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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지은 죄까지 참회하는 사람이 불자이다
우주만물이 아직 잠을 깨지 않은 이른 새벽, 부처님을 마주한 선사가 노구를 움직인다.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가 땅에 닿는다.
오체투지(五體投地).
전생과 현생, 내생의 죄를 뉘우치고 부처님께 귀의한다.
하심(下心)의 108참회다.
1배, 2배, 3배…. 평생을 이어온 108배다.
소리 없는 선사의 움직임은 108번의 방할(棒喝)이 되어 잠자는 중생을 깨운다.
입적하신,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 이야기다.
해인사 암자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백련암.
성철 스님의 뜻에 따라 화려한 단청을 칠하지 않은 검박한 암자다.
도량은 고요한 침묵에 잠겼다.
허공과 맞닿은 풍경만이 이따금 청아한 음성을 들려주고 있을 뿐이다.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백련암 퇴설당에 수좌스님들이 모였다.
허리를 곧추세운 채 화두일념으로 큰스님을 기다리는 수좌들에게서 사뭇비장한 기운이 감돈다.
이내 문이 열리고 큰스님이 자리에 앉으시자 수좌들이 삼 배를 올린다.
잠시 후 침묵을 깨고 한 젊은 스님이 물었다.
"큰스님께서는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으셨기에 평생 동안 108참회를 하십니까?"
"전생과 금생의 업장을 없애기 위해 절을 한다."
"큰스님은 이미 견성하시지 않았습니까? 돈오돈수일진대, 참회할 업장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좌중은 일제히 큰스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가야산 호랑이라는 이름답게 엄격하고 단호한 모습이다.
"속인들은 자신이 지은 죄업을 참회하지만, 중은 남이 지은 죄를 대신해서 참회하는 사람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미물의 죄까지도, 일체중생을 대신해 모든 죄를 참회하는 사람이 바로 중이다."
큰스님의 형형한 눈빛 사이로 자애의 기운이 수좌들을 감싸 안았다.
수좌들의 마음밭에 깨달음의 씨앗이 뿌려진다.
법당에 들어가거나 스님들을 친견할 때 불자들은 삼 배를 올린다.
첫 번째 절은 부처님께 귀의하며,
두 번째는 부처님 법에 귀의하며,
마지막은 승가에 귀의하며 절을 한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며 절을 하는 것은 아상(我相)을 내려놓는 하심(下心)의 행위이자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뉘우치는 참회의 기도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다양한 수행법이 있지만 절 수행은 무시이래로 쌓여온 두터운 업장을 참회하고, 몸과 마음을 맑히는 탁월한 수행법 가운데 하나다.
성철 스님도 평생 동안 참선과 함께 절 수행을 강조했다.
성철 스님을 떠올릴 때 3천 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알려진 얘기지만 성철 스님은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3천 배를 하게 했다.
성철 스님의 상좌이자 '성철 스님 시봉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한 원택 스님의 출가 인연도 3천 배로 시작되었다.
1971년 3월 어느 날,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머물고 있던 한 청년이 친구를 따라 해인사 백련암을 찾았다.
성철 스님께 평생의 좌우명을 받아볼 요량이었다.
방안으로 들어가 큰스님을 쳐다보는데, 그 눈빛만으로도 청년은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숙이고 만다.
"웬 놈들이고?"
청년은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큰스님, 오늘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그 기념으로 저희에게 평생 지남(指南)이 될 좌우명 한 말씀 해주십시오."
"그래, 그라먼 절돈 3천 원 내놔라."
큰스님의 말씀에 당황한 청년은 주머니를 뒤져 천 원짜리 세 장을 스님 앞에 내놓았다.
"이놈아, 나는 그런 돈 필요 없다. 절돈 3천 원 내놓으란 말이다!"
절돈 3천 원은 3천 배를 의미했다.
함께 있던 스님에게 그 의미를 전해들은 청년이 큰스님께 말했다.
"저희는 큰스님께 좌우명 한 말씀만 듣고자 온 것인데, 절돈 3천 원까지 낼 거야 없지 않습니까?"
큰스님이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니는 공짜로 그저 묵자 하는 놈이구만. 안 된데이. 니는 절돈 만 원 내놔라."
만 배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청년은 오기가 솟구쳤다.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만 번 절하고 오겠습니다."
만 배를 하는 방식은 '하루 세 끼 식사는 하되 24시간 이내에 절을 끝내야 한다' 는 것이었다.
청년은 천태전으로 올라가 절을 하기 시작했다.
저녁공양시간 전까지 5시간을 꼬박 한 것이 겨우 천 배였다.
육신의 고통이 밀려오고 절을 하며 졸기도 하고, 공양시간도 깜빡 잊은 채 좌복에 엎드려 그대로 잠이 들기도 했다.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지만 좌복에 앉아 허리만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어찌어찌 만 배를 채워갔다.
천신만고 끝에 절을 끝내고 엉금엉금 기어 큰스님을 다시 찾아뵈었다.
"절돈 내느라 애는 썼으니 좌우명을 주기는 주지... 속이지 마라!"
"네?"
"속이지 말라고!"
청년은 실망했다.
'굉장한 말씀일 것이라 기대하며 힘들게 절을 했는데, 기껏 속이지 말라 라니. 백련암에 괜히 와서 몸만 작살났잖아.'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청년은 문득 큰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속이지 마라!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남을 속인 적은 없지만, 나 자신을 속이고 산 날은 얼마나 많은가.'
그해 7월, 청년은 다시 백련암을 찾아 성철 스님을 친견했고, "니, 고마 중 되라" 하는 큰스님의 말씀에 이듬해 마침내 출가를하게 된다.
성철 스님을 뵙기 위해서는 세속의 지위를 막론하고 반드시 3천 배를 해야 했다.
일각에서는 그런 큰스님을 두고 '괴짜라느니' '오만하다느니' 하는 비판도 있었지만, 큰스님이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3천 배를 하게 한 데에는 깊은 속뜻이 있다.
3천 배를 하고 백련암을 올라온 학생들이 있었다.
앞에 앉은 여학생에게 큰스님이 물었다.
"니는 무슨 생각으로 절을 했노?"
큰스님의 질문에 막 3천 배를 마친 여학생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스님, 저는 저를 위해 절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절했습니다."
"그래? 니는 어째서 삥삥 돌기만 하니? 바로는 못하나?"
큰스님께 "잘 했다" 칭찬을 들을 줄 알았던 여학생은 순간 당황했다.
큰스님이 말씀을 계속 이어나갔다.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하지 말고, '일체 중생이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직접 기도하면 어떠냐?
그렇게 하면 절 하는 자체가 바로 남을 돕는 거 아이가."
여학생은 그제야 고개를 숙이며 큰스님께 합장을 했다.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절에는 아직 아상(我相)이 남아있다.
성철 스님의 말씀에는 '나'를 버리고, 절하는 행위 자체가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한 발원'이 되게 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결국, 절을 한다는 것은 나보다 남을 위하는 마음이 우선이다.
그렇게 절을 할 때 참 본성을 깨닫고 내 안의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큰스님은 말한다.
성철 스님이 종정이 되신 후, 법정 스님과 모 일간지에 실릴 신년대담을 한 적이 있다.
법정 스님이 성철 스님께 물었다.
"어째서 스님께서는 3천 배를 하라고 하시는지 일반인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흔히 3천 배를 하라고 하면 나를 보기 위해 3천 배를 하라는 줄로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늘 말합니다.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시오. 나를 찾아와서는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오지요.
그래서 그 기회를 이용해 부처님께 3천 배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절해라, 자기를 위해서 절하는 것은 거꾸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삼천배를 하고 나면, 그 사람의 심중에 무엇인가 변화가 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뒤부터는 절하지 말라고 해도 절을 하게 되며 남을 돕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월간불광 #퇴옹성철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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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