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예수 그리스도 최고의 모범
성체성사, 미사를 거행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어느 예식에 참여함은 거기서 기억하고 기념하는 사건이나 인물이 자신과 관계가 있고, 그 인물 또는 그 사건을 본받기 위해서다. 우리가 미사 참례함은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이 세상에서 복음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수난하고 죽임을 당할 거라는 예고를 들음이고 나 또한 그렇게 되겠다는, 주님 뒤를 따르겠다는 결심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최고 모범이다.
이 더운 날 목마른 이들이 시원한 물을 원하고, 아픈 이들이 약과 좋은 의사를 찾고,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거처럼, 우리 영혼은 예수님을 원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별로 원하지 않는 거 같다. 지금 우리에게도 박해가 몰아치면 우리 순교자들처럼 자랑스럽게 신앙을 증언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박해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게 무관심이고 뜨뜻미지근한 신앙이다. 그런 간절함과 신앙의 뜨거움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노력해야 생기는 거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셨고, 그러기 위해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우리에게 몸소 그 모범을 보여주셨다. 그냥 저절로 되는 거라면, 세례 성사만 받으면 그냥 되는 거라면 그걸 굳이 지켜야 할 최고의 계명으로 주지 않으셨을 거고, 십자고상도 없었을 거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의 모범인 것은 그분 안에 하늘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마음, 생각, 삶의 방식이 곧 하늘나라이다. 경찰이 증거를 은닉하고, 검사가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기 권력을 남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는 거짓이 없다. 말씀이 곧 삶이고, 삶이 곧 말씀이다. 말만 하늘나라가 아니라 그분의 삶도 하늘나라다. 우리에게 신앙은 자신의 주관적인 결단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그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아니, 그러려고 그렇게 되려고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함이다.
우리가 받은 세례 성사는 나의 죽음과 새로운 나의 재탄생이다.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 우리는 세례식에서 이마에 물을 조금씩 세 번 붓지만, 동방정교회나 다른 개신교회에서는 실제로 물이 가득 담긴 욕조 같은 곳으로 들어가 머리와 온몸을 담갔다가 밖으로 나온다. 예식 준비하기는 참 번거롭겠지만, 세례 성사의 의미는 아주 생생하게 전해질 거 같다. 거기 참석자들에게도 말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다. 그분이 알려주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하느님으로 사셨으니, 우리도 하느님처럼 될 희망이 생겼다. 이제 우리는 그분을 따라 하느님처럼 되는 거다,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세례받아 여러 신앙의 의무를 지고, 성당에 나가고, 말 많고 탈 많은 교회 안에서 상처 주고받으며 공동체 생활을 할 필요 없다. 요즘은 좋은 강의도 쉽게 찾아 들을 수 있고, 명상 방법, 힐링 장소, 좋은 NGO 활동 등 얼마든지 멋지게 살 수 있다. 내가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랑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하느님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신앙은 취미에 불과하게 될 거다.
예수님,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6)고 하신 주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제는 정말이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생활을 확실히 청산하겠습니다. 주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영원을 응시하는 어머니의 눈을 따라 저도 그곳을 바라보고 저의 삶도 그에 합당하게 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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