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학산 억새밭을 넘으면 수레가 들어올 수 있는 쉼터가 나오는데 여기서 동쪽으로 가는 길은 2
개이다. 하나는 동쪽 봉우리(구덕산 서쪽 봉우리)를 직접 넘는 것, 다른 하나는 봉우리 허리에
둘러진 길을 가는 것이다. 후자는 길이 포장되어 있고, 큰 오르막이 없어 편하긴 하나, 많이 돌
아가야 된다. 반면 전자는 산을 직접 넘어야 되지만 그 산을 넘으면 바로 구덕산 서쪽으로 이어
진다.
그래서
우리는 우회길 대신 산을 넘는 편을 택했다. 어차피 지금까지 오른 승학산 정상이
나 서쪽 봉우리보다는 완만하며, 비에 젖은 산길을 10분 정도 오르니 봉우리 정상이다.
봉우리를 넘어 동쪽으로 내려가면 구덕산 아래에 이르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구덕꽃마을,
오른쪽 오르막길이 구덕산(九德山, 565m) 정상, 오른쪽 내리막 길이 억새밭으로 가는 허리길이
다. 구덕산 정상은 군사/방송 관련 시설이 자리해 있어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
인생은 올라갈 때가 있으면, 반드시 내려갈 때가 있다. 지금까지 승악산 능선을 타며 서쪽 봉우
리와 승학산 정상, 동쪽 봉우리까지 신나게 올랐으니 이제는 슬슬 내려가야 된다. 더 이상 올라
갈 곳도 없다.
내려가는 길은 봉우리 허리길과 구덕꽃마을 방면 길이 있는데, 꽃마을까지는 1차선 크기의 길이
포장되어 있어 통행에 불편은 없다. 구덕산 정상에 자리한 군/방송 시설 때문에 길을 포장한 것
이다.
여기서 꽃마을까지는 대략 2km로 순전히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내리막 가속을 덧붙이면 금세 내
려간다. 길 주변에는 울긋불긋 타오른 단풍과 푸른 옷을 걸친 나무들이 앞에서는 환한 모습으로
뒤에서는 장차 다가올 겨울 제국(帝國)을 걱정하며 시름에 잠겨 있다. 이제 올해도 다 갔구나!!
좀 있으면 강제로 1살이 얹혀질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시름 속에 들어가 버린다.
새해가 시
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이 코앞이니 세월이란 참 유수처럼 빠르다는 말이 허언은 아
닌 듯 하다. 고려 후기 문신인 우탁(禹倬)의 탄로가(嘆老歌)처럼 한 손에 막대를 잡고,
다른 한
손에 가시를 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백발은 막대로 막으려고 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온다는 시가 점점 실감이 난다.
꽃마을로 열심히 내려가고 있으려니 구덕문화공원을 알리는 이정표가 오른쪽에 나온다. 이 공원
에 대한 정보가 나에게는 없던 터라 근래에 만든 공원이겠지 싶어 그냥 직진을 고수했는데, 꽃
마을이 슬슬 모습을 보이면서 강제로 구덕문화공원이 내 앞에 나타난다. 아까 전 이정표는 공원
으로 바로 내려가는 지름길 계단이었던 것이다. 계단으로 가나 포장 길로 가나 어차피 구덕문화
공원은 꼭 거쳐야 된다. |
구덕문화공원은 꽃마을 서쪽, 구덕산 북쪽 자락에 터를 닦은 공원이다. 2004년 11월
교육역사관
과 다목적관 개관을 시작으로 문을 연 이 공원은 2005년 11월 목석원예관을 열었고, 2006년에는
민속생활관과 다목적광장을 만들었다. 특히 2005년 11월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
회의 때는 참가국 우두머리의 부인들이 방문한 곳이기도 하며, 구덕산과 승학산을 후광으로 한
도심 속의 자연/문화공간으로 정감이 가득 일어나는 곳이다.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싱그러운 공간으로 나무가 무성하며, 공원 곳곳에 장독대와 석탑, 석등
, 문인석 등의 석인을 비롯하여 여러 조각물을 배치하는 등, 아기자기하게 꾸며 소소하게 볼거
리를 제공한다. 석물들이 집중 분포하고 있는 공간을 옛돌마당이라 불리는데, 이곳의 석물은 오
래된 것은 없고, 공원을 닦으면서 만든 것들이다. 다만 석등(石燈) 가운데 우리식이 아닌 왜식(
倭式)으로 만든 것이 적지 않아 상당히 눈에 거슬린다.
그리고 전시실(교육역사관, 민속생활관, 목석원예관)과 옛돌마당 외에 편백숲 명상의 길, 솟대
동산, 인공폭포와 놀이마당, 산마루쉼터 등을 갖추고 있다.
공원에 있는 전시관 중 가장 먼저 문을 연 교육역사관은 이 땅의 교육 역사를 다룬 공간으로 디
오라마와 유물 등으로 옛날 교육을 설명하고 있다.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교육내용과 과정, 서예
용품 등을 전시하고 있고, 개화기 이후에 편찬된 교과서와 60~70년대 초등학교 교실 재현, 6.25
시절 천막 학교 등이 재현되어 어린 시절의 향수를 진하게 불러일으킨다. 전시자료는 약 600점
정도 된다.
그 다음 문을 연 목석원예관은 나무와 돌, 꽃을 다룬 공간이다. 괴석류와 돌과 나무로 만든 작
품들, 수목과 지피식물(地被植物) 등이 원예관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민속생활관은 옛날 생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농기구와 짚풀용품, 주거생활용품, 호패와 민화(民畵, 속화), 초가집
모형 등 유물 4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허나 이들
전시관의 전시물은 다른 데서도 지겹게 볼
수 있는 것들이라 딱히 특별한 것은 없으며, 다만 공원을 이루는 숲이 삼삼하고 산책로도 괜찮
게 깔려져 있어 산책이나 데이트, 산림욕 장소로 아주 적당하다. 게다가 위치도 구덕산과 승학
산
가는 길목에 있어 산을 타고 내려와 잠깐 안겨보는 것도 괜찮다.
※ 구덕문화공원 찾아가기 (2014년 11월 기준)
* 부산1호선 서대신역 4번 출구에서 구덕운동장 방면으로 100m 정도 걸으면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거기서 서구마을버스 1번을 타고 구덕꽃마을 종점 하차. 거기서 서쪽 길(승학산 방면)
로
오르면 나온다.
* 일반인 차량은 공원까지 들어올 수 없으므로, 꽃동네에 주차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 관람시간 : 9시 ~ 18시 (11~2월에는 17시까지)
* 관람료는 없으며, 3개의 전시실은 매주 월요일 문을 닫아 걸고 쉰다.(단 공원 관람은 가능함)
*
소재지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3가 산18-15 (꽃마을로 163번길 73, ☎ 051-240-3521~23)
* 구덕문화공원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 목석원예관에서 유일하게 사진에 담은 사후천년이란 작품
나무가 죽어 돌로 굳은 화석(化石)이라고 한다.
▲ 밋밋하게 솟아난 솟대
솟대 위에 오리는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중간 역할을 상징한다.
▲ 다양한 석물들이 반기는 구덕문화공원 옛돌마당 산책로
장승(벅수)과 온갖 석인들, 석등, 석탑 등이 주변을 수식한다.
▲ 무인의 기개는 온데간데 없는 싱글벙글 무인석(武人石)
▲ 웃음을 머금은 문인석(文人石)의 물결
▲ 산책로에서 만난 왜식 석등
석등을 만들려면 우리식으로 제대로 만들 일이지 그냥 왜식으로 대충
만들어 공원에 갖다 두었다. (대충 전시행정의 표본)
▲ 구덕문화공원 남쪽 산책로 |
우리는 목석원예관만 둘러보고 내려왔는데, 글쎄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는 것이다. 처음
에는 적게 내리더만 시간이 가면서 정비례로 빗방울도 주먹만큼 굵어진다. 그래서 속보로 꽃마
을로 내려오니 마침 시내로 나가는 서구마을버스 1번이 사람들을 태우고 있다. 버스는 이미 가
축수송 지경이라 다음 차를 탈까 했지만 빗방울의 눈치도 있고 해서 그 버스에 올라타 짐짝의
일원이 되었다.
오랜 만에 찾은 부산 도심 속의 산골마을 구덕꽃마을, 등산객을 상대로 하는 주막들이 가득 늘
어서 있는 모습은 정말 산이나 산사 입구에 터를 닦은 관광단지를 방불케 한다. 도심이 바로 밑
인데, 도심과 지척에 이런
곳이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손님을 가득 실은 마을버스는 이제야 만족을 한 듯, 시동을 걸고, 그 자리에서 유턴하여 마을을
등지고 시내로 내려간다. 휴일이라 등산/나들이 손님들이 많으니 그날 입금은 정말 상당할 것이
다. 운행을 마치고 아마도 고기회식을 하지 않았을까?
내려가는 고갯길이 구불구불하여 손잡이를 잡으며 어여 도착하기를 소망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구덕운동장과 서대신역까지 가야 내리니 자리가 생기는 것보다는 빨리 도착하여 내리는 것이 낫
기
때문이다.
산에서 내려온 마을버스는 부산시내로 들어서 구덕운동장에서 우리를 내려놓는다. 여기서 시내
버스를 타고 서면(西面)에서 환승하여 광안동으로 돌아오니 시간은 대략 17시 30분, 이렇게 하
여 부산 승학산 나들이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 채 대단원의 휘장을 걷는다. |
첫댓글 자세한 안내로 눈감고도 찾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산하면 바다만 생각하였는데
의외의 모습이 또 다른 세계로 나래를 펼치고 잇습니다.
부산은 지명 그대로 산도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 배경음악소리가 혹 안뜨나요? (스맛폰은 안뜰 수 있음)
처음 보는 승학산 소식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