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이번 선물은 또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명절 선물 같은 건 구습이니 그만두라는 충고는 물색 모르는 소리다. 그간 끼친 신세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닐뿐더러, 때마다 해왔던 인사를 이제 와 그만두면 분명 걱정을 사게 될 터다. 문제는 형편에 있다. 형편없는 형편.
도움이나 호의에 민감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장사를 해보면,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도 있지만, 받는 쪽에서는 속 편히 여길 수만은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리 뻔뻔하지 못한 성격이다. 거절당했다고 생각해 섭섭해 하거나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평온이다. 며칠 전, 단골손님이 떡을 보내오고 싶다고 연락해왔을 때에도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감사한 일이지만, 내게는 돌려줄 것이 없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또, 오해를 샀구나.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이윽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제 쪽에서는 보답의 차원인걸요.”
지치고 외로울 때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믿음, 한결같이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기쁨. 자신은 시집서점으로부터 그런 기분을 느끼니 신세와 진배없다고 웃었다. “그게 아니라면 응원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응원에는 까닭이 없으니까. 응원은 응원으로 갚는 게 아니라, 힘냄으로 갚는 거니까요.” 이렇게 되면 받는 수밖에 없다. 이 선물이 다음 명절에 부담과 고민이 되더라도. 그리고 힘을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