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1~4 /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신 예수님
(눅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들의 평가하는 기준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빌라델피아 교회를 작은 교회지만 예수님은 큰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서마나 교회를 가난하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부유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명성 있는 사데 교회를 예수님은 죽은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시고 예수님은 토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평가하는 기준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는 이 예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예수님의 평가에서 에이플러스를 받을 수 있을까요?
1~2 예수님은 사람들이 헌금 넣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부자들이 오만 원짜리 돈과 십만 원짜리 수표를 헌금했습니다. 과부는 1,000원짜리 지폐 두 장을 헌금했습니다. 사람들은 부자들이 헌금을 많이 넣는 것을 보고 그 믿음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과부가 헌금 넣는 것을 보고는 뭐 그런 것을 헌금하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하마나마 괜찮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그 헌금하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어떤 분이 예수님이 헌금 넣는 것을 보고 계시니 마음에 안 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안 들어도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헌금 넣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봉사와 헌신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헌금과 봉사와 헌신을 평가하십니다.
예수님이 헌금을 보시고 평가 기준은 사람들의 평가 기준과 달랐습니다.
3~4 예수님은 사람들과 달리 가난한 과부가 거기서 헌금한 모든 사람보다 가장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과부의 돈을 하찮게 평가하였지만, 예수님은 그 돈이 부자들이 낸 10만 원보다 더 크게 평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무엇을 보셨을까요?
예수님의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부자들은 풍족한 중에서 일부를 헌금하였지만, 과부는 구차한 중에서 생활비 전부를 헌금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두 가지 평가 기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양이 아니라 질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헌금을 볼 때 겉으로 드러나는 액수를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헌금에 담겨 있는 진심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숫자를 보고 양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숫자보다 숫자 속에 담긴 질을 보십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상대평가이지만 예수님의 평가는 절대평가입니다.
찬양 사역자 박종호 장로는 예수 전도단을 돕기 위해서 미국 전역을 다니며 콘서트를 하고 간증을 하면서 모금을 하여 25억 이상을 후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분이 간암을 수술할 때는 그는 월세방에 살면서 돈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것이 알려지자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몇천 원씩 모금하였습니다.
예수 전도단에서도 모금을 하여 2천5백만 원을 지원하였습니다.
예수전도단은 직장생활 하지 않고 후원으로 살기 때문에 매우 가난합니다.
박장로는 사람들이 낸 몇천 원씩의 후원과 예전이 모금한 2천5백만 원이 자신이 후원한 몇 십억보다 더 많은 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돈으로 박장로를 수술하여 살리고 제2의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똑같이 제물을 드렸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벨이 양을 피 흘려 드렸고 가인은 곡식을 드려서 받지 않았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곡식으로 소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가인의 제물이 곡식이기 때문에 받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제물만 보면 누구의 제물이 더 좋은 제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가인의 제물이 더 화려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 누가 구별하여 예물을 드렸는지 보셨습니다.
아벨은 첫 소산을 구별하여 드렸고 가인은 소산 중에서 구별 없이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구별하여 드린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돈을 얼마나 냈느냐를 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두고 하였느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했느냐를 보십니다. 과부는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금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헌금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금한 것은 받으시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헌금한 것은 받지 않으십니다.
가수 소향의 시어머니는 기도 중에 며느리를 구하라는 방향을 들었고 며느리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때 아들이 중심이었습니다. 3년 동안 기도해도 응답이 없자 하나님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찬양 사역하는 여자들을 찾아가 여자들 가운데 상냥하고 친절한 여자를 점찍어 놓고 몇 달 동안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소향은 천방지축이라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은 외모를 보지 말고 중심을 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소향은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소향에게도 결혼하지 않으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20세 아들과 20세 소향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에 소향은 자궁암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치료하여 결혼이 유익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윗은 왕의 면접 자리에도 나가지 못하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여덟째의 막내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후에 간음과 살인과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효자였고 사람들 보기에 키가 큰 미남이었습니다.
그는 불순종한 것 외에는 크게 죄를 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택하셨고 사울을 왕에서 버리셨습니다.
다윗을 제물로 받으시고 사울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윗은 하나님 중심이었고 사울은 자기중심이며 사람 중심이었습니다.
다윗은 순종하는 사람이었고 사울은 자기 나름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사람이었고 사울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중심을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올인 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능력 베푸실 자를 찾으십니다. 전심으로 자신을 찾는 자를 찾으십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께 all in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건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올인해야 합니다.
나의 전 생애를 주님께 드리고 맡겨야 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고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를 찾으시고 그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이런 자와 영원토록 함께 해주시고 구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사람 앞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에서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우선순위에서 첫 자리를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