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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자 Nam Gi Kim
1. 들어가며
오늘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3년이 됐다.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군대는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넘어 진격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서구 사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주장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면전이 발생하자, 서구 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러시아가 약소국가 내지는 주권국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라는 것이 소위 미국과 집단 서방의 논리였다.
미국과 집단서방은 마치 러시아가 제국주의적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을 노골적으로 학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가 젤렌스키를 중심으로 침략자 러시아를 잘 격퇴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022년 탤런트 김상중이 진행하는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서구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며 우크라이나가 부당한 침략자 러시아에 맞서 영웅적으로 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푸틴이 치매에 걸렸다는 서구의 거짓말도 그대로 옮겼으며, 소위 젤렌스키의 전시 지도력과 단합력을 극찬했다. 실제로 해당 방송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표현했다.
사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서구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밖에 안된다. 실제로 집단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 주장했고, 러시아가 전쟁범죄를 노골적으로 자행하고 있다고 선전했으며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 문제가 러시아의 선전이라는 주장도 했다.
이와 같은 서구의 내러티브는 본질 호도와 왜곡 그리고 사실관계의 오류로 점철되어 있다. 개전 3주년을 맞아 한번 이 부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2. NATO의 팽창
지난 2022년 2월 24일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분명했다. 그것은 바로 서구가 NATO를 통해 꾸준히 동진해왔기 때문이었다. 1991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붕괴되고 난 이후 NATO는 꾸준히 동진했다.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2014년 10월 15일 ‘러시아 비욘드(Russia Beyond)’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1993년에 NATO를 동쪽으로 팽창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처음부터 이것을 엄청난 실수라고 불렀다. 그것은 1990년 그들이 우리에게 했던 발언과 확약의 정신을 명백히 위반한다.”
위의 고르바초프의 발언에서 보여주듯이, 미국과 집단서방은 NATO라는 군사동맹을 통해 꾸준히 1990년대부터 동진했다.
NATO의 동진으로 1955년 바르샤바 조약 기구(Warsaw Pact)에 가입했던 구 동유럽 국가들이 NATO에 가입했다. 1999년에 체코, 헝가리, 폴란드가 가입했고 2004년에는 발트3국과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가 등이 차례로 NATO에 가입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 2017년에는 몬테네그로, 2020년에는 북마케도니아가 가입했으며, 러우전쟁이 한참이던 2023년에는 핀란드와 스웨덴이 가입했다.
군사적인 지도를 보더라도 집단 서방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동쪽으로 세력을 팽창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NATO에 가입시키려 했고, 역대 우크라이나 정권들은 2010년에 당선된 야누코비치를 제외하면 서구의 팽창에 적극 협조했다.
3.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의 기원과 서구의 활용
서구는 우크라이나를 NATO의 회원국으로 러시아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이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는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다.
사실 우크라이나에서는 1930년대부터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를 중심으로 극우 파시즘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가 만든 단체 우크라이나민족주의자기구(OUN)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했다. 이들은 수십만 명의 유대인과 폴란드인 그 외의 인종들을 청소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심지어 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나치 무장 친위대를 결성했을 정도였다.
1943년 또 다른 우크라이나 극우 조직인 우크라이나 봉기군(UPA)이 볼린 대학살로 대략 10만 명의 폴란드인을 인종청소했으며, 이들과 나치의 학살로 우크라이나에서는 15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홀로코스트 당했다.
즉, 미국은 이런 나치 세력을 소련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CIA는 이들과 1946년부터 협력관계를 유지했고, 스탈린 사후인 1954년까지 이들을 동원하여 정치공작을 일삼았다. 우크라이나 나치 세력들은 이 시기 최소 3만 5,000명에서 5만 명의 소련인을 죽였다.
소련 시기 우크라이나 나치 세력들은 사실상 지하로 숨었지만, 1980년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연방 내의 분리독립의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다시 튀어나왔다.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지난 유로마이단 이후 적잖은 세력을 얻은 올레크 타니북( Oleh Tyahnybok)도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극우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수많은 네오나치 세력들이 우크라이나에 등장했다. 그리고 이들은 앞서 언급한 나치 학살자 스테판 반데라를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했다.
유로마이단 이후 등장한 포로셴코 정부는 2014년부터 국가의 예산 지출 방향을 복지로부터 군사력 강화로 바꿨다. 2015년에서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의 국방비는 17억 달러에서 89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2019년에는 GDP의 6%를 차지하는 수준에 달했다. GDP 비율로 비교해보자면 우크라이나는 서방 선진국에 비해 3배나 더 많은 금액을 군대에 투자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는 네오나치 세력들을 군사화했다.
2013년 유로마이단 이후 돈바스 내전이 터지자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은 여기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심지어 그 당시 우크라이나에서는 국회의장으로 네오나치 출신인 안드리 파루비(Andriy Parubiy)가 됐다. 파루비는 그 유명한 극우 네오나치 조직인 아조프(Azov)의 수장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국회의장이 된 것이다.
돈바스 내전에는 과거 2007년 다게스탄인과 타지키스탄인을 참수 및 총살한 영상을 찍고 2010년 이후 우크라이나로 도망친, 러시아 네오나치 세르게이 코로트킨(일명 보츠맨)도 아조프 대원으로 참가했다.
아조프 대대를 비롯한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 세력들은 이 돈바스 내전에서 친러계열 주민들에게 잔혹한 학살과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정규군과 이 네오나치 세력들은 돈바스 지역에 폭격도 날렸으며, 심지어 파편탄이라 불리는 플레셰트탄도 잘만 썼다.
개전 초기 러시아가 크리마토르스크 기차역과 부차에서 파편탄을 썼다고 서방은 비난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내전 때 사용한 것에 대해선 입을 다문 셈이다. 그리고 2014년 초기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은 오데사에서 노조 사무실과 건물을 방화하여 민간인 50명 이상을 학살하는 짓거리도 자행했다. 친러계열 인사와 주민들에게 테러와 학살 그리고 전쟁범죄를 자행하고 다닌 주체가 바로 이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다. 이 네오나치들은 돈바스 내전 시기 15,000명을 학살했다.
4. 마리우폴 포위전과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놀랍게도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세력들은 한국 언론과 서구 언론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개전 초기 러시아군은 마리우폴을 함락하기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사실 마리우폴 포위전이 길게 끈 것은 아조프 부대가 민간인들을 아조프 제철소에 인질로 잡고 버텼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조프 제철소 지하로 대피했던 우크라이나 주민인 나탈리아 우스마노프는 독일언론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고, 아조프 네오나치들이 한 짓을 고발했다. 놀랍게도 독일의 슈피겔은 내용상의 불일치를 이유로 해당 기사 내용을 삭제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생각대로 러시아군이 인도적 회랑으로 나오는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괴롭힌다는 증언이 필요했는데, 그와 정 반대되는 증언이 아조프스탈에 있던 민간인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해당 증언을 보면, 아조프가 민간 시설과 직장건물에서 민간인을 인질로 잡고 러시아군에 맞섰던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을 함락한 이후 아조프 연대 본부에 진입했다. 충격적이게도 아조프 연대 본부에는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비롯한 나치 상징물이 다수 나왔고, 그 가운데 미국 육군본부가 2008년에 편찬한 『야전교범』과 미군만 사용하는 저격용 탄환이 발견된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증거들은 아조프의 네오나치 세력들이 미국에게 지원받아 창설된 조직임을 보여준다. 미국은 2014년부터 수백 명에 달하는 교관을 파견하여 우크라이나군을 훈련시켰다. 즉, 아조프와 같은 네오나치들도 미국에게 군사훈련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숨긴 채, 한국의 언론과 서방 언론은 마리우폴에서 싸운 우크라이나 나치들을 영웅적인 전사들로 묘사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는 네오나치를 정규군으로 편성한 나라다. 심지어 탱크와 장갑차 그리고 포병대까지 있는 나라다. 즉, 이런 나라의 네오나치 군대를 우크라이나 민족의 영웅으로 둔갑시킨 것은 영미 언론들이다.
5. 2022년 러시아가 진군한 본질적인 이유
현재까지도 한국과 집단서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주장을 일삼고 있다. 그러나 이미 얘기한 바와 같이 서구는 NATO를 통해 꾸준히 동진을 해왔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도 NATO의 동진과 연관이 있다.
사실 크림반도의 경우 크림전쟁 당시 러시아가 오스만투르크로부터 빼앗은 땅이었고, 1941년과 1942년 독소전쟁 시기 소위 세바스토폴 공방전이라하여 소련군의 영웅적인 반파시즘 항쟁이 벌어진 곳이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러시아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것은 그 지역 주민의 90%가 러시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서구의 팽창에 대한 저지 차원이기도 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의 케네디 행정부가 소련의 핵미사일 배치에 크게 반응한 것과 비슷하다. 만약 크림반도에 미국과 NATO의 미사일이 배치되면 수도 모스크바를 군사적으로 단기간에 타격할 수 있게 된다. 러시아의 안보 차원에서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바로 크림반도를 합병하게 된 이유였다.
애초에 이건 침략이 아니다. 그 지역 주민 대다수가 찬성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부정선거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이는 올리버 스톤의 다큐멘터리 ‘Ukraine On Fire’에서도 잘다뤄졌다. 러시아를 싫어하는 서구가 마치 푸틴이 부정선거로 크림반도를 합병한 것처럼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 뿐이다.
2014년 9월 이른바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서 협정이 체결됐다. 민스크 협정에서 양측은 도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약속은 철저히 깨졌다. 서방과 우크라이나에 의해서 말이다. 거기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정부는 2021년 4월 나토 가입이 안 될 경우 핵무장을 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그해 봄 NATO군은 30년 만의 최대 규모로 합동 군사훈련인 디펜더 유럽을 실시했다. 말 그대로 러시아를 자극하기 위한 도발이란 도발은 거의 다 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2021년 내내 서구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했다는 뉴스를 내보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가 전체 병력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인 12만 5,000명의 병력을 돈바스 분쟁 구역에 집결시킨 사실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민스크 협정으로 설치된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우크라이나 ‘특수감독 미션’은 돈바스 내 우크라이나와 분리 공화국 사이의 접촉선을 따라 매일 휴전 위반 사항을 기록했는데, 이기록에 따르면 2022년 2월 16일부터 돈바스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이 기록을 보면, 2월 16일 509회의 정전 위반과 316회의 폭발음이 있었다. 2월 17일부터 22일까지의 기록을 보면, 17일에는 870회의 정전 위반, 654회 폭발음, 18일 1,566회 정전 위반, 1,413회 폭발음, 19~20일 3,231회 정전 위반, 2,026회 폭발음, 21일 1,927회 정전 위반, 1,481회 폭발음, 22일 1,710회 정전 위반, 1,420회 폭발음이 기록됐다. 스위스 정보부 대령 츨순인 자크 보는 이 기록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2월 17일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며칠 안에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미스터리다. 그러나 OSCE 일일 보고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16일 이후 돈바스 주민에 대한 포격이 극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보자면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와 미국의 바이든은 의도적으로 전쟁을 도발한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이른바 특수군사작전을 게시한 것에는 이러한 사실이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사실들은 서방 언론과 국내 언론에는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 2022월 2월 19일 젤렌스키는 “부다페스트의정서보다 나토 조약 제5조가 더 효과적이라고 믿고 싶다”라고 선언하면서 핵무장 계획을 밝혔다. 이는 당연히 러시아 입장에서 실존적 위협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이 한국의 언론에는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다. 그저 러시아가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괴롭힌다는 내러티브로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했다.
따라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제국주의적 영토 야욕 때문에 침략했다는 서구의 내러티브는 매우 유치한 논리다. 최근에 미국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가 “러시아의 푸틴이 다시 제국을 건설한다는 논리는 매우 유치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맞는 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배경과 맥락에서 전개가 되었는지를 모르니 그런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6. 결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와 같은 사실과 역사에 의거에 보았을 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일방적으로 침략하였다거나 푸틴의 야욕이 발현되었다거나 하는 식의 논리가 매우 허무맹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NATO의 동진과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즘 그리고 집단서방과 우크라이나의 의도적인 전쟁도발 등을 빼놓고 러우전쟁을 보아서는 안된다.
정말 황당하게도 2022년 개전 초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키예프를 3일만에 함락하지 못했다며 집단서방은 러시아의 군사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경기도 이천시보다 작은 가자지구를 단기간에 함락시키겠다며, 전혀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해선 또 군사적으로 무능하다는 주장은 안하고 있다. 거기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대학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전대미문의 인종청소다. 그런 이스라엘은 옹호하고 러시아를 비난하는 집단서방은 자신들의 모순에 빠진 것이다.
지난 2024년 8월, 파리 올림픽 와중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에 병력을 투입하여 공격했다. 애초에 러시아의 쿠르스크 일대는 우크라이나와 아무런 역사적 정치적 관련이 없는 곳이다. 과거 개전 초기에 러시아를 규탄하던 친우크라이나 반전 시위는 있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가 쿠르스크를 침공하니 여기에 대한 반전의 목소리와 시위는 서방과 한국에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무 모순적이다.
애초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토에 군대를 보낸 이상, 소위 집단 서방이 내세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자체로 모순을 가지게 된다. 참으로 우습기까지 하다.
최근에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점차 종결되고 있다. 조만간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3년 전 영웅으로 추앙받던 젤렌스키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프로파간다를 누리지 못하게 됐다. 3년 전 한국과 서방이 젤렌스키를 어떻게 띄웠는지를 생각하면 상전벽해된 셈이다.
2024년 10월부터 한국 언론에서 화자 된 우크라이나 전선 북한군은 아무런 증거가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배우 이정재나 성룡이 북한군으로 묘사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북한군이 투입되었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그 어떠한 실질적인 증거가 없다. 국내 언론에서 보도하는 우크라이나 측 주장들은 전부다 조작으로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며 우크라이나 측의 입장을 액면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내용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본다. 이번 전쟁을 통해 세계가 점차 다극화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우전쟁의 본질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왜곡된 서구 제국주의의 시각과 그들의 내러티브를 벗어던져야 한다. 그래야만 다극화 된 사회를 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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