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운룡매
이월 둘째 일요일이다. 며칠 전 주간 일기 예보에 이번 주말은 강수가 예보되어 우산이 그려진 날이었다. 그런데 주말이 다가오자 우산은 지워지고 구름에 해가 걸쳐진 그림으로 바뀌었다. 우리 지역은 지난해 가을 이후 비다운 비가 한 차례도 내리질 않아 가뭄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겨울에도 눈비가 때때로 내려주어야 대기에 떠도는 먼지를 재우고 농작물 생육에도 도움이 된다.
대기가 건조하면 산불 발생 위험이 그만큼 높아지게 마련이라 걱정이다. 비가 알맞게 내려 대지가 수분을 머금어야 수목과 화초는 생기를 띠기 마련이다. 가뭄 속에도 매화망울은 꽃잎을 터뜨리고 목련망울은 솜털이 보송보송 부풀었다. 여기저기 꽃소식이 들려오는데 대지는 메마르기만 하다. 어제 대산 낙동강 강변 들녘으로 냉이를 캐러 갔더니 생육 상태가 더뎌 많이 캐질 못했다.
아침나절은 집안에서 머물다가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걸어 퇴촌삼거리로 나가 사림동 주택지를 지나 사격장으로 올라갔다. 운동장 가장자리 아름드리 고목 벚나무는 꽃망울이 도톰해져 갔다. 한 달쯤 지나면 화사한 꽃잎을 펼칠 기세였다. 사격장 잔디밭을 한 바퀴 걷고는 소목고개로 향했다. 가뭄이 지속되어 약수터로 오르는 등산로 흙바닥에는 먼지가 폴폴 일었다.
소목고개로 오르는 등산로에는 휴일을 맞아 산행을 나선 이들을 더러 만났다. 유아원에 다닐 법한 꼬마를 데리고 나선 젊은 부부도 보였다. 산불 감시초소 부근에 이르니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이들이 에어건으로 신발과 바짓단의 먼지를 털고 있었다. 창원대학 뒤로 가는 숲속 나들이 길 들머리를 지난 약수터에서 샘물을 받아 마셨다. 조롱박 바가지가 아닌 주둥이 대롱에 그냥 마셨다.
체육기구가 설치된 소목고개 못 미친 쉼터는 몸을 단련하는 이들이 몇몇 보였다. 소목고개에 오르니 그곳 쉼터에도 가족인 듯한 일행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쉼터를 비켜 소목마을로 내려가는 곳의 벤치에 앉아 마주한 정병산을 바라보았다. 바위봉우리가 아득하기만 했다. 예전에는 가파른 등산로를 단숨에 올랐지만 이제는 무리한 산행을 할 수 없어 쳐다만 보고 마는 정도였다.
쉼터에서 내가 떠나온 거제와 가까운 곳에 사는 가덕도 작은형님과 안부 전화를 나누었다. 코로나 감염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그간 거제에서나 가덕도에서도 가끔 만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그로 인해 전화로나마 안부를 자주 나눈 편이었다. 작은형님은 아우가 생활권과 떨어진 객지에서 무난하게 교직을 마무리 짓고 창원으로 복귀해서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소목고개 쉼터 몇 갈래 갈림길에서 행선지를 하나 선택했다. 가파른 정병산을 오르기는 무리였다. 소목마을로도 내려서지 않았다. 맞은편 봉림산으로도 오르지 않고 태복산으로 가는 산기슭으로 난 숲속 나들이 길로 들었다. 흙바닥 오솔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 반질반질했다. 맞은편에서 오는 이들을 보내고 나니 뒤따라오는 아낙이 있어 어디 사느냐고 여쭈니 봉곡동에 산다고 했다.
대숲을 지나 골프장 능선을 따라 가지 않고 가마골 약수터를 향하니 맞은편에서 오는 산행객들을 더러 만났다. 나를 뒤따라오는 아낙은 외손자를 보다가 휴일이라 산행을 나섰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딸은 출장 가고 사위가 아기를 돌보는 중이라고 했다. 창원컨트리클럽 입구에서 에어 건으로 바짓단 먼지를 털고 아낙은 먼저 떠나고 나는 한들공원 구석진 곳의 분재원으로 향했다.
분재원 울타리에 자라는 영춘화는 아직 덜 피어 개나리 같은 노란 꽃잎은 몇 송이만 보였다. 비닐하우스 곁의 화분에 가꾼 만첩홍매화는 진작 피었던지 붉은 꽃잎이 저무는 즈음이었다. 볕바른 분재원 뜰에는 운룡매(雲龍梅)가 하얀 꽃을 피워 장관이었다. 가지가 용트림하듯 옹글고 비틀어져 ‘운룡’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매화였다. 지속되는 가뭄에도 만첩홍매와 운룡매는 꽃을 피웠다. 2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