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엽기 혹은 진실..(연예인 과거사진) 원문보기 글쓴이: jh0434
디씨인사이드 ㅇㅇ님 께서 작성한 글이신데.
유동닉이시라;; 퍼가는걸 허락받기가 힘들어서 일단 출처를 남기고 퍼옵니다.
문제되면 쪽지좀 주세여 님들아
원문 : http://gall.dcinside.com/hit/9405
(사진 출처,글 퍼온곳 : http://jaykorean.tistory.com/)
번외가 좀 웃긴 내용인데 ㅋㅋㅋ
사진이거 더 올리려면 part 6까지 내야하는데 그건 좀 민폐고;
http://jaykorean.tistory.com/15
여기 있슴니다
새벽 5시
눈을 떴다
중간에 한번도 깨지않고 푹 깊은 잠을 잤다
열이 많이 내렸지만 아직 약간의 미열이 남아있었고 머리고 조금 아팠다
그래도 다행이다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어제 밤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상태였고 이 정도면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마을회관에서 따뜻하게 이불덮고 푹 잤으니 망정이지
바깥에 정자같은데서 노숙이라도 했으면 정말 아파서 드러누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마을에 오게 된걸 또 한번 다행으로 여기며 안도했다
어제 잠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마을의 어르신 한분이 오셔서는
아침 6시에 뭔가 옮길 물건이 있다며 그걸 좀 도와달라고 하셨었다
바로 떠날 수 있게 짐만 정리해두고 일을 도우러 가기 위해 회관을 나섰다
그런데 6시에 온다고 하셨던 어르신이 6시가 넘어도 오시질 않았다
회관 앞에서 어르신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제 마을 입구 앞에서 한번 뵜던 아주머니가 지나가셨다
어르신이 어제 밤에 술을 좀 드셔서 일어나시려면 아직 한참 멀었으니 그냥 바로 출발하라고 하셨다
고민됐다
꼭 아침에 일을 돕고 가고 싶었는데.. 그래야 마음이 편한데.. 어떡하지
그렇다고 너무 늦는 건 안되는데..오늘 꼭 속초까지 가야지 내 생일에 통일전망대에 도착하는데..
한 7시까지는 기다려보겠다고 말씀드리니 괜찮다며 지금 바로 가보라고 하셨다
음....
그냥 가자;;
아주머니께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배낭을 가지러 회관안에 들어갔다
어제 따뜻한 물에 샤워도 했고 위험했던 하루였는데 이렇게 잠을 재워준 마을을 그냥 떠나기가 미안했다
그래서 마을 이장님께 고맙다는 편지를 썼다
몸이 아팠는데 덕분에 푹 자서 나아졌다고, 아무 일도 못 도와드리고 출발하게 되서 죄송하다고 썼다
이장님 댁에 가보니 집이 조용하고 아직 다 주무시는 것 같아 현관문 앞에 편지를 뒀다
쓰레기인줄 알고 안 보고 버리면 어쩌나하는 불안함도 있었지만 .. 설마 그러겠나;;..
이장님 댁을 나가는데 밖에서 이장님 사모님이 오고 계셨다
아.. 안녕하세요 어제 정말 고마웠어요
편지를 주워서 이장님께 전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이제 가보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마을 입구로 가는 길에 잠깐 바다도 보다가
어제 처음으로 나를 재워주라며 이장님께 말해주셨던 슈퍼에 들러봤다
24시간 열려있는 곳이었다
고맙다며 인사를 드렸다
ㅍㅍ : 뭘요~ 바쁜 것 같은데.. 잠깐 앉아서 커피라도 한잔 먹고 가요
ㅇㅇ : 아.. 고맙습니다..
다 마신 뒤 이제 가보겠다고 인사를 드리는데 가면서 먹으라며 카스카드를 한 통 주셨다
헐......
잘 먹겠습니다.. 인사를 드리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 사모님께서 내게 팔을 흔들고 소리치며 다급하게 뛰어오고 계셨다
??
ㅊㅊ : #*!@(@#@( !!! ( 뛰어오고 계시는 중, 멀어서 못 알아들음 )
?????
뭐가 잘못 됐나?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ㅊㅊ : 아휴 .. 아무래도 아침도 안 먹이고 그냥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려서..
보내고 나니까 그게 생각이 나서 얼른 쫓아왔네..
우리집에 가서 아침이라도 좀 먹고 가지..
ㅇㅇ : 아;;;;;;;;
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네;;
어떡하지;;
ㅍㅍ : 이 학생 갈 길이 멀어서 빨리 가봐야할걸요
안그래도 바쁠 것 같아서 가면서 먹으라고 과잘 줬어요
ㅊㅊ : 아 그럼 라면이라도 먹고 가요 아 지갑을 안 가지고 왔네!
급하게 주머니를 뒤적이시더니 1000원짜리 한두 장과 5000원짜리 한 장이 나왔다
ㅊㅊ : 자 여기 이걸로 학생 컵라면 좀 주세요
하며 꺼낸 돈을 전부 수퍼 아주머니께 드렸다
ㅍㅍ : 아니 컵라면 사는데 무슨 돈을 이렇게..
수퍼 아주머니는 5000원짜리를 다시 돌려드렸고
이장님 사모님은 바로 그 5000원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ㅍㅍ : 얼마 안되지만 이거라도 받아 가세요
이런 상황이 꽤 빨리 진행됐다
나는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러웠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모님 뒤를 따라 할머니 한 분이 유모차로 몸을 지탱하며 이쪽으로 걸어오시더니
내게 만 원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
지금은 돈을 안 가지고 왔으니 라면 다 먹으면 저기 근처 약국 바로옆에 있는 자기 집으로 꼭 와달라고 하셨다
헐........
뭐지?
그 할머니는 내가 회관에서 이장님댁으로 가던 도중에 마주쳐서 내가 인사를 드렸던 분이었다
처음 보는 어른한테 깍듯이 인사하길래 누군가 했었는데 사모님한테 이야기를 듣고는 같이 쫓아왔다고 하셨다
어떡함..
아 설명하기 어렵다 ㅡㅡ;
아무도 안 볼때..
밥이랑 반찬도 주심..
어떡하지
할머니 댁에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됐다
돈 안 받아도 되는데...
가서 아무리 안 받겠다고 해도 할머니는 무조건 주려고 하실테고..난 결국 받게되겠지..
할머니 댁에 가려고하니... 내가 그냥 뭐 돈 받으러 가는 , 돈이 필요해서 돈 때문에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싫었고
그렇다고 그냥 할머니 댁에 가지말고 바로 마을을 빠져나가자니..
할머니를 무시하는 행동인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가 괜히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실 것 같기도 하고...
결국엔 할머니 댁에 갔다
결국엔 만원을 받았다
역시 못 받겠다고 해도 기어코 쥐어주셨고 나는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하고 돈을 받아버렸다
이런
내가 어제 이 마을에 왔기 때문에 몸이 나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잠깐이라도 뭔가 일을 꼭 돕고 가야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근데 일을 돕기는 커녕
과자 받고, 아침 먹고, 5000원 받고, 10000원까지 받아버리다니...
더 신세를 졌네..
그냥 떠나는 게 너무 찝찝하고 죄송스러웠지만
생일에 맞춰서 통일전망대에 가고싶은 마음때문에... 바로 마을을 떠났다
아 하루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여기 머물러서 일을 돕고 갈텐데..
고마움 + 미안함 + 아쉬움
그런 것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고
그래서 통일전망대에 도착하면 차를 얻어 타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서 일을 돕기로 결심했다
배낭에 쑤셔넣었더니 박스가 좀 뭉게짐
과자의 유혹
하나만 먹으려고 했는데 졸라 맛있어서 두개먹음
나처럼 걷고있는 사람을 10분간격으로 두 번이나 보게됐다
먼저 혼자서 나와 반대방향으로 내려가고 계신 어떤 아저씨와 도로길에서 마주쳐 인사를 드렸다
음..그런데 표정이 좀 고독한?.. 힘들어 보이는? 그런 분이였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 거리며 인사만 받아주시고는 바로 지나가셨다
두 번째는 아들과 같이 걷고 계신 아저씨였다
인사를 드리니 걸음을 멈추고 내게 말을 걸어주셨고 그자리에서 잠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속초에서 강릉까지 가고 있다고 하셨다
아들이랑 같이 텐트치고 자고...
음... 물어보진 않았지만
원래 여행을 좋아하시는건지.. 아들 교육을 위해 하고있는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들과 같이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는 게 재미있어 보였다 잠잘 때도 영차영차 같이 잠자리 만들면 재밌겠지..
초등학생 같은데 뭐 싫어하거나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어보였음..
뭔가 고민이 있는지 힘들어 보였음..
사진 보니까 기억난 건데 아저씨 짐이 꽤 무거워 보였음 텐트까지 다 짊어지시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아들도, 아저씨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겠지
무엇이든지 누군가 함께하는 건 좋은거임
지나고나서 같이 추억할 사람이 있다는게
이 옥수수를 어떻게 얻게 됐더라... 가물가물..
이렇게 사진만 찍어두고 나중에 확인해보면 어디서 찍었는지, 왜 찍었는지, 무슨 기억이 담겨 있는지 다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이 메모를 대신해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곤 가끔 사진만 찍어놓고 메모는 안했는데..
역시 지나고 나면 다 잊어버린다 ㅡㅡ;;
메모를 해야함..어떤 건 메모 해놨는데도 기억안남.. 메모 봐도 뭔말인지 모름..
그 당시에는 사진도 안찍고 메모도 안해도 1분 1초까지 다 생생하게 기억날 듯 싶더니..ㅠㅠ
도로길에 있는 옥수수 직판장을 지나가다 받은 것이다
내가 길을 물었거나 아주머니가 걷고있는 나를 불러 세우셨을 것이다
이거 좀 가져가라면서 옥수수를 비닐에 싸주시는 모습은 기억이 나는데..
내가 대뜸 옥수수 좀 주세요!! 한 건 아님
그렇게 얻은 건 따로 있음
물에 비친 모습이 왠지 찍고 싶었음
옥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
흐림
흐린 날씨에 햇빛이 안 들어서 별로 덥지도 않았다
양양까지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비가 올법도 했는데..
딱 걷기 좋은 적당히 흐린 이 날씨조차 내가 생일에 통일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았다
1시 쯤에 양양읍에 도착했고
동해해서 휴일이라 못 부쳤던 편지를 부치기위해 우체국을 찾아갔다
편지 부치고.. 우체국 컴퓨터로 날씨를 찾아보니 내일 비가 온다고 했다
비가 안와야 맞춰서 갈 수 있는데.. 제발 비오지마라
아껴 먹으려고 했는데.. 배도 고프고 너무 맛있어서 ㅠㅠ
양양버스터미널에서 다 먹음
이거 먹을때도 생각났다
아..마을에서 먹은 라면이며.. 받은 카스타드며.. 돈이며..
이게 없었으면 난 지금 어떤 개고생을 하고 있을까
정말 내가 운이 좋은 건가
뭔가 자꾸 타이밍 좋게 이런 일이 생긴다
마을에서 아침을 안 먹게 됐으면 난 오늘 아침을 먹을 수는 있었을까?
딱 그 시간에 사모님을 뵙게됐고 또 다시 쫓아오기까지 하다니..
할머니는 또 어떻게 오셔서..
돈.. 그러고보니까 이 돈이 아니었으면 난 이제 쓸돈도 얼마 안 남았다
6660원
그러네.. 돈 없어서 먹을거나 잠잘거 때문에 시간 쓰다보면 걷는 시간이 줄어서 못 갈지도 모르는데..돈이 생겨서 든든해졌다..
그것도 15000원.. 이 정도면 중간에 돈 안벌어도 통일전망대 갈 때까지 쓸 수 있겠다..
뭔가 신기하다 진짜
타이밍이..
수퍼에서 라면하나 사고 속초쪽으로 ㄱㄱㄱ
속초로 가기 전에 사진 한방 찍고 가려고 했는데..
처음 내 자리에서 사진 찍으려니까 이 송이상?;의 뒷모습밖에 안 보였다
정면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저 쯤에 가면 정면이 보이겠다 하고 횡단보도 건너서 다시 송이상을 보니깐 엥 이번엔 옆모습
잘못 온듯 다시 길 건너서 다른 방향으로 얼만큼 이동한 다음 사진 찍으려고 보니까 어 이게 또 뒷모습
???????????????
이상하다 정면이 보일 것 같았는데... 역시 난 눈짐작이 잘 못한다 내가 너무 멀리 이동했나보네
조금만 움직여보자 그럼 정면이 보이겠지 하고 다시 이동하려다가 송이상을 가만히 쳐다봤는데
송이상이 조금씩 돌아가고 있었음....... 븅신
돌아가는 건줄 몰랐음..ㅋㅋ
멍청한 게... 그 전까진 '저까지 가서 찍으면 되겠네' 라는 송이상 제대로 한번 거들떠보지도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갔음..ㅠㅠ
제자리에 가만히 기다리다가 정면 모습 나올때 찍었음
시바
아침후론 먹은게 옥수수랑 카스타드밖에 없어서 배가 고팠다
이 전부터 도로 길가에 천막을 쳐두고 옥수수과 감자떡같은 걸 팔고있는 곳이 많았었는데
내가 막
저기 옥수수 하나만 주세요!!
감자떡 좀 주세요!!
이런식으로 들이대보고는 싶었는데 막상 해보려니 용기가 안 났다
그래서 계속 상상만하다 지나쳐오기만 했는데 드디어 해보게 됐다
ㅇㅇ : 저기요! 안녕하세요! 감자떡이 먹고 싶어서 그런데 감자떡 3~4개만 그냥 좀 주실 수 있어요!?
재미있게 보일려고 웃으면서 말을 시작했는데.. 말이 나오니까 이어나가기가 점점 어려워짐....
아마 내 표정이 뭐 웃는것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일그러진 표정이었을거임..
근데 줌;;;; 앉아서 먹고 가라면서 감자떡 한 팩이랑 직접 만든 식혜도 줌;;;;;
막상 앉아서 먹으면 민망;; 떠날 때는 더 민망;;
그래서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없을까요 물어봐도 다 할거없고 괜찮다며 가보라고 함..
앉아서 쉬다가 그냥 뻘샷한장 찍어보려고 셔터 눌렀는데 그 순간 자전거 탄 사람이 지나감
양양에서 속초는 17km밖에 되지 않아서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전에 양양까지 걸었던 거리가 꽤 되는 터라 그런지 또 힘들어졌다;;
아직 몸에 열도 좀 있고 어지럽고 발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금방 배고파지고..
그리고 지금까지 몰랐었는데 내가 도로를 걸으면서 자동차 매연을 많이 마시고 있었다
차가 그렇게 많이 지나갔었는데 이제서야 그걸 느꼈다 ㅡㅡ;;
물티슈가 한장 생겨서 그걸로 얼굴한번 닦아보니까 까맣게 묻어나옴..때 아님..
배고파서 뽀글이
이른 저녁
결국엔 와버렸다
땅바라기
시내에도 옥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
꿀떡이 정말 너무 먹고 싶었다 1000원 투자
근데...꽤 오래된건지 너무 딱딱하고..먹어보니까 꿀떡 자체도 내가 원하던 꿀떡이 아니었음.. 이 꿀떡이 아닌데..ㅠㅠ
이마트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으악 안되는데
얼른 이마트 근처에 있는 찜질방으로 ㄱㄱ
어떤 사람이 여기 만원이라고 해서 아예 안 가볼까도 했지만..
들어가보니까 6000~7000원이었고..꼭 찜질 안해도 5000원짜리 사우나만 하면 잠도 잘 수 있었다
근데 그걸 또 1000원이라도 깍아보자고 ㅡㅡ;;
ㅇㅇ : 저기.. 1000원만 깍아줄 수 있어요?
카운터에 혼자 있던 여직원한테 한번 물어봤더니
ㅍㅍ: 네 그렇게 해드릴게요^^
너무 쉽게 대답해줬음ㅡㅡ;;; ..그래서 난 바로 따봉을 치켜듬..
ㅇㅇ : 최고에요 진짜 乃
찜질방만 들어오면 슬슬 힘이 빠지기 시작해서
샤워까지 하고나면 아예 축 처짐
아직 머리도 아프고 열도 조금 있었다
그래서 바로 잠
일기 gg
2.
참 어제 찜질방 들어오기전에 아침으로 먹을 1000원짜리 빵 하나 사왔었음
이거
2009년 8월 18일
7시 기상
씻고 빵 먹으면서 짐 정리
뭐하는 건물인지.. 신기하게 잘 만들었네
처음으로 표지판에 통일전망대가 나옴
비 올 거라고 했었는데 밖에 나가보니 해도 떠 있고 꽤 맑은 날씨였다
굿 날씨도 나를 돕는다 ㄱㄱ
근데 비 안오는 대신에 덥다ㅠㅠ
파이라면이 아직 2개 남아있었지만 먹기가 너무 불안했다
먹고 또 아플까봐..
그래서 아직은 몸 상태가 안 좋으니까 나중에 몸 상태 괜찮아지고 정말 정말 배고픈데 먹을 게 없으면 그때 먹기로 하고
슈퍼에 들러서 오늘 하루 먹을 라면 3개를 구입했다
지금까지는 대게 안성탕면을 샀다 그럼 2000원이면 3개를 살 수 있었다
근데 이번에는 다른 맛을 먹어보자고.. 일단 가격 싼 김치라면 하나 고르고..
진라면 하나 고르고..
특별하게 맛있는 걸 한번 먹어보자고 사리곰탕도 하나 집었다
그래서 그런지 계산대에 나온 금액이 2000원을 넘은 2150 원이었다
내가 라면을 사기 위해 손에 쥐고있던 돈은 2050원이었다 잔돈 100원이 없었다
순간 어....100원만 더 깍으면 1000원짜리 안 꺼내도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100원이라는 너무 작은 돈까지 깍아보려는 내갸 너무 쪼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때 나는 기분이 좀 뚱.... 좀 우울.... 한 상태여서 돈 깍아달라는 말을 하고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1000원짜리를 한장 더 꺼내서 3050원을 내밀었고 거스름돈으로 900원을 받았다
슈퍼를 나오고 얼만큼 걸어가고 있는데
100원 깍아달라고 말 안 해본 게 후회됐다
아...100원 깍아달라고 해볼 걸
그럼 1000원짜리 안 깨도 됐잖아
아아아아아 이미 산 건데 이제와서 다시 돌아가가지고 돈 깍아달라는 건 웃기잖아
아.....답답한 놈.... 100원이든 얼마든 말은 한번 해봐야 될거 아닌가.. 100원도 못 깍네..
기분 좀 뚱한 것 가지고 말도 못하고..
이런 정신상태로 어떻게 돈없이 다녀보겠다고... 아유 답답한 새끼..
손에 남아있는 동전 9개를 보니 1000원짜리를 깼다는 사실에 막 서글픈데다가 알수없는 억울함까지 드는 것이었다
흑흑 내 1000원짜리
빵 먹었지만 너무 부족함
아침
역시 다른 라면 사길 잘했다
먹던 거만 먹다가 다른 맛 먹으니까 더 맛있음
개미 한 마리가 자기보다 더 큰 몸집의 벌레를 들고 움직이고 있었다
힘 세다.. 엄청 빨리 움직임..
근데 무슨 이유인지 벌레 잡고 빙글빙글빙글 돌면서 움직임
아침으로 빵이랑 라면까지 먹었지만 배가 안 불렀다
왜 자꾸 배가 고프지.. 아 배고프다..
배고프다고 투덜대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길에 쿠크다스 과자 봉지가 떨어져 있었다
아씨 과자 먹고 싶다..
괜히 짜증이 나서 과자 봉지를 발로 툭 찼다
엇
ㅡㅡ;;
발에 차이는 느낌이 빈 봉지가 아니었다
헐........
든 것 같다...
사진 찍자..
든 것 같다..
주웠다
들어 있었다
고민됐다
먹을까말까
ㅅㅂ....이제 길에서 주워 먹으려고 하다니...
일단 한번 뜯어나 보자..
오... 완전 가루도 아니네..
약간 큰 덩어리 2개 + 나머지 부스러기
오..........
근데 상한거 아닐까..
먹을까말까먹을까말까먹을까말까
아 길에 떨어진 걸 왜 주워먹음?
왜 포장된 거 잖아 그럼 새 거잖아 새 거 안에 든 건 안 더럽잖아
먹을까말까먹을까말까먹을까말까
큰 덩어리 한 조각을 입에 넣어봤다
ㅅㅂ 졸라 맛있네.........
바로 손에 다 털어서 순식간에 먹어버림
왕 맛있음 ㅠ.ㅠ
외진 도로길에 왠 쿠크다스가 떨어져 있다니 ㅡㅡ;;
땅그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다른 때보다 빨리 빨리 걸을 수 있었다
아 잘 걸어진다 좋다 어서어서 최대한 오늘 많이 가두자 그러면 내일이 수월해진다~~
빨리 걸어지니까 기분이 좋았다
한 참을 기분 좋게 걸어가고 있었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음?
어? 손수건?
분명 모자랑 같이 쥐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 손엔 모자밖에 없었다
주머니에 넣었나
아닌데
가방에 없는데
분명 같이 쥐고 있었는데
아 병신!!!!!! 떨어뜨렸네!!
답답했다
아!!!!!!
손수건 세 장
출발 전날 저녁
내일은 꼭 출발하고 말겠다며 준비물을 점검해보던 중에 손수건이 빠졌단 걸 알게됐다
손수건 필요할 것 같은데..
늦은 밤이라 손수건을 사러 갈 수도 없었고, 밖에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남는 손수건이 있는지 물어봤다
엄마는 내가 다음날 이렇게 나가게 될 거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날씨가 더워서 아들이 땀이라도 닦으려고 안 찾던 손수건을 찾나보다 하고 얼른 손수건이 있는 곳을 가르쳐줬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엄마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이런 꽃무늬는 절대 사절이었지만..
출발 후 엄마의 고맙고 귀중한 물건으로 여기고 모자에 꽂아 햇볕도 가리고 땀도 닦으며 유용하게 사용해왔다
이 손수건 세 장을 부적처럼 여기고 있었다
손수건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겐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다치거나, 물건을 도둑맞거나, 자다가 나쁜사람이 나타나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은 건 다 이 손수건 때문이다
손수건을 가지고 있는 이상 내가 여행하는 동안은 나는 물론, 엄마, 그리고 나의 모든 가족에게는 그 어떤 나쁜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괜한 걱정 하지말고 나는 내가 하려고 하는 일에만 신경쓰자
나만의 미신이지만 꽤나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손수건 중 한 장이 없어진 것이다
내가 손에 쥐고 가다가 멍청하게 흘려버렸다
아!!!!!!
바로 방향을 바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초조하고 급한 마음에 뛰어보기도 했지만 배낭 무게 때문에 금새 지쳐 다시 걸어가게 되었다
어디서 떨어뜨렸지? 내가 얼마나 왔지?
언제까지 들고 있었더라? 라면 먹을 땐 있었는데..
바람 떄문에 여기저기로 날아다닐텐데..
이상한데로 날아가서 못 찾으면 어떡하지?
아....멀리 날아가서 너무 많이 돌아가야하면 어떡하지..
꼭 찾아야 한다
못 찾으면 앞으로 안 간다
까짓 꺼 내 생일에 안 맞춰 가면 어떻나
근데 찾을 수 있을까..
마음이 복잡했다
갈수록 더 복잡해졌다
아무리 찾아도 손수건을 아예 못 찾으면?
그럼 난 앞으로 한 발짝도 안 갈 건가?
몇 시간? 하루? 며칠은 찾을건가?
손수건이 바람에 날려가서 엄청 높은 나무에 걸려있으면..
다리도 건너왔었는데 다리 밑으로 떨어져서 강물 타고 저 멀리 떠내려가고 있으면..
엄청 가져오기 어렵고 위험하고 위치에 손수건이 있으면..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손수건을 가져올 건가?
아.. 손수건 하나에 너무 쓸데없는 집착을 하는 건 아닌가?
뭐? 부적이라며? 엄마꺼라서 절대 안 잃어버리겠다면서?
실컷 소중하다고 여기다가 막상 구하기 힘들다 싶으면 에이 손수건이 무슨 부적이냐 하고 생각을 바꿔버릴 건가?
얼만큼 찾아보다가 찾진 못하고 계속 시간만 흐르면 아 지겹다 그만하자 하고 관둘건가?
내가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도 언젠가 내게 어려운 상황이 오게 되면 그렇게 변하게 되는 건가?
나는 고작 그 정도 밖에 안되나?
손수건은 엄마의 사랑이고 부적이라 여겼던 내 믿음의 정도는 얼마만큼이지?
내가 엄마를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진실함의 정도는?
손수건?
엄마?
사랑?
믿음?
뭐지?
난 어떡해야되지?
???????????
아
머리 아프다
모르겠다
부디 손수건을 찾을 수 있었으면.. 쉽게 가져올 수 있는 곳에 있었으면..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날 난처하게 만들지마라..
빠른 걸음으로 20~30분 가량 되돌아가고 있는데 저 멀리 내가 걸어왔던 도로 갓길에 손수건으로 보이는 뭔가가 떨어져있었다
손수건 같은데?
손수건이다!
바람에 날아깔까봐 얼른 다가가 덥썩 주웠다
아..찾았다!
휴....찾았다...
진짜 다행이다......
힘이 푹 빠져서 근처에 있던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쉬었다
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떨어뜨렸나 보네.. 다행.......
근데 신기했다
어떻게 손수건이 내가 걸어온 길에 고스란히 떨어져있는거지?
떨어져있는 동안 차도 많이 쌩쌩 지나갔고 바람도 많이 불었는데..
그러면 우산도 뒤집히고 모자도 휙 날아가는데 이 손수건 한 장이 안 날아가고 그대로 있었나??
날아다니다가 떨어진건가? 그럼 더 이상한데... 손수건이 도로 갓길따라 날아다녔나?
이게 어떻게 딱 갓길에 떨어져 있네...
갓길에 얌전히 잘 놓여있는 손수건이 너무 신기하고 고마웠다
손수건을 찾았다!
까짓것 얼마 되돌아오지도 않은 거 다시 걸어가면 되지!!
기분이 좋아졌다
점심
오늘은 스폐셜로 사리곰탕
때문에 1000원짜리를 깨야했지만.......
안 먹다가 오랜만에 먹으니까 진짜 맛있엇다
밥 좀 얻어보려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말을 하고 보니.. 장사가 잘 안되는 식당인 것 같았다
내가 불쌍해 보여서 마지못해 주시는 것 같은..
너무 미안했음..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지나갈까도 싶다가.. 이미 말 걸었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그래서 그냥 받아서 왔다
부디 내가 가고나서 내게 따르는 행운이 저 식당에도 따라주길..그래서 식당 장사가 잘 되길..ㅠ.ㅠ
밥이 있고 없고는 정말 차이가 큼..
먹으려고 하는데 집에 택배 도착했다는 문자가 와서 기분이 좋았음..더더4집..
손수건도 찾고 씨디도 잘 도착하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힘내자ㄱㄱ
어?
어!!
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
??
??????????????
100원이다....
100원을 주웠다...
ㅅㅂ.............뭐지...............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돈 주운 건 처음인데.. 그것도 하필 100원.. 하필 오늘 100원..
아침에 라면 사다가 100원 못 깍은게 정말 그렇게 아쉬웠는데..
하필 오늘 길에서 100원을 줍다니.........
뭐가 딱딱 맞는다.......
처음에 100원 보자마자 바로 덥썩 주워들고 혼자 감탄함
기념을 남기기 위해 사진은 다시 그 자리에 놓고 찍었음
아싸 1000원 됐다 ㅋㅋㅋ
머지 않았다 ㄱㄱㄱㄱㄱㄱㄱㄱ
4시 30분 경 간성읍이란 곳에 도착했다
물이 다 떨어져서 가까이 보이는 주유소에서 물을 받아가기로 했다
근데 이 전에도 가끔 그랬었는데
물 받아야지~ 하고 주유소 근처까지 다가가게 되면
옆 길로 조금도 가고 싶지 않은 귀찮음 때문인지 그냥 다음에 받아야지 하며 그대로 주유소를 지나치곤 했었다
근데 그 이후에 더이상 가까운 주유소가 나오지 않아서 물을 못 얻은 적도 가끔 있었다
이번에도
저 주유소에 가서 물 받아야지 하고 가까이 갔는데
에이 그냥 다음에 받자 하고 주유소를 지나쳐갔다
그런데 주유소를 지나치는 순간 이 뒤에는 또 예전처럼 주유소가 없어서 물을 못 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발길을 돌려 그 주유소 안으로 들어갔다
ㅇㅇ : 저기 실례합니다 마실 물 좀 떠갈 수 있을까요?
주인아주머니 한 분, 직원 한 분이 계셨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있는데 얼음 생수까지 하나 갖다 주셨다
ㅇㅇ : 아... 고맙습니다
ㅍㅍ :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요~
ㅇㅇ : 아.. 네 고맙습니다
커피 한 잔이 너무 맛있었다
감칠맛
ㅇㅇ : 저기.. 커피 한 잔만 더 먹어도 될까요
ㅍㅍ : 그럼 더 마셔도 되지~ 두 잔은 뭐~ 열 잔도 더 마셔도 되지~ ㅎㅎ 왜, 밥 줄까?
난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건 줄 알았다
마음 편히 마시라고 열 잔이란 말에 밥 얘기까지 꺼낸 줄 알았다
아주머니가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내가 어떻게 그리 많이 마시겠나
난 한 잔만 더 마시고 이제 가 볼 생각이었다 마음내키면 두 잔쯤 먹었으려나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지
ㅇㅇ: 아...ㅎㅎ..
난 그냥 웃어 넘기면 되는줄 알고 웃으면서 커피나 뽑으려고했는데
날 쳐다보며 말을 한번 더 하셨다
ㅍㅍ : 밥 줄까?
?????
헐......;
ㅇㅇ : 아......;;
주시면 저야 좋죠;
헐......
뭐지.......
물 얻으러 주유소에 왔는데 밥을 주겠다니...
주유소에서 밥 먹게 될 줄은 몰랐네 ㅡㅡ;;
안 지나치고 들어오길 잘했다 ㅡㅡ;;
나는 진짜 운이 좋은 건가 ㅡㅡ;;
신기하다..
아주머니께서 주유소 안에 있는 탁자에 밥을 차려 주셨다
차려진 음식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음?!
뭐지........
ㅅㅂ;;;;;..........
미역국이다.......................
내일 내 생일인데......
ㅇㅇ : 어......내일 제 생일인데.. 생일 전날 이렇게 미역국을 먹게 되네요..ㅎㅎㅎㅎ
ㅍㅍ : 아^^ 오늘 우리 아들 생일이라서~ㅎㅎ
ㅇㅇ : 아..네.... 신기하네요 ㅎㅎ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ㅡㅡ;;
먹는 내내 신기했다
지나치려다 들어온 주유소 아주머니 아들 생일이 하필 오늘이라니 ㅡㅡ;;
주유소에서 밥 먹게 된 것도 신기한데 하필 미역국이라니 ㅡㅡ;;
이렇게 집을 나와서 생일 바로 전날 저녁을 미역국으로 먹게 되다니 ㅡㅡ;;
밥 다 먹고 천천히 쉬어가라고 해서 의자에 앉아 같이 얘기도 하며 쉬었다
아주머니가 하신 말 중에 이런 게 있었다
ㅍㅍ : 나는 이렇게 걸어다니는 사람 이해돼
그 말이 고마웠다
아주머니 성격이 밝고 시원시원하신 것 같았다
이제 앞으로 어디 갈 거냐는 물음에 내일 통일전망대에 갔다가 다시 이 근처까지 돌아와서 차를 얻어타고 지나왔던 마을에 가볼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럼 통일전망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길에 여기 들려서 또 밥 한끼 먹고 가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와 ㅡㅡ;;
게다가 얼떨결에 빨래까지 하게 됐다
ㅍㅍ : 빨래는? 빨래 할 거 있으면 여기서 하면 되겠네~
ㅇㅇ : 아... 지금 빨아서 널면 오늘 안 마를 것 같아서..
ㅍㅍ : 오늘 여기 널어놓고 갔다가 다시 오는 길에 찾아가면 되지~
헐 ㅡㅡ;;;
안 그래도 갈아입을 옷 이제 한벌밖에 안 남았었는데 ㅡㅡ;;
주유소에 있는 대야랑 빨래판으로 밀린 빨래를 싹 다 해치웠다
그렇게 주유소에서 2시간을 넘게 있었다
밥 먹고 얘기하고 쉬고 빨래하고 얘기하고 그러다보니까 시간이 금방금방 갔다
7시쯤 주유소를 나왔다
떠나기 전엔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여행용 휴지 3개
얼음생수 2병
비옷 2개
신문지 1부
작은 스펀지 방석? 깔개? 1개
ㄷㄷ...
밥 많이 먹고...
많이 쉬고 얘기도 하고..
빨래 다 처리하고..
빨래 주유소에 다 널어놓고 와서 배낭까지 가벼워지고..
물건 많이 얻고..
돌아올 때 쉬고갈 수 있는 보험까지 들고.. ㅡㅡ;;
생각지도 못했던 횡재였음..
주유소를 나온지 얼마 안돼 곧 날이 어두워졌다
또 잠잘 생각 하니 막막....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마을에 한번 가봤지만 재워줄 방이 없다며 곤란해 하시는 것 같아 그냥 나왔다
거기 아주머니께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셨는데
시간도 너무 늦었고 분위기가 가족끼리 먹고 있던 분위기여서 내가 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도로길은 밤에 걸으면 위험할 것 같아서 마을 옆으로 나 있는 샛길로 가봤다
도로랑 길이 이어져있는지 확신은 없었지만.. 왠지 이어져 있을것 같아서..
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외진 길이어서 무서웠다
옆에서 곰이나 괴한이 나타나서 덮칠 것 같은.....
그래서 무기를 꺼내들고 여기저기 살펴보며 걸어갔음..
다행히 이어진 길이었다
아무데나 가고 싶은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니 커다란 관공서 같은 건물이 나왔고 그 앞에는 꽤 괜찮은 정자가 있었다
벌레도 많이 없을 것 같고.. 넓고.. 깨끗하고.. 지금까지 이 만한 정자가 잘 없었다
이런 위치에 이런 정자가 있다니!
적절하다!
여기에서 자야겠다
근데 너무 탁 트인 공간이라서 좀 불안했다
물건 사라질까봐...
음.........
주유소에서 얻어온 물건이 다 쓸모가 있었다
배낭을 비닐 비옷으로 감싼 뒤에 빨래줄로 정자 기둥에 묶어버렸다
매듭도 비닐로 다 감싸고..
그럼 누가 배낭 가져가려고 하면 부시럭 부시럭 소리가 나겠지.. 그 소리 듣고 깨야지 ㅋㅋ.. 못 깨면 안습......
바닥이 많이 더러운 건 아니지만.. 신문지를 까니까 한결 더 깨끗한 잠자리가 됐다
그리고 작은 깔개..깔개 엉덩이 쯤에 놓아두니까 옆으로 누울 때 나무바닥에 골반이 닿아도 아프지 않았다
ㅋㅋ 난 오늘 처음부터 여기서 잘 운명이었나...
아주머니가 그걸 알고 챙겨준 것 같은 물건들...ㄷㄷ
희안한 일이 많은 하루였다
내일 통일전망대에 여유있게 다녀올 수 있겠군!
사진 찍고 나서 다시 배낭안에 넣어야햇음....ㅠㅠ
3.
새벽 5시경
소변이 너무 마려워서 깼다가 1시간 가량 잠이 안 들어서 그대로 깨 있었다
그것 빼고는 날도 안 춥도 바람도 안 불어서 잘만 했다
별로 뒤척이지도 않았고 모기도 딱 한 군데 밖에 안 물렸다
소변은 어떻게든 꼭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싶었다
참다가 날 밝으면 어디 건물 내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 가려고 했는데..
참다 참다 못 참을 것 같아서 일어났다
여기저길 찾아봐도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없었다
정자에 짐을 둔 채로 너무 멀리 갈 수는 없고..
점점 오줌은 더 마려워 오고.......
그래서 좀 구석진 풀숲을 찾아 해결...
잠깐 정자를 떠난 사이 물건이 없어진 건 아닐까 또 걱정이 되서 얼른 정자로 돌아감
다행히 없어진 거 없음
당연하지 ㅡㅡ;;
흔적
주유소에서 주신 것들
왠 전투화가;;
날 밝을 때까지 몸 좀 풀어주고..짐 정리하고 갈 준비 ㄱㄱ
씻고 싶었다
옆에 진보에서 봤던 곳과 비슷한 공공체육센터같은 곳이 있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문이 열려있었다
들어가봤다
카운터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윽.. 내가 들어가는 순간부터 왠지 날 경계하는 눈빛이 느껴진다
물어볼까 말까 나갈까 물어볼까
괜히 서성거리고 있으니 직원이 내게 먼저 물어봤다
ㅍㅍ : 저기.. 어떻게 오셨어요??
ㅇㅇ : 아..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 샤워실 있으면 샤워 한번만 할 수 있을까요???
ㅍㅍ : 네???? 아.... 샤워실이요???
여기 샤워실은 없는데...
샤워하고 싶으시면 여기서 나가서 좀 올라가면 공중목욕탕이 있어요 거기 가시면 되요...
내가 이런 질문을 하자 직원은 당황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럼 화장실만 좀 쓰고 가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가고 있던 도중에.....
건물 안내도를 스치면서 봤는데
샤워실이 있었음..ㅠㅠ
있는 샤워실을 없다 했다고 내가 따질 처지가 아니지
난 다만
헐........내가 얼마나 거지같았으면........ㅠㅠ
일부러 이럴려고 나와서 억지로 이러고는 있는데 나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음..
아침을 먹기 위해 뜨거운 물을 받으러 주유소에 갔다
근데 주유소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눈 앞에 정수기는 있었지만.. 말도 없이 맘대로 물 떠 가는 건 마음이 안 내켜서
사람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봤는데 아무래도 사람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라면물을 못 받고 그냥 주유소를 나왔다
외진 길이라서 또 주유소가 나와줄지 걱정이었는데
마침 식당이라도 한 군데 나와줘서 거기에 가봤다
근데 아침이라 사람이 있을까..
실례합니다 문 밖에서 불러보니 아저씨 한 분이 나오셨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 좀 떠갈 수 있을까요
네 담을 통 주시면 제가 떠다 드릴게요
네 잠시만요 하고 뽀글이 세팅을 하고 있으니까
아니.. 주세요 제가 끓여드릴게요
하며 직접 라면을 끓여다 주셨다
반찬 부족하면 말하세요 더 드릴게요
친절한 아저씨였다
아저씨도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 것도 젊을 때 해보는거지.. 나이가 들면 힘들지..
원래는 예전에 스키 선수 생활을 10년 넘게하고.. 대표 생활도 오래 하셨다는데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그만두신 것 같았다
스키 얘기를 하실 때 왠지 젊은 날을 그리워하는? 다쳐서 더이상 스키를 못 하게 된 걸 아쉬워하는? 안타까워하는 것 같아 보이셨다
뭐 그렇다는 말은 안했지만.. 그냥 선수생활을 했었고 다쳤다는 말을 할 때.. 그때 말투랑 표정이..
내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정감있고 친절한 분이셨다
덕분에 생일 아침밥을 든든히 먹었다
내 라면은 나중에 먹으라고 그대로 두셨다
곰의 어떤 모습을 표현한건지.....
10시 좀 넘어서 출입 신고소에 도착했다
여기부터는 민통선이라 걸어서 갈 순 없고 신고 후 차를 타고 가야된다고 하셨다
차가 없으면 다른 사람 차를 얻어타야한다며 그건 안내소에서 알아봐준다고 하셨다
안내원이 내 뒤에 출입신고 하러 오신 분에게 태워줄 수 있는지 물어보더니 그분이 승낙!
그래서 10km를 남기고 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사실 난 걸어가보고 싶었는데..
여기까지 걸어 왔는데.. 여기서 차를 타다니.. 좀 아쉽고 허무하기도 했다
근데 어쩔 수 있나 못 간다는데..ㅠㅠ
오늘 생일이라서 편하게 차도 타게 되는구나 좋지 뭐
혼자 상황을 합리화시킴
쌩~~~~~~~ 15분?
이야 역시 차 빠르네 ㅋㅋ
나는 단지 여기까지 오겠다라는 데 목적이 있었을뿐이지
뭐 어떤 게 보고싶어서 온 건 아니다
도착
무덤덤...
왔구나..
6.25 전시관이라는 곳이 있었다
들어가봤다
뭐.. 전쟁 사진들.. 인터넷에서 본 것도 있고..
영상도 틀어주길래 한번 보고..
전쟁
전쟁은 왜 할까
무얼 위해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 전쟁이란건 수도 없이 많았다
왜 싸울까
얻는 게 있을까?
높은 자리에 있는 인간들의 욕망 때문에?
진정 죽고 죽이는 병사들은 자기들이 왜 싸우는지 알고 있었을까?
전쟁 속에서 사라진 개 죽음은 얼마나 많을까
공을 세워 높은 곳에서 추앙받는 인간도 있다
그냥 먼지같이 사라져 세상에서 까맣게 잊혀진 인간도 있다
사라지는 게 더 많지 않을까
그리고 그건 어떤 차이?
철 없이 티격태격 싸워대는 꼬마 아이들과 머리 속이 아주 꽉 찬 성인들의 싸움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뭐?
??
뭐가 뭔지 모르겠다
개소리..이런 식임...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답도 생각하지 않음..
전시관을 나와 가파픈 도로를 따라 올라가 전망대에 가봤다
나는 통일 전망대라는 곳이 그냥 공원 같은 곳일 줄 알았다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는 공원..저 멀리 뭐 경계선이나 북한이 보이는.. 사람도 얼마 없고..
그래서 통일전망대에 도착하면 어디 한적한 벤치나 하나 찾아서 거기 앉아 바람이나 쐬고 밀린 일기나 쓰면서 쉴 생각이었다
근데 건물이었음
1층.. 통일에 대한 전시관..그냥 지나쳐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망원경 있고 이것저것 음식, 기념품 파는 곳 있고..
통일 전망대에 왔다
사람도 되게 많았다
그냥 관광지구나..
음.................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망원경을 한번 들여다봤다
안개에 가려진 돌산? 돌섬? 산, 나무, 바다, 낙석, 도로, 북한? 해금강? 그건 어디지?
?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내 뇌에 어떤 자극을 주고 있는걸까
북한이란 곳을 바라보며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그냥 다른 사람들이 다 보고 있으니까, 우와 우와 하면서 다 보고 있으니까 나도 한번 그냥 따라해보는 건 아닌가
내 머리 속에는 역사란 게 있나 남한, 북한, 분단, 통일 이런 것들은 있나
내가 이런 것들에 대해 정말 솔직한 관심을 가지고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나
아니 없지
아무 관심도 없었지
그러면서 단지 이 곳에서 이런 것을 보고는 내가 뭔가를 느낀다고 하면 그게 거짓말이겠지
단지 저 멀리있는 물체를 이렇게나 가까이 볼 수 있게 하는 이 망원경이란 물건에 약간의 신기함을 느낄 뿐
도대체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어떤 생각을, 어떤 기분을 갖게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어.....통일...
정말 하나게 되는 게 가능한 걸까?
여길 만든 사람은 정말 진심으로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
하나가 되는 게 뭐지?
아..........몰라.......모르겠다...
아 맨날 모르겠다고만 하고...
휴..
조용히 앉아 쉬고 싶다
통일전망대 밑에 있던 휴게소 같은 곳에 들어가 쉬었다
의자에 앉아 연습장에 지금까지 밀렸던 수입지출 내용을 기록해봤다
음......?
1000원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어디서 생긴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뭘 사고 까먹은 건지... 다 쓴 것 같은데 .. 그날 그날 써놓을 걸
아~~~~~~
이제 그만 돌아가자
다시 차를 얻어타고 출입신고소로 돌아갔다
돈이 만 원 정도 남아 있었다
근데 쓰려니까 뒷날이 걱정되서 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일인데 초코파이라도 한 상자 사 먹을까 고민만하다가
결국 그냥 출입신고소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 받아서 아침에 뜯어놓고 안 먹은 뽀글이나 해 먹었다
한번 얻어먹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의욕이 없었다
기분이 꿀꿀해서..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라면 먹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어제 잤던 정자까지만 돌아가서 엄마한테 편지 쓰고 오늘도 거기서 자야지
돌아가는 길에 걸어다니는 사람을 만났다
두 분
반가웠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셨다 지금 통일전망대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헐 부산.. 멀다..
밥은 쌀을 갖고 다니면서 해먹고 잠은 같이 텐트 치고 잔다고 했다
근데 1/3은 얻어 먹은 것 같다고..
헐..
길 가던 아저씨가 멈춰 서더니 식당으로 데려가 한우 등심을 사주고...
돈까스 집에서 갑자기 불러 세워서는 돈까스를 주고...
헐.... 나도 얻어먹긴 얻어먹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는데.. 그것도 1/3이나..
이상한 거에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ㅡㅡ;;
만난 도로에 서서 잠시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지만 내게는 갑자기;
ㅍㅍ :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하는 것이었다
사진? 내 사진을 왜?
윽 사진.....
사진 찍히는 걸 꺼려하지만....
언젠간 고쳐야 할 것 같고.. 또 이렇게 얘기 잘 하다가 안 찍겠다고 뺄 수도 없고;;
아..ㅎㅎ 네ㅎㅎ~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헐......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긴 했는데..
사진 어떻게 찍어야 됨... 웃고 있어야겠지
포즈? 손은 어디에... 뻘줌한데...
몰라....
찰칵
ㅡㅡ;;
이러고 싶었던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감 ㅡㅡ;;
이 사진은 여기서 만난 분들이 나중에 메일로 보내준 사진이다
서로의 카메라로 번갈아가며 독사진도 찍고 삼각대 써서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나도 이 분들한테 내가 찍은 사진 보내주기로 했는데
집에 도착하고 나니까 좀 오래되서.. 이제 그분들은 잊었을 것 같은데 보내주기가;;;;지금은 신경도 안 쓸 것 같고;;;
그분들은 내게 일찍이 메일로 사진을 보내주셨고 나도 메일이 왔다는 걸 일찍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일부러 열어보지 않다가 집에 도착한 후에 열어봤다
이 사진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뭐고 이 거지는
내가 이 사진 보내주기로 했었는데..
그렇게 잠시 얘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하다가
서로 연락처와 메일 주소를 주고 받고 각자의 가던 길을 걸어갔다
저녁이 다 되갈 때 쯤 어제 잤던 정자 근처에 도착했다
후.. 오늘은 별로 안 걸었지만.. 그래도 힘들다..
일기도 써야하고 편지도 써야지..
아....맛있는 거 먹고 싶다..
돈 쓸까.. 함부로 쓰기 겁나네 ㅠ.ㅠ
그래도 생일인데..왠지 억울하다....
음.....
안될 것 같은데.....
한번 해볼까.....
해보자
오늘만
한 번만
딱 하루만
제대로 한번 들이대보자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미 거지같이 된 거 거지같은 내 생일을 만들어보자
1 슈퍼
ㅇㅇ : 안녕하세요!! 저기 오늘이 제 생일이에요!
제 생일 선물로 과자 하나만 주실 수 있어요??!!ㅋㅋ
밝고 활기차게
재미있게 보이고 싶었다
ㅍㅍ : ??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순간 할머니의 표정은... 멍하고.. 어리둥절.. 복잡한..
뭐지.....? 뭐하는 놈이지? 이건 무슨 상황이지?
어떻게 해야되지? 화내야 하나? 생일이라는데?
그렇게 나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몇 초간 침묵
그러시다가 멍한 표정 그대로
ㅍㅍ : 거기 하나 가져가..
헐.....됐다..
슈퍼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다
눈치껏 집자
문 앞에 있던 칸쵸를 집었다
ㅇㅇ : 이거, 이게 먹고 싶어요!!ㅋㅋ
ㅍㅍ : 그래..ㅎㅎㅎ
ㅇㅇ : 고맙습니다!! 진짜 진짜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 다른 슈퍼
다음 조금 더 큰 슈퍼, 할인마트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기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방 안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이 전과 똑같이 말했다
ㅍㅍ : 뭐??ㅋㅋ
ㅋㅋㅋㅋ... 그래 용기가 가상하네
내 말에 웃으셨다
어떤 과자를 줄지 여기저기 둘러보셨다
ㅍㅍ : 어떤 게 먹고 싶은데 ㅋㅋ
ㅇㅇ : 전 저한테 주고 싶으신 거 먹고 싶어요 ㅋㅋ
ㅍㅍ : ㅋㅋ 그래...그럼 이거랑.. 이것도 한번 먹어보고.. 마실 것도 있어야겠네
라며 이것저것 골라주셨다
카스타드 한 통....하비스트 한 통 ...우유 500..
ㅡㅡ;; 헐.. 이렇게까지 많이 주실 줄은 몰랐는데.. 그것도 다 큰 걸로..
인사 드리고 슈퍼를 나와 한 20m쯤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소리쳐 나를 부르셨다
ㅍㅍ : 이것도 가져가ㅋㅋ
게토레이까지....
왠지 내가 슈퍼 나갈 때 쯤에 아저씨가 아주머니한테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었는데
아무래도 아저씨가 이거 챙겨주라고 한 건가 보다
헐....ㅎㅎ
ㅇㅇ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3 빵집
주인 아주머니가 가게 앞에서 훌라우프를 돌리고 있었다
똑같이 말했다
과자 하나만을 빵 하나만로 바꿔서
ㅍㅍ : ^^;;
안에서 하나 가져가세요^^;;
팥빵을 들고 나왔다
ㅇㅇ : 이거 먹고 싶어요 !! 진짜 고맙습니다!
ㅍㅍ : 네 ^^;;
4 다른 빵집
ㅍㅍ : ^^;;;
어떤 거 좋아하세요?^^;;
ㅇㅇ : 빵은 다 좋아해요!ㅋ 주고 싶은 거 주세요 ㅋㅋ
ㅍㅍ : 코로케 좋아하세요?
ㅇㅇ : 고로케 좋죠!
ㅍㅍ : 그럼.....
ㅇㅇ : 고맙습니다!!
5 분식집
ㅇㅇ : 안녕하세요!! 오늘이 제 생일이에요!ㅋㅋ
혹시 제 생일 선물로 튀김 작은 거 하나만 주실 수 있어요???
ㅍㅍ : ???? ㅎㅎㅎ.. 여기..
바로 먹은 꼬지
특별한 생일상
ㅇㅇ
헐
5군데를 갔는데 5군데 다 주다니;;;;;
내가 운이 좋은 건가;;;;;..
이렇게 쉽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하면서도 계속 계속 놀랐다
첫 번째 슈퍼에서 받고.. 이제 안 되겠지 했는데 두 번째도 받고..
이제 안 되겠지 했는데 또 받고 .. 또.. 또..
맛있다.......ㅠㅠ
얼만큼 먹다가 남은 건 배낭에 넣고..
원래 이 만큼 해보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이렇게 다섯 번을 다 얻게 되버리니까 무슨 자신감 같은 게 생겨버린 것이다
ㅡㅡ;
오늘 아예 되는 데 까지 해볼까....오늘 딱 하루만.....
이제 안될 것 같기도 한데...
ㅅㅂ 해보자
오늘은 내 평생 단 한 번의 생일이다
다시 출발
두 번째는 서너 군데를 들어가봤는데 모두 거절 당했다
내가 해보자고 해놓고 한 건데 막상 그렇게 거절을 당해보니
미안하기도 하고..내가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지 내 자신이 비굴하기도 했다
윽..ㅠ.ㅠ....
그만하자 폐만 끼치는 것 같네
처음 5군데는 내가 정말 운이 너무 좋았을 뿐인거다
그렇게 잘 들어줄 리가 없지
뭐..이 만큼 얻었으면 됐지 이제 그만하자
그리고는 다시 정자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바로 앞에 조각 치킨 집이 하나 보였다
ㅡㅡ;
어.......통닭...
한 번만 더 해보자..
ㅇㅇ : 안녕하세요! 저기 오늘이 제 생일이에요
혹시 제 생일 선물로 치킨 한 조각만 주실 수 있어요???ㅋㅋ
ㅍㅍ : 네???
;;;;;
ㅋㅋㅋ
나 참 ㅋㅋ 어이가 없어서....ㅋㅋ
아니 뭐 무전 여행 하는거에요?
여행하시면 님이 알아서 해야죠~ 돈 없으면 굶던가...
나도 옛날에 무전여행 해봤는데 진짜 힘들었다구요 우린 친구들이랑 막 굶고 밭에서 일하고..
보니까 고생을 아직 덜 하셨네ㅋㅋㅋ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내가 당황
안된다고 하는 건지 된다고 하는 건지..
곤란하면 안 주셔도 되는데..너무 그러진 말아요 ㅠ.ㅠ 라고 말은 하고 싶었으나 그런 말이 안 튀어나옴
아..죄송합니다 하고 지나가야하나.. 난 당황함
근데 말은 저렇게 하면서 행동은 나한테 줄 닭을 튀기는 중
ㅍㅍ : 이거 드시구요 몸 건강히 여행 잘 하세요
ㅇㅇ : ㅋㅋ네 고맙습니다 진짜 맛있게 잘 먹을게요!!
닭다리 획득
정자로 돌아가는 길에 아까 음식을 줬던 가게들을 다시 지나치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손을 흔들기도 했다
고맙습니다 진짜 잘 먹었어요
웃어줘서 고마웠다
정자 도착
헐....진짜 끔찍하게 맛있었음
이거 먹던 도중에 해가 져서 날이 좀 어두워짐
옆에 관공서 같은 건물이 있었는데 건물안으로 어떤 사람이 날 쳐다보면서 들어갔다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치를 봄
어두운 정자에서 혼자 닭다리를 뜯고있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고양이가 사람 몰래 구석에서 혼자 생선 뜯어먹고 있다가 걸리면 이런 기분이 들까 싶었다
얼마나 맛있던지
아.......진짜 맛있다...행복하다.....
먹고 나니까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닭다리 먹다가 손에 기름도 묻고.. 휴지로 닦긴했지만 찝찝하고.. 낮에 흘린 땀 때문에 구질구질하고..
씻고 싶다..아.. 샤워하고 싶다.. 샤워하고 한 벌 남아있는 옷으로 갈아입으면..진짜 딱인데..
정자 옆에 있는 아침에 샤워장 없다고 했던 그 체육센터가 보였다
다시 한번 말해볼까? 말을 잘하면 시켜줄지도 모르잖아
가보자 ㅅㅂ
아침 때와는 다른 직원이 앉아 있었다
카운터로 갔다
일단 똑같이 물어봐야지
ㅇㅇ : 저기 여기 안에 혹시 샤워실 있어요???
ㅍㅍ : 샤워실..네 있어요
있단다 있단다
ㅇㅇ : 저기.. 그럼 혹시요 저 여기서 샤워만 한 번 하고 갈 수 있을까요?? 샤워만요!
ㅍㅍ : 아.........네 그래요^^
내게 탈의실 열쇠를 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
굿굿
신난다
좋다
진짜 상쾌함
잘 먹고 잘 씻고 아 기분 좋다~~
나는 운이 진짜 좋은 듯.... 하필 체육센터가 있어줘서..ㅋㅋ
씻고 옷 갈아입으니까 진짜 대박 상쾌함
기분이 너무 좋아서 카운터 직원에게 열쇠를 주며 쌍따봉을 치켜들었다
ㅇㅇ : ㅋㅋ 고마워요 진짜 덕분에 제 생일이 상쾌하게 마무리 되네요 ㅋㅋㅋㅋㅋ 乃乃
다시 정자로 돌아갔다
아...좋다.........
진짜 잘 풀리네..
음.........
오랜만에 피시방 가고 싶다.. 한 시간만..
피시방에도 갔다
피시방에도 한번????
... 이제 그만하자..
1000원을 쓰기로 했다
인터넷 보고.. 메일 읽고 쓰고.. 핸드폰 카메라 충전하고..
또 다시 정자
이제 하루가 끝났다
엄마한테 편지를 써야지
내 생일에 맞춰 엄마한테 멋진 편지를 써보자고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것도 써보고...
........
휴...
생각만 할 땐 뭔가 거창했었는데 막상 써보려니 말도 이상하고 .. 정리도 안되고.. 답답했다
편지로 쓰기 전에 연습장에 먼저 써봤는데...
1시간 넘게 머리를 굴려봤는데 한 장도 못 채웠다
단어가 생각도 안나고...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나는 왜 이 모양...휴 쓰고 긋고 쓰고 긋고
쓰고보면 이상하고.. 다시 써도 또 이상하고..
뭔가 유치한 것 같고..왠지 어설프고.. 말이 안 되는 것 같고.. 앞 뒤도 안 맞는 것 같고.. 맞춤법도 모르겠고..
아..머리 아프다.. 왜 이렇게 어렵노.....
벌써 12시가 다 돼가네.. 아 피곤하다..
지금 자도 도저히 어떻게 써야될지 머리만 아프고 모르겠다..
오늘 자고 내일 쓸까..
오늘 쓰려고 했는데...
결국엔 그냥 자버렸다
어제처럼 뭐 잠자리를 만든 것도 아니고 정자 가운데서 일기를 쓰다 정리도 제대로 안한 채 그냥 에이 모르겠다 하고 자버렸다
마지막 (사진 없지만 읽기를 추천해요 ㅎㅎ)
이 후의 이야기
다음 날
다 쓰지 못한 편지를 어설프게나마 완성하여 우체국에 가서 집에 편지를 부친다
그리고는 주유소에 들러 밥도 먹고 빨래도 찾고 한 동안 얘기를 나누다가
일을 돕기로 했었던 마을에 히치 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고 돌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하나 다 써면 언제 다 쓸래
생략
마을에서 하루정도 일을 돕고 다시 내가 걸어갔었던 통일전망대 부근까지 차를 얻어 타고 돌아간다
그리고 서울로가는 갈림길에서부터 다시 서울을 향해 걸어간다
진부령, 인제, 춘천을 지나 8월 31일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의 도착하기 전 계획이다
번외편에서도 대충 말함
3~5일 정도 아르바이트를 구하자
지금까지 그리 넉넉하게 못 먹고, 못 쉬고, 오래 걸어다녔으니 며칠간 그 돈으로 먹고 자고 충분히 쉬어주자
그 다음엔 어떡하지?
나도 모르겠다......
이제 그냥.. 기차타고 바로 집으로 돌아갈까?
어떡하지............
서울에서의 방황
서울이다
나는 왜 걷고 있나
걸어서 무엇을 느꼈나
지금 이렇게 걷고 있는 게 의미가 있는건가?
내게 남는 게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면 뭘 할 것인가
나는 좋아하는 게 무엇인가
뭘 해야하나
이제 난 어디로 가야하나
그냥 기차를 타고 바로 돌아갈까....이 만큼 걸었으면 됐지....
아니면 돈 벌어서 정말 자전거를 하나 사 볼까..
걸어가는 건 너무 오래 걸릴 걸.....곧은 동해안으로도 한 달이 걸렸는데 구불구불한 서해안으로는 훨씬 더 많이 걸리겠지......
지금 당장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면 나는 이제 뭘 해야하지....
막막하다.. 어떡하지.. 집에 가면 뭐하지.. 꿈도 없다... 별 다른 목표도 없다....
변한 게 없는 것 같아...그대로네....하고 싶은 게 없다....휴.....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고민
나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서울에 갇혀 방황하게 되었다
음
서울을 목적지로 잡는 게 아니었다
어....
나는 형이 두 명 있다
작은 형, 큰 형
그 당시 작은 형은 파주에, 큰 형은 포항에 있었다
내게는 어떤 뚜렷한 목적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딱히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가고 싶은대로 지도를 보고 대충 길을 정하고 여기까지 가야지 저기까지 가야지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파주가 우리나라의 어디에 있는지, 포항이 어디 있는지 그런것도 모르고 있었고
출발하기 얼마 전에 지도를 보고 형들이 살고있는 파주와 포항이란 지역의 위치를 그제서야 알게 됐다
파주 , 왼쪽 위
포항 , 오른쪽 밑
오....가는 길에 형도 만나고 와야겠다
그래 좋다 오른쪽 위로는 통일전망대 왼쪽 위로는 파주
왼쪽 밑으로는 해남 오른쪽 밑으로는 포항
한 바퀴를 돈다면 이렇게 돌면 되겠네!
형들이 사는 곳 위치가 하필 대각선 양쪽 끝 부분이었다니.....
나는 3년 가까이 형들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가족에게도 어떤.. 벽 같은 걸 쌓고 사는 것 같다 가족에게 무뚝뚝하다
3년 가까이 형들에게 전화를 한 적도 거의 없다 손가락에 꼽힌다
내가 형들의 얼굴을 못 보고 산 게 2년이 넘었다는 것도 이번에 만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이런 애정없고 무관심한 동생이 있다니
이번에 걸어서 형에게 가자 형을 만나자 형을 보고싶어
내가 걸어왔다고 하면 깜짝 놀랄 걸
내가 형이 보고싶어서 이렇게 걸어왔다고 하면 엄청 좋아하지 않을까 ㅋㅋ
키키 잘 된일이다 하필 위치가 파주와 포항이라니
딱 경로도 이쁘게 나오는 것 같다 기분 좋네 하필 형들이 이런 위치에 있다니 ㅋㅋ
한 바퀴를 돌게 되면 난 파주와 포항을 거칠거야
그런데 막상 출발을 하고, 한 달간 걸어 서울에 점점 다 와가니까
한 바퀴를 걸어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 막연하고 무모한 짓이라고 느껴졌다
ㅅㅂ;; 올라오긴 올라왔는데 솔직히 이걸 어떻게 내려가노;;;;;;
형을 만나는 것을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일단 서울에서 좀 쉬자.. 쉬다가 파주로 걸어 올라가든지 하고.. 일단 좀 쉬자..
그래서 서울역을 목적지로 잡았다
그런데 서울에 도착하니까 모든 게 너무 막막하고... 그래서 울적하고..
뭔가.. 허전함.. 허무함.. 회의도 들고.. 앞으로 어떡할지도 모르겠고..
아무 결정도 못 내리고 너무 답답해지기만 한 나는
아...형이나 만나자....
그냥 버스 타고 가지 뭐... 작은 형 보고 기차타고 포항 내려가서 큰 형 봐야겠다.. 그 다음에 차 타고 집에 가야지..
라고 생각하고는 작은 형에게 전화해 지금 서울에 와 있으니까 얼굴이나 한번 보자며 약속을 하게 되었다
결국 너무 답답했던 나는 형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파주로 차를 타고 가게 되버렸다
형을 보고 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만난 후에도 사실 그리 편해지지는 않았다
무언가 허전함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무언가 다른
안타까움?
친근한 것 같으면서도 낯선 형의 모습
.......만난 후에 내가 형을 몇 년동안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됐다
그리고..
어떻게 표현해야하지는 알 수 없다
모르겠다
형을 만난 후에도 별 다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서울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차를 타고 내려가려니 왠지 허무함 찝찝함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
이번에 아니면 내 삶에 다신 이런 기회는 없을텐데
여기서 그만하면 끝일 텐데
여기까지 왔는데
진짜 와버렸는데
그렇다고 정말 한번 해보려니까 갈 길이 너무 막막하다
시간도 너무 많이 걸릴텐데
어떡하지
답답하다
한번 해볼까
갈 수 있을까
걷고 또 걷다 보면........
가볼까......
확실한 결정을 내린 건 아니었지만
조금씩...
걸어서 가보겠다는 마음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참..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 것도.. 정말.. 타이밍이.. 아니 적절함이.. 어찌 그런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된 건지
정말 절묘한 시간에 딱 내게 맞는, 샌들을 신고도 할 수 있는, 내 처지를 이해해주고 일을 시켜주는,
운 좋게 그런 아르바이트를 구해 서울에서 약 35만원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그렇게 잘 구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그냥 바로 집에 왔으려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의 일부는 먹고, 자고, 약간의 서울구경 아니.. 그냥 멍 때리기.. 그냥 바람 쐬기..에 사용하고
남은 돈으로는 내려갈 준비 - 다 써버린 일기장 메모장 세면도구를 새 것으로 바꾸고 추워지는 날씨 때문에 최대한 싼 것으로 바람막이, 침낭도 하나씩 구입했다
준비하는 동안 서울에서 번 돈은 15000원을 남기고 모조리 다 써버렸다
9월 18일 서울역을 출발지로 남쪽 방향으로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집을 향해
내게 진짜 목적지가 있다면 그건 집이지
그래 난 목적지가 있는거야
집
집에 가고 싶어
너무 먼 길이지만..... 걷다보면 나올거야
걷자
마음 급하게 먹지말고
한번 걸어보자
서울에서 내려가기 ( 대구->서울 = 올라가기 , 서울->대구 = 내려가기) 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내 몸이 조금씩 약해지고 아파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이게 다 먹는 걸 충분하게 못 먹고 다녀서 그런 거라 생각했고
당분간은 좀 제대로 먹고 다니자는 취지에 한번에 큰 돈을 벌어 보기로 했다
오산을 지나갈 때 용역소에 가서 공장일을 하고 일당으로 6만원을 벌었다
그 날 나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영양이자 최고의 보약인 고기를 섭취하기 위해
만원짜리 고기뷔페에 가서 2시간동안 쉬지 않고 처묵처묵
눈치가 좀 보이기도 했지만.. 먹고 살아야하니까 무시하고 처묵처묵
그렇게 번 돈 때문에
오산에서부터는 지나가면서 잠깐동안 돈을 벌어보려는 1000원 벌기와, 라면과 같이 먹을 밥을 얻는 일은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고기뷔페에 갔다가 남은 돈으로 대개는 라면을 뽀글이를 먹었고 가끔씩은 식당에서 밥을 사 먹기도 했다
서울에서 천안, 대전을 거쳐, 곧바로 대구로 걸어 내려간다면 추석 전에도 도착할 수 있었을테지만
이왕 걸어서 내려가게 된 거
어디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천안에서 방향을 틀어 아산, 예산을 거쳐 보령으로 갔다
추석이 다가올 때 즈음
명절인데도 집에 못 가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어 집에 내 나름대로의 선물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걸어가던 길에 있던 과일농장에 들어가 품삯으로 돈 대신 집에 보낼 과일을 받는 조건으로 과일농장에서 일을 하게 됐다
마침 농장에서는 일이 한창일 때라 안 그래도 사람이 필요했다며 내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일하는 것보다 오히려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것이 더 힘들었기 때문에 일하는 것을 휴식으로 생각했고
게다가 농장에 있는 동안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내게는 일 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이득이었다
약속대로 나는 집에 과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농장에서의 4일이 지난 뒤 다시 남쪽을 향해 걸어간다
농장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는 내가 농장을 떠날 때
혹시 모를 일이니 적은 돈이지만 가지고 가라며 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내 주머니에 넣어주셨고
나는 돈을 받는 행동이 오직 과일만을 받겠다고 말했던 내 자신의 약속을 어기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불편한 마음에 돈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가 농장을 떠난지 5일이 되는 날 오산에서 벌었던 6만원이 모두 바닥났고
그제서야 과일 농장에서 받은 돈을 꺼내보게 되었다
나는 용돈으로 쓰게끔 한 2~3만원 넣어줬겟지 생각했었는데 봉투 안에는 10만 5천원이라는 큰 돈이 들어있었다
이 돈 덕분에 나는 또 한 동안 돈 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보령을 지나 군산,변산반도,고창,광주을 지나 목포로 향했다
광주에서 나주를 거쳐 목포로 가고 있던 도중에
길가에서 벼 가마니를 트럭에 싣고있는 모습을 보게되었고
나는 단지, 그 날 목표했었던 거리를 거의 다 온 상태였기 때문에 시간이 남는다고 판단되어
순전히 그냥 잠깐 일을 도와보겠다는 생각만으로 벼 가마니 싣는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러다가 거기서 얼떨결에 밥도 먹고 잠까지 자버렸고 어쩌다 보니 일손이 부족한 정미소에서 이틀간 일을 돕게 되었다
떠날 때 정미소 아저씨는 내게 5만원을 챙겨주셨다
내려가기는 올라가기보다 더 단조로운 시간이었다
올라가기를 할 때는 하루 먹고 하루 자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지나가면서 소액으로 돈 벌기, 밥 얻기, 마을 찾아보기 같은 것 때문에 그나마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내려가기를 할 때는 내게 15만원이라는 큰 돈이 생겼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것들도 하지 않고 단지 걷기만 했다
밥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뽀글이과 최대한 저렴한 돈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해결했고
잠자는 건 아산에서의 찜질방을 마지막으로 찜질방, 마을은 더 이상 가지 않고 주변의 정자나 빈 건물 따위를 찾아 서울에서 구입한 침낭을 덮고 잤다
본격적인 단순히 걷기
걸어가다가 쉬고
걸어가다가 멈춰 라면이나 밥을 사 먹고
걸어가다가 어두워지면 잘 곳을 찾아 노숙을 하고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걷고
정말 나는 그냥 걷기만 했다
집에서 출발 당시, 그리고 서울까지 올라가기를 할 때까지도
나는 그래도 내가 하는 이 걷기가 여행이란 것 중의 하나는 생각을 조금은 가졌었지만
내려가기를 할 때는 더 이상 내 걷기가 여행이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거의 지우게 됐다
나는 그냥 걷기만 할 뿐이니까
이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했다
사실 그런 회의는 내가 출발하는 순간부터 시작해 항상 내 뒤를 따라오던 것이었다
나는 왜 걸을까
걸어서 어떤 것이 남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 걸음으로써 느끼고 깨닫는 게 있을까
집에 돌아가면 내게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이런 회의은 내가 걸으면서 머리를 굴리는 시간, 하루 10시간 이상을 걸으며 그 사이에 드는 내 머리속의 이런 저런 생각,잡념,기억,물음,고민 같은 것들 중
항상 빠지지 않고 포함되어 있던 것이었다
걷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반응
ㅍㅍ : 무슨 계기로 그렇게 걸어다니고 계신거에요?
ㅍㅍ : 그렇게 걸어다니면 어떤 의미가 있어요?
ㅍㅍ : 어떤 걸 깨달았어요?
ㅍㅍ : 무엇을 얻을 수 있어요?
ㅍㅍ : 느낀 점이 뭐에요?
이런 질문에 나는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거기다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먼 거리를 걸을 수록
ㅍㅍ : 그냥 무식하게 걸어다니기만 하면 그게 뭐냐
ㅍㅍ : 왔으면 뭐라도 보고 가야지
ㅍㅍ : 그저....단순하게 걸어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지 않나....
ㅍㅍ : 그렇게 걷지만 말고...
이러한 말을 듣는 때가 점점 잦아졌고 그에 따라 내 회의도 조금씩 더 커져갔다
하지만 내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걷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나온 거
이미 여기까지 와버렸다고
해보겠다고 나와서 시작한 거 내가 마음 먹었던대로 꼭 마무리 짓고 싶다
걷다보면 나오게 될 우리집을 보고 싶다
난 걸어갈꺼야
목포를 거쳐, 해남, 해남 땅끝에 도착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 - 내가 가진 침낭은 여름용이라 갈수록 침낭 하나로 밤을 견디는 것이 힘들어졌다
조금씩 아파오고 약해지는 몸
너무 길어지는 기간
- 집에서 출발 전, 언젠가 한 바퀴를 걸어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질 때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데....
한 달이 ....아니 한 달은 무슨, 두 달, 세 달이 걸릴 지도 모른다..
그래도.... 해보고 싶다...두 달이 걸리든 세 달이 걸리든...난 꼭 할거야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서도 정말로 할 지 안할 지는 모르는 .. 막연한 다짐
근데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한 건... 이건.....그냥 .......그.....
초등학생 때 방학시작하자마자 숙제부터 다 끝내고 놀겠다는..
그런 .. 그럴듯하게 다짐만 해보는 엉터리 다짐이었다
그땐 정말 내가 출발이라도 할 수는 있을지 확신도 못했었다
그러다가 막상 나오긴 나왔지만 진짜 이렇게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넘고.. 정말 세 달째가 될 때까지 이렇게 걷고 있을 줄은 몰랐다
네 달까지는 끌고 싶지 않았다
막연한 다짐을 했을 때도 네 달이란 건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 이번 달, 10월까지는 끝내자
지도를 봤다
적당히 경로를 정했다
갈 수 있을 것 같다
정확히 10월 31일
31일에는 집에 도착하자
무슨 말인지 나도 모르겠다;
해남에서부터 밑줄 긋기를 시작했다
해남에서 부산으로
이 길에
안 그래도 점점 잦아지는 사람들의 지적과 내 스스로의 회의도 커져가고 있던 도중
나로서는 너무 우울한 하루가 찾아왔다
가지고 있던 돈이 조금씩 줄어들어 슬슬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오랜만에 다시 한번 라면과 같이 먹을 밥을 얻어보기로 했다
내가 들어가 본 곳에서는 나를 반갑에 맞아주었고 내게 맨밥이 아닌, 밥과 반찬,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해줬다
ㅍㅍ : 여기서 드시고 가세요! 우와...뭐 걸어서 전국일주 하시나 봐요!
전국일주..
나는 나의 애매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서
ㅇㅇ : 뭐 그런 셈이에요ㅎㅎ
라고 단지 쉬운 말로 대답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ㅍㅍ : 우와.. 두 달이 넘으셨으면.. 정말 안 가본 데가 없겠군요
그럼 전국 유명한 곳은 다 보고 오셨겠군요!
나는 가본 곳이 없었다
본 것도 없었다
유명한 곳? 알지도 못한다
내게 아주 기대하고 있는 듯한 사람들의 표정에
나는 자신이 없어졌고 밝았던 목소리는 조금씩 가라앉았다
어디를 걸어왔냐는 질문에 어느 지역이라고 대답을 하면..
ㅍㅍ : 거기는 oo가 유명하죠 그걸 보고 오셨겠군요
오... 거기가서는 xx에 다녀오셨겠군요
아.. 거기라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걷기만 했으니....
ㅍㅍ : ?? 안 가보셨어요? 유명한 데는 보고 와야지.. 그게 전국일주지..
에이 이게 뭐야?
점점 나의 실체를 알고 실망하는 분위기
내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어디로 숨고 싶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멍청하게 느껴졌다
이 날은 정말 외로웠다
그 곳을 나왔을 때는 밖은 이미 한참 어두워져있었고
나는 기력이 다 떨어지고 의욕조차 사라져버린,
그저 힘 없고 우울하기만한 상태가 되어 근처에 있던 비닐하우스의 문을 열어 몰래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냥 누워버렸다
잠을 자려고 누운 것이 아니었다
우울하고 기운이 없어서 더 이상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나는 왜 이럴까....
왜 나는 뭘 해도 이렇게 병신같은걸까
왜 하필 나는 이런 쓸데없는 게 하고 싶었던 걸까
왜 내가 하고 싶다고 느낀 건 그렇게 쓸데없는 짓일까
후.........
외롭다
정말 낯짝이 뜨거웠다....
내가 나가고 나서 그 사람들 사이에선 내 이야기가 수근수근 오고갔겠지?
방금 그 사람 뭐야? 저게 뭐하는 짓이지? 저렇게 쓸데없이 걸어다니는 건 뭐야 그냥 시간 낭비지.....
나는 또 2달이나 넘게 여행했다길래 뭐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네
이런 말들을 하고 있겠지?
그... 무언가 참을 수 없었던 분위기
내가 정말 뭔가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은..
정말 처음에는 내게 큰 기대를 하는 것처럼 말을 걸어오다가
조금씩 날 알아가고 그래서 실망하고 그래서 말이 줄어들고 관심이 사라지고 결국 한 둘씩 자리를 뜨고..
내 자신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고...너무 창피하고...
아.......
우울하다......
그렇게 비닐하우스 안에서 힘 없이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던 나는
얼마 후 잠잘 곳을 찾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고
꽤나 추운 날씨, 다음 날 비가 올거라던 일기예보, 고단한 몸과 우울한 기분
그런 것들 때문에 나는 좀 더 나은 잠자리를 갖고 싶었다
가능하면 실외에서의 노숙이 아닌 , 비와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는 실내에서 잠을 자기 위해
시골길이라 몇 없던 건물, 그 중에서도 홀로 불이 켜져있던 한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혼자 남아 이제 막 퇴근하기 위해 마지막 업무를 끝내고 있던 아저씨 .. 그냥 아저씨라고 하겠다
여건상 잠을 재워주지는 못 했지만
무슨 일이에요 들어오세요 일단 안에서 좀 쉬면서 얘기하죠 라며 밤 늦게 찾아온 낯선 나를 전혀 경계하지 않고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뜻밖의 반응
잘 곳을 찾는 다는 말에 허락도, 거절도 아닌
내가 그런 부탁은 하지도 않았는데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는 예상치 못한 제의에
속으로는 조금 당황했지만 자연스럽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내 기분
특히 내가 약하거나 우울해하거나 힘들어하는
좋지 않은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너무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라도 최대한 그런 기색을 조금이라도 드러내 보이지 않기 위해
대게는 웃음, 헛소리 따위로 지나치게 밝게 행동하는 것이 아주 익숙하게 몸에 배여있다
이 날 역시
비록 기분은 좋지 않았었지만
잘 곳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해도 나는 밝게만 보이고자 했었다
이 날은 내 기분이 좀 심하게 안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아저씨의 분위기
왠지 내가 지금껏 지나쳐 왔던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진지함 친근함 따스함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이끌려가듯 나도 모르게 힘들어하는 내 속내를 아저씨에게 토해내버리고 말았다
ㅍㅍ : 참..... 멋진 분이군요..
혹시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 보셨는지..
음....제 생각에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을 하든..
일단은.. 처음 마음먹었던 것.. 하고자했던 것.. 그러니까 지금 그 분에게는 걷는 것이죠
두 다리를 움직여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
지금은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 심장을 다리에 맡기고.. 오직 앞만 보고 꿋꿋히 걷는 것만을..
일단은 처음 목표로 했던 것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그런 건 나중에 가도 되는 겁니다...
젊을 때 무언가 하고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걸 실천하는 것.. 그런 사람 많지 않습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나는 왜 이런 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다
다른 얘기도 해주셨는데 그 말은 무슨말인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고마웠다
이 말이 아니었으면 그 무엇도 내게 힘을 주지 못했을 것 같은
그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을 것 같은
내가 왜 여기 오게 된거지
하필 이런 날에 이런 기분에 이런 사람을 만나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니
나는 정말 정말 운이 너무 좋은건가
여기 와서 참 다행이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그 당시로서는 내게 완벽한 위로였고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맙고 신기했다
이 순간에 꼭 내게 맞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비록 밖에서 노숙을 하긴 했지만 우울했던 기분이 훨씬 나아진 상태로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그 아저씨의 말을 듣고 좀 괜찮아진다 싶더니..
전 날의 우울함이 너무 컸던 탓인지 여전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걸어가다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
내가 나온지 며칠째다, 어디서 왔다, 어디를 거쳐왔다
이런 대답 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혹시라도 그런 질문이 나올까봐 아예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하게 됐다
그래서 왠만하면 아.. 그냥 나온지 좀 됐어요ㅎㅎ 라고만 말하고 대충 넘어가버렸다
계속 걸었다
진주에서 큰 형에게 29일에 포항에 찾아가겠다는 전화를 걸었다
걸어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때까지도 나는 가족에게 걸어다니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파주에서 만나고 왔던 작은 형만 알고 있었다
실수?착각?
거리 계산 잘못
거리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가지고 있던 전국지도를 보고 대충 눈 짐작으로 판단해버렸다
실제로 걸어보니 부산까지의 거리가 내가 생각했던 거리가 아니였다
너무 멀었다
29일까지 포항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29일은 둘째치고
더 이상 못 갈 것 같았다
포항은 무슨
부산도 멀다....
아니 부산은 무슨......
마산도 힘들다..
못 가겠다..
조금씩 몸에 이상이 느껴지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걱정됐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순 없다
가겠다
또 걸었다
일이 더 꼬여버렸다
창원에서 김해를 통해 부산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창원에서 김해로 가는 국도의 입구에 도착해서야 그 길이 자동차전용도로라는 걸 알게 됐다
걸을 수 있는 도로가 아니었다
이런......
하는 수 없이 길을 바꿔 진해쪽으로 돌아서 가야했다
그래서 안 그래도 멀다고 느꼈던 부산까지의 거리가 더 멀어져 버렸다
이젠 아무리 걸어도 29일까지는 포항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안돼
이럴수가
29일에 형을 볼거야 31일에는 집에 갈거라고
갈 수 있을거야
무조건 걸었다
무리를 했다
억지로 부산에 도착했다
최악의 몸 상태
이 전까지 느끼던 고통과는 다른,
몸에 적응이 되고 뭐고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더 이상 걷다가는 몸이 완전히 망가져버릴, 부서져버릴 것 같은 느낌
고통과 함께 찾아오는 극도의 회의
불안함
안돼
너무 무리를 하는 것 같다
더 이상은 못 가겠다
힘들다
뭔데 이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3달이 지났다
3달동안 나는 뭘 한거지
다른 사람에게 3달이란 시간이 주어졌다면...
3달이면 누구는 정말 여행다운 여행을.. 아주 전국 곳곳을 실컷.. 지겹도록 구경하고 다녔겠지..
3달이면 누구는 열심히 일 해가지고 돈이라도 모아서 지금 쯤 돈 몇 백만원은 가지고 있을텐데..
3달이면 누구는 열심히 공부해서 도움 되는 자격증도 땄을 거고 시험 공부라도 제대로 했을 시간인데..
3달이면.. 차라리 놀기라도 실컷 놀았다면 정말 원없이 놀 수 있는 시간일텐데......
그런 3달을.. 나는 걷기만 했어...무식하게 걷기만 했다고....누가 알면 다 손가락질 할 걸..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리고 이제 곧 11월이고...올해가 다 지나갔다....
23살....안 그래도 내겐 감당하기 버거운 나이였는데.......그런 23살이 이렇게 휙 지나가버리고 이젠 한 살 더 먹고 24살이 된다..
군대를 제대하고... 걷기 위해 돈을 벌고..다 걷고나니까 내 23살이 이렇게 저물고 있다..
아.......막막하다....난 아직 무얼 할지 결정도 못했다....난 정말 3달동안 뭘 한거지.....
이러다가 정말 몸 까지 망가진다면...내게 남은 거라곤 아픈 몸 밖에 없게 되는 건 아닌가.....
끔찍하다.......
이럴 수가....
나는 왜 하필 이렇게 걸어보는 게 하고 싶었던 거지....
왜 나는 이렇게 미련하고 멍청한 걸까....
한심한 새끼.....
이젠 정말 못 가겠다...이제 돈도 없다...
아.. 여기까지 왔는데..
29일에는 형도 만나기로 했는데.....
형 만나고 이틀만 더 가면 집인데....
휴.....
아............
어떡하지.....
가야지...
그래도 갈래....
걸어갈래..........
29일까지 포항에 걸어가서 형을 만나야 돼
비상금
비상금을 쓰자
이거 5만원 집까지 남겨가봤자 어디에 쓸래
쓰자
먹자
지금 맛있는 거라도 안 먹으면 이 기분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아
먹으면 몸도 좋아질거야
먹자 실컷 먹자
그리고 29일에 형을 만나자
형
히야
보고싶다
걸어서 우리 큰 형을 볼 거라고
그래
이렇게 걸어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이유가 형이 전부인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라고
내가 대구에서 바로 포항을 가지 않고 안동으로 올라가서 일부러 포항을 피해간 건 다 이유가 있었다고
큰 형이랑 나랑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아서
한 때 내가 큰 형의 안 좋은 모습을 보고 큰 형을 너무 싫어했었으니까
그래서 큰 형이랑 나와의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져서
그래 좋다 한 바퀴를 돈다면 포항은 마지막으로 가겠다
나와 형의 멀어진 사이만큼을 내 발로 걸어서 형에게 가겠다
히야 내 왔다 이거 봐라 내가 히야 볼라고 일부로 돌아서 이만큼이나 걸어왔다
내가 그 동안은 히야를 너무 멀게 생각했었는데 이젠 안 그럴려고 이렇게 걸어왔다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왔으니까 이제 히야랑 내랑은 그 만큼 가까워진거다
그래 내가 진짜 그런 말은 못 하겠지 이런 걸 말로 하는 건 너무 닭살 돋잖아
형이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큰 형
비록 내가 한 때 형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미친듯이 저주를 퍼부었었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형이 방에서 혼자 기타치면서 노래하고 있으면 그 소리가 내심 멋있다고 생각했었다고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르는 것도 아니었지
근데 난 그게 왠지 정말 멋있었다고
가서 기타치는 것도 보여달라고 해야지 노래 부르는 것도 들려달라해야지
보고 싶다
그리워
의젓한 우리 큰형
가자
걸어갈거야
걸어서 형에게 가겠다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수 없다
내 몸은 견뎌줄 것이다
먹자
비상금 꺼내서 먹는 데 다 쓰면 된다
부산에서 비상금 5만원을 꺼냈고 그 돈으로 음식을 사 먹으며 계속 걸어갔다
식당에서 사 먹을 시간도 없었다
가던 도중에 햄버거를 사거나 빵을 사거나 군것질 거리을 사가지고 먹으면서 걸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정해놓은 시간에 도착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몸은 이제 아파질대로 아파졌다
쩔뚝쩔뚝도 아니고 이젠 비틀비틀 걷게 되었다
불안했지만 계속 걸어버렸다
이젠 걸어도 걸어도 속력이 전처럼 나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오래 걸어야 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걸었다
울산에서 하루정도 머무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울산을 비껴 지나갔다
그렇게 무리하게 걸어서 29일 포항에서 형을 만나게 되었다
애태우며 간절히 기대하던 일도 정작 일어나면 별 만족을 얻지 못한다
흔히 그러한 기대는 실망감을 가져다 주기 마련이다
책 한 권을 읽어보고 머리에 남은 건 이게 끝
다른 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무슨 상황인지 아무 것도 모르겠고
읽고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책을 덮는 순간 다른 내용은 모조리 잊어버렸고
와.. 정말 맞는 말 같다 라고 느낀 저런 문장만이 머리에 남았다
또 한번 저 말이 맞다고 느끼게 되어버렸다
혼자 머리속으로 상상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그 무엇
그리고 그 와는 어딘가 못 미치게 일어나는 현실
나는 무엇을 바랬었나
너무 큰 기대를 한 건가
헛상상을 한 건가
환상을 가졌었나
형과의 만남이
나빴던 건 아니었지만
뭔가 내가 혼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
낯선 느낌
그래서 또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어리둥절 하기도 하고
혼란스러웠다
내색은 하지 않았다
형을 만나고
이틀을 더 걸어
10월 31일
대구에 도착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지나친 기억이 있는 길들이 하나 둘씩 내 앞에 나오게 되었고
나는 이제 머지 않은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기분
대구다 대구 드디어 대구 이제 집에 갈 수 있다 집에 가면 엄마도 보고 푹 쉴 수 있다 노숙같은건 이제 안 해도 된다 그렇게 좋은 것 같으면서도
뭔가 허무함..허탈감...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와 함께 그 동안 내가 걸어왔던 길이 내 뒤로 모두 무너지는..증발하는..사라지는..
알 수 없는 오묘한 기분
내가 지금까지 걸었나?
내가 집에서 나온 지 진짜 3달이나 됐다고?
내일이 11월이라니...
세 달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믿고 싶지도 않다..
내가 얻은 게 뭘까..
꿈을 꿨나..
멍하다...묘하다..
이상하다 ..
집에서 나와서 앞만 보고 걷다 보니까 난 다시 집으로 걸어가고 있네
당연하지 빵 사러 슈퍼 갈 때도 앞만 보고 걸어가지 그럼 뒤로 걸어가냐
그래 엉터리 논리인 건 알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이렇게 집에 들어가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다
기분이 이상하다
집에 가기 싫기도 하네
집에 가면 뭐하지
왜 아직도 그걸 결정하지 못한 걸까
나는 정말 안될 놈인가
집에 가면 엄마한테 뭐라고 말하지
걸어다녔다고 하면 엄마가 좋아할까
쓸데없는 짓을 왜 했냐고 혼내면 어떡하지
엄마까지 나한테 실망하면....
몰라...
집에 간다..
길이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
내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게 그대로고..제자리인 것 같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고..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밤 10시
집에 도착했다
이전에 오늘 집에 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택배기사 흉내내서 택배온 것 처럼 하고 싶었는데..시간이 너무 늦었다
그냥 나름대로 깜짝 놀래켜보고 싶었다
누나와 엄마를 만났다
반갑기도 하면서 무언가 여전한 느낌
나는 잠시, 아주 잠시 밖을 갔다온 기분
무뚝뚝 무덤덤함은 그대로
간단히 밥을 먹고.. 피곤해서 바로 잠을 잤다
이틀 간은 거의 잠만 잤다
답답했다
이제 난 무얼 해야하나
막막했다
일단은 좀 쉬자
답답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내가 한심했다
그저 멍하게
일주일 간 잠을 잘 땐 항상 꿈을 꾸었고 꿈 속에서 난 걷고 있었다
하루는 경기도의 어디서.. 하루는 전라도의 어디서.. 하루는 어디서.. 하루는 어디서.. 만났던 사람들이 다시 나오고..
잠만 자면 그런 꿈을 꾸었다
얼마 전부터 고민했고, 집에 와서도 후기를 올려볼가말까 고민하다 결국 후기를 올려보기로 결정했다
봐 줄 사람이 있을까
무관심이면 쓰다가 그냥 다 지워버리자
그런데 후기를 쓰는 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뭘 써야할지.. 뭘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그리고 난 별로 할 얘기도 없는 것 같은데..
걷기만 했잖아
그리고 너무 까마득하다
내가 언제 그랬는지 믿기지가 않는다
3달이나 지난 일을 이제와서 꺼내려니 괜히 케케묵은 일을 쓸데없이 꺼내는 것 같고..
답답했다
그냥 모든 게 답답
집에만 도착하면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할 것처럼 스스로 마음 먹었지만
사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제대로 정한 것이 없었다
집에 가만히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답답해서
한 달 동안 하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일이라도 하면서 쉬자
일을 하면서도 내 자신이 너무 답답했다
뭐? 뭐 대단한거라도 할 것처럼 그러더니 고작 몸만 굴리는 아르비아트였나??
아니다 쉰다고 생각하자 이건 쉬는 거라고 일하면서 쉬는 거
그럼 아르바이트 끝나고는 뭐하지? 아.......모르겠다...
후기도.. 쓰기 싫다....
후기 쓰고 싶은 기분도 아닌 걸....
나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미 올리기 시작 했으니까.. 쓰긴 써야할 것 같은데.. 쓰는 것도 너무 막막하다..
지금은 걸어다닐 때 기분도 아니라고...
근데 이미 올려버렸는데.. 몇 개 올렸는데 이제 와서 다 지우는 것도 좀 그렇다..
쓰자.. 어떻게든 후기를 마무리 하자..
후기를 마무리 안하면 신경 쓰여서 다른 걸 제대로 못 할 것 같다..
후기를 써보려고 컴퓨터를 켜면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은 어떻게 써야할지,
생각도 안 나고 맞춤법도 왠지 다 틀리는 것 같고
이것 저것 모든 게 복잡하고 막막해서 쓰다 말고 컴퓨터를 꺼버리고
또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켜서 조금 쓰고 다씨 끄고 다시 켜고 다시 쓰고 끄고..........
그렇게 하다보니
이제서야 끝을 내고 있다
지금도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 정리가 안 된다
지금 나의 모습은....
한심함 그 자체..
이제 마무리를 좀 지어보자
뭔가 머리속으로는 어떻게 써야할지 생각이 나는 것도 같은데
막상 써보려고 하면 개떡이 되는 것 같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써야겠다
걸어다니기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아닌
내가 믿을 수 없는 기억이다
내가 정말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꿈을 꾼 것 같다
믿기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걸어다녔다는 것
3달이 걸렸다는 것
집에 와서 또 다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왔고
올해가 이제 다 지나가버렸다는 것
내 23살이 다 끝나가고
오늘이 12월 27일이라는 것
다
믿기지 않는다
오늘은 꼭 끝을 내야지
그래야 될 것 같다
내가 걸어다니기를 하게 된 계기, 목적이 뭐냐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
사람들이 흔히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초심으로 돌아가라. 초심!'
초심이라는 말을 꽤 많이 들어본 것 같다
그런데
어떤.. 그러니까 그 초심.. 그 예전의 어떤 다짐이..마음이..생각이..
시간이 지나고, 주어진 상황이 변하고, 환경이 변해서
다짐 마음 생각 따위가 이 전과 달라져서
'아 초심을 잃어버린 것 같다 초심으로 돌아가야지' 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과연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초심이라는 것이
정말 되돌아 갈 수 있는 것인지
정말 그 떄의 마음을 잊지 않고 가지고 있기나 한 건지
정말 초심이라는 게 완벽히 기억이 나서 그 때의 기분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사람 마음이
이미 변한 사람의 어떤 마음이
그렇게 쉽게 초심 초심 말하듯 쉽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마음이 변하는 순간
다신 완전하게는 돌아갈 수 없도록
머리에서 잊혀지는 것 같다
말처럼 초심으로 정말 돌아간다해도
그건 정말 예전 마음 먹었던 초심이 아니라
초심 비슷한 초심
개판이 됐네
고칠 자신이 없다
그냥 남겨둬야 겠다
왜 이걸 쓴 건지 확실하게는 표현할 수 없다
어...내가 처음 걸어보고자 했던
그 마음이
그 기분이
그때의 그 기분이 그때와 완전 똑같게는 떠오르지가 않는 것 같다
한번 떠올려보자...
나는
그냥
그냥 걷고 싶었다
그냥 우리나라를 한 바퀴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군대에 있을 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분명 나는 그게 하고 싶었고
말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을까봐 남에게 말은 하지 못했고
전역을 한 뒤
조금씩..
조금씩..
정말 할 지 안할 지 나도 확신을 못하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준비해갔다
집을 나가기 직전까지도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계속 걸었다
걸어보겠다는 것에
무전여행이라는 것이 덧씌워졌다
내 뇌에 어떻게 무전여행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게 된진 모르겠다
무전여행, 돈 없이 다니는 여행,
그런 말이 있고 그런 여행이 있고 그런 것을 했다는 사람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내 머리속에 들어있었고
나도 한번
나도 그걸 할 수 있을까 하고 걸어다니기에 무전여행을 추가했다
단지 얻어먹고 얻어자는 것만은 아닌
잠깐이라도 내가 신세진 것에 걸 맞게끔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기
사람들이 나를 내쫓거나 부담스러워하거나 거절을 한다 해도
기 죽지 말고 태연하게 다른 곳을 찾고 찾아서 나를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찾아 하루를 해결하기
근데 무전여행이면 돈은 단 100원도, 어떤 돈이든지 10원도 손에 갖지 말아야하나?
돈을 조금이라도 쓰면 규칙 위반인가?
정말 돈을 단 한 푼도 없이 다녀야 되는건가?
집을 나선 뒤 그런 나만의 이상한 고민에 빠졌고
아무래도 그건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럼 내가 걸으면서 돈을 벌어보자
뭐 아르바이트 같이 하루 일 하고 하루 돈 버는 그런거 말고..
그렇게 돈 벌꺼면 집 나오기 전에 미리 돈 벌어온 거랑 다른 게 없잖아
없던 일을 내가 직접 만들어내자
그래서 1000원 벌기를 생각해냈다
잠깐, 뭐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
가짢은 일이라도 조금이라도 돕고 1000원씩 벌어보자
내 제안을 받아줄 사람이 아예 없진 않을거야
거절당하면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지
찾고 또 찾으면 누군가는 나를 받아줄 것이다
재미있게 보이자
비굴하고 불쌍하게 말고
당당하게 가서 들이대고 들이대자
사실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막상 해보려니까 행동으로 잘 옮겨지지 않았다
정말 사람들이 내 부탁을 들어줄까
세상이 얼마나 삭막한데
폐만 끼치고 다니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다니는 건 아닐까
라는 걱정도 많이 했었는데
사람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정말 나는 처음 군위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해결하고, 또 그날 마을에서 주민분이 밥을 주고 잠까지 자게 해주셨을 때
단지 난 운이 너무 좋았을뿐이도 앞으로 다시는 이런 사람들은 못 만날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이렇게 밥을 주고 잠을 재워주겠나 정말 운 좋게 하루를 버티긴 했지만 오늘은, 내일은 어떡 할지 여전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난 정말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고생을 한 것도 없다 힘들거나 어려워지려고 하면 잘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됐다
내가 단지 운이 좋았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느 지역인지를 떠나서 정말 어디든지 잘해주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물론 잘해주는 사람만 있었던 건 아니다 욕을 얻어먹은 적도 있고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은 적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지
내가 다 원인제공을 한 거니까 내가 사실 터무니없는 행동을 한 게 맞으니까
그 사람들은 하필 그때의 기분이 정말 안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겁이 나서 그랬다면 그건 나를 겁내는 것이 아닌, 세상에 일어나는 소수의 위험한 사건사고 같은 것이 겁나서 내게 그랬을 뿐이지
그 사람들이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
행여나 그렇게 거절을 당하더라도
나는 다시 다른 곳으로 가서 어딘가에는 반드시 기다리고 있을 좋은 사람을 찾아다니기만 하면 됐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강원도 인제를 지나 갈때의 일이다
그 날 나는 잠을 자기 위해 한 마을을 찾아갔다
마을 입구를 들어갈 때
마을 입구 근처에 있던 집 앞에 아저씨 한 분이 서 계셨고
나는 그분께 이장님댁의 위치를 여쭈어봤다
ㅍㅍ : 이장 집은 왜?
나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장님 댁을 찾고 있다고 대답해드렸고
ㅍㅍ : 이장 집은 저~~~~~~~기 끝에 멀어
그리고 이장 집 가봤자 잠 재워줄 데도 없어
나는 그 말을 처음 듣는 순간
이 마을엔 잠을 잘 곳이 없으니 허튼 짓 말고 어서 나가라 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곧 말을 이어나가시길
ㅍㅍ : 우리집에 남는 방이 하나 있는데 여기서 자고 가게
괜히 쓸데없이 먼 데까지 가지말고
가봤자 잘 데도 없어
라고 하셨다
;;
거기에 더해
ㅍㅍ : 우린 지금 읍내에 좀 다녀와야되니까 안에 들어가서 쉬고 있어
???
집 안엔 사람이 없었다
뭐지?
ㅇㅇ : 저기.. 지금 저 혼자 두고 가신다는 거에요??? 혹시 불안하지 않으세요? 제 물건이라도 타고 가시는 트럭에 실어드릴까요??
ㅍㅍ : 허허.. 사람을 그렇게 못 믿어서야 어떻게 살겠나
괜찮으니까 안에 들어가서 쉬고 있어
그렇게 아저씨 아주머니는 만난 지 5분도 안되는 내게 빈집을 맡기고 읍내로 나가버리셨다
;;;
정말 잘해주는 사람이 너무 많았음
내가 처음 말을 걸어보려고하는 순간부터 미소를 띠고 있는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내가 말을 거는 순간 내 자신도
아 이 사람은 왠지 나에게 잘해줄 것 같다....라는 생각을 들게끔 했다
그리고 또
미소는 아니라도
처음 내가 거는 말에
딱..표정이.. 정말 진지하게 잘 들어주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도 마찬가지로 다 잘해주셨다
나는 내 상황을 계획하고 내 표정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만들어 낸 것이지만
그분들에겐 전혀 예상치 못하다가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낯선 나를 처음부터 그렇게 친절히 대해줄 수 있는지
사람에게 너무 벽을 쌓고 사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렇게 순수하게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그런 사람들을 언제 한번 찾아가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근데..
그냥.....
그분들은 내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정말 그저 지나가는 인연에 순수한 도움을 주신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다시 찾아가게 된다면 내가 그때 받은 도움에 뭔가 큰 보답을 해야할 것 같은..
근데 난 그럴 수 있는 것도 없고.. 때문에 난 마음속으로 부담스러워 할 거고..그러면 불편한 만남이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또 도움 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이분 찾아가고 저분 안 찾아가면 내가 저분한테는 고마움을 못느낀건가 그래서 차별하는건가 혼자 찝찝하고..
그분들은 날 다시 만나는 게 싫을 수도 있고.. 내가 찾아오나마나 신경도 안 쓸 것 같기도 하고.. 어색하기만 할 것 같고..
ㅡㅡ;;
그래서 그냥 추억의 일부분으로만 간직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분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후기에.. 도움을 받았던 곳의 실제 이름을 밝히는 게
그 곳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 확신을 할 수가 없어서 밝히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정말 여기 어떻게 쓸 수는 없지만
모두모두 너무 고마웠다
좋았던 점
자유로웠던 거
더 이상 나는 방 안에서 썩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밖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걷고 있다고 난 죽은 게 아니다 살아있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싶은 걸 하고 있다고
간다~~~~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아무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내 혼자만의 공간
그렇다고 폐쇄된 방구석 안이 아닌 바깥 세상
실컷 으아~~~~~~~~~소리를 지르고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지금까지 눈치보여서 못 불러봤던 노래들
지금은 어떻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땐 정말 기분이 너무 좋고 편안하고 즐거웠다
때로는 그렇게 신나게 노래부르면서 걷고
때로는 너무 덥고 힘들어서 바닥만 보고 걷고
때로는 쪽팔릴린다고 어울리지도 않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슬픈 생각에 질질 짜면서 걷고
사소하지만 너무 소중했던 것들
나를 도와준 모든 사람
내가 앉아서 쉬어갈 수 있었던 의자들
내가 잠을 자고 갈 수 있게 나와준 정자들
따뜻한 햇살 시원한 바람
나와 함께해준 작은 물건들
마실 물 음식 건더기 하나까지도 귀중했던 시간
우연치고는 너무 신기했던 우연들
음?ㅋㅋ 하는 나만의 작은 웃음거리들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모든 것 하나하나가 즐겁고 의미있고 소중했었다
아쉬웠던 점
그냥 무식하게 걸은 거?
그건 근데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회의를 하면서도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마음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편지를 3통밖에 쓰지 않은 것, 내 생일을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지 않았다
어떤 말을 써야할지..................
많이 썼어야 하는데..
누나와 형에게는 편지를 한 통도 쓰지 않은 것..
형들의 집 바로 앞까지 찾아가지 못한 것
일기를 너무 형편없이 쓴 것, 내려올 때는 이리를 아예 쓰지 않은 것
너무 쫓기듯이 보낸 것
하루 중 찬찬히 나를 돌아볼 시간을 두지 않았던 것
메모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것
좀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
아 아쉬운 건 너무 많다
ㅇ
ㅇㅇㅇㅇ
그리고 지금 내 자신
내 부끄러운 모습
한심한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지금 내 자신이 제일 아쉽네
ㅇ
ㅇ
엄마
도대체 엄마라는 존재는 왜 그렇게 자식을 위하는 것인가
엄마도 인간이기 때문에 자존심도 있고 욕심도 있을 것이다
자식이 잘 되어야 엄마 체면도 살고 엄마 인생도 편해 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엄마한테는 왜 그런 모습이 하나도 안 보이는 건지
정말 말 그대로
완벽한
절대적인
오직 자식만을 위한....그것도 특히 나에게 더....
조금의 티도 보이지 않는.... 어떠한 자기 자신의 이득도 생각하지 않는...
죄송합니다..
나는 그저 엄마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생일 날짜에 맞춰 편지를 보냈고
무슨.... 높이 날아올라 자랑스런 아들이 되겠다는... 말 뿐인 말을 써버렸습니다..
사실 난 그때 역시 꿈도 없었고....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구체적인 계획도 없었고.... 앞 날이 막막하기만 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또 다시 이런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데도
여전히 나를 감싸주려고 하는 우리엄마...
이런 사람 구실도 못하는 나에게 원망은 커녕 오로지 나를 위하기만 하려는 우리엄마.....
누나
어릴 적 내게 그토록 엄했던 누나
열심히 살았던 우리누나
집에오면 잘해주겠다고 말했었는데
신경질을 내서 울리기까지 하다니
누나가 내 신경질에 울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릴적엔 내가 찍소리도 하지 못했는데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커벼려서 이제 내가 누나를 울리는 지경까지 와버린 건지
큰형 작은형
어릴 적 나의 우상들
의젓한 형들
항상 내가 도움만 받고 필요할 때만 찾고
형들에게 무관심하고 무뚝뚝한 내 자신
나약한 내 자신을 밑에서 받쳐주던 우리 형들
내가 그렇게 찾아가서조차
밝게만은 행동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찾아가서 하고싶었던 말은
표현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어....각자의 인생을 위해.. 떨어지고 흩어진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도
서로를 사랑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라는 악의 덩어리가
어쩌다 우리 가족에게 떨어져서
어쩌면 행복하기만 했을 우리 가족의 삶을
내가 다 좀먹어버린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합니다
언젠가
내가 당신들께 부끄럽지 않고 떳떳한 사람이 되었을 때
나의 이 이야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비록
형편없지만
내게 이런 일도 있었다는 것을
집에 와서도 자세하게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때라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 날이 늦지 않아야할텐데
세상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겠는
복잡한 곳
어릴 적에는 지금 이 나이가 그렇게 어른스러워보였는데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애
방황의 연속
힘든 일도 없지만 힘들어 하기만하는 나약한 내 자신
모순되고 거짓된 나
집에 돌아와서는
정말 그렇게 걸어다닌 걸 마지막으로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하게만 살고 있다
내게 새로운 세상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도망다녔다
집에 돌아가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막막하기만 해서
차라리 이대로
걷고 걸어서
갈 수 있으면 달까지라도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새로운 세상
그건 내가 뛰어들어야할 사회라는 곳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한번에 곤두박질치는 내 엉터리 자신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혼란스럽다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냥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그만 써야겠다
어디를 고쳐야할지
무엇을 더 써야할지
무엇을 빼야할지
더 이상은 모르겠다
이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찝찝하지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