해래이
괜히 주인한테 들켜서 아주머니를 난처하게 만들까봐 옆에 있던 대야에 밀린 빨래 다 잡아넣고 대충대충 얼른 빨았다
빨래 끝~
그 아주머니께서 어디어디로 가면 거기 빨래 널 만한 곳이 있을거라는 것까지 가르쳐주셨다
근데 막상 가보니까 빨래 널 곳이 마땅치 않았다
널 자리 찾아다닌다고 1시간은 돌아다닌 듯..
하도 널 데가 없어서.. 찾다가 찾다가 그냥 동네길 모퉁이에 있는 전봇대에다가 널었음
적절한 길이의 빨래줄
공간이 조금 부족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적절한 공간
배고프다 이제 밥 좀 먹어보자
주유소에서 물을 받고..
밥을 좀 얻어보려고 근처 냉면집에 들어갔다
사장님이 남자분이셨는데
처음에는 마지못해 주방 아주머니께
저 학생한테 밥 한공기 싸줘요 라고 차갑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나중에는 사장님이 직접 주방에 가서서 공기밥을 가져와서는 이미 한 공기 담겨 있던 비닐에 한 공기를 더 넣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주방 아주머니께서 가져다 주신 비닐 안에는 밥이 이 전보다 가득 들어있었고
밥이 든 비닐 옆에는 빨간 무언가가 또 들어있었다
ㅍㅍ : 깍두기도 넣었어요ㅎㅎ
ㅇㅇ : 우와.... 고맙습니다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맛있는 저녁
밥이 디따 많음 ㅋㅋ
먹고 앉아 쉬다가 어제 빼먹고 안찍은 라면을 찍음
처음 보는 라면
3.14라면
저녁을 먹고나니 곧 어두운 밤이 되었다
문제거리가 생겼다
빨래가 덜 마른 것이다
해가 떠 있을 때 일찍이 널었으면 충분히 마르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널 곳을 못 찾아서 헤매다가 오후 늦게서야 넌 탓에 빨래가 다 축축한 상태였다
어떻게 할지 고민 하다가 결국 근처 세탁소에 들어가서
ㅇㅇ : 실례합니다 제가 지금 여행중인데요 오늘 빨래를 했어요
근데 빨래가 덜 말랐어요 죄송하지만 건조기 10분만 좀 돌려주실 수 있어요?
라고 부탁하기까지 하였다
출발 첫날엔 질문하는 거 하나도 좀 어려워했었는데
깨나 두꺼워진듯한 내 낯짝에 스스로 놀랍기도 하고..
어휴 이 거지새끼.. 라는 생각도 들었다
뭐.. 저 부탁 역시 나름대로 어떻게 말할지 많이 고민하고 해볼지말지 문 앞에서 꽤 머뭇거리다가 한 부탁이다
빨래 말려달라는 부탁까지 하는 건 너무 억지이고 들어줄 가능성이 희박한 것 같았지만 설사 안될지라도 말이라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근데 뜻밖으로 세탁소 쪽에서는 거절이라기 보다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보일러를 끈 상태라 건조기를 못 돌린다며 오히려 미안해하기까지 했다
군대에서 1000원 넣고 45분 돌리는 건조기가 있었다
10분이면 한 200~300원치니까 그 정도면 좀 부탁해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세탁소에 가면 그런 전기로 돌리는 건조기가 있을거라 생각하고 해 본 부탁이었는데
비싼 기름을 먹는 기계인 보일러라는 말이 나와서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 보일러까지 돌려서 내 부탁을 들어줬다면 오히려 내가 부담스러워 했을것이다
마음만이라도 내 부탁을 들어주려고 했던 따뜻한 세탁소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세탁소를 나와 다시 빨래가 널려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아
어떡해야 하나
잠은 또 어디서 자고.. 아.. 찜질방 가서 자고 싶었는데..
찜질방은 또 무슨 9000원? 너무 비싸다..여긴 사우나만 해도 6500원이나 하네...
재산 15140원
6500원이라는 돈이 여전히 너무 크게 느껴졌다
아직 못 부친 음악씨디의 택배비와 앞으로의 내 생계비를 생각하니 마음 편히 찜질방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 또 고민을 엄~~~~~~~~~~~~청 했다
고민끝에 어제도 불편하게 얼마 자지도 못했는데 오늘도 그렇게 자면 내일 걸어가는데 지장이 생길거라고 판단하고
찜질방에 가기로 했다
찜질방에 갈 결정을 한 뒤에도 여전히 고민은 계속 됐다
빨래는?
젖은 빨래를 그냥 걷어서 찜질방안으로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널어뒀다가 내일 아침에 다 마르면 가져갈 것인가
당장 걷어가면..
마르지도 않을뿐더러 냄새까지 나서 빨래한 의미가 없어질것 같고..
그대로 널어두면..
혹시라도 누가.. 그럴리 없을 것 같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재수없게 누가 저 중 하나라도 가져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두 개의 방법 사이에서 한 참을 고민하다가
에이 설마 없어지겠나 하는 생각으로 빨래를 그대로 널어둔 채 찜질방으로 가게 되었다
어느 찜질방이나 항상 꼭! 아주 딱 맞게 쏙 들어가주는 배낭 크기가 오늘도 만족스러웠다
카메라를 좀 살펴보려고 카메라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는데 뭔가 툭 하고 떨어졌다
누구?
항상 마지막은 신속하다
빨랑 씻고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