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수족관 물고기 행단 보도에서 길을 건너려다가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발을 멈추었다. 신호가 바꾸어지기를 기다리는데 횟집의 수족관이 눈에 들어왔다. 수족관에는 차에서 실려와 방금 내려놓았는지 물고기들이 숨을 가다듬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발이 수족관 앞으로다가 같다. 조금 떨어져 볼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 보니 움직이는 것이 신통할 정도로 수족관 안은 물고기로 빽빽하게 차있었다. 동료들이 붐비는 좁은 틈 사이로 물고기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산소를 흡입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부딪칠 곳이 없는데 상처를 입은 녀석들도 있었다. 수송 도중 다친 것 같다. 지느러미가 찢어진 놈도 있고 입술주위가 터진 놈도 있고. 눈을 감고 배를 뒤집고 물위에 떠있는 놈도 있고. 조금 생기가 남아있는 놈들은 바쁘게 뻐금 거리며 물을 들여 마시고 있었다. 개중에는 움직이지 않고 꼬리만 흔드는 놈도 있지만 어떤 놈은 아무런 동요 없이 가만히 있는 놈도 있었다. 녀석은 체력을 아끼려고 자기 몸을 위한 최선의 자비를 베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만이 붐비는 수족관 안은 그들만의 또 다른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곳에는 내 눈에 유난히 나이 들어 보이는 한 녀석이 있었다. 몸통은 큰데 비늘이 벗겨지고 벗겨진 비늘사이로 허연 속살이 나와 있었다. 입술 주위도 비늘이 벗겨진 상처가 있어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상처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고 싱싱한 물고기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쉴 사이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른 물고기와 부딪치기도 하고 주둥이가 유리에 바치기도 했다. 여기까지 올 때에 먹이는 주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생선회집 수족관에서 먹이를 주는 것을 보자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배고픔과 갇혔지만 살기위한 돌파구를 찾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횟집에서는 고기들의 배고픔이나 상처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만 죽으면 값이 내려갈 뿐이다. 그에게는 생명을 지킬 어떤 돌파구도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회집 주인은 늙거나 상처 난 녀석부터 처치할 것이다. 어족뿐만 아니고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식용으로 사용되는 사육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몸을 위한 단백질로 바쳐지는 제물일 뿐이다.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상처 난 늙은 물고기는 나와 공통점이 있었다. 칠십 년의 시간을 세상에서 지나며 전쟁으로 황폐한 나라에서 가난한 시절을 보냈고. 높고 무치한 자들의 야욕에 굴종하며 살아야 했다. 삶이 어떤 때는 어둠뿐인 수송차의 깜깜한 탱크 같은 때도 있었고 빛을 보았어도 유리에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뒤쳐나간다 해도 물도 없는 메마른 죽음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빨간 불빛에 꼼짝 못하는 나를 보았다. 살기위해서 절벽에서 강으로 뛰어내려야 했고 죽음이 제일 가까운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 지원하여 수많은 죽음을 보아가며 살았다. 그리고 몸에는 째져지고 쭈그러진 상처만 온 몸에 남았다. 그러나 아직도 나의 속에는 생명이 있기에 삶의 지혜를 찾아 걷고 또 걷고 있는 것이다. 또한 늙어 병들어가는 육체에 건강을 회복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늙은 물고기 같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앉아 일을 할 때는 허리에 거북이 등짝 같은 복대를 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생이라 할지라도 나는 실망하지 않고 앞으로 나갈 것이다. 어찌되었던 생명이라는 올무에 걸려 있다. 인간도 때가되기 전에 죽는 자도 있고 수명을 다하고 죽기도 한다. 거대한 수족관 안에서 뛰어보아야 상처만 날뿐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곳에 살 수 있는 돌파구가 있을 것 같아 지치도록 걷고 있다. 나는 당장에 회집의 회가 될지라도 지혜와 건강을 찾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인간의 먹거리를 위해 양식을 하는 물고기나 가축이 있다. 야생동물을 개량한 것으로 사람의 보호에서 자유로이 번식시켜 인간생활에 유용하게 이용함으로써 수렵에 의존하던 먹는 데의 불안정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육되는 동물 중에는 조류독감이라는 질병으로 수백수천 만 마리를 한꺼번에 매몰 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았다. 광우병이라 하여 소도 예외는 아니다. 돼지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인간도 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보잘 것 없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병균으로 수천수백만의 사람이 죽어가고 해일이 일어나 수십만 인간이 한 순간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기도 했다. 욥기에 보면 인간의 나약함이 확연히 들어난다. 『하물며 흙집에 살며 먼지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도 무너지는 자이겠느냐』(욥기4:19) 하루살이는 욥에게 보이지 않는 병균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글을 접하며 인생도 동물과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동물의 왕국 펜이다. 야생의 동물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서 살아있는 나를 발견 했다. 그들에게도 자손을 번식키 위한 사랑과 헌신도 있었다. 인간이 고향을 그리워하듯 연어는 수만리 바닷길에서 돌아와 자기가 태어난 강을 거슬러 올라가 알을 부화하고 죽는다. 문어는 알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고기들이 자기 살을 먹어도 알이 부화할 때 까지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알을 보호하다가 죽어 간다. 자식을 번식키 위해 자기 살이 뜯겨져 가는 고통을 참으며 죽어가는 동물들은 이외도 많았다. 그러나 사마귀 같이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동물도 있다. 배속에서 어미 살을 먹고 어미가 껍질만 남았을 때 세상에 나온다. 인간들도 부모가 모든 것을 그들에게 바치고 껍질만 남을 때에 버리는 자들도 있다. 사마귀 같은 특별한 동물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식은 어미를 따르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으로 보호하는 것이 사람과 일반이다. 생선회집 수족관 물고기들도 한때는 아름다운 지느러미로 넓은 바다를 유영하며 사랑하며 자손을 퍼트렸을 것이다. 타고난 그들의 천성대로 순수하고 소박하게 살았을 것이다. 먹고 먹히는 야생이지만 나름대로 질서를 지키며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도 질서를 지키기 위해 신호를 기다린다. 양어장 고기는 생(生)은 인간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같은 물고기라도 대형수족관에서 사랑받는 물고기들도 있다. 넓은 수족관은 바다의 생태와 비슷하고 각종 고기들이 마음껏 유영했다. 몸을 청결하게 닦아주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해 준다. 몸에 이상한 징조만 보여도 의사가 달려가서 상처는 사매고 진찰을 해서 약을 먹인다. 먹이를 사냥하지 않아도 그들이 좋아하는 양식으로 대접을 받다가 생명이 다하면 죽는다. 또한 인간은 동물을 애완한다며 동거하기도 한다. 애완 대상이 되는 동물을 주인의 성품에 따라 사랑을 받는다. 애완동물은 사람의 장난감이 아니라는 뜻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로 개칭하였다. 그러나 동물이 년 간 몇 천 마리가 버려 지는 것이 우리의 실태다. 이와 같은 실태가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자식들을 위해 살다가 늙고 힘이 없고 돈이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았을 때 버리는 자식들이 늘어나고 있다.『사람이 짐승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신다. 사람의 운명과 짐승의 운명은 비슷하다. 사람이 죽는 것처럼 짐승도 죽으므로, 사람이나 짐승이나 호흡은 동일하다. 이렇게 모든 것이 헛되니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모두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듯,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으로 내려가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전도서3:18-21) 깜박이는 물고기 눈은 마지막을 알고 있는지 슬픈 눈빛으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어항을 보고 있는 순간 내가 물고기가 되었다. 내가 커다란 어항에 갇혀 있고 하늘 저쪽에서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파란 신호등이 꺼지고 빨 간 신호로 교체 되었다. 또다시 꼼짝없이 파란불이 보일 때까지는 수족관 안에서 파란불을 기다려야 한다. |
|
첫댓글 승남이님 안녕하세요
귀한글을 긴 장문의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가지 부탁 말씀 드립니다
글자 크기가 작아서 힘들어요
제가 시력이 좋지 않아요
글자 크기를 10포인트로 해주시면 읽기에 편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글이 작아서 잘 안보여요
@글샘 최유주 대단히 최송합니다. 고첬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