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어요.
밀양으로 옮겨와서 딱 10년 만입니다. 그 당시 살고 있던 양산 덕계 아파트가 안 팔려서 내 짐만 간단하게 꾸려 2월 말에 이곳으로 옮겨왔지요. 3월 2일, 단산초등학교로 처음 출근하는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방문 열고 마루로 나오는데 마루를 딱 디디는 순간 마루가 그렇게 차가워요. 발바닥에 닿던 그 차가움이 온 몸으로 파고 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순간, 서글픔이 막 밀려오면서 ‘아, 이거 시골생활이 만만하지가 않겠구나!’싶었지요. 그러면서 그 집에서 십 년을 살았습니다.
여름방학에 이사할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준공허가 받는데 필요한 서류 준비에 세월이 좀 가고, 그러면서 집짓기 뒷일이랑 가을 농사일도 조금 하다보니 9월이 후딱 지나가고 10월도 중순이 되어버렸습니다. 학교 갔다오면 옷 갈아입고, 불당골 올라가 일하다가 어두워지면 산이랑 셋이서 슬렁슬렁 걸어내려오고. 어두운 산길과 조용한 동네 골목을 날마다 걷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이었지요.
그런데 한 달쯤 지나고, 해도 점점 짧아지니 왔다갔다 하는 것이 조금씩 힘겨워졌습니다. 두 집 살림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두 집 모두 정리가 잘 안되고 마음은 쫓기는 듯하고. 오죽하면 저녁에 동네골목에서 몇 번 마주친 아저씨가 하루는 웃으면서 “아이구, 마 이사가소. 안 힘드능교?”. 준공 떨어지자 바로 이사할 채비를 했습니다.
저녁마다 짐 정리하고 버릴 거, 가져갈 거 나누고 하면서, 또 어제 짐 들어내면서 보니 아이쿠, 무슨 짐이 이리도 많은지. 도시생활에서 보면 반듯한 가구는 하나도 없고, 전신에 고물 쓰레기 비슷한 거 뿐이니. 농사일에 필요해 이것 저것 끌어 모아둔 게 어찌나 많은지. 어제 하루 종일 이사하는 즐거움은 찾아볼 수 없고, 널부러진 낡은 짐들 보며 우울하기만 했습니다. 왜 이리 많은 걸 가지고 살아야하나. 몽고 유목민들처럼 간단하게 짐 꾸려서 떠날 수 있을 만큼만 가지고 살 수는 없나. 아! 하루종일 그 생각, 그 궁리만 했습니다. 그나마 나무로 된 짐은 불이라도 땔 수 있으니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데 비닐이나 프라스틱 종류로 만든 것들은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재활용 마대도 그득 그득, 종량제 마대도 그득 그득. 앞집 건동양반 와서 보면서 다 태우고 가라 하지만 시커먼 연기 나는 오염물질을 무작정 태울 수도 없고. 시골생활 초보 십 년 결과물이 참 울적합니다. 짐 정리하면서 둘이서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되도록, 아니, 꼭, 절대, 살림 늘이지 말자고요. 사야할 물건이 있으면 지금 당장만 생각하지 말고 오 년 뒤, 십 년 뒤를 한 번 생각해보고, 그 때도 잘 쓰고 있을 것 같으면 사든지 하고. 지금 당장만 생각하고 무엇을 사는 일은 정말 말아야겠습니다.
나는 아랫집에서 짐 골라 실어보내고, 먼산선생은 위에서 짐 자리 정해주고 대충 정리하고, 장골이 둘이 부지런히 짐 나른 덕분에 어두워지기 전에 일은 끝이 났습니다. 위에 올라가보니 제 자리 잡지 못한 짐이 여기 저기 웅크리고 앉아 우리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랫집도 아직 말끔하게 정리를 못했는데. 이번 주 내내 또 두 집 왔다갔다 하며 정리해야 할 판입니다.
십 년 전, 여수골로 처음 왔을 때, 그 때가 봄방학 때라 아는 선배가 같이 와서 하루 자고 삼일절에 돌아갔습니다. 그 때 선배는 새 학교에 출근 잘 하라고 내 모르게 내 차를 정성껏 닦아놓았더랬습니다. 다음 날 출근할 때 보니 차 안에 편지와 돈 20만원이 있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두고두고 목이 메입니다.
어제 이삿짐 실고 있는데 앞집 건동양반이 올라왔습니다. 항암치료를 몇 번 받아 얼굴이 많이 빠졌지만 기력은 조금씩 좋아보였습니다. 아저씨는 이사 간 집에 필요한 거 사라며 호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습니다. 자꾸 사양을 해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게 아저씨 방식으로 표현하는 정이구나 싶은 게 울컥해졌습니다. “아저씨, 고맙게 받을게요.” “그래, 그라소. 아무리 좋은 거도 선생 맘에 안들고 반디때기 맘에 안 들마 소용없다아이가.” 지난 십 년 동안 건동양반은 우리한테 스승이었습니다. 농사일, 시골살이에 필요한 일, 뭐 만드는 것, 아저씨한테 많이 배웠습니다. 불당골, 삼밭골, 가골, 근능골 골짜기마다 어디 가면 나물이 많고, 밤이나 도토리, 다래, 산딸기는 어디 가면 많은 지 다 가르켜줬습니다. 건동양반과 할매를 만난 건 우리 복이었습니다. 나중에 봉투를 열어보니 십 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둘 다 지친 채 저녁밥 먹고 수연재에서 정식으로 첫날 밤을 맞았습니다. 확실히 산이라 더 추워 마음이 웅크러들었지만 밝은 달빛이 우리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아랫집에서는 가끔씩 들리던 차소리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유선전화도 없고. 씻고 나서 뜨뜻한 방에 앉으니 적막강산입니다. 흙벽만 보고 앉으니 그야말로 고요합니다. 그 고요가 사람 마음을 참 홀가분하게 해줍니다. 오늘 유선전화 달기로 했는데 그렇게 되면 이제 손전화도 끝입니다. 9시뉴스도 못 보고, ‘입질이 슬슬-’도 못 보고 그냥 둘이서 드문드문 이야기 나누다가 일찌감치 골아떨어졌습니다.
십 년 전, 여수골 오면서부터 집 지을 생각을 했고 그 생각대로 집을 지어 살게 되었으니 이제 시골생활, 다시 시작입니다.(10.22)
첫댓글 눈물이 핑글 돕니다. 마음에만 접어두지 않고 실천하신 선생님과 동네 어르신들 모두에게. 마음담아 축하한다고 전합니다. 다 지은 집도 엄두가 안나던데 생각되로 지은 그집에서 동네분들과 더불어 시골생활 오순도순
드디어 이사했구나. 괜히 내가 목이 메인다. 내 손으로 집 지어 보겠다던 10여년 전 그때 네 얼굴이 쓰윽 지나간다. 해냈구나. 이런말 써도 되나 모르겠지만 하고 싶다. 장하다 승희야, 그리고 먼산 형님!
씨앗은 참으로 대단한 힘을 지녔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처음에는 아주 조그만 움에서 시작해서 드넓게 가지를 펼치듯이. 한 동네 사람(?)이면서 이사하는 데 거들지 못해 미안타. 동무가 좋은 집 지어서 나도 참 기쁘다^^ 근동아재 마음이 어떨꼬 싶으네.
짐을 꺼집어 내어 놓고 몇 번이고 내쉬었을 큰숨소리가 들린다. 그것들을 우째 다 싸고 옮기고 했을꼬? 그걸 또 어찌 정리할꼬. 급하면 벽장에다 안 보이게 넣을 수도 있지만 언니 집은 정말로 정리해야 한다 아이가. 도와주지 못하면서 마음만 쓰인다. 근동아저씨가 좀 나아지셨다니 그래도 마음이 낫다. 아저씨의 10만원은 100만원도 넘는 돈이제. 마음 세운대로 몸으로 지켜 사는 동무 있어 참 자랑스럽다. 오늘도 퇴근하고 짐하고 씨름하겠네. 마, 이삿짐명상해뿌라.
저도 마음이 울컥하네요. 고생 많으셨겠어요. 도와드리지 못해 마음 아프고요. 정말 어제밤 수연재에 지친 몸 뉘이고 그동안 집 지으며 겪은 많을 일들이 떠올랐겠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이 기쁜 마음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어제 한국통신에서 왔는데 전봇대 열 개 박아야되고 2백만원 든다네요. 아는 사람 통해 했는데도 그 정도는 들어야된다고. 유선전화 잇는데 그렇게 큰돈을 들여야하나 지금 고민중인데. 어찌해야 좋을 지.
전화 전봇대를 따로 세우는가? 전기 들어오는 전봇대에 곁다리로 쓰면 안 되는가? 이것따로 저것 따로 세우면 전봇대가 몇개고?
전기 전봇대에 전화선을 걸면 안된답니다. 만약 벼락이 치면 전기선은 땅으로 어스 시켜서 괜찮지만 전화선은 바로 벼락을 맞는답니다. 그래서 따로 전봇대를 쓴답니다. 그 좁은 골짜기에 전봇대 열 개 세우면 볼 만 하겠지요?
돈도 억수로 들고, 돈도 돈이지만 그 골짝에 전봇대 열 개 서면 볼만하겠다. 그리고 앞으로 유선 시대는 가고 무선시댄데, 유선 없이 그냥 살아봐라. 그래도 정말 불편해서 못살겠다 싶으면 그때 전봇대 세우면 좋겠다.
그래, 없어도 안 되까? 유선전화 옆에 앉아서 전화받을 일도 별로 없다 아이가? 아니네 밭일 안하는 밤에는 전화 옆에 있구나. 그래도 뭐어 손전화만 있어도 안될까? 에이구 그라고 보이 수연재는 손전화가 잘 안될 때가 많기는 하다 그지. 진짜로 고민되네.
아, 소눈. 욕봤네. 처음에 간다할 때 나는 '쉽지않을낀데' 걱정했다 아이가. 갈 때마다 볼 때마다 괜한 걱정했구나 싶더라. 고생이야 말로 다하겠나? 그 고생스러운 걸 마음닦는 명상으로 끌어올려가미 오늘 이까지 온 소눈과 밀고 끌며 다독거리면서 함께해온 먼산선생님 참 욕봤습니다. 진짜 마음에 품은 그 씨앗의 힘은 대단하구나 싶네. 이고지고 나르는 건 우리도 할 수 있을낀데 그 일조차 돕지 못했네. 욕봤어요~~
아침에 빼꼼히 들다보고 나갈라꼬 들어왔는데 괜히 눈물이 나네요. 두 분 모습이, 수연재 흙방이 눈에 선합니다. 십년. 뜻을 이루셨네요. 보고 싶어요.
머 하는 지 소식이 뜸하네. 연애라도 하능가? 삼일 구들이라고 하더니 방이 오래 뜨뜻하기는 하다. 모임방까지 훈훈하데. 양쪽 방에서 불 때면 모임방 전체가 다 온기가 있겠지. 보일러 안 틀어도 발바닥이 훈훈하면 겨울을 잘 보내겠어. 어제는 저녁 먹으며 둘이서 지리산 머루주 한 잔 했지. 니 오면 또 한 잔 하자.
결혼한 때가 겨울이라 지금 사는 집에 내려오자마자 겨울바람에 찬물에 손이 텄어. 갈라지고 터지고 피가 나는데 뭔지 모르게 서럽더라고. 어느 날 밤에 눈물이 나서 질금질금 울었더니 우리 신랑이 그러대. 몇 년 찬바람에 손 갈라터지고 발 얼어붙고나야 정말 시골 사람 되는 거라고. 찬마루 기운에 서러웠을 맘 짐작 가는데 십년을 살아온 니가 참 내 스승이다 싶다. 보고 싶다. 집이, 사람이. 잘 살아.
올 겨울은 손 좀 덜 트고 덜 서럽겠지? 잘 지내우?
반갑다. 집 고치는 일은 어느 정도 됐나? 너거 신랑 말대로 시골에서 겨울을 몇 번 나 봐야 시골 사람이라 할 수 있겠더라. 봄, 여름, 가을에는 가질 수 없는 절실한 뭔가가 있어야 겨울을 잘 견뎌내겠더라. 촌 아줌마로 행복하시라.
글만 읽고 나갈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그렇게 안되네. 나도 1월 말에 이사를 할라하니 이거 저거 정리할게 많아요. 그리고 무슨짐이 이래 많은가싶은 생각이 든다. 장농이며 장식장 같은 게 새집에 안어울린다고 새로 사라고 다들 얘기해서 잠시 흔들렸는데 언니들 생각이 나더라. 말짱한 거 다 버리고 새로 사면 보기는 좋지만 내 마음이 안편할거 같아서 그대로 쓰겠다고 남편한테도 얘기했어.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아니지 어쩌면 이게 삶에서 얼마나 큰 일인지 모르지-모든 삷을 배우고 산다.
인숙아, 장하다! 인숙이한테 참 많이 배운다!
주책이다 경해 언니 니는, 내가 멀하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