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는 파리의 유복한 양재점에서 태어났으나, 처음 한동안은 양복점의 점원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회화에 마음이 이끌려 다소는 스승을 따라 배우기도 했으나 역시 자연이 그의 스승이었다. 이어 동경하던 이탈리아의 정다운 풍경에 감동했다. 그 이탈리아에서의 제작은 아름다웠으며 그는 모두 세번 이탈리아를 찾았다.
살롱에 출품한 것은 1827년부터이며, 이후에는 오래도록 계속 출품하지만, 시종 풍경화가로서 그렸다. 작품은 엄정한 데생을 주장하는 측으로부터는 공격을 받으나 그 겸허한 진실에서 코로는 점차 조용한 존경을 모으고 있었다. 그 생활은 담담하여 화단의 대립에도 관계 없이 자연의 깊이와 벗하는 조용한 생활을 계속하고, 또한 도미에와의 우정 등 아름다운 삽화도 적지 않다.
작품으로는 <이탈리아의 풍경>도 볼 만하지만, 또 <두에의 종각(鐘閣)>(1871)과 그 밖의 것도 미묘한 정적(靜寂)을 나타내는 외에, 연못가의 온화한 매력에 넘친 <모르트퐁텐의 추억> 등 다수의 작품이 그려졌다. 코로는 생애에 수많은 풍경화를 남기고 있으나, 그 제작은 언제나 겸양하면서도, 다른 어떤 제작에도 못지 않는 높은 인식으로 풍경화를 드높였다. 더구나 만년엔 즐겨 인물을 그리고 있는데, 만년의 인물은 더욱더 맑아져 조용한 감동을 주는 <푸른 옷을 입은 여인>(1874) 외에 <진주의 여인>(1868∼70)의 모나리자와 같은 포즈는 그 품격과 묘사의 적확(的確)으로 19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의 하 나로 꼽히고 있다.
코로의 풍경에는 시와 진실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히 용해되어 있다. 코로는 빌 다브리에도 집을 가지고 있어, 못가를 되풀이하여 그렸는데, 코로의 화필에 그 수목은 현실과 꿈의 아름다움을 융합시킨 듯하다. 코로는 겸허하고 타인에 대한 따뜻한 인품 때문에, 그 생애는 회화에만 전념(專念)하는 진실로 평화로운 것이어서, 인생의 풍파(風波)도 이 사람을 피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