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요. 꿈이 끝났다는 걸 믿을 수 없어요. 저는 4년 차 수험생입니다. 대학 졸업 후 준비해왔던 시험에 저는 모든 것을 걸었어요. 목표는 가족들로부터 벗어나는 거였어요. 보란 듯이 성공해서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 그러나 제 인생은 해피엔딩은 아닌가 봅니다. 4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고, 시험은 폐지수순을 밟고 있어요. 부모님이 시험 보는 걸 반대해 아르바이트로 학원비를 벌어 계속 도전했지만 결국 이렇게 됐어요. 지금은 절망에서 다시 일어날 기운조차 없습니다. 낮에는 잠으로 도피하고 밤에는 걱정으로 지새워요. 부모님, 친척들한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끔찍해요. 정말 너무 지쳤어요. 부모님은 그냥 빨리 취직하라며 “남자도 만나고 아이도 낳고 인간답게 살라”고 하시네요. 제가 인간답게 살지 못했나 봐요. 화가 나서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면 엄마는 기억도 안 난다며 “네가 안된 게 다 내 탓이냐”고 도리어 화를 내세요. 머리로는 이해가 가요. 부모님도 불쌍한 사람들이란 걸요. 이제 부모님도 연세가 드셔서 서로에게 세운 날도 많이 무뎌졌어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과거에 매여 부모님을 볼 때 문득 화를 주체할 수 없어요. 나만 없어지면 다 행복해지지 않을까란 극단적인 생각이 자주 들어요. 김연주 (가명ㆍ26세ㆍ수험생)
우리 인간은 가까운 사람에게 자기 아픔을 말할 수 밖에 없어요. 가까운 사람에겐 자기 어려움을, 상처를, 삶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격려 받고 칭찬 듣고 싶어해요. 우린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연주씨는 이걸 하나도 받지 못했어요. 오히려 받지 말아야 할 걸 받았죠. 연주씨가 입만 열면 비난이 쏟아졌어요.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까지, 연주씨의 삶엔 학대와 공격, 모욕, 질책뿐이었어요. 그나마 학교에선 안정감을 느꼈을 거예요. 연주씨가 가진 자아상 중 유일하게 긍정적인 것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선생님들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기대할 만한 인정과 칭찬을 해줬고, 이걸로 연주씨는 학교에서 ‘자기’라는 사람을 간신히 유지해나갈 수 있었어요. 생활이 아니라 생을 유지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제 학교라는 울타리가 사라졌고, 시험엔 떨어졌어요. 연주씨는 생이 끝났다고 느끼고 있어요. 공부로 생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이제 생을 마감하고 싶은 거예요. 당신은 지금 벼랑 끝에 있어요. 너무나 걱정스러운 상황이에요.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표면적인 성적이나 시험 결과가 전부가 아니라는 거예요. 중고등학교 때의 공부는 그 나이 대 기능 발휘에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수업에 참여하는 성실성, 시험 기간을 견디는 인내심, 급우ㆍ교사들과의 갈등을 조절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등 매우 다양한 기능을 필요로 합니다. 사춘기 때의 성적은 이 모든 것들의 총합이에요. 연주씨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다는 건 이 기능을 잘 발휘했다는 거예요. 이걸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돼요. 당장 시험에 붙어야만 자신의 생이 유지될 것 같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남들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공부에 매진해 좋은 결과를 내는 기능을 갖춘 사람이에요. 그게 당신이에요. 그러나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을 서둘러 택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분노와 원망이 더 커질 수 있어요. 부모님이 원하는 ‘결혼하고 취직하고 출산하는 삶’은 겉으로 보기엔 매우 소박해 보이죠. 그러나 연주씨는 그 이면에 있는 부모님의 자기 중심성을 알기 때문에 갈수록 더 분노하게 될 거예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연주씨가 하고 싶은 일,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 전에 치료를 받아야 해요. 연주씨는 지금 ‘다음’을 생각할 기운이 없어요. 당신에게 도움을 줄 만한 의사와 빨리 손을 잡으세요. 당신은 성실하고 선량하고 스스로를 관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생각보다 빨리 치유될 수 있어요. 그리고 난 뒤에 꼭 연주씨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불안하고 두려울 거예요. 섭섭하고 힘들 겁니다. 그러나 지금 연주씨가 힘든 건 약해서가 아니라 당연한 거예요. 오랜 수험기간을 버텨낸 자기자신을 믿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길 바라요. 부모의 기준이 아닌 연주씨의 기준, 부모가 원하는 삶이 아닌 연주씨가 원하는 삶을요.
갠적으로 힘들었을 때 이거 읽었는데 힘이 되더라고 누군가가 읽고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맘에 퍼왔어 문제시 댓글
첫댓글 나한테 완전 필요한 글이야! 퍼와줘서 고마워!!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