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흥남 철수작전 당시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14,000명을 구출한 기록은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출한 세계 기록 - 2013. 9. 3 기네스북 등재
ㅇ 6·25 전쟁 당시 67개국의 국가가 연합군으로 참전 - 역사상 가장 많은 연합군. 당시 전 세계의 독립국은 90여 개국에 불과
ㅇ 맥아더는 중국 공산당이 참전하지 않을 것으로 오판
ㅇ 맥아더는 만주 폭격과 중국의 해상봉쇄, 대만의 국민 정부군 투입 요청 - 트루먼 행정부가 허락하지 않음
ㅇ 장진호 전투 - 몰살당하다시피 한 미 육군 71사단 31연대 전투단 병사 2,652명(한국군 카투사 875명 포함)
ㅇ 중공군 참전 이유 - 내부적으로 완전히 규합되지 않은 지방군벌들을 통합하고 공산당 지배체제를 확고하게 굳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분석이 가능
ㅇ 50년 11월 28일 중공군의 대거 침략으로 미군 철수 결정
ㅇ 중공군은 장진호 서안에서 4개 사단과 1개 연대 총 39대대 투입, 미군은 해병 5연대, 7연대의 병력 총 6대대(병사비율 6.5대1), 장진호 동안에는 중공군 2개 사단 1개 연대, 병력 총 21대대, 미 육군은 7사단 31연대 전투단 2개 대대(병사 10.5대 1)
ㅇ 중공군이 협곡 다리를 폭파하자 12월 9일 저녁 공중 투하된 장비로 임시 다리를 복구하여 후퇴
ㅇ 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0일 까지 장진호 병력 피해 전사 705명, 부상 3,251명, 행방불명 4,779명
ㅇ 장진호 전투에 중공군도 막대한 피해를 입어 함흥과 흥남지역 진출이 2주일 간 지연되고, 미군의 흥남철수 작전이 성공
ㅇ 흥남 철수에 10만 명의 병력과 10만 여명의 피난민을 자아비와 함께 성공적 철수로 반격의 병력 유지
ㅇ 흥남 철수 작전의 성공으로 중공군의 남하 작전 지연 및 반격의 계기
50년 만에 해제된 기밀서류와 사진에 의해 사실적으로 기록된 6·25 戰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