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
화순 조광조 선생 유배지의 입구를 지키는 솟을대문
능주면 남정리의 마을길을 따라가면 낮은 돌담과 단정한 솟을대문이 나타납니다. 담장 안에는 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를 비롯해 비각과 영정각, 강당, 초가가 자리합니다. ‘적려’는 귀양살이하던 집, '유허비'는 옛터를 기려 세우는 비석으로 이곳은 조선 중기의 문신 정암 조광조가 마지막 시간을 보낸 유배 터를 기억하는 공간입니다.
조광조는 성리학적 이상에 바탕을 둔 왕도 정치를 펼치고자 현량과를 시행하고 소격서를 폐지하는 등 여러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개혁 과정에서 훈구 세력과 충돌했고, 중종의 신임까지 잃으면서 기묘사화에 휘말렸습니다. 조광조는 1519년 능주로 유배된 뒤 약 한 달 만에 사약을 받고 생을 마쳤습니다.
복원된 초가집의 풍경
조광조 선생이 유배 생활을 했던 초가집
정암 조광조 선생과 학포 양팽손 선생이 마주 앉은 모습을 재현한 모형
마당으로 들어서면 낮은 초가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흙벽과 나무 기둥, 짚으로 덮은 지붕을 가진 초가는 당시의 소박한 생활상을 짐작하게 합니다. 방 안에는 조광조와 학포 양팽손이 마주 앉은 모습을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능주 출신인 양팽손은 조광조와 함께 생원시에 합격했으며,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 등을 구명하는 상소에 앞장섰다가 관직을 잃은 인물입니다.
돌담 기와 위로 나란히 내다보이는 비각과 초가 가옥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비각
담장 밑 화사한 꽃밭과 그 너머로 보이는 비각과 초가집
유적의 중심에는 붉은 기둥과 살창으로 두른 비각이 서 있습니다. 비각은 조광조가 세상을 떠난 뒤 100여 년이 흐른 1667년, 능주목사 민여로가 그의 유배 생활을 추모하고 옛터를 기리기 위해 세웠습니다. 자연석에 가까운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반원형 머릿돌을 올렸으며, 머릿돌 앞면에는 서로 어우러진 두 마리 용을, 뒷면에는 구름을 타고 오르는 용을 새겼습니다.
우암 송시열이 글을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글씨를 쓴 비문
‘정암조선생적려유허추모비’ 전면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으며 앞면 글씨는 민유중, 뒷면 글씨는 동춘당 송준길이 썼습니다. 비신 앞면에는 조광조의 적려 옛터를 추모하는 글을 크게 새기고, 뒷면에는 그가 능주로 유배된 내력을 기록했습니다. 당대의 이름난 문인과 서예가가 뜻을 모아 비를 세웠다는 사실에서 조광조가 후대 사림에 끼친 영향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
-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30
- 운영 시간
[하절기(3월~10월)] 09:30~17:00
[동절기(11월~2월)] 10:30~16:30
- 문의: 061-379-3501
만연사(화순)
석축 위에 서 있는 만연사의 대웅전
화순읍에서 만연산 자락으로 들어서면 푸르른 숲속에 포근히 자리 잡은 사찰, '만연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고려 희종 때인 1208년 만연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곳입니다. 산세에 아늑하게 둘러싸인 전각과 단정한 잔디 마당이 어우러져 밝고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붉은 가사를 두르고 마당을 거니는 스님
만연사의 창건 배경에는 만연선사의 꿈과 관련된 특별한 설화가 전해집니다.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행을 마치고 송광사로 돌아가던 선사가 현재의 나한전 골짜기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십육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사방에 흰 눈이 가득 쌓여 있었으나, 그가 누웠던 자리만 눈이 녹아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선사는 이를 신이하게 여겨 그 자리에 토굴을 짓고 수행에 정진했으며, 이것이 오늘날 만연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정갈한 잔디 마당과 어우러진 만연사 경내
지장보살과 명부 시왕을 모신 화순 만연사의 명부전
만연사는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치며 다수의 전각과 암자를 거느린 대찰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 화재의 피해를 입은 데 이어, 한국전쟁 당시 전각이 모두 불타는 비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경내는 1978년부터 4년에 걸쳐 진행된 중창 불사를 통해 다시 일군 공간입니다. 높은 석축 위에 자리한 대웅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나한전, 범종각, 요사채 등이 넓은 잔디 마당을 차분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잔디 마당 위에 세워진 만연사 범종각
중생의 번뇌를 깨우는 범종과 당목
잔디밭 한쪽에 들어선 범종각은 만연사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립니다. 범종각 내부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순 만연사 동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내의 계절감을 가장 선명하게 전하는 것은 전각 사이를 채운 잔디와 꽃나무들입니다. 여름이면 기와를 얹은 낮은 담장 위로 주황빛 능소화가 줄기를 내리고, 대웅전 앞 배롱나무에는 붉은 꽃과 연등이 어우러집니다. 겨울에는 잎을 떨군 나뭇가지와 연등 위로 흰 눈이 쌓여 여름과는 또 다른 고즈넉한 운치를 더합니다.
흙돌담 위로 주황빛 능소화가 피어난 담장
배롱나무에 달린 연등, 전각이 어우러진 만연사 경내 전경
만연사(화순)
-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화순읍 진각로 367
- 문의: 061-374-2112
오지호기념관
웅장한 지붕 선과 아치 기둥이 기품을 더하는 오지호기념관
여정의 마지막은 화순 동복면에 자리한 오지호기념관입니다. 백색 아치 기둥이 돋보이는 건물 앞에는 소나무와 조각 작품이 어우러지고, 언덕 아래로는 동복면의 마을과 산자락이 펼쳐집니다. 오지호기념관은 한국 근현대 화단에서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받는 오지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고향에 세운 화순군립 기념관입니다. 작품과 유품, 저서, 사진과 연보 자료를 한자리에서 살펴보며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오지호 화백의 맑고 정열적인 유화 작품들
유화 작품들과 조각품이 어우러진 전시실
전시실에 들어서면 풍경화와 정물화 등 여러 유화 작품이 먼저 시선을 끕니다. 항구와 산, 계절의 들녘처럼 익숙한 풍경을 밝고 선명한 색채와 활달한 붓질로 표현한 작품들입니다. 오지호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빛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색을 탐구했으며, 이를 한국의 맑은 햇빛과 자연에 맞는 회화로 풀어냈습니다. 빛을 받은 집과 나무, 물과 산의 표면에 다양한 색을 겹쳐 풍경의 생동감을 살린 점이 특징입니다.
화백이 저술·참여한 미학 서적과 도록들
오지호는 그림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예술관을 글로 정리한 이론가이기도 합니다. 전시 진열장에는 작품집과 도록, 저서와 원고 등 그의 생각을 보여 주는 자료가 놓여 있습니다. 그는 「구상회화 선언」 등의 글을 발표했고, 논문집 『현대회화의 근본문제』를 펴내며 색채와 빛을 회화의 본질로 바라본 자신의 예술관을 밝혔습니다. 작품과 기록을 함께 살펴보면 자연을 향한 감각이 오랜 관찰과 치열한 이론적 고민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옥 건물과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오지호 생가 안뜰
석축 위에 길게 자리한 오지호 생가 사랑채
오지호 생가로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생가는 오지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으로,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한동안 작품 활동을 한 곳이기도 합니다. 낮은 토석담과 나무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넓은 대지를 사이에 두고 안채와 사랑채가 마주하며, 안채 뒤편에는 사당이 자리합니다. 기와지붕과 툇마루, 흙벽,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마당은 전시실에서 만난 남도의 빛과 색이 시작된 실제 풍경처럼 다가옵니다.
오지호기념관
-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동복면 독상1길 10
- 운영 시간
[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 매주 일요일~월요일, 공휴일, 1월 1일, 설·추석 연휴 휴관
- 문의: 061-379-3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