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amy 때문에 사보이 왕국은 잠시 대외 원정은 자제하고 국가를 추스리기로 합니다.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며 내정에 치중하던 그때 1539년 잉글랜드 부르고뉴 전쟁이 발발하고 잉글랜드와 동맹관계였던 사보이 왕국은 참전을 결정 합니다.
하지만 사보이 왕국의 군사 행동은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는데 첫째로 동맹전쟁은 아무리 땅을 많이 먹어도 주력국끼리 자기들 이득만보고 평화조약 맺으면 닭쫒던 개꼴이 될 수 밖에 없는게 첫째 이유고 두번째로는 황제국 보헤미아가 부르고뉴 편을 들어서 북동이탈리아로 침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짜 이 주력끼리 화평하는 시스템 좀 수정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데나에서 황제군과 사보이 엠마누엘 장군이 이끄는 주력이 충돌하였고
승리를 거둔뒤 만토바로 퇴각하는 적을 추격하고 엄청난 대승을 거둡니다.
한편 예상대로 잉글랜드는 손쉽게 프랑스 북부 지방을 공략하여..
역시 예상대로 자기들 이득만 보고 평화를 맺었습니다. -_-;;
한편 사보이 왕국은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척을 시도 합니다. 사실 사보이 왕국은 그동안 스페인,포르투갈,잉글랜드가 세계를 갈라먹는데 심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어 해군 증강과 식민지 개척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남미에도 식민지를 건설하고 파타야 왕국을 강습하여 통째로 집어 삼킵니다.훗날 이 거점은 사보이의 동남아 일통에 큰 역활을 합니다.
지긋지긋하게 사보이를 괴롭히던 빚도 갚고..(이것도 다 전쟁으로 진 빚입니다..그놈의 부르고뉴와의 전쟁 때문에 ㅈㄻㄴㅇㄻㄴㅇㄹ)
착실하게 수입을 올리니 어느새 2위의 수입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수입은 모조리 해군 증강과 군사력 강화에 쏟아 부었죠. 그저 군사력이 국가의 안보를 결정 짓습니다.
(김정일의 심정이랄까요..)
이때 쏟아부은 병력은 2차 부르고뉴 전쟁때 큰 활약을 해줍니다. 역시 이번에도 잉글랜드 전쟁에 휘말려 들어갔지요.
사보이 왕국은 이탈리아 정복이 최일선 목표였기 때문에 악명수치만 올리는 프랑스 땅에 별 흥미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분열,현상유지가 사보이 왕국은 고마웠죠.부르고뉴가 이기는것도 안돼지만 그렇다고 잉글랜드가 프랑스를 통일하는걸 바라지 않는 심정이랄까요.
결국 이번에도 1만5천 병력만 보내서 싸우는둥 마는 둥 하다가..
대충 부르고뉴와 단독 화평 조약을 맺고 쏙 빠집니다.
(동쪽으로 보헤이마 군대가 또 처들어왔으나 이번에도 가볍게 격파했지요.)
악명수치가 어느정도 빠지자 사보이 왕국은 드디어 슬슬 야심을 들어냅니다.
그리고 페라라+시실리를 기습 강점하여 통째로 먹어 치웁니다.
한편 바이에른이 점거했던 앙코나와 코르시카는 반란이 일어나 다시 독립했습니다.
좋긴 하지만 먹혔다가 다시 반란으로 독립하니 좀 황당합니다;
그리하여 넓어진 판도를 감상하며..
키득키득 거리고 있는데...
정확히 이 시점에서 몇달 지난 후 전혀 예측 못했던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이탈리아 소국들을 두들겨 패고 있는걸 불쾌하게 여긴 유럽의 깡패 오스트리아가 선전 포고를 하게 된것이죠.
infamy 수치도 아주 높았던 것은 아니라 방심하고 있던 사보이 왕국은 2년간의 치열한 전쟁에 휘말려들게 됩니다.
사보이 왕국의 운명을 결정 짓는 사보이 vs 오스트리아+동맹국,베네치아 뒷치기+소코토 옆치기에 휘말려든것이죠.
세계 최강,최대의 군사력의 소유자 오구리의 역습..
사보이 왕국은 누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첫댓글 밟아도 밟아도 일어나더 브루고뉴네요 -ㅁ-;... 이웃국가로 플레이 해 보았는데 정말 끈질기던군요;
이태리 성립 언제되려나....
일단 로마 코어가없으면....적어도 로마정복후 50년뒤에 이탈리아가 되겠죠
이탈리아통일의 주적은 역시 오스트리아.!!! 저같은 경우는 친 오스트리아 외교를 했죠
다만 나중에 이탈리아통일후 오스트리아가 가지고있는 카린지방의 금이 셈나서 공격(이탈리아 코어)
오구리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