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저녁, 그간 사무실 오픈 준비로 바빴던 남편이 모처럼만에 일찍 귀가한 날이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을 하기로 하였다.
외식이래봐야 비교적 값이 저렴한 칼국수를 먹거나 돼지 고기를 먹는 것이 고작이지만, 한끼 식사만이라도 내 손으로 준비하는 식사가 아니란 것만으로도 주부에겐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청주에 잠시동안 만이라도 살아봤던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청주엔 예전부터 유명한 백로 식당이란 곳이 있었다.
가게가 번성하자 체인점을 몇 군데 내더니 어느샌가 본점조차 사라지고 없어져 버렸지만, 그 식당의 영업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한 식당들은 여전히 우리같은 소시민들이 자주 찾는 단골집이다.
돼지 고기를 부위에 상관없이 한데 뭉뚱그려 얼린 후에 그것을 둥글고 얇게 잘라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구워먹는 음식법인데, 고기를 다 먹은 뒤 그 양념에 밥을 볶아 먹는 맛이 또한 일품이다.
그 날 저녁에도 자주 찾는 단골집 한쪽에서 열심히 상추 쌈에 고기를 싸먹고 있는데,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키가 훤칠한 남학생 두명이 등에 큼지막한 배낭을 짊어진 채로 식당 문을 들어선다.
그 중 한명의 남학생이 우리 식탁으로 다가와 작은 팜플렛을 보여주며, 낮은 목소리로 무슨 취지인가를 설명하는 듯 보였다.
그 학생의 목소리가 너무 작기도 하거니와 식당 안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에 뒤섞여, 도무지 무슨 말인지를 알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더니 대뜸 남편이 이천원을 꺼내어 주라고 말을 한다.
나는 지갑에서 천원짜리 석장을 꺼내어 남편에게 건네 주었다.
"열심히 하세요" 그 학생에게 돈을 건네며, 남편이 던진 말이었다.
도대체가 대외적으로 무슨 봉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인지, 잠시 잠깐 보여주었던 팜플렛에 적힌 타이틀도 제대로 보질 못하였는데..... 마음이 석연치가 않았다.
아이들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온다.
"엄마, 물건을 산 것도 아닌데 왜 돈을 주는 거야?"
저희들 엄마가 백원짜리 동전 한 닢을 쓸 때도 벌벌 떠는 엄마인 줄을 익히 알고 있는 녀석들 눈에, 엄마가 아무런 물건도 받지 않고 돈을 주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였던가 보다.
가끔씩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거지 행색의 사람에게, 혹은 반신 불수의 장애인들의 동전 바구니에 돈을 넣는 것은 착한 일로 배운 적은 있는 아이들이지만, 이번 경우엔 납득이 가질 않는다는 눈치였다.
"우리는 그 돈을 주고, 행복을 산 것과 같단다. 그 형들은 몸도 씩씩하고 건강하지만, 마음은 그렇지를 못한 것 같구나.
정말 다른 사람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다면, 너희들은 그 형들처럼 남에게서 돈을 얻으려 하지 말고, 너희들이 땀을 흘려 일을 하고 번 돈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비록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알 수는 없으나, 좋은 곳으로 흘러가기만을 바랄 뿐이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의 손길을 그냥 모르는 척 해서도 안되는 거야.
다른 사람이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거든, 너희가 뒤돌아 후회하지 않을만큼 안에서는 줄 것이 있다면 주어도 좋단다.
줄 수 있는데 주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 때도 있거든....
그러니까 아빠 엄마는 마음이 불편하지 않기 위해 돈을 주었으니, 행복을 산 것과 마찬가지지.
그 형들은 자존심을 판 것일 게고, 우리는 마음의 행복을 산 거란다.
이 세상에서 팔지 말아야 할 것이 딱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존심이란다.
명예로움이라고도 말하고 싶지만, 아직은 너희들이 이해하기가 어렵겠구나.
자존심이란 내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란다.
공짜를 바라느니 차라리 너희가 가진 것 중에 무언가를 판다는 것은 부끄럽지 않은 일이나, 절대 팔아서는 안될 것이 바로 자존심이란 것이다.
너희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서도, 이것만은 절대 팔아선 안된다. 약속할 수 있겠니.....?"
식당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이들이 듣는지 안듣는지 아랑곳 없이 하고싶은 말들을 풀어내 놓을 뿐이었다.
부디 마지막 말만은 기억해주기를 바라면서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하였을 것이다....절대 자존심만은 팔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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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세상에서 팔지 말아야 할 것
구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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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1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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