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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 탄금대와 주변 명소
1.탄금대
2008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42호로 지정되었다. 탄금대는 본래 대문산이라 부르던 야산인데, 기암절벽을 휘감아돌며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울창한 송림으로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다.
신라 진흥왕 때 당시 3대 악성 중 하나이자 가야금의 창시자격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해 왕으로부터 찬사를 받게 되어 충주 땅에 거처지를 마련하여 신라의 청년들 앞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데 그 소리를 듣게 된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었으니 바로 지금의 탄금대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우륵은 가야국 가실왕 때의 사람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살게 하고는 신라 청년 중에서 법지, 계고, 만덕을 뽑아 보내 음악을 배우게 하였다. 우륵은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기 춤과 노래와 가야금을 가르쳤다 한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아 풍치를 즐기며 커다란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곳을 탄금대라 불렀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무장 신립이 8,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를 맞아 탄금대 전투를 치른 전적지이기도 하다.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의 열두대라고 하는 절벽은 신립이 전시에 12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신립은 강에 투신자살하였다.
한편, 탄금대는 2013년 세계조정선수권대회의 배경으로도 사용되었다.
충주역에서 2.6km 택시 4천원 정도
2.탄금정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정자로 충혼탑 방향의 산책길을 따라가면 감자꽃노래비를 지난 다음 언덕 위에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충주 탄금정은 본래 충청북도관찰사 김석규가 1903년(고종 40) 충주시교육청(현 충청북도 충주교육청) 자리에 상연당이란 연못 안에 석가산을 쌓고 그 위에 육각정을 세워 천운정이라 이름 지은 곳이다. 김석규는 이곳에서 매년 7~8월 유생들과 더불어 풍류를 즐겼다. 그러다 1906년(고종 43)에 이곳에 충주공립보통학교를 건립하게 되면서 운동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상연당을 메우는 바람에 육각정을 사직산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후 1955년 충주읍장 박승두가 육각정을 탄금대로 옮겼다. 1976년 6월에는 목조 건물인 육각정이 노후화되자 현재 자리에 콘크리트로 2층 정자를 지었고, 육각정인 천운정은 호암지 동산으로 옮겨 다시 복원하였다.
탄금정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콘크리트 2층 정자인데, 1층에는 방형주, 2층에는 원형주를 세워 초익공 계통의 공포(栱包)를 구성하였다. 기둥 상부 주두 밑에는 조선 중기부터 이용되기 시작한 안초공으로 짜여 있어 특이하며, 창방으로 결구된 주칸에는 화각반을 1구씩 배치하여 주심도리 장여를 받쳤다. 우물천정으로 된 2층에는 난간을 돌려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으며, 지붕은 겹처마 4모 지붕을 이루고 있다.
탄금정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명승 제42호로 지정된 충주 탄금대라 불리는 곳이다. 충주 탄금대는 대문산, 태문산으로 불리던 곳으로, 산세가 평탄하면서도 절벽이 있고 숲이 우거져 산책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탄금대를 올라서면 충주문화원과 야외 음악당을 비롯하여 악성 우륵선생 추모비, 조웅 기적비, 탄금대비, 충혼탑, 감자꽃 노래비, 영의정 김지순 묘, 탄금대기비, 탄금대 토성, 대흥사 등이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최근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한 탄금대 토성이 있고, 우륵이 가야금 탄주를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신립이 전투를 벌였던 장소인 충주 탄금대는 최근 충주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때문에 역사적 장소로서, 충절의 장소로서, 편안한 휴식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충주 시민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더욱이 탄금정은 기암절벽이 위치한 곳에 있어 충주 시민들의 손꼽히는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은 명승지이자 사적지이다.
탄금대에서 390m
3.충혼탑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한국전쟁 때 희생된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탑.
1955년 11월에 대한민국 상이군경용사회 충청북도 충주분회와 대한민국 제대장병 보도분회(지금의 재향군인회)에서 해방 후 전몰한 충주 지역의 장병·경찰관·군속·군노무자 등의 2,838위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탄금대에 충혼탑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기공 9개월 만인 1956년 9월 완공하였으며, 건립 예산은 200만 환이었다. 건립위원회는 위원장 김영호, 부위원장 이낙진·오동필, 총무군장에 장세진 외 11명의 임원들로 구성되었다. 2004년 5월에 충주시에서 호국영령의 위패 안치실을 건립, 그 위에 탑을 그대로 원형 복원하였다.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산1번지 탄금대공원 내 충주문화원에서 열두대로 가는 길 오른쪽에 위치하며, 뒤쪽에 임난팔천고혼위령탑이 있다.
충혼탑 주변은 넓은 잔디밭이며, 그 가운데 978㎡의 넓이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철책을 세웠고, 정면에 310㎝ 크기의 철문을 만들어 출입을 통제하였다. 철책 양옆에는 2개의 국기게양대를 세웠고, 탑 앞에는 78㎝×124㎝ 크기의 화강암으로 만든 상석을 놓고 상석 앞에는 향로석이 있다. 향로석 옆에는 6각의 향합석을 두었다.
상석 뒤에는 탑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탑의 기단부는 2층으로 구성하였다. 초층 기단의 크기는 360㎝ 정방형에 높이는 165㎝이며, 2단 기단은 240㎝×245㎝에 높이는 118㎝ 정도이다. 그 위에 10㎝의 탑신받침을 놓고 5개의 탑돌을 층층으로 쌓아올려 탑신을 구성하였다.
탑신의 아래쪽에는 전면에 무궁화를 양각하고 그 위로 ‘충혼탑(忠魂塔)’이라고 음각한 뒤 그 위에 태극기를 조각하였다. 맨 위의 돌은 탄환 모양으로 만들어 탑신을 마무리지었다. 전체의 석재는 모두 화강암이며 높이는 8.5m이다.
충혼탑은 탑신에 한자로 ‘충혼탑(忠魂塔)’이라고 음각으로 새겼으며, 이 글씨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친필이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제향을 올리고 있다.
충혼탑은 겨레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며 애국충정한 충주 지역의 숭고한 호국선열들의 뜻을 계승하는 좋은 역사교육 자료이다. 또한 탑신에 새긴 글씨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어서 의미가 있다.
4.팔천고혼 위령탑
탑신 상단부의 혼불은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과 함께 일본과 맞서 싸우대가 산화한 8천 영령을 추모하는 모습이다. 하단에 마련된 신립 장군과 4인 군상은 최후를 맞았음에도 굴하지 않은 호국충절을 상징한다.
5.열두대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 북쪽 남한강 변의 절벽 위에 있는 바위.
신립 장군이 1592년 탄금대 전투 때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이곳에서 강 아래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고 해서 열두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설에 근거해서 후세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강과 열두대 사이의 경사가 너무 심해 오르내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탄금대 열두대는 대문산 북쪽의 깍아지른 절벽의 꼭대기에 있는 바위이다. 열두대 앞 남한강에는 용섬이 있고 강 건너편에는 중앙탑면 유송리와 오석리가 있다. 남한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면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달천과 탄금대 지역에서 합류한다. 이곳 탄금대 합수머리에서 남한강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충주조정지댐 쪽으로 흘러간다. 열두대에서 보면 이러한 남한강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고도 100m 정도의 구릉성 산지로 남쪽은 상대적으로 완만하고 북쪽은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는데, 열두대는 북쪽 가파른 절벽 위에 형성된 바위이다. 길가에는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이 있고,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노래비가 있다. 이들을 지난 다음 북서쪽으로 가면 탄금대 토성과 토성을 지나 구릉에 오르면 육당 최남선이 찬한 탄금대기비(彈琴臺記碑)가 있다. 탄금대기비를 지나면 2층 누각으로 된 탄금정이 있다.
탄금정 오른쪽 아래로 계단이 나 있는데, 이 계단을 조금 내려가면 절벽 끝 지점에 열두대가 있고, 탄금정에서 열두대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는 신립 장군 순절비가 있다. 신립 장군 순절비에는 도순변사 신립 장군이 종사관 김여물 장군과 함께 8,000명의 군사로 왜적 10수만을 맞아 싸우다 이곳 열두대에서 47세로 순절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남한강을 따라 왼쪽으로 중앙탑면 창동리 청금정과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 등이 있고, 더 북쪽에 있는 중앙탑면 탑평리에는 중앙탑이 그리고 장천리 장미산에는 충주 장미산성이 있다. 이곳에서 오른쪽 남한강의 상류인 금가면 유송리에는 충주 김생사지, 북진나루 등이 있다.
5.감자꽃 노래비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 감자'
충주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아동문학가인 동천 권태응(1918~1951) 선생이 지은 동시 '감자꽃'이다.
이 시는 일제강점기 우리의 성씨마저 없애려는 소위 '창씨개명'에 반항해 아무리 창씨개명을 할지라도 그 뿌리는 한민족(하얀꽃)이라는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다.
권태응 선생은 1918년 1월 30일 충주시 칠금동에서 태어나 34세에 병으로 사망하기까지 문학가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일본인의 부당행위에 저항하다 퇴학 당하고 1939년 '독서회'사건으로 도쿄 스가모형무소에 1년간 투옥됐다가 폐결핵에 걸려 1940년 5월 14일 풀려난뒤 귀국했고, 고향에서 투병생활과 문학생활을 계속하다가 1951년 사망했다.
1968년 탄금대에 '감자꽃 노래비'가 건립됐고 2005년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다.
충주시는 2018년 권태응 선생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권태응 문학상'을 제정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비를 확보해 선생의 생가터 복원과 함께 문학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경성고보 재학시절 민족의식을 키워 친일성향의 학생들을 구타해 종로경찰서에 구금되기도 했으며,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시절 경성고보 33회 졸업생을 중심으로 '33회'라는 비밀결사조직을 구성, 항일독립운동을 했다.
『감자꽃』은 1948년 글벗집에 의해 처녀 출간된 권태응 시인의 동요를 묶은 동요집이자 그 안에 수록된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1968년 충주시 탄금대공원에 감자꽃노래비가 세워졌으며, 이 때 등사판으로 동요집 『감자꽃』이 간행되었다. 1995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다시 동요집으로 재간행되었다.
동요집 『감자꽃』(창작과 비평사 간)은 1부 ‘감자꽃(1948, 시 30편)’, 2부 ‘춥긴 머 추워(1947~48, 시 28편)’, 3부 ‘아기는 무섬쟁이(1949, 시 17편)’, 4부 ‘공일날(1950, 시 19편)’로 구성되었다. 마지막에 유종호의 해설 「티 없는 노래」와 연보가 들어 있다.내용
동요 「감자꽃」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동요 「감자꽃」은 생명현상의 섭리를 식물을 대상으로 노래한 동요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강요된 ‘창씨개명’을 반대하는 은유로 씌어졌다고 한다.
동요 「감자꽃」은 권태응 시인의 토속적 정서와 정형적 형식미가 잘 드러나는 대표작이자,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이기도 하다.
6.대흥사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로 1956년 3월에 건립되었다. 1968년 10월에 화재로 인해 대웅전이 소실되었으며 다음해 5월에 다시 지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곳은 신라 진흥왕 때 용흥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거란족의 침략을 받아 소실되었다고 한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대웅전 주변에는 네 개의 석등과, 종각, 9층 석탑, 석비, 석불 등이 있다. 그 외에 2동의 요사채와 산신각이 있다.
7.대문산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산.
천지개벽할 때에 달천강의 상류인 보은 속리산으로부터 작은 산덩어리가 떠내려 오는데, 그 위에 개가 타고 내려와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개가 충주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해서 견문산(犬門山)이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렇듯 견문산이라고 하던 것이 어느새 점 하나가 빠져 대문산(大門山)이라고 쓰여 왔는데, 견문산으로 환원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양에서 충주를 찾아들 때 이 산이 대문의 역할을 했으므로 대문산이라 지은 것이므로 그대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어서 현재 대문산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해발고도 108.3m의 구릉성 산으로 되어 있다. 탄금대가 위치한 대문산은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합류점에 있는 고립 구릉이다. 이렇게 두물머리가 만나는 자리는 땅이 갈라진 구조선이 교차되는 지대로서, 넓은 평야나 분지가 발달하기도 하나 오히려 고립된 구릉이나 낮은 산지로 남는 경우도 있다. 암석이 풍화되는 과정에서 일단 암벽이나 급사면으로 남게 되면 오랫동안 견디는 습성이 있다.
특히, 하천을 끼고 있는 곳에서는 풍화된 물질이 빨리 제거되므로 토양이 쉽게 자리잡지 못하여 풍화의 매개체인 수분 공급이 어렵게 된다. 비가 내려도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고 곧바로 배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좀 더 척박하고 양지바른 환경에서 잘 자라는 소나무림이 우거질 수 있다.
탄금대공원에는 키가 크고 오래된 노송들이 산책로를 따라 많이 자라고 있어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그리고 소나무숲 사이로 간간이 참나무를 비롯한 낙엽수들이 함께 자라고 있는데, 이들은 비록 인위적으로 식재되었을지라도 소나무 키에 못지않게 잘 자라고 있다. 때로는 덩굴이 노송을 휘감아 돌고 있기까지 하다. 이는 충주호와 조정지댐의 영향으로 인해 안개가 많아지고, 소나무숲이 안정적으로 가꾸어져 숲 내부의 상대습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됨으로써 낙엽수, 덩굴식물을 비롯하여 이끼류 등 다양한 종의 식물이 살게 된 것이다.
탄금대(彈琴臺)는 552년(진흥왕 13) 가야국의 악사 우륵(于勒)이 신라에 귀화하여 대문산 산정에서 가야금[琴]을 연주[彈] 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탄금대는 임진왜란(1592년) 때 신립 장군이 장병 8,000명과 함께 배수진을 치고 일본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분전역투하다가 참패하여 한강 물결에 투신 자결한 전적지로도 유명하다. 하안에는 토성취락이 발달해 있다.
한편, 탄금대에는 1955년 10월 건립된 충혼탑을 비롯하여 신립 장군의 비각과 항일 시인 권태응의 감자꽃노래비가 있다. 이 외에도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궁도장, 대흥사 등이 있고, 육각정을 이전하고 새로 건립한 전망대에서는 멀리 북서쪽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국보 제6호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까지 바라볼 수 있다.
5.충주 탄금공원(세계무술공원)
탄금공원은 세계무술박물관, 야외공연장, 연못과 물레방아, 수석공원, 돌미로원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한강과 잘 조화되는 풍경이다. 탄금공원에는 각종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야외 돔 메인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돌미로공원은 남한강 정비사업 중 체취된 호박돌을 활용하여 조성된 국내 최장 미로공원이다. 충주의 특산물인 사과와 태극문양을 모티브로 총 길이 2.090m로 구성되었다.
세계무술박물관에서 세계 무술의 역사를 관람하고, 충주 탄금공원에서는 아름다운 남한강 변의 풍경을 즐기며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탄금대에서 941m
6.세계무술박물관
충주에 세계무술박물관이 있는 것은 택견 때문이다. 충주는 중요무형문화재 76호 택견의 고장으로, 택견의 계보를 잇는 송덕기, 신한승 등이 1970년대 충주에 터를 잡고 택견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1983년 택견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송덕기와 신한승은 초대 예능 보유자가 됐다. 송덕기는 신한승의 스승이며, 신한승의 제자 정경화가 2대 택견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택견은 고구려의 무용총과 각저총 고분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주 용강동 고분에서 출토된 택견상도 택견이 삼국시대부터 전해진 무술이라는 걸 뒷받침해준다.
고려 때 택견은 어전 시합 경기 종목이었다. 《고려사》에 ‘수박’ ‘수박희’로 기록되었는데, 보통은 무인들이 무예로 겨뤘다. 하지만 최충헌이 손님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중방의 힘센 자에게 수박희를 하도록 했고, 왕이 상춘정에 들러 수박희를 구경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시대에도 수박희라고 불렀는데, 병사를 뽑는 정식 종목이었다. 1410년(태종 10) 정월에는 병조에서 수박희로 인재를 시험하여 방패군을 임명한 일이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해마다 백중날 충청도와 전라도민이 모여 수박희로 승부를 겨뤘다고 전한다. 이 무렵에는 일반인도 수박희를 했다는 얘기다. 수박희가 일반인이 체력을 단련하고 정신력을 기르는 수단이었으며,수박희를 놀이에도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충주 세계무술 박물관 입구에는 엄청난 크기의 북이 있다. 21세기 한반도 중심을 상징하는 북으로 직경 220 cm, 높이 240cm다. 제작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으나, 현재는 두번째 크기다.
세계무술박물관 1층에서는 세계무술과 풍물을 전시하고 있다. 세계 무술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고, 여러 무술 단체들이 기증한 민속 공예품과 무기들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열렸던 ‘충주세계무술축제’의 화려하고 멋졌던 순간을 담은 사진들도 볼 수 있다.
전시실 2층에는 세계 무술의 기원과 역사가 있다. 우리나라 무술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고구려 시대부터 이어온 우리나라 전통 무술인 수박과 택견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택견의 계보와 여러 동작을 동영상과 조형물로 함께 관람하며 공부할 수 있다. 택견은 1983년 주요 무형문화재 제 76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전시실 3층에서는 다양한 세계무술을 살펴 볼 수 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무술을 소개하고, 여러 나라의 무기와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베는 무기, 찌르는 무기, 방어용 무기 등 다양하게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무술인 택견의 시작과 전수에 대해서 신한승 선생님의 모형물과 함께 관련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7.라바랜드
충주 라바랜드는 충주 세계무술공원 내 설치된 실내 키즈카페, 야외 놀이동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복합 키즈 문화 콘텐츠이다. 유쾌하고 코믹한 악동 라바 친구들과 함께하는 어린이 테마파크로써 국내 최대 규모의 교육 체험 클래스, 이벤트 공연과 다양한 복합 놀이 시설이 어우러진 곳이다.
탄금대에서 1km
8.능바위폭포
능암늪지대 생태공원에 있는 바위폭포다. 인공으로 조성한듯하다. 시간을 맞춰 물이 흐르는 것 같다.
9.능암늪지생태공원
남한강 안쪽 습지에 2012년 조성된 공원이다. 매우 길고 나무판길이 간간이 이어져서 경치가 아름답다. 남한강 변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산책이나 자전거 도로다. 충주지방정원으로 2025년까지 조성계획이 추진 중이다.
탄금대에서 2.1km
10.중앙탑사적공원
국보 제6호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국토의 중앙을 표시하기 위해 지어져서 ‘중앙탑’이라고 더 자주 불리고 있다. 충주는 요충지로 삼국시대부터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일어나곤 했다. 중앙탑사적공원은 과거에는 전장이었겠지만 지금은 평화로운 쉼터가 되어 우리들을 반기고 있다. 충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충주박물관도 있다. 중원문화의 중심지인 충주는 삼국시대부터 남북의 요충으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려고 겨룬 곳이다. 예로부터 양질의 철이 생산된 우리나라 대표 철산지인 충주는 우리나라 3대 철산지 중의 하나로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라 불리는 탑평리 칠층석탑이다. 중앙탑사적공원에는 ‘문화재와 호반 예술의 만남’을 주제로 국내 유명 조각가들의 독특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 25점이 전시되어 공원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충주의 풍경 속에서 잔잔한 탄금호를 바라보다 보면 근심이 잊혀지는 듯 합니다. 충주박물관은 1, 2관과 야외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들어가기 전에 어느 곳보다 역사적 숭고미를 뿜는 유물들이 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충주박물관 1관은 역사실과 민속실로 구분되어 전시하고 있다. 불교미술품과 미술품 위주로 전시하고 있다. 제 2 전시실은 선사 시대나 고려시대, 충주의 명현들, 그리고 충주의 독립운동가들 등으로 4개의 방으로 구분하여 충주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11.칠층석탑
이곳의 이름이 된 중앙탑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국보 제6호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 12.9m의 높이로 당시의 석탑으로는 가장 높고 크다. 이 탑은 흥미로운 전설을 가지고 있다. 국가의 중앙을 표시하기 위해 영토의 끝과 끝에서 보폭이 같은 사람을 동시에 출발시켜 만나게 된 곳을 중앙으로 여기고 그 자리에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12.탄금대에서 탄금호 일렉트릭유람선
국내 최초 친환경 전기유람선이다. 탄금호일렉트릭은 조정경기장 계류장을 출발해 탄금호무지개길(중계도로)까지 왕복 5㎞ 구간을 운항하게 된다. 시속 13㎞ 속도로 하루 5회(오전 11시20분, 오후 12시30분, 6시, 7시, 8시) 40분 코스로 탄금호 물살을 가른다. 운항 코스에는 국제조정경기장, 중앙탑(충주탑평리칠층석탑), 한국관광공사 야간관광 100선에 선정된 무지개길 등 볼거리가 이어진다. 특히 노을과 야경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야간 운항이 주목받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무지개길을 지나 탄금대, 세계무술공원, 용섬까지 왕복 10㎞ 코스로 운영될 예정이다. 전기 충전으로 모터를 구동하는 55톤급 승선 정원 72명 규모의 이 유람선 운항은 코리아크루즈가 운영한다.
탄금호일렉트릭은 에너지 효율과 저공해 기준을 충족해 국내 최초로 친환경 전기선박 인증을 받은 배다. 운항에 따른 수질·대기 오염이 발생하지 않는다.
유람선 운항 관련 정보는 코리아크루즈(☏ 043-852-5989)로 문의하면 된다
탄금대에서 7.3km. 탄금대입구정류장에서 시내버스 112-1.411 등 많다.9개정류장 10분.
우체국정류장하차 도보 10분.택시 7찬원
탄금호유람선에서 충주역 7.8km
시내버스 400번 우체국정류장승차 충주역정류장하차.12개정류장 14분
112-1 우체국정류장승차 충주역정류장하차 13개정류장 23분.택시 8200원
기차
<대중 교통>
1.갈때는 원주역 8시-제천역8:59분.
충주역 9:30분도착
2.올때는 충주역 16:22분 기차
제천역 16:50분도착 17:25분 원주행 승차 원주역 17:43분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