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작 박사의 지혜 ◎
<이영작 박사는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님의 친 조카>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사건'의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고 국민의 눈높이란 무엇인가? 김건희 여사가 "서울의 소리"의 음모 함정에 빠져 1년여 전에 명품백을 받은 것을 좌파가 폭로하면서 좌파들은 날 만난 듯 난리도 아니다.
거기다 김경율 국민의 힘 비대위 위원이 근거 없이 민심의 이반과 수도권 위기론을 주장하면서 사건을 키운다. 언론도 날 만났다. 보수언론이 더 신난 것 같다. 국민의 힘도 어쩔 줄 모르는 것 같다.
한동훈은 “국민 눈높이서 명품백 봐야"라 하고, 윤재옥 원내대표는 “사건의 본질은 "부당한 정치 공작”이라 한다.
대통령실이 전후를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명품 백 사건의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고 국민의 눈높이란 무엇인가?
일전 TV조선 미스트룻3 경선에서 가수 복지은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 이름 아시죠”를 부르자 심사 마스터 붐(가수 이민호)이 눈물을 흘리며 우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되었다.
붐은 세상을 떠나신 부친이 그리워서 운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 모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김건희 여사 명품 백 사건은 이런 가장 본초적(本初的)인 감정을 좌파들이 교묘하게 파고들면서 만들어낸 악질적인 사건이다. 김건희 여사의 부친은 김 여사가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15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31세에 아버지를 여읜 붐보다 더 클 것이다.
김건희 여사가 꿈속에서도 보고 싶은 선친(先親)의 지인이라면서 다가온 목사라는 사람이 대통령 당선 축하 선물이라면서 주는 선물을 받는 것이 인간적이고 국민의 눈 높이지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국민의 눈높이는 아닐 것이다.
더욱이 국내 명품점에 가서 본다면 선물이 그렇게 고가의 물건도 아니다. 국내 명품전문가가 만든 백도 그보다는 고가(高價)라는 것을 김건희 여사는 잘 알 것이고 자신이 들고 다닐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본 사건의 본질은 감수성이 민감한 어린 나이에 여윈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선친의 지인이라는 사람을 아버지 대하듯 대한 것이다.
선거 전략적으로 본다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사건은 반전의 기회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클린턴의 여성 편력을 문제 삼는 언론보도에 대하여 도덕에는 사적(私的) 도덕과 공적(公的) 도덕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면서 자신은 공적 도적에는 어떤 문제도 없다고 강변하면서 위기를 극복하였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1996년 이스라엘의 수상 선거에서 베냐민 네타냐후의 여성편력이 문제가 되었다. 네타냐후는 자신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자신의 가족이 눈물을 흘리게 해서 사과를 했다고 하면서 반대편 시몬 페레스는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고서 사과도 않는다고 반전공격을 하였다.
시몬 페레스는 이스라엘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팔레스타인 지도자 YasserArafat과 평화협정을 맺고 Arafat과 공동으로 199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을 국민들에게 상기시키며 반전에 성공하였고 네타냐후는 승리하였다.
1992년 5월 손충무는 주간지에 김영삼 당시 유력한 여당 대통령 후보의 사생아 의혹을 폭로하였다. YS는 즉각 주간지를 모두 거리에서 수거하였고 손충무를 고발하였다. 손충무는 이 사건으로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사생아 사건은 사실로 드러났다. 사생아 보도는 YS 지지층을 결집시켰고 지지율은 올라갔다.
1992년 12월 11일 14대 대통령 선거를 1주일 앞둔 시점에 정부기관장들이 부산복어 요리 전문점 ‘초원복국”에 모여 14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당시 통일국민당 측에 의하여 도첨하여 드러나 문제가 된 사건이다.
언론은 도청의 비열함을 부각하며 통일국민당은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김영삼 후보에 대한 영남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받았다. 이외에도 유사한 정치적인 사건이 많을 것이다.
선거를 둘러싼 사건은 1차적인 분석이 아니라 전후좌우(前後左右)를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김경율이나 그와 동조하는 사람들은 깨닫고 좀 더 신중하게 그리고 전략적으로 분석하고 언행을 신중하게 하기 바란다.
명품백 사건의 본질은 15세에 아버지를 여읜 여인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선친의 지인을 환대한 것일 뿐이다. 이런 인간의 정을 교묘하게 이용한 좌파의 악질적 행태는 민심의 역풍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역사가 증명한다.
- 2024년 1월 20일 이영작 -
[송평인 칼럼] 김건희 못마땅하지만 나라가 친북 인사에 놀아나서야 함정 취재는 단순한 몰카 취재와 달라 김 여사가 보인 모습 실망스럽지만 친북 목사의 함정 취재 고려해 비판의 균형감 찾아야
김건희 여사를 함정 취재한 사람은 최재영 목사가 아니라 그냥 최 씨라고 부르겠다. 개신교에서 목사라고 부르려면 최소한 어느 교단(총회) 어느 노회 소속인지가 나와야 한다. 그는 2014년 통일뉴스라는 인터넷 매체에 방북기를 연재하면서 이력에 안양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나왔다고 썼다. 안양대 신학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총회 신학교다. 그렇다면 대신 총회 아래 어느 노회에 속한 목사가 돼야 하는데 그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자신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해외총회 남가주노회 소속 목사라고 밝혔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통합과 합동이 양대 산맥이다. 통합과 합동은 각각 총회의 이름이다. 총회 안에 총회가 있을 수 없으므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해외총회는 어색하다. 현재 합동 총회에는 미국에 동부노회 서부노회 등 2개 노회밖에 없다. 그가 밝힌 소속은 우리가 흔히 아는 합동과는 관련이 없다.
그가 201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영광의빛교회(The Light of Glory Church)의 2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는 기사가 당시 현지 한인 매체에 일제히 나왔다. 그것 말고는 그 교회에 관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교회에 관한 영상이나 사진조차도 인터넷에 남아 있는 게 없다. 현재 구글 지도로 교회를 찾아보면 폐업이라고 돼 있다. 이상한 교회다.
그의 나이가 올해 61세인 걸로 봐서 또래들처럼 학교를 갔다면 안양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다닌 것은 1980년대일 것이다. 이후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교육철학을 공부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그러고는 1995년 미국으로 떠났다고 하니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본격적인 목회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미국에 간 지 3년 만에 1998년 ‘NK VISION 2020’이라는 통일운동 단체를 만들었다. NK는 뉴코리아(New Korea)의 약자다. 사우스코리아도 노스코리아도 아닌 뉴코리아를 내세우고 있지만 친북적인 단체다. 이 단체가 얼마나 큰지 모르겠으나 그 산하에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 동북아종교위원회, 남북동반성장위원회, 오작교포럼 등 이름도 어마어마한 기구가 4개나 있다.
그는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장 자격으로 2014년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의 봉수교회와 함께 대표적 대외 선전용 교회인 칠골교회에서 설교도 하고 북한이 가정교회라고 주장하는 곳도 방문했다. 그 뒤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고 지역 교인 10여 명이 집에서 예배를 보는 가정교회가 무려 530곳이나 된다고 선전하고 다닌다. 전형적인 친북 인사의 길을 가고 있다.
최 씨가 김 여사 문제로 여권의 분열이 심화되는 것을 틈타 그제 기자회견을 통해 최고권력자에 대한 몰래카메라 취재의 당위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최 씨가 한 것은 단순한 몰카 취재가 아니라 함정 취재다. 몰카 취재는 평소와 다름없이 전개되는 상황 속에 취재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숨기고 끼어들 뿐이다. 함정 취재는 취재하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미끼를 던지면서 상황을 조성한다. 최 씨의 경우는 김 여사에게 300만 원짜리 디올 백이라는 미끼를 들고 가서 상황을 만들었다. 전문적인 스파이처럼 손목 몰카 시계까지 차고서 그렇게 했다.
길바닥에 돈뭉치를 일부러 놓아두고 길 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몰카로 찍는다고 해보자. 길에서 주운 돈뭉치라고 슬쩍 하는 것은 단순히 비양심적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실물 습득죄라는 범죄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반응으로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을 일부러 유혹의 함정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목사라면 더구나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마귀가 예수를 상대로 빵과 능력과 권력을 차례로 미끼로 던지며 한 시험이 바로 그런 짓이다.
물론 우리가 냉철해지려고 해도 몰카 속에 비친 모습은 마음속에 남기 마련이다. 누군가 돈뭉치를 주워 경찰서에 갖다 주지 않고 슬쩍 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를 전과 같이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렇다. 그래서 함정 취재는 하면 안 되고 용납하는 것으로 비치게 해서도 안 된다. 김 여사가 디올 백을 즉각 돌려주지 않고 받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균형감의 회복을 위해 노력할 때다. 김 여사가 못마땅하지만 나라가 친북 인사의 공작에 놀아나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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