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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리고 토끼
Alice in Neverland
깨질 걸 두려워하는 건지 아무도 그 안으로들어오지 못하게 날을 세우고 있는 유리 같아.
레진이가 자기 대신 아르바이트를 부탁했다. 마침 학원 수업도 없는 날이어서 알겠다고 했다. 레진이
에게 급한 일이 있을 때 내가 대신 해준 적이 몇 번 있어서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동네에 있
는, 편의점이라서 비교적 한산했다. 카운터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아 연습장에 낙서를 하다가 지겨워
져서 핸드폰을 꺼내 유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몇 줄씩 길게 써서 보내도 답장은 한결같이 응,
아니, 뭐, 왜? 이 정도로 간략했다. 우리는 이제 사귀는 사이일지도 모르는데…. 이 확신 없는 말은 뭐
지.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던힐 프로스트. "
"아, 네. "
던힐, 던힐…. 레진이가 알려줬었는데.
"그거 말고 오른쪽에 있잖아요. "
손님이 친절하게도 위치를 알려줬건만 나는 담배를 집어들지 않았다.
"신분증 먼저 보여주세요. "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별 말 없이 신분증을 내밀었지만 사진과 얼굴이 다르다.
"왜요? "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지. 나는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기은표였다.
"왜 안 줘요? "
"주민등록증의 주인이 아니니까요. 2학년 7반 기은표 "
"낯이 익다했는데 혹시 우리 반? "
"응. "
"아씨 괜히 존댓말 했네. "
들킨 것보다는 당장 존댓말 한 게 아깝다는 말투였다.
"그럼 내가 막 떼쓰고 협박하면서 달라고 해도 안 되겠네. "
"응. "
"진짜 어디서 많이 봤다 했는데 너 그 200원 맞지? "
어이가 없었다. 굳이 기억해주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200원으로 기억해주길 바란 건 더더욱 아니었
다. 왜 내가 200원으로 기억됐는지 생각해보면 더 어이가 없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됐을 때 지각을 해서 복도에 서 있던 적이 있었다. 유토네 집에서 자고 바로
간 날이었던 것 같다. 유토에게 너 때문에 지각했어. 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그 때도 단답형으로 답장
이 왔었다. 조회가 끝날 무렵 선생님께서 내 존재를 잊은 건 아닌지 힐끔 교실 안을 쳐다보고 있을 때
기은표가 나타났다.
"니가 왜 우리 교실 앞 복도에 서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잘 됐다. 너 200원 있냐? "
"뭐? "
"마운틴 듀 뽑아 먹고 싶은데 200원이 부족해 3배로 갚을게. "
뭐 저런 어이없는 말이 다 있어. 더 이상 말하는 것도 귀찮고 괜히 문제아 기은표랑 말하고 있는 걸
선생님께 들켜 봤자 좋을 일 없을 것 같아서 주머니에서 뒹굴고 있던 100원 짜리 두 개를 내밀었다.
"그 때 200원은 고마웠지만 다시 갔을 때 품절 되고 없어서 콜라 마셨었어. "
기은표는 음료수 진열대에서 그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참 슬픈일이었지. ' 라고 혼자 독백을 남기기
도 했다. 기은표가 딸기우유 하나를 카운터에 내밀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천원 짜리 한 개를 꺼내
올려놨다.
"발육에 좀 도움이 될까 싶어서, 도움이 되어야할 텐데. "
내 가슴을 힐끔 쳐다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기은표는 카운터에서 발을
떼 문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3배는 넘게 갚았다? "
'난 역시 철저한 남자라니까. ' 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나갔다. 딸기우유와 천 원을 든 내 손
이 부들부들 떨렸다. 기은표의 검은 머리는 점점 편의점 밖에서 약간 갸웃대더니 사라져버렸다.
Alice in Neverland
"아르바이트할까봐. "
유토의 색이 옅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TV화면에서는 백인여자와 남자가 감정적으로 싸우고 있다.
백인과 유토 중 누가 더 하얄까 생각하고 있는데 열리지 않을 듯 굳게 닫혀 있던 유토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그딴 건 왜. "
"언제까지 유토에게 받을 순 없잖아. "
유토는 그게 뭐 어떻다는 거야. 하는 표정이었다. 이럴 때 우리가 다른 인간이라는 걸 실감한다. 우리
는 겉과 속 모두 달랐다. 유토는 하얗고 나는 하얗다 기보단 까만 쪽에 가깝다. 유토는 비쩍 말랐고
나는 조금 통통한 편이었다. 유토는 채식주의자였고 나는 가리진 않지만 채식보다는 육식이 좋았다.
유토는 부자였고 나는 가난뱅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당연한 것은 유토에게 당연하지 않았고
유토에게 당연한 것은 나에게 당연하지 않았다. 나는 돈을 받기 위해 유토와 있는 게 아니었다. 유토
에게 돈을 받는다는 건 내게 절대로 당연한 일이 아니었지만 유토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순간 만큼은 유토가 좀
얄밉다.
"유토에게 돈 받고 싶지 않아 이제는. "
유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너무 잘 들어맞는 바람에 힘이 빠
졌다. 유토의 심술궂은 표정에 질린 나는 '처키 같아. ' 라고 중얼거렸다. 왜 하필 처키가 떠올랐는지
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렇게 말했다.
"그게 뭔데? "
기가 막혔다. 미국에서 살다 왔으면서 처키도 모르다니. 어이가 없음에도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만약
에 제대로 알고 있었으면 조금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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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고여 있던 물이 톡하고 떨어져 뺨에 흘렀다. 온탕이나 찜질방 같은 곳은 도저히 오래 있을 수
가 없다. 때가 동동 뜬 온탕을 나와 누르스름한 의자에 앉았다. 물방울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거울안의
나는 퍼석퍼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나인데도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다니. 내 퍼석퍼석
한 얼굴을 나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보았을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유토가 보는 나는
어떨까. 그 애의 예쁜 홍채 안에 담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땟물에 담겼던 내 몸을, 샤워기를 들어 헹
궜다. 그러면서 주위를 계속 힐끔 거렸지만 역시나 없다. 언제나 불평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일에만 충실한 신씨 아줌마. 엄마는 목욕탕이든지, 식당, 시장 이런 곳에는 나와 함께 하지 않았
다. 나도 그 편이 좋았다. 어쩔 수 없이 밖에 나가기라도 하면 엄마는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서 걸었
다. 누구도 우릴 모녀로 보지 않았다. 부연 설명을 하기도 귀찮았다.
늘 있는 아줌마가 없다.
늘 있어야 하는 당연한 것이 없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신씨 아줌마의 부재는 날 슬프게까지 만들었다. 물론 그 아줌마와 나는
친하지도 않거니와 사무적인 대화(때미는 것에 대한) 정도 밖에는 하지 않았지만 역동적인 동작들과
그와 함께 출렁이는 뱃살이 문득 그리워졌다. 조금 웃긴 일이다.
"아파 살살 밀어 엄마. "
작게 몽우리 진 가슴을 가진 여자애가 배를 끌어 앉고 등을 동그랗게 만 채로 엄마에게 등을 맡기고
있었다.
"가만히 좀 있어봐. "
다 헹군 몸을 미리 가져온 수건으로 털고 나왔다. 옷을 꺼내 입으려고 하는데 유토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물기 어린 손으로 답장을 보내려다 그만두고 잽싸게 옷을 입었다.
-10분 내로 쳐와 죽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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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
유토는 죽는다, 죽인다, 죽고 싶냐? 하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애였다. 웃으면서 하는 것도 아닌
살기등등한 얼굴로 하니까 처음에는 정말로 죽는 줄 알고 잔뜩 겁먹었었다. 뭐 웃으며 하는 게 더 무
서울 것 같기도 하다.
가는 길에 드문드문 심어진 벚나무에 꽃이 조금씩 피어있었다. 유토에게 벚꽃놀이를 가자고 하면 어
떤 반응을 보일까. 햇빛 가득한 날 유토와 나, 그리고 벚꽃. 꿈같은 상상에 웃음이 나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드르륵 열리는 대문에서 나는 잠시 멈칫했다. 텅 빈 공터에 차가 있다. 타민오빠였다. 나는 재빨리 돌
계단을 뛰어 올라가 문을 열었다. 화를 내는 것처럼 인상을 쓰는 건지 웃음을 참는 건지 모를 표정의
유토가 서있었다. 내 품에 뭔가 폭 떨어졌는데 그걸 확인하는 순간 나는 기겁하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야 말았다. 그 것은 처키였다.
"지안이 보는 거 3개월 만인가? "
타민오빠는 조금 까매진 얼굴을 하고 웃었다. 타민오빠의 눈썹은 굉장히 진한 검은색인데 머리 색
만은 회색이었다. 타민오빠는 과일이 잔뜩 올려진 케익을 잘라 내 접시에 담아주었다. 나에게는 생글
생글 웃어주며 '많이 먹어. ' 라고 말했고 유토에게는 인상을 구기며 '과일만 골라먹지 말고 성의 있게
좀 먹어! ' 라고 꾸짖었다. 유토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키위를 골라 입에 넣었다.
"더 됐을 거에요. 어쩐 일이세요? "
"이제 좀 한가해 졌거든. "
"이제야 좀 여자가 물리나보지? "
유토가 딴지를 걸자 타민오빠는 씨익 웃고는 유토의 목에 팔을 둘렀다. '아 귀여운 내동생. ' 라고 말
했다.
"지안이는 더 귀여워 졌네. 너희 피임은 잘 하고 있지? "
"네? "
나는 당황해서 묻고, 유토는 타민오빠의 얼굴을 발롤 차버렸다.
"애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마! "
"농담이야 농담! "
"아, 네. "
"그래도 지안이 너 어두워지면 바로바로 집에 들어가야 해. 남잔 다 똑같다 오빠 말 새겨들어. "
유토가 다시 타민오빠를 가격했고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타민오빠는 당연한 일인 듯 내 안부를 물었
고 나는 전시회준비부터 목욕탕에 갔다온 얘기 신씨 아줌마에 대한 얘기등을 했다.
"내 등은 못 밀고 세 명의 아줌마들 등만 밀어주고 왔어요. "
"세 명이나? "
"네 차마 거절 할 수 없게 만드는 표정이어서. "
타민오빠는 내 말에 엉뚱하다느니 특이하다느니 말하곤 웃었다. 내가 보기엔 이 성과 두 형제가 훨씬
특이한데.
"그럼 나라도 밀어줄까? "
타민오빠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처키가 타민 오빠의 얼굴로 뛰어들었다.
"수작부리지마 변태자식아. '
타민오빠가 무슨 짓이냐며 고통을 호소하던 말던 유토는 날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 머리정도는 말리고 와! "
"10분내로 오라고 한 게 누군데. "
타민오빠가 처키를 쇼파 뒤로 휙 던지고는 우리 둘을 보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지안아 저 자식더러 선물 뭐 갖고 싶냐니까 처키라더라. 내가 미국 장난감가게를 다 뒤져서 겨우 사
다주긴 했지만 저 자식 저거 좀 문제 아니냐? 인형 가지고 놀 나이도 아니고 더구나.. "
타민오빠의 들으라는 식의 험담에 쳇 소리를 내곤 쇼파에 등을 기댄 유토를 보며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유토 선물로 뭐 갖고 싶냐?'
'그딴 거 필요 없고.....아 처키 사와 무조건 구해와. '
이런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또 웃음이 나왔다. 타민오빠는 나에게도 선물이라며 상자를 내밀고는
이제 가봐야겠다며 일어섰다. 나도 일어서서 타민오빠를 유토 대신 배웅했다. 돌계단을 내려가면서 타
"아직도 남이 한 음식 잘 안 먹고 그래? "
"네, 뭐 비슷해요. "
"지가 좋아하는 유리 같지? "
"네? "
"유토말야. "
우리는 계속 돌계단을 내려갔다.
"그 것도 면취 되기 전 삐죽삐죽 날카로운 유리. "
"아.. "
"깨질 걸 두려워하는 건지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날을 세우고 있는 유리 같아 저 자식. "
"네. "
"그래도 지안이 너한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으니까. "
"네. "
"잘 부탁한다고 앞으로도. "
싱긋 웃고 차에 탄 타민오빠가 사라져간다. 7살. 유토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줄곧 같은 색의 머리를 하
고 밖에 나가서 놀 나이에도 늘 집에서 유토와 있엇을 타민 오빠. 형제, 우애 나는 잘 모르겠다. 곧
해가 저문다. 그리고 어느 샌가 밖에 나와 문에 기대서 타민빠가 차가 있던 자리 응시하는 유토. 역시
잘 모르겠다.
"뭘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어. "
은발의 머리를 쓸어 올리자 검은 색의 피어싱이 드러났다. 옅지만 길고 숱 많은 속눈썹이 그늘을 만
들어 눈 밑이 좀 어둡다. 연보랏빛 바깥하늘보다 어두운 성 안으로 들어왔다.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타민 오빠가 앉아 있던 쇼파가 왠지 허전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별안간에 유토가 이층으로 올라갔
고 나는 생크림이 잔뜪 묻어있는 그릇을 치웠다. 주방에서 서서 싱크대에 물을 받고 그 위 조그마한
창문을 살짝 열자 초봄의 쌉싸래한 향내와 여자아이들의 까르르 넘어갈 듯한 웃음소리, 폴 리가 짖는
소리, 길게 늘어지는 클랙션 소리가 가까운 듯 들려왔다.
"서지안. "
높지도 낮지도 않은 멀리서부터 울려 주위를 배회하는 목소리에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자 그 애가 냉
장고 옆에 서서 날 보고 있었다. 조금 상기된 듯한 얼굴에 나는 멋쩍어져서 볼을 손등으로 훔쳤다.
"옷 벗어. "
Alice in Neverland
그러니까 우리는 욕실 앞에서 실랑이 중이었다. 유토가 잡았던 내 손목이 화끈거린다. 아니 화끈거리
것은 비단 손목뿐이 아니었다. 온 몸 전체가 화끈거렸다. 심장이 아주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 애는
눈살을 찌푸렸고 나는 자꾸 마르는 입술을 핥았다. 유토의 손이 닿기 전 나는 내 손을 뒤로 뺐다.
"진짜 싫어 유토. "
유토의 붉은 입술이 살짝 열렸다. 어떤 말이 나올까.
"왜 싫다는 건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난 신경 안 쓰니까 그냥 벗어. "
'대충 짐작은 가지만. ' 이 부분에서 그 애는 내 몸을 위 아래로 훑었다. 갑자기 기은표의 일이 생각나
서 불쾌해졌다. 욕실에서 나오는 열기에 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유토 너 남탕이랑 여탕이 왜 나눠져 있는 줄 알어? "
유토는 무슨 소릴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욕실 문을 완전히 열어젖혔다.
"그건 때를 미는 행위 자체가 너무 흉측한 일이라 서로 안 보는 게 좋을 테니까 그런거라구. "
"너 계속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지껄일거야?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뭐랄까 이건 단순히 허물 벗기듯 훌러덩 벗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옷을
벗는 건 그렇다 쳐도 그 다음이 문제였다. 내가 신씨 아줌마도 아닌 유토에게 내 등을 맡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내 등에서 나온 때를 보면 그냥 넘어 가진 않을 것이다. 평생 놀려 먹는다던가 아니면 정
말로 그냥 넘어갈지도 모른다. 이 말은 영원히 유토의 성에 오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다. 나는 금방이
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유토가 그런 나를 보고 다가와 쭈그리고 앉아 날 올려다
본다.
"너 우냐? "
"아니. "
유토의 옅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내가 그 뭐냐 신씨 아줌마? 그 아줌마를 다그칠 수도 없는 거고 그 세 명의 아줌마들을 때려버릴
수도 없는 거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 것밖에 없는데 그럼 어쩌냐? "
유토는 시선을 돌리며 변명하듯 늘어놓았다.
"응? 말 좀 해봐 그렇게 싫어? "
-삐죽삐죽 날카로운 유리.
"참고로 난 더러운 여자 싫어해. "
그럼 놀리지 마 나는 그렇게 말하고 교복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었다. 손에 땀이 나서 자꾸만 미끄러
졌다. 속옷을 입은 채로 욕조 안에 들어갔다. 따뜻한 온도에 몸이 노곤해진다. 누가 다그쳐달랬나? 때
려달랬나? 바보 같은 유토. 하지만 왠지 알 것 같았다. 그 말에 담긴 유토의 마음.
"이 거 풀어야 되는 거지. "
"....응. "
유토가 내 브래지어로 손을 올렸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등 뒤로 느껴지는 유토의 손이 뜨거웠다.
미세하게 떨리기도 했다.
"아씨 이 거 왜 안 돼. "
니가 자꾸 손을 떠니까 그렇지.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분명 얼굴이 빨개져있겠지. 후크 푸는 걸 포기
하곤 퍼프에 거품을 냈다. 나는 커다란 욕조에 가득 담겨 넘칠 듯한 따뜻한 물속에서 몸을 최대한 동
그랗게 말았다. 다행히도 퉁퉁 불은 때를 때수건으로 박박 밀어 추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드라운 거품과 유토의 손길이 느껴졌다. 평소엔 차가운데 오늘따라 유난히 체온이 높은 유토의 손
온 몸이 예민해진 것처럼 찌릿했다. 그게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근데 여자 등은 다 이래 "
"...다 그래. 전지현도 이래 이효리도 이래. "
"너 그 두 명을 이런 식으로 비하해도 되냐? "
"너 미워 놀리지 않기로 했잖아! "
발끈한 나는 일어서서 '이제 니 차례야 벗어! ' 하고 소리쳤다. 두 팔을 들어 올린 채로 말이다. 유토
가 얼떨결에 따라 일어나 내 두 손을 막으려 잡았지만 금세 얼굴이 붉어져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 순간 난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리고 욕조 안으로 숨었다. 유토는 아무말없이 등을 밀어
주었고 나는 물속에 얼굴을 묻었다. 내 얼굴도 분명 엄청 붉어져있을 것이다. 잠시 정적이 이어 졌고
그 짧은 정적을 깬 것은 유토였다.
"아르바이트 할 생각 그만 둬. "
"... "
"니가 돈 받고 나랑 있어주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
"... "
"그리고 아르바이트까지 하면 만날 시간도 줄어들잖아. "
-깨질 걸 두려워하는 건지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날을 세우고 있는 유리 같아.
유토의 손이 멈추었다. 시간도 함께 멈춘 것 같았다.
"헹구고 나와. "
나는 잔뜩 달아오른 얼굴을 다시 떨구었다. 마음이 노긋해진다.
-잘 부탁한다고 앞으로도.
"저야 말로요. "
심장이 진정되길 기다리다 몸이 팅팅 불어버릴 때까지도 나는 욕실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Alice in Neverland
첫댓글 처음부터 다봤어요 ㅠㅠ 너무재미있어요 ㅠㅠ 유토 왜이리 귀여운거야 ㅠㅠ 담편은 언제쯤나오나요?
이거정말몽환적이고재밋는데담편은언제?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