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자취방의 대문을 열기 위해 어둠 속에서 뒤적거리며 열쇠를 찾는다. 주머니 속에 울퉁불퉁하게 못난 자취방 열쇠를 손에 움켜쥔
후에 전등하나 없어 어둑어둑한 현관문의 열쇠 구멍을 손바닥으로 주섬주섬 더듬어 본다. 인기척 하나 없는 방 속에서 느끼는 음침함은 도굴꾼이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친구가 없는 자취집에 몰래 들어가는 내 심정이 도굴꾼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 본다.
맛있는 음식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간다고 약속을 하고 하루동안 신세를 지기 위해 친구집 열쇠를 빌려서 들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어색했던지 다른 사람들이 봤으면 도둑이 현관문을 조심스레 따고 있는 모습에 겁을 먹고 경찰에 신고를 했을지도 모른다. 전원을 눌러 형광등의 불빛이 들어올때까지 기다린다. 웅웅거리며 도무지 불이 들어올것 같지가 않는다.
벌레들이 발간 백열전구를 향해 돌진하여 몸이 전구를 간지럽힐 때 나는
불협화음... 따..따...따따따.... 소리가 어둠 속을 가르며 광명을 찾아준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자취생의 자취.
다시 불을 꺼버리려는 충동을 가까스로 참는다. 싱크대 위에 너부러져 있는 냄비 속의 음식들이 썩은 자태를 유감없이 뽐내며 ' 나 씻어봐라~'
하고 나를 놀리는 것 같다. 가까이 가서 냄비 속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알록달록하게 피어있는 곰팡이.... 현미경만 있으면 속에 어떤 놈들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피어오르는 악취에 되도록 멀리 멀리 던져버렸다. 이 녀석들은 설거지도 안하고 살까라고 아무도 듣지않는 불평을 하면서 말이다.
밤이 깊어오니 배속에서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꼬..르...륵.... 너부러져 있는 식기가 있어야 간단한 요리나마 해먹을텐데. 씻는 것은 내 감각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내 시각은 보기조차 꺼려했고, 내 후각은 가까이가기조차 꺼려했다. 그 냄새를.... 구체화해서 표현하는 것은 생략하겠다... 그렇지만.....결론적으로 이렇게 구리구리한 냄새를 극복할만큼
길고 긴 야심한 밤의 식욕은 왕성하게 피어올랐다.
어떻게 처리했을까...
냄비속에 있는 오뎅국 아니... 솔직히 말하면 썩어 문드러진 초특급 엽기 오뎅국을 화장실 변기에 버리면서 오바이트를 몇번이나 할뻔한지 모른다. 프라이팬에 있는 고무같이 붙어있는 떡볶이.... 물로 헹구어 역시 화장실 변기에 흘려보낸다. 그나마 프라이팬 위에 있는 떡볶이는 양이 적었기에 망정이지 두번이나 그짓을 성공했다면 내 비위는 표창장을 받고도 남아야 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철수세미로 냄비의 밑바닥부터 싹싹 닦아내며 피어오르는 원초적인 썩은내를 맡고 질식할 뻔했다. 내가 왜 이짓을 해야할꼬.... 이놈의 배고픔은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구나.
한번... 두번... 세번... 네번...... 씻고 또 씻어도 아직까지 피어오르는 것 같은 그 냄새. 열심히 닦아도 라면을 끌여먹는다면 왠지 그 썩은 국물맛이 우러나올 것 같은 느낌. 미덥지 못했지만 냄비와 프라이팬을
열심히 닦았다. 닦고 또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