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동양철학
오래전 과거(역사가 시작되기 전인 선사시대)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면서 살았다. 사람이 마땅히 행하고 가야할 바른 길은 선덕(善德)에 중심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국의 요(堯), 순(舜), 우(禹), 탕왕(湯王)은 신성한 정치목적과 순수한 도덕심을 바탕으로 한 문무(文武)로 세상을 다스렸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백성들이 행복하고 안락하며 보람 있는 삶을 살도록 만들어야 한다. 신성함과 순수한 권력을 통해 하늘의 이치를 밝혀 백성들이 바른 마음으로 길을 가도록 인도하는 지극히 선한 정치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춘추시대가 되자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권력을 출세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개인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고 옳지 못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남을 동정하는 마음과 인간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버리고 만다.
속임수와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키는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하여 무력으로 권력을 빼앗고 백성을 착취하는가 하면 악(惡)을 바르고 착한 덕행(善德)으로 위장하고, 실패한 정치를 공적으로 위장하여 백성을 속이면서, 덕이 아주 뛰어난 어진 임금(聖君)의 도덕과 예의법도를 비판하여 부정하고, 분수없이 호사하고, 주색에 빠져 행실이 추잡하고, 향락의 즐거움에 빠져있었다. 이로 인해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이 버려지는 등 혼란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렇게 혼란한 시기인 춘추와 전국시대를 춘추전국 시대라 한다. 춘추전국(春秋戰國)은 중국 주(周)왕조가 낙양(洛陽)으로 도읍을 옮긴 BC 770년부터 진나라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BC 221년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를 춘추와 전국 두 시대로 나누는 것은 혼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춘추시대
당시 나라들이 처한 상황은 서주(西周)가 싸움에 져서 망하고 왕의 통치력은 이름만 그럴듯하고 실속은 없었으며, 영토를 가지고 그 영내의 백성을 지배하던 사람인 제후들은 앞 다투어 자신의 국가를 세우기 위해 제후들 상호간 전쟁이 자주 일어났다. 또한 주변 이민족의 위협과 침입은 점차 증가되어 갔던 시기이다. 때문에 혼란한 와중에 주나라는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문란한 사회기강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로 존왕양이(尊王攘夷 왕실을 존중하고 외세를 배척하는 사상)사상을 갖게 된다.
전국시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희생시켜 번영하거나, 약한 자가 강한 자에 의해 멸망 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시기였다. 이러한 약육강식의 혼란함을 해결하기 위해 존왕양이 명분을 내세우게 된다.
어짊과 의로움을 무시하고 힘과 그때그때마다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생각을 쉽게 바꾸고 공을 세워 이름을 알리기 급급하며 개인적인 이익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패도(霸道)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춘추시대의 존왕양이 사상은 왕실을 존중하는 존왕을 위해서는 외세를 배척하는 양이가 우선되어야 하고 양이를 위해서는 존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 중심이론이었다.
이러한 이론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존왕양이 사상은 남을 거부하여 물리치는 배척하는 경향이 있고 제 나라의 국민적 특수성만을 가장 우수한 것으로 믿고 유지 · 보존하며 남의 나라 것을 배척하는 국수주의(國粹主義)로 흘러갔다.
이러한 천하 대란(大亂)인 춘추전국시대에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수많은 학파와 학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펼쳤던 것을 말하며, 제자는 여러 학자, 백가는 수많은 학파란 뜻이다.)로부터 동양철학은 열리게 된다.
당시 철학적 사유는 혼란한 시대문제 해결에 주력하였기 때문에 현실적인 사유가 기초를 이룬다. 특히 유가 사상가들은 주(周)나라 문화를 계승했다고 자처한 반면, 도가 사상가들은 철저하고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천하대란(天下大亂)의 악조건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춘추 말 공자는 극심하게 부패한 조정, 거칠고 피폐(疲弊)한 농토, 텅텅 빈 나라창고, 위정자들의 화려한 옷과 보배로운 칼, 사치스럽고 화려한 잔치를 벌이고 재물을 탐하는 모습을 보고 ‘천하에 도가 없다(天下無道)’고 한탄했으며 노자는 이들을 ‘도둑의 우두머리’라고 비난하였다.
장자는 “단추를 훔친 자는 목을 치고, 국가를 훔친 자는 왕이 된다. 왕의 집에나 도덕과 법률이 있다(彼竊鉤者誅피절구자주, 竊國者爲諸侯절국자위제후, 諸侯之門而仁義存焉제후지문이인의존언 -거협)”라 했다. 권력자는 국가를 훔치고 인(仁)과 의(義) 마저 훔쳐 거짓으로 가장하여 온갖 영광스러운 명예를 누리니 도둑 중 큰 도둑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맹자는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을 수 없다며 주의하고 경계하라면서 당시 전쟁으로 인한 끔찍하고 비참한 모습을 ‘토지 때문에 전쟁을 하면 죽은 사람이 들판에 가득하고, 도시(城) 때문에 전쟁을 하면 죽은 사람이 성을 메운다(爭地以戰쟁지이전, 殺人盈野살인영야, 爭城以戰쟁성이전, 殺人盈城살인영성)’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봤을 때 『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의 ‘궁함에 이르면 변화가 오고, 변화는 통하게 되며, 통하게 되면 오래 간다(窮則變궁칙변, 變則通변칙통, 通則久통칙구)’는 말은 춘추전국 시기에 싹트기 시작한 중국철학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살펴본 봐와 같이 몹시 혼란한 시대의 질서 없는 한계 상황을 극복하고 스스로 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평화와 화합의 사회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동양의 철학자들은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철학은 맹자의 몸과 마음을 닦은 이후에 남을 다스리라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안으로는 성인이며 밖으로는 임금의 덕을 갖춘 사람으로, 학술과 덕행을 아울러 지닌 사람인 내성외왕(內聖外王)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출처] 고대 동양철학|작성자 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